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78)
─ ‘도로시 선배, 제 파트너가 돼 주세요.’
사교회가 열리고 있는 팔라스관.
제3관 파티장에 한 여학생이 벽면에 붙어있는 의자에 앉은 채 홀로 포도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길게 흘러내리는 연보랏빛 머리칼. 우아한 보라색 드레스 차림. 샤를관 전속 메이드에게 부탁해 평소보다 화장에도 열을 올린 상태였다.
항상 쓰고 다니던 마녀 모자가 있던 자리엔, 대신 꽃잎 모양 헤어핀이 예쁘장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마법학부 2학년 수석, 도로시 하트노바.
그녀는 가만히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동기, 선후배들과 수차례 인사를 나눈 상황. 남학생들의 파트너 제안도 웃는 얼굴로 숱하게 거절해 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유 없이 그저 앉아서 떫은 포도주만 들이키고 있던 도로시를, 학생들은 의구심 어린 눈빛으로 연신 곁눈질했다.
도로시가 입고 있는 드레스는 바로 오늘, 사교회 때 입으려고 방학 동안에 미리 준비해놨던 것이었다. 아이작과 함께 사교회에 참석한다면 분명 즐거우리라 기대하면서.
파트너가 되자는 제안을 거절당했을 때 그럴 필요는 없어졌다고 생각했지만.
괜찮았다. 어찌 됐건 아이작과 있으면 즐거우니까 상관없었다.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고. 가슴속만 조금 먹먹할 뿐이었지.
하지만 전날 저녁. 대뜸 아이작이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하자 도로시는 날아오를 듯이 기뻐했다.
─ ‘어어?! 마음 바뀌었어?’
─ ‘네. 말 바꿔서 죄송해요, 선배.’
─ ‘아냐, 아냐! 니히히. 역시 회장~, 이 누나의 제안 거절하기 힘들었구나?’
─ ‘당연하죠. 선배 팬인데.’
─ ‘근데 어쩌니? 한번 거절당했던 충격이 아직 가시질 않았는데~? 회장의 정성스러운 에스코트가 없으면 충격이 가라앉질 않을 것 같네~.’
─ ‘목숨 걸고 에스코트하겠습니다.’
─ ‘사명감 좋아! 마음에 들어!’
─ ‘그런데 선배,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 ‘……?’
하지만 아이작은 온전하게 파티를 즐길 수만은 없는 모양이었다.
─ ‘밤 9시까지만 기다려줄 수 있어요?’
─ ‘어어? 왜? 9시는 너무 늦지 않아? 파티 얼마 못 즐길 것 같은데….’
─ ‘사정이 좀 생겼어요. 솔직히 파트너 되자고 하는 것도 면목 없긴 한데.’
─ ‘회장?’
─ ‘염치 불고하고, 기왕 파티 즐길 거라면 선배랑 즐기고 싶습니다.’
아이작은 참 신기한 남자다.
언제든지 그에게선 애틋한 감정이 엿보였으니까.
그저 대가 없는 애정. 아이작의 감정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푸근해지게 만든다.
그러나 가끔, 아이작은 도로시에게 ‘걱정’의 감정을 내비치곤 했다. 바로 어제 그에게서 보였던 감정이 그러했다.
“회장은 진짜 치사하네. 지 멋대로야.”
양손으로 턱을 괸 채 시큰둥한 표정으로 투덜대는 도로시.
조금씩 취기가 올라와 두 뺨이 슬슬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런 말 하면 어떻게 안 기다려….”
아무리 메르헨 아카데미의 최대 전력이라고 떠받들어지는 도로시라고 하더라도.
아이작에게는 그저 걱정의 대상밖에 안 되는 한 명의 여자에 불과했던 모양이었다.
그 생각이 도로시의 자존심을 툭툭 건드렸으나, 어째 싫은 기분만은 아니었다.
* * *
[근처에 있는 마족을 감지했습니다.]일주일간 생각을 고쳐먹었다.
시나리오 흐름을 온전히 예측해, 눈에 안 띄고 배드 엔딩을 막아 내겠다는 생각은 그저 오만에 불과하다.
선을 넘지 않는 한, 어느 정도 눈에 띄는 리스크는 각오해야 했다.
‘이미 시나리오가 개 같이 꼬여 버렸으니까.’
본래 이번 2학기 때 나왔어야 할 독식의 하인켈, 허상의 리파가 조기에 퇴장해 버렸고.
그 영향이 예상 밖의 존재를 불러오고 말았다.
바로 이 파티장에 있는 ‘그 마족’.
내가 특히 조기에 맞딱뜨리고 싶지 않았던 놈들 중 한 명이었다.
‘아으, 긴장되네.’
온몸이 격하게 떨려오자 조심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패시브 스킬 [빙제]의 효과가 감정을 추스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자아, 진정하고 정신 똑바로 차려라. 나는 잘 해낼 수 있다. 해 보자.
금세 학생들은 나나 트리스탄에게서 신경을 끄고 다시금 파티를 즐기기 시작했다. 면식 없는 학생들의 시시한 트러블 따윈 관심도 없다는 눈치였다.
[ 리제타 라이온하트 ]심리 : [ 당신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
고맙다고 인사나 할까 했는데, 리제타는 곧바로 내게서 시선을 휙 돌려 버렸다. 심리 상태를 보아하니 접근하지 않는 편이 그녀에게 좋을 것 같았다.
카야도 미리 얘기해 뒀던 대로 나를 모르는 척했다. 그러자 나를 째려보고 있던 다른 남학생들도 내게서 관심을 끄기 시작했다.
‘어휴, 수컷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의 기억대로 카야 같은 녀석들은 뭇 남학생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심리를 공감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역시 경계를 받는 건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루체 있었으면 난리도 아니었겠구만.’
루체와 카야. 두 히로인의 존재는 남학생들을 환장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을 것이었다. 무진장 예쁘니까. 괜히 내 애정캐들이겠는가.
다만, 루체는 이번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다.
─ ‘아이작, 사교회 갈 거야?’
─ ‘생각 중이다~. 너는?’
─ ‘어려울 것 같아. 사교회 상관없이 아이작이랑 있고 싶은데…, 조금 중요한 약속이 생겼어.’
며칠 전, 정원 구석에 있는 나무 아래서 루체와 나눴던 대화였다. 시나리오 점검을 위한 대화였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선 루체와의 대화 도중.
‘내 파트너가 돼줘. 너랑 꼭 같이 파티에 참석하고 싶어’라는 오글거리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는다면, 그녀는 사교회에 불참하게 된다.
바로 오늘, 메르헨 아카데미의 컨택으로 엘도르크 마탑의 마법사들과 면담하기로 약속을 잡게 되었으니까. 최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혜택이었다.
루체라는 뛰어난 자질을 지닌 입탑 희망자를 탐내지 않을 마탑은 없을 테니, 앞으로도 그런 약속은 간간이 잡히겠지.
비록 루체가 인간을 향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탑과 관련된 자리에서 공적인 대화 정도는 어떻게든 잘해낼 것이었다.
언젠간 성위급 마탑주가 되어 역사를 개찬할 루체다. 나는 목표를 좇는 그녀를 좋아했다.
내 정보를 판 장본인, 에바 하일로버도 눈에 띄었다.
이제 4성좌는 신입을 모집할 시기이기에, 굳이 정보 수집꾼들이 정체를 숨길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아틀라홀에 있는 사람들 중 자신을 4성좌에 꽂아준 정보 수집꾼을 싫어할 녀석도 없을 테지.
이윽고, 악단은 연주를 멈추었다.
염동 마법이 일부 발광 램프들에 빛 가리개를 씌우자 파티장이 어두워지고.
이내, 암막 커튼이 쳐져 있는 무대 쪽 발광 램프만이 밝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구나. 학생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조명이 비추는 무대 쪽을 쳐다보았다.
곧 재즈 느낌이 나는 곡이 연주되기 시작하고, 서서히 무대의 막이 걷혀가며.
깔끔한 예복을 차려입은 한 남학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머리를 뒤로 넘겼으나 유쾌한 인상은 감추지 못했다.
작은 확성기를 들고 있는 모습. 파티의 진행자였다.
“4성좌의 초대에 응해 이 자리를 빛내주고 계시는 후배 여러분! 반갑습니다! 아틀라홀 파티 진행을 맡게 된 ‘루이지 카마에르’라고 합니다!”
진행자, 루이지 카마에르가 웃는 얼굴로 상체를 숙이자 학생들이 박수를 보냈다.
“긴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 자리를 주최한 4성좌는 메르헨 아카데미의 행정에 관여할 수 있는 권력 조직이죠! 학생회장 선거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기도 하며, 4성좌에 속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영광으로 여겨집니다.”
루이지는 말을 이어갔다.
“특히 여러분들은 현 1학년 중에서도 유달리 두각을 드러내는 유망주들! 4성좌는 그런 여러분들이 더욱 크게 비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날개가 되어 줄 것입니다!
그럼, 메르헨 아카데미의 4성좌를 이끌어가고 있는 각 성좌의 수장님들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박수로 환영해주시기 바랍니다!”
악단의 연주곡이 웅장한 곡조로 바뀌고.
발광 램프는 3층 발코니 쪽을 밝게 비추기 시작했다.
그곳에 있는 통로에서, 학생회 다음의 권력을 거머쥐고 있는 학생들이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역시나.’
예상했던 얼굴들이 내 눈에 비쳤다.
“검은 호랑이 자리, 흑호의 수장. ‘에리카 헬라우드’!
푸른 이리 자리, 청랑의 수장. ‘레이 라스모르간’!
황금 독수리 자리, 금취의 수장. ‘브라운 펠크버러’!
붉은 코끼리 자리, 적상의 수장…!”
‘질투의 말록.’
[ 질투의 말록 ]Lv : 155
종족 : (인간)
속성 : 어둠, 바위
위험도 : 최상
심리 : [ 케루빔의 목걸이를 훔치고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죽이고 싶어 합니다. ]
붉은 스포츠 머리, 우락부락한 거구. 사나운 인상의 사내.
얼마 전 적상의 새로운 수장 투표로 선출된 새로운 수장이라고 하나.
대비가 무척 허술했기에 얼마 안 있으면 알아서 정체가 탄로 날 게 뻔한 놈이었다.
루이지는 그를 ‘말록 브라이어’라고 소개했으나, 성은 가명이었다.
질투의 말록.
>메르헨의 마법 기사> 2학년 1학기 파트의 빌런. 허상의 리파와 의형제를 맺었으며, 그처럼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마족이었다.
허상의 리파는 질투의 말록에게 자기 계획에 방해된다며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고 했었지.
그러나 리파가 1학기 때 처치되면서, 결국엔 말록이 조기 출현하게 된 모양이었다.
‘인간이 되고 싶었던 마족….’
허상의 리파와 질투의 말록, 두 마족은 능력이 비슷하지만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바로, 말록은 인간이 되길 열망한다는 것.
때문에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말록은 이안에게서 케루빔의 목걸이를 빼앗으려 들었다.
그것만 있으면 마족이 지닌 힘이 증폭되고, 놈의 인간으로 변화하는 능력은 완전해질 테니.
케루빔의 목걸이가 이 자리에 나오는 순간, 말록은 눈이 돌아가고 말겠지.
하물며 놈은 장래가 유망한 인간들을 더없이 싫어한다. 마족으로서 본능적으로 지니는 살의와 단순한 질투심이 합쳐진 심리다.
자신이 바라던 인간의 생애를 타고났으면서, 그들 사이에서 잘 나기까지 한 존재는 놈을 분노하게 만든다.
시나리오에서도 상위권 학생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말록은 본색을 드러냈었다.
아마도 나를 이용해 루체를 불러들이려 했던 것도, 단순히 그녀를 죽이고 싶은 심산이었을 뿐이리라.
즉, 말록은 케루빔의 목걸이와 상위권 학생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폭주하게 될 테고.
놈을 저지하는 것이 내 목적이었다.
‘문제는 저놈이 인간으로 분류된다는 건데….’
내가 특히나 조기에 보기 싫었던 마족 중에 저놈이 껴있는 이유.
그것은, 바로 놈이 인간의 형상인 이상 종족 또한 인간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놈이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한, [멸악자]의 발동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도로시의 무력이 있으면 편했을 텐데.’
아직 도로시는 저주에 속박되어 있는 몸.
질투의 말록은 태생적 마족이다. 도로시가 이 자리에 있거나, 놈을 향해 마법을 사용하면 필시 저주는 급격하게 촉진될 터였다.
적어도 도로시가 목숨을 잃는 >메르헨의 마법 기사> 「6막, 부유섬」 파트를 무사히 넘기기 전까지, 그녀가 태생적 마족과 싸우게 둬선 안 됐다.
루이지는 4성좌 수장들이 어떠한 사람들인지 대강 설명했다. 다 아는 내용들이라 들을 것도 없었다.
4성좌 수장들은 저마다 미리 마련되어 있던 의자에 착석했다.
이어, 루이지는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 차례를 기다리고 계셨던 분들이 많았겠습니다만~.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메르헨 아카데미 보물고에 있던 4성좌 소유의 보물들을 여러분들께 나눠드리고자 합니다!”
메르헨 아카데미의 보물고. 극비에 묻혀 있는 장소라 교장 엘레나와 극히 일부의 학사 인력을 제외하곤 아무도 그 위치를 알지 못한다.
그 보물들이 담겨 있을 수레 또한 이곳까지 비밀리에 옮겨졌을 터였다.
“보물은 자신과 마나가 공명하는 자를 주인으로 택합니다. 그분께 해당하는 보물을 드리도록 하죠!”
무대 위, 루이지 옆으로 한 남자가 고급스러운 수레를 끌며 나타났다. 깔끔하게 정돈된 온갖 보물들.
옆에는 금빛 테두리가 장식된 투명하고 둥그런 케이스들이 달걀판처럼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 시선은 수레가 아닌 그것을 끌고 온 남자 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무대의 호화스러운 풍경과 대비되도록, 지나치게 이질적이었으니까.
큰 키. 쭉 잡아당긴 반죽처럼 길쭉한 신체는 몹시 기이했다.
온몸은 해파리처럼 흐느적거렸고, 피부는 칠흑처럼 새까맸으며.
쭈뼛쭈뼛한 머리칼은 피부색과 대조적으로 몹시 새하얬다.
음침한 보랏빛 안광이 진행자 루이지를 향했다. 누가 보아도 인간의 외형이 아니었다.
“저, 저건… 뭐야…?”
한 학생이 수레를 끌고 온 괴물을 가리켰다. 그의 목소리와 손가락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관중들은 모두 괴물의 존재에 의문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으나.
어째선지 루이지 만큼은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듯, 태연하게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파티가 끝날 때까지 수시로 보물 이벤트를 열 예정이니, 모두 즐겨 주시길 바…!”
─────「수압포 (물 속성, ★5)」
퍼엉────!!
순식간에 전개된 푸른 마법진이 고압력의 물덩이를 발사했다.
진행자, 루이지가 있던 자리가 단숨에 휑해졌다. 물덩이에 휩쓸려 벽면에 부딪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루이지.
바닥에 엎어진 그는, 부르르 경련하며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악단은 크게 놀란 나머지 연주를 멈추고 말았다.
고요가 찾아왔다. 그 누구의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았다.
너무도 급작스러운 상황이었기에, 학생들의 머릿속은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는 듯했다.
루이지를 날려 보낸 괴물은, 이번에는 관중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입꼬리가 귀까지 맞닿을 만큼, 기괴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는 남자.
연이어 그가 내뱉은 말은.
[안녕하세요?]아주 익숙한 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