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77)
“그아아악!! 약해애!!”
깊은 밤이 되어서도 리제타 라이온하트는 제2훈련장에서 떠나질 못했다.
마석이 박혀 있는 나무 방망이 마도무기, 록타를 휘두르며 바위 마법을 쉼 없이 휘두른다. 상대는 마물 환상. 이미 고난이도 마물 환상까지 돌파했으나, 영 시원찮다는 기분만 들었다.
얼마나 싸웠는지는 모르겠다. 땀으로 범벅인 리제타는 몸에 열기를 흘려보내며 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러다가 돌연 소리를 악 내지르며 자기 나약함을 탓하길 반복하는 그녀.
“한 번 더!!”
마물 환상이 다시 튀어나왔다. 황소 머리를 가진 거구의 마물, 타우로 5마리. 그러나 몇 번의 합을 주고받으면 어느새 타우로는 전부 쓰러져 버린 채였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제까지 그 많은 사람이 떠받들어줬던 바위 마법이다. 그녀도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바위 마법이 요새 무척 무뎌 보였다.
땅속 거인의 몸속에서 아이작과 함께 나돌아다녔던 영향이었다. 그의 강함에 비한다면 자신은 턱없이 나약했으니.
그날 이후로 가슴속이 줄곧 숭숭한 기분이었다. 리제타는 그대로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아, 기분이 나아지질 않냐.”
넓은 돔형 훈련장 안에서, 오로지 리제타의 목소리만이 조용히 내리깔렸다.
리제타의 이상형은 자기보다 강한 또래의 남자였다. 이는 메르헨 아카데미에 온 목적 중 하나이기도 했다.
마침내 그런 남자를 찾아낸 듯했으나, 문제는 그가 강해도 지나치게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리제타가 원했던 건 열렬한 싸움 끝에 자길 쓰러뜨릴 수 있는 남자였지.
아이작처럼 격의 차이가 하늘을 뚫을 듯이 드높은 남자는 다른 세상 사람처럼 느껴지고 만다.
호승심보다, 따라잡고 싶다는 열망보다, 동경심보다, 연심보다.
두려움과 허무감이 앞서고 만다.
그 생각은 곧 과거를 부끄럽게 물들인다. 자기가 뭐 그리 잘났다고 자긴 강하다며, 싸움을 원한다며 온갖 위세를 떨어댔단 말인가.
“그딴 놈,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요새 반복하고 있던 독백이었다.
리제타는 눈을 감고 탄식했다.
깊은 밤, 리제타는 훈련장을 나섰다. 아카데미 부지는 휑하니 무척 한산했다.
리제타는 고개를 숙여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 이 짓을 수백, 수천, 수만 번을 넘게 반복한다고 해서, 아이작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상상을 초월하는 고위 사역마를 다루며, 높은 등급의 마법을 가볍게 펑펑 써대던 그였는데.
갈 길이 한참이나 멀다. 이 열등감을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모르겠다.
리제타는 떨리는 손을 주먹 쥐고 발을 옮겨갔다.
……
일주일 후.
적적했던 가을밤이 오늘밤 만큼은 요란했다.
메르헨 아카데미 4성좌 사교회의 성대한 막이 올랐으니.
사교회는 ‘팔라스관’에서 열렸다.
총 4개의 건물과 높다란 첨탑이 세워져 있는 그곳은 각종 학술 행사나 중요한 자리가 있을 때 쓰였다.
건물은 3개의 건물이 하나의 건물을 에워싸고 있는 형태이며.
그 가운데 있는 건물이 4성좌와 초대장을 받은 학생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파티장 중심부였다.
각 건물마다 마련된 파티장은 저마다 웅대했다. 넓이는 메르헨 아카데미 전교생이 들어찼음에도 넉넉한 편이었다.
악단이 비엘과 레벡의 현을 마찰시키고, 기다란 트롬바 마리나를 연주했다. 볼록한 중형 오르간의 현이 튕겨지며 나는 소리가 연주곡에 섞여 들었다. 여러 악기가 파티장 분위기에 걸맞은 싱그러운 선율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음식과 음료, 음악과 잔잔한 춤을 즐기는 학생들. 저마다 파티 예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채였다.
“하! 과연, 이 몸에 어울리는 자리도다!”
팔라스관 중심부, 아틀라홀. 호화로운 그곳엔 각 학부의 상위권 학생들이 상당수 모여 있었다.
마법학부, 기사학부, 연금학부.
그중 마법학부의 허영심 많은 금발 귀족, 트리스탄 험프레이. 그는 2층 난간에 기댄 채 포도주잔을 들어 올리며 호기롭게 소리쳤다.
그와 함께 있던 B 클래스 상위권 학생 두 사람이 깔깔 웃어대며 그와 잔을 부딪쳤다. 모두 4성좌의 초대장을 받고 찾아온 이들이었다.
근처 테이블에서 음식을 먹고 있던 연갈색 머리칼의 남학생, 마테오 조르다나는 그들의 모습에 힐끔 눈길만 주고서 다시 음식 먹기에 열중했다.
평민 신분인 그에게 이런 호화 만찬을 즐기는 일은 흔치 않았다. 많이 먹어두지 않으면 손해였다.
그의 주변에선 검은 머리칼 남학생, 이안 페어리테일이 함께 식사와 수다를 즐기고 있었다.
이제는 트리스탄의 자아도취 주절거림은 그들에게 일상의 한 조각처럼 스며들어 있었다.
“오오.”
“카야 영애 님, 얘긴 들어 봤어도 저렇게 아름다우실 줄은….”
문득 남학생들이 나지막이 흘리는 감탄사가 마테오 귀에 들려왔다. 주위를 둘러보자, 마법학부 여학생들을 욕망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남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단연 가장 많은 눈길을 받고 있는 자는 담녹색 머리칼의 귀엽고 어여쁜 여학생. 마법학부 1학년 차석, 카야 아스트레앙이었다.
아스트레앙 공작가의 영애다운 위엄, 곱상한 미모. 그녀의 외관을 보고서 고작 한 번만 눈길을 보낸 남학생은 이 자리에 없을 터였다.
‘아이작 님, 보고 싶어….’
남학생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쩝, 하고 입맛을 다시는 카야.
영롱한 붉은빛 눈동자. 그녀는 악식의 인격으로 뒤바뀐 채였다.
‘옷도 신경 써서 입고 왔는데.’
진녹색 드레스 차림의 카야. 뽀얀 각선미가 훤히 내보일 만큼 밑단이 짧았다.
악식의 카야는 이번 파티에서도 아이작을 유혹할 생각이 충만했기에, 일부러 다리를 과감히 드러내는 복장을 택한 것이었다.
머리칼은 평소의 트윈테일이 아닌, 뒤로 예쁘장하게 땋아 돌돌 말아 올린 형태였다. 고급스러운 액세서리도 빼먹지 않았다.
다른 방면.
한 미모의 여학생이 큼지막한 고기를 뼈째로 집어 들고 야만인처럼 마구 뜯어먹고 있었다. 그녀의 귀족 신분과는 썩 맞물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예쁘장한 노란색 드레스 차림, 오렌지색 포니테일 머리의 여학생. 리제타 라이온하트였다.
‘그 새끼는 안 오나.’
그렇게 좋아하는 고기를 실컷 물어뜯고 있음에도, 리제타의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아이작. 필시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강할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뭐, 놈은 사정이 있어서 약한 척하고 있으니. 초대받지 못했다고 해도 납득할 수 있었다. 애당초 마력량 자체를 숨기는 괴물이기도 하잖아.
리제타는 그리 생각하며 고기를 우물우물 씹어댔다.
“후후. 북방에 오랜 세월 냉동 상태로 보존돼 있던 백 년 돼지의 육질에 비할 바는 못 되는군요. 나름 먹을 만하지만요.”
분홍색 단발머리 여학생, 케리드나 화이트클락.
그녀는 B 클래스 추종자들의 ‘음식은 입맛에 맞으십니까?’ 따위의 질문에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지들이 만든 음식도 아니면서, 라는 생각은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처음 이 자리에 참석했을 땐 혹시라도 아이작과 마주칠까 봐 괜한 긴장감이 들었으나.
결국, 그 남자는 아틀라홀에 초대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초대장을 받았다면 진작 와 있었겠지.
그 생각이 케리드나의 마음에 평온을 찾아주었다.
왜냐하면, 아이작은 무서우니까…!
“그런데 수석은 안 오는 건가요?”
연이어 관심이 가는 상대는 마법학부 1학년의 압도적인 수석, 루체 엘타니아였다. 그녀는 분명 4성좌의 초대장을 모조리 받았을 텐데, 어째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케리드나로선 좋은 감정을 갖기 힘든 상대였으나, 미래를 생각한다면 어떻게든 루체와 친분을 쌓는 것이 좋을 터였다.
비록 인간성은 소시오패스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작살나 있고, 아이작 이외엔 전부 배척하는 아이작 바라기라고 해도.
흠잡을 데 없이 유망전도한 인재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오늘처럼 마음이 풀어지는 파티가 그 절호의 기회일 텐데…. 루체는 이런 파티조차도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쉬운 일이었다.
이윽고.
끼익, 하고 파티장의 고급스러운 아치형 문이 열렸다.
케리드나는 반사적으로 출입문 쪽을 쳐다보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들어온 자는 반곱슬 청은발을 지닌 적안의 남학생, 아이작이었으니.
아이작은 파티를 맞이해 앞머리를 반만 올린 채였다. 하얀 정장 예복은 운동으로 다져진 신체와 무척 잘 어울렸다. 반면, 사람 좋은 인상은 꽤 순해 보인다.
마법학부 학생들은 놀란 기색을 보였다. 어떻게 아이작이 건물 입구에서 걸러지지 않고 이 자리에 참석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다른 학부 학생들도 아이작 쪽을 쳐다보았다. 눈여겨보던 미모의 여학생들이 그에게 시선이 꽂혀 버린 까닭이었다.
리제타는 눈살을 찌푸렸고, 케리드나는 공포심에 눈동자를 떨었고, 카야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봤다는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
쿠웅! 카야는 심장이 멎을 뻔했다. 각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청은발 남학생의 모습은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러나 그녀는 입술을 짓씹으며 기어코 감당해내고자 하였다.
‘아, 아이작 님…. 절 죽이려고 작정하셨습니까…! 어어, 어쩜 그렇게 멋있으세요오…!’
멋 부리고 온 청은발의 남자, 아이작을 향해 얼굴을 붉히는 카야. 그녀는 옆으로 고개를 휙 돌리고서, 양손으로 화끈거리는 뺨을 가리고 음흉하게 웃었다.
굉장히 잘 생겼다…!
실상은 아이작보다 외모가 준수한 남자야 이 자리에도 여럿 있지만, 카야의 눈에는 그 어떤 남자보다도 아이작이 가장 잘 생겨 보였다. 하물며 콩깍지까지 가세하고 나니, 그의 매력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몸에 바람 마법을 휘감고 아이작에게 날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그럴 순 없었다.
‘그래도, 모르는 척하라 하셨으니까….’
사전에 아이작과 나눈 이야기가 있었으니 자제해야 했다.
그의 뜻을 방해해선 안 되리라.
“네놈이, 어떻게 여기에 온 것이냐?”
“음?”
대뜸 허영심 많은 금발 귀족, 트리스탄 험프레이가 아이작 앞에 당도했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 아이작이 자기와 같은 아틀라홀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 듯했다.
“여긴 네놈 따위가 올 만한 곳이 아닐 텐데? 고작 그 실력으로 4성좌의 초대장을 받았을 리도 없잖느냐?”
카야의 눈가에 그늘이 졌다. 트리스탄을 향해 무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
감히 아이작 님께 언성을 높이는 트리스탄의 꼴이 심히 아니꼬웠다.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봤자 네놈의 마력량은 아직 미천한 수준일 텐데? 별다른 특별한 구석이라곤 없는 놈이, 무슨 편법으로 이 자리에 온…?”
카야가 손가락을 휘저어 바람 마법으로 트리스탄을 날려 보낼까, 생각하는 때.
돌연 트리스탄의 어깨에 손이 얹어졌다. 그는 “허?”하고 의문 섞인 얼굴로 자기에게 손댄 여학생 쪽을 쳐다 봤다가 헛숨을 집어삼켰다.
리제타 라이온하트였다.
“웬만하면 내가 이런 데 참견하는 성격은 아닌데 말이다.”
리제타는 트리스탄 귓가에 가까이 다가가고서, 조용히 속삭였다.
“그냥 입 다물고 가라, 살고 싶으면.”
식은땀을 한 방울 삐질 흘리며, 리제타는 그리 경고했다.
트리스탄의 언행을 지켜보고 있던 자신이 되려 공포감이 들고 있어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이작에게 악감정 심어주기? 자살 행위가 따로 없었다.
수습 기사가 기사단장에게 대든다면 주위에 있던 기사들마저 식겁하고 말 것이다. 마치 그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물며 아이작은 괴물 중의 괴물.
아무리 상대가 아무 관심도 없는 트리스탄이라고 해도, 그도 인간이니 일단 양심적으로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인간적인 도리일 터다.
이제까지 트리스탄이 아이작에게 저질러 온 언행을 모르는 리제타였기에 가능한 대처였다.
“그럼…!”
트리스탄에게서 떨어지는 리제타. 그녀는 아이작과 가까이 있고 싶지 않았기에, 잰걸음으로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나갔다.
‘뭐냐…?’
트리스탄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리제타 라이온하트, 그 용맹한 여자가 방금 한 말은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시비 걸기를 멈춰라’라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대체 왜, 그녀가 아이작을 편든단 말인가?
문득 1학년 1학기, 반 배정 평가 때의 기억이 트리스탄의 기억 속에 되새겨졌다. 이 자리에 있는 차석, 카야 아스트레앙도 아이작의 편을 들었었지.
1학기 학기말 평가 때는? 수석, 루체 엘타니아가 아이작을 지켜줬던 기억이 난다.
“…….”
이유는 모르겠다.
허나 분명한 건, 트리스탄보다 훨씬 강한 A 클래스 여학생들 대부분이 아이작을 편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고기를 잡아먹으려고 했는데, 그 뒤에 상어나 범고래 따위의 포식자들이 즐비해서 ‘다가오면 죽인다’라고 겁박하는 듯한 위기감이 들이닥쳤다.
“리제타가 뭐라 했는진 모르겠는데.”
그때, 아이작이 트리스탄에게 말을 걸고.
“뭐, 오랜만이네. 반갑다.”
아이작은 트리스탄의 어깨를 두들겨 준 후, 그를 지나쳐갔다.
그 뒤로 트리스탄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