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57)
EP.57 서리군주
여름 바람이 차츰 서늘해져 간다.
슬슬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부우─, 부우─.]마치 구름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하늘에 둥둥 떠다니던 풍선 마족, 독식의 하인켈.
그는 에일라 숲에 있는 어느 마법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여겨보고 있던 청은발의 사내가 저 마법진 안으로 들어갔으니.
독식의 하인켈은 빛의 아이 따위에게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빛 속성은 마치 인간이 바퀴벌레를 보는 것과 같은 혐오감만 느끼게 하니까.
다만, 청은발의 남자는 이야기가 달랐다. 거리낄 게 없는 평범한 얼음 속성. 목숨을 걸고 뇌신조에게 대항했던 그 기개는 봐줄 만했으며, 절로 호승심이 들 정도였다.
[어차…피… 방해꾼이니까아….]청은발 사내와의 목숨을 건 혈투는 자기 것이다. 그의 목숨도 자기 것이다.
어차피 그는 방해꾼이니까 죽여야 한다. 명분은 충분하다. 빛의 아이는 다른 마족들에게 맡기자. 자신은 그 남자와 피 튀기는 결투만을 벌이면 될 뿐이다.
[케헤헤헥…. 헤헥…. 혈투…. 내 것…. 그의 목도… 내 것…!]부풀어 오른 몸체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안면이 일그러지고, 기괴한 미소가 만면을 채워나갔다.
입에선 맛깔스러운 음식이라도 발견한 개처럼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무력한 풍선 몸은 힘을 비축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 이제 그의 몸은 최상의 컨디션을 갖추게 되었다.
치이이이익────.
하인켈의 풍선 몸 군데군데가 터져나가고, 그 틈새에서 색이 탁한 가스가 증기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서서히 몸이 줄어들며, 하인켈은 4m의 신장을 가진 인간형 몸체가 되어갔고.
풍선 몸에 파묻혀 있던 굵직한 버팔로 뿔이 모습을 드러냈다.
탄탄한 근육질 몸. 그러나 늘어진 살이 손목과 옆구리, 발목에서부터 혹이라도 달린 것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람 생성 (바람 속성, ★1)」
휘이이이이잉───!
밀도 높은 바람이 그의 몸체를 휘감아 허공에 머무르게 했다.
독식의 하인켈은 늘어져 있는 살덩이를 잡아 뜯어내기 시작했다. 쩌저적, 겹겹이 쌓인 종이가 한꺼번에 찢기는 듯한 소리. 그는 보라색 핏물을 쏟아 내며 찢어낸 살덩이들을 한 손에 움켜쥐었다.
상처는 단숨에 회복되었다.
살덩이는 순식간에 검게 썩으면서 합쳐지더니, 길쭉한 창의 형태가 되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창날이 아직 채 수평선 너머로 가라앉지 않은 석양의 잔양을 내비쳤다.
뚜렷해진 이목구비. 하인켈의 예리한 눈매가 마법진을 향했다.
[되었다.]엄숙한 목소리가 대기를 울리고.
퍼엉─!
허공을 박차고 마법진을 향해 공기를 가로지른다. 화포 터지는 소리가 울린다. 속도는 총알처럼 빠르다.
하인켈이 떠나간 자리엔 바람이 뒤늦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서리의 시련을 받겠노라.]액티브 스킬, [천뢰를 듣는 귀]. 아무리 멀리서 나는 소리라도 제 의지대로 들을 수 있는 효과.
덕분에 아이작으로부터 엿들었던 마법진 출입 영창을 읊고서.
하인켈의 몸은 에일라 숲에 새겨져 있는 마법진을 통과했다.
한편, 서리의 시련 동굴.
시련 통로에서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잦아들었다.
빙설룡 뒤편, 서리낫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심연으로 이어지는 듯한 으스스한 통로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적안의 남자가 시련을 극복하고 서리낫을 거머쥔 까닭이었다.
빙설룡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천 년 전, 빙제의 부탁이 떠오른다. 서리낫의 새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그것을 억제해 줄 수 있느냐고.
빙설룡은 세상을 뒤바꿀 후세대의 인물을 위해 자신도 한몫 거두고 싶다면서, 흔쾌히 수락했다.
마침내 이 순간, 오랜 세월 응축되어온 서리낫의 강렬한 냉기는 한 남자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제 더는 서리낫의 마나가 지상의 섬과 바다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억제할 필요가 없게 됐다.
기쁜 일이었다. 오랜만에 가슴이 떨려왔다.
[……?]그때, 빙설룡-힐드는 또 다른 이의 방문을 알아챘다. 연푸른색 빛깔을 발하는 파충류 눈동자가, 다가오고 있는 침입자 쪽을 향했다.
검은 창을 들고 있는 4m 신장의 근육질 마족, 독식의 하인켈.
그가 기다란 발톱이 달려 있는 커다란 발로 얼음 바닥을 지르밟아가며.
묵직한 마나를 흩뿌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하인켈의 몸과 창 주위에는 검은빛과 연녹빛이 합쳐진 검녹빛 바람이 흐르고 있었다.
어둠 마나.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마족이었다.
[웬 불청객이냐?]빙설룡의 목소리에 짙은 경계심이 묻어났다.
[백룡, 탐난다. 그 비늘이, 그 고기가, 탐난다.]하인켈은 기계처럼 단조로운 무감정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며.
마력을 휘감은 창을 가볍게 휘둘렀다.
「질풍 엄니 (바람 속성, ★5)」 + 「흑풍(黑風) (바람 속성, ★5)」 =
───────── 「흑랑 엄니 (바람 속성)」
콰가가가가강───────!!
순식간에 격풍이 몰아쳤다.
늑대 무리가 달려들어 콱 깨물 듯, 매캐한 검녹빛 바람이 빈틈 없는 연격으로 빙괴를 난자했다.
빙괴가 순식간에 잘려 나가고, 빙설룡은 속수무책으로 [흑랑 엄니]의 공격을 받았으나.
단단한 백옥빛 비늘에 기스만 조금 나고 그칠 뿐이었다.
[…크고 단단하군.]하인켈은 부족한 어휘력을 최대한 발휘해 감상을 짧게 내뱉었다.
단단하지만, 그뿐.
빙설룡은 서리낫의 냉기 마나를 억제해 오며 천 년간 잠들어 있었다. 그 탓에 지금으로썬 힘이 부치는 상황이었다.
빙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자, 빙설룡은 아예 빙괴를 풀어 버렸다.
오랜만에 네 개의 다리로 지면을 밟는 꼴이 이리 추레해질 줄이야.
[너는, 나보다 강하다. 그러나, 지쳐 있다.]────── [크르르르르르….]
빙설룡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짐승처럼 경계심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하인켈은 무덤덤하게 전투 태세만을 갖추었다. 그의 탐욕 앞에선 상대가 신화 속 마수이든 전설이든 조금도 상관없는 이야기이니.
[이유, 궁금하지 않다. 나는, 네 비늘과 고기가, 탐난다.]독식의 하인켈은 창에 검녹빛 바람 마법을 휘감고서, 빙설룡을 향해 도약했다. 순간 얼음 지면이 유리처럼 부서지고, 바람이 흩어졌다.
「돌개바람 (바람 속성, ★4)」 + 「흑풍 (바람 속성, ★5)」 =
─────────── 「흑승 (바람 속성)」
─────휘우우우우우우────!!!
검녹빛 회오리바람 [흑승]을 휘감은 창의 파괴력은 빙설룡의 단단한 비늘이라도 뚫어낼 수 있는 수준.
빙설룡에겐 방어 마법을 전개할 마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필시 깊은 상처를 입게 될 터.
그러나, 하인켈의 공격은 백룡에게 닿지 못했다.
「서리불꽃 (얼음 속성, ★4)」 + 「흑빙 (얼음 속성, ★5)」 =
───────── 「혹한업화 (얼음 속성)」
[……!!]화르르르르르륵─────!!
거세게 몰아치는 검푸른 냉기 화염. 그 맹렬한 기세에 하인켈의 몸이 밀려났다. 직격이었다.
얼음 바닥을 격하게 뒹굴다가 중심을 잡고 일어선다. 전신에 가득해진 동상은 몸에 힘을 주니 금세 치유되었다.
그 순간, 온몸을 휘감는 섬뜩한 감각.
빙설룡의 뒤편, 어둠 속에서 짙은 냉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인켈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통로 안에서, 자신이 찾고 있던 청은발의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 나오고 있었으니.
청은발 남자의 오른손에는 군청색 대낫이 들린 채였다. 마치 저승사자처럼, 남자는 살기 어린 냉기를 흩날리며 통로 밖으로 빠져나왔다.
“…….”
궁전처럼 아름다운 얼음 동굴 내부. 연푸른빛 마나 조명이 청은발 남자의 자태를 비추고, 대낫의 날카로운 날이 그 빛을 반사시켰다.
빙설룡 또한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가벼운 로브 차림의 그. 거치적거리는 방한복은 버리고 온 듯했다.
본래 마법사는 자기 마법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 즉 청은발 남자가 이곳에서 추위를 타지 않는다는 것은, 서리낫의 냉기가 온전히 그의 것이 되었다는 방증이었다.
시선을 내리깔고 있는 청은발 남자. 묵직한 마나가 하인켈의 전신을 짓눌렀다. 심해의 거센 수압이 자신을 짓이기려는 듯한 감각이었다.
이어,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싸늘한 핏빛 눈동자가 마족을 향했다.
“…‘독식의 하인켈’이냐.”
[……!!]이름을, 알고 있다.
하인켈은 전신이 오싹거리는 감각을 느꼈다.
[내 이름을, 알고 있었는가….]하인켈은 [천리안]의 힘으로 아무리 멀리 있는 것이라도 내다볼 수 있다.
[천뢰를 듣는 귀]의 힘으로 아무리 멀리서 나는 소리라도 알아들을 수 있다.그러나 그러한 힘을 지닌 채 청은발 남자를 감시하고 있었던 하인켈은.
오히려 그의 손아귀 안에서 자기만족에 취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역시 탐난다…! 네놈과의 전투가, 혈전이…!]하인켈은 흥분해서 소리쳐 댔으나.
청은발 남자는 지나가는 벌레 따위를 보는 듯 무감정한 반응만 내보일 뿐이었다.
그 모습이, 되려 하인켈의 호승심을 더욱 거세게 자극했다.
“힐드.”
청은발 남자는 빙설룡-힐드 쪽으로 왼팔을 내밀었다. 그 손목엔 8성급 사역마 계약진이 새겨져 있었다.
“내게 와라.”
청은발 남자의 냉소적인 명령이 내려앉았다. 그로서는 서리낫의 냉기에 적응하느라 말투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빙설룡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냉담한 표정이, 차가운 목소리가… 꿈속을 표류하며 보아왔던 빙제의 모습과 겹쳐 보였기에.
아무리 보아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오오라는 틀림없는 빙제의 것. 빙제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제왕의 위세’였다.
[후후….]빙설룡은 아련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다시 그대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여행할 수 있겠구나.
마치 꿈만 같다는 표현은 이때 쓰는 걸까. 가슴 속이 울컥거린다.
빙설룡은 살가죽처럼 달라붙어 있던 사명감을 훌훌 벗어 던지고.
청은발 남자, 아이작을 새로운 주인으로 받아들였다.
화아아아아아아아──────!!
8성급 사역마 계약진이 강렬한 연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빙설룡의 몸체에도 같은 색감의 마력이 휘감겼다.
북부 지역 화이트클락 공작령의 상징, 신화에 이름을 새긴 8성급 마수, 빙설룡-힐드.
이 순간, 그 백룡의 이마엔 연푸른빛 사역마 각인이 새롭게 아로새겨진다.
스으으으으────.
곧바로 새로운 주인의 강대한 마력이 빙설룡에게로 흘러들었다.
사역마는 하수인과는 다르게 공식적인 주종 계약을 맺는 밀접한 관계. 주인이 같은 속성이기만 하다면 마력을 제공받는 일도 가능했다.
곧 아이작은 빙설룡 앞에 서서 독식의 하인켈을 마주 보았다. 서리낫에 스민 연푸른빛 마력이 차갑게 일어서고.
그 뒤에서 빙설룡이 마력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사역마, 빙설룡의 마법은 그 주인, 아이작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즉, 이제부터 쏟아 낼 빙설룡의 마법은 오로지 적만을 먹어 치우고.
제 주인한텐 그 어떤 피해도 주지 못할 터였다. 그가 직접 사역마의 마법에 당하겠다는 의지만 품지 않는다면.
사방을 휘감기 시작한 새하얀 냉기. 빙설룡의 고유 스킬 [서리바람]이 발동되었다. 주인의 얼음 마법 위력은 증대시키고, 적의 신체는 얼려 둔하게 만드는 힘.
아이작이 전장을 지배하도록 만드는 강한 눈폭풍이었다.
────────── [카아아아아아──────!!!!]
백룡의 거친 포효가 동굴을 뒤흔든다.
[서리바람]으로 혹한의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회색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하인켈의 시야. [서리바람] 틈새로 보이는 것은 남자의 붉은 안광과, 백룡의 연푸른색 안광이었다. [탐난다…. 네놈이, 백룡이, 탐난다…! 탐난다!!]하인켈의 미소가 과하게 일그러졌다. [서리바람]에 대항하기 위해 그는 마력을 쏟아부었다.
하인켈의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엔 하인켈의 고유 속성 마나가 깃든다.
「돌풍 (바람 속성, ★4)」 + 「뱀독 (독 속성, ★5)」 =
───────────── 「독바람 (바람+독 속성)」
휘우우우우우우우우─────────────!!!!
맹독을 휘감은 보랏빛 바람이 [서리바람]과 힘겨루기를 하며 아이작의 육체를 침식해간다. 조금만 호흡해도 생명체를 죽음으로 몰고 갈 강력한 맹독.
그러나 아이작은 가볍게 서리낫을 한번 들었다가 바닥을 내려찍는 것으로, 하인켈의 [독바람]을 몰아냈다.
─────────── 「서리군주의 위광 (얼음 속성, ★7)」
화아아아아악──────!!
찬연한 연푸른빛 광채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시전자에게 들이닥친 모든 마법을 몰아내는 마법, [서리군주의 위광]. 대상은 아이작이 감당 가능한 마법뿐이나, 이미 그의 수준은 하인켈을 압도적으로 상회하고 있었다.
빙결 속성의 정점, 서리군주의 위압감이 아이작으로부터 흘러나온다.
하인켈은 가슴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열기를 느꼈다. 고양감. 고양감. 이토록 가슴 떨리게 하는 적을 마주하는 건 얼마만이던가!
[크하하하하학───!! 역시 네놈은 탐난다! 탐난다───!!]쿠웅───!
하인켈은 빙설룡의 [서리바람]으로 얼어 버린 몸체를 마력으로 녹여내고, 아이작을 향해 매서운 속도로 뛰어들었다.
검은 창에 검녹빛 회오리바람, [흑승]을 휘감고서 아이작을 찌르기 직전.
아이작의 잔잔한 목소리가 공기를 울린다.
“생각보다… 시시한 놈이었구나.”
아이작은 두 눈을 내리깔았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1학년 2학기 파트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마족, 독식의 하인켈.
악신의 명령과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행동하고 다니는 그는, 여러 에피소드에 변수처럼 등장하는 조커 역할의 마족이었다.
게임 속 하인켈의 강력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서리낫의 냉기를 머금은 아이작 앞에서 그는, 그저 단 한 명의 무력한 약자일 뿐이었다.
아이작은 하인켈을 향해 서리낫의 머리 부위를 슬쩍 내밀었다. 그 앞에 [빙결 폭발]의 마법진이 구현되었다.
하인켈의 창이 아이작에게 맞닿으려는 찰나.
서리낫의 마법이 마족을 덮쳐든다.
───────────── 「급속냉각 (얼음 속성, ★7)」
차라라락───────!
서리낫 근처에 온 모든 것을 급속도로 얼려 버리는 패시브 스킬, [급속냉각]. 눈 깜짝할 새에 하인켈의 몸체가 얼어 버리고.
연이어 서리낫 앞에 구현된 마법진으로부터, 차가운 마력 폭발이 일었다.
────────────── 「빙결 폭발 (얼음 속성, ★5)」
콰아아아아아아아아──────────────!!!
강맹하게 쇄도하는 빙결.
냉기 폭발은 이미 얼어 있던 하인켈의 오장육부를 맹렬히 깨부수고.
빙괴는 사납게 뻗어나가며 하인켈의 망가진 육체를 전시품처럼 가둬버린다.
어느덧 빙괴 속 하인켈의 몸체는, 신체 군데군데가 조각조각 깨져 버린 토르소가 되어 있었다.
스르르르르─.
[빙결 폭발]로 형성된 거대한 빙괴가 연푸른빛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이미 숨을 거두어 버린 마족의 시체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 시체로부터 은빛 오오라가 흘러나와 허공에 응집되었다.
독식의 하인켈은 잿빛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응집된 오오라는 담배 연기처럼 아이작에게로 흘러들었다.
아주 잠깐 오른쪽 눈동자가 은빛으로 물들었다가, 이내 적색을 되찾았다. 하인켈의 고유 마법 [천리안]이 아이작의 오른쪽 눈에 새겨졌다.
“…….”
아이작은 본능에 새겨진 감각으로 서리낫을 없앴다. 빙결 해제처럼 서리낫을 연푸른빛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몸 안에 흡수하는 식이었다.
마치 몸속 심지 깊은 곳에서 서리낫을 꺼내거나 넣을 수 있는 새로운 수납장이 생긴 기분이었다.
이어, 아이작은 빙설룡-힐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빙설룡은 눈을 감고, 앞발을 굽혀 고개를 조아리며.
눈가에 눈물을 머금은 채, 새로운 주인에게 예를 표했다.
[빙제여.]빙설룡에게는, 몹시도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다시 그대를 만나게 해준 운명에, 나는 감사를 표한….]휘우우우우우우───.
돌연 빙설룡은 연푸른빛 마나의 형태가 되어 강제로 역소환되었다. 순간 백룡은 당황한 나머지 ‘표한드아어?’하고 말이 엇나갔다.
빙설룡의 거체가 사라지자마자 쓸데없이 넓어 보이기 시작한 얼음 동굴의 전경.
아이작은 곤란한 듯 식은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다. 빙설룡의 소환 상태를 유지하는 데 터무니없는 마력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고유 특성 [멸악자]가 풀리자마자 마력 고갈 상태가 될 뻔한 위기감을 느끼고 곧바로 빙설룡을 역소환한 것이었다.
“오메….”
아이작의 품위 없는 감탄사를 끝으로, 얼음 동굴엔 시종 허무한 침묵만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