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99)
서리의 시련을 거치면서, 내 머릿속에 드문드문 남게 된 아이작의 단편적인 기억을 톺아보자면.
아이작과 누나, 이브 로펜하임은 각자 친아버지가 달랐다.
아이작의 어머니는 로펜하임 남작의 달콤한 구애에 홀딱 넘어가 사랑을 나누며 아이를 배었고.
임신하여 질렸다는 이유만으로 배 안에 있는 아이와 함께 버려졌다.
그대로 시골 허름한 집에서 딸아이, 이브를 낳고 살아가게 된다.
허망함과 슬픔에 잠겨 있던 아이작의 어머니에게, 이브는 삶의 이유가 되어 주었다.
그러다 한 평민 사내와 눈이 맞고, 아이작이 태어났다. 아이작의 어머니에게 살아갈 이유가 하나 더 생겼던 것이다.
그런 출생 배경 정도는 떠오르는데, 어린 시절 같은 구체적인 과거사는 내 머릿속에서 통째로 백지였다.
아이작의 아버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브 로펜하임이 어떻게 친아버지인 로펜하임 남작에게 가게 됐는지….
물론 좋은 이야기는 아니겠지.
‘어쨌든.’
로펜하임 남작이 얼마나 쓰레기 새끼든, 아이작의 어머니가 어떤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오며 살아왔든, 이브가 어떤 사람이든, 그건 그거고.
현재 상황을 정리해보자.
전술했듯 이브가 여기까지 무사히 들어온 걸 보면, 네 번째 관문 전달꾼은 제기능을 상실한 상태일 터.
따라서 전달꾼 및 교수 교체를 위해 학사 인력이 이 동굴로 오고 있으리라.
결론적으로, 여기서 여유롭게 노가리나 까고 있을 시간은 없다는 것.
“그, 그래! 내가 이 애의 누나다!”
이브의 호기로운 외침이 어색하게 내질러졌다.
카야가 식은땀을 흘리며 뭐라 하기 전.
나는 슬쩍 검지를 내 입술에 갖다 댔다.
충격에 휩싸여 있던 카야가 이성을 되찾았다.
잠시만 조용히 있어달라는 무언의 지시가 잘 전달된 모양.
‘우선, 이 누나가 했던 얘기를 되짚어 보면.’
이브는 나와 카야가 뭘 했는지 구체적인 사정을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개구리 마족의 영역은 못 봤으면서, 카야의 피 마력은 본 듯하니 거리가 꽤 떨어진 곳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즉.
‘내가 뚫어놓은 구멍 밖에 있었나 보네.’
악식의 카야가 가지고 있는 마력량은 이브가 거들떠도 못 볼 수준.
대충 카야의 마력을 느껴서 그런 거라고 얼버무릴 구실은 되겠다.
“그리고, 지금 누굴 마족 취급하고 있어?”
“…어?”
나는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이브를 가까이서 내려다보았다.
그나저나 이 누나 엄청 긴장했네.
“카야는 속성이 희귀하고 강해. 조금 전에도 함정을 통째로 없애서 날 구해 준 거고. 뭐 때문에 나서줬는지는 알겠어서 고맙긴 한데, 카야를 몰아가진 마라. 이제 돌아가. 네 번째 관문도 제대로 통과 못했잖아.”
“그건, 어떻게 알았어…?”
“미행하는 거 모를 줄 알았어?”
히끅, 하고 딸꾹질하는 이브.
“시간적으로 어렵잖아. 우리 다음 누나 혼자 네 번째 관문을 뚫고, 지금 바로 여기 왔다고 하기엔.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그, 그건… 어쩔 수 없이. 보, 봉사 같은 거라고, 봉사! 이런 곳에서 네가 위험에 처하면, 나라도 나서주지 않으면 곤란하잖아. 넌 약하…니, 까…?”
레벨 87에게 지켜질 만큼 약하진 않은 것 같은데….
이브는 말꼬리를 흐렸다. 자신도 말을 내뱉고 ‘이건 아니다’ 싶었던 모양.
어쨌거나, 틱틱 대며 에둘러 하는 말에서 날 위해주는 마음을 캐치하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겉보기엔 착한데.’
어쩌다 아이작과 사이가 틀어졌는지 모르겠네.
일단, 대화는 짧게 이쯤에서 끝내야겠다.
나는 할 말을 잃은 척, 대답 없이 이브를 제치고 지나갔다.
“카야, 가자.”
카야는 내 옆을 따랐다.
“아이작 님, 잠시만 누나 분께 제 잘못을 만회할 기회를 주신다면….”
귓속말로 애원하는 모습. 간절한 표정이 애잔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여유는 없었다.
우리는 이브를 남겨 놓은 채 몸에 바람 마법을 실어 구멍 위로 올라갔고.
그러던 중, 나는 슬쩍 이브를 곁눈질했다.
수심에 잠긴 눈빛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이브 로펜하임 ]심리 : [ 당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나중에.
기억 일부만 사라진 기억 상실증이라고 퉁 치고 이브와 얘기를 나눠볼까, 하는 고민이 잠깐 들었지만.
‘굳이 그럴 필욘 없겠지.’
아이작이 평범한 평민 가정집에서 태어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의 이야기에서 이브는 그리 좋은 역할이 아니었을 터.
“아이작!”
그때, 이브가 나를 불렀다.
“엄마가 돌아가고…, 2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미행하면서 나를 지켜봤던 탓에 그런 의문이 든 듯했다.
‘그럴 만하지.’
분명 어린 시절부터 최약체였던 놈이, 이제는 명문 아카데미에서 중위권 이상의 실력을 내고 있으니까.
뭐, 대답이야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아무 일도.”
“…….”
아이작은 죽어라 공부해 이론 우수자 전형으로 메르헨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그러니 공부만 했겠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고, 오로지 책에만 파묻혀 살았을 터.
그리고 그 곁에 이브는 없었을 것이었다.
그 짧은 대화를 끝으로, 나와 카야는 구멍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다섯 번째 관문으로 향하던 중, 카야는 비통한 얼굴로 내게 간청해 왔다.
“아이작 님, 시간 한 번만 되감아주시면 안 됩니까…? 아이작 님이라면 그 정도는 거뜬하시죠…?”
[ 카야 아스트레앙 ]심리 : [ 시누이가 될 존재와의 첫 대면을 망쳐 우울해하고 있습니다. ]
…미안, 그건 어렵겠다.
* * *
“하아….”
동생과의 재회는 최악이었다.
이브는 홀로 상념에 잠겨 있었다.
이제는 확신이 든다. 새삼스럽지만 아이작은 정신, 몸, 마법을 다루는 능력,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마력 떨거지라고 고향 아이들에게 놀림 받았던 모자란 녀석이었는데.
당연할 정도로 언제나 나약한 약골이기만 했던 아이작의 모습이란,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듬직하고 실력 있는 청년 하나가 이브의 눈에 또렷이 비쳐졌을 뿐이었다.
‘아마도….’
온갖 슬픔을 견뎌내며, 그 마음속 통증을 발판 삼아 이 악물고 나아온 거겠지.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난 이후, 아이작은 허름한 집을 버리고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리고 이브는 오늘에서야 그와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같은 아카데미 학생으로서, 한 시험장에서.
저리 바뀌기 위해서 아이작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려왔을지, 이브로서는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가슴이 옥죄어 오고, 목이 메어 온다. 아이작에게, 이브는 누나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었으니.
아이작이 그토록 슬픔에 잠겨서 죽을힘을 다해 자신을 갈고닦아온 동안, 이브는 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단지 제 동생의 가슴속에 대못 하나만 박아준 게 전부.
이브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근데….”
이브는 허탈감을 느끼며 구멍을 올려다보았다. 높았다.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냉혹한 현실이 이브를 상념에서 끌어냈다.
아이작을 뒤쫓기 위해 바람 마법을 남발한 데다, 카야까지 공격한 탓에 이미 마력이 고갈된 상태.
염치 불고하고 아이작에게 자기도 올려달라고 할걸 그랬다고, 이브는 후회했다.
* * *
[ 상 태 ]이름 : 아이작
Lv : 82
성별 : 남
학년 : 1
칭호 : 열혈 1학년
마력량 : 12000 / 12000
– 마력 회복 속도(B)
가을이 고개를 숙인다. 아카데미 거리를 걷는 학생들의 옷차림이 점차 두꺼워져 간다.
슬금슬금 추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부유섬이 나타날 날도 이제 머지 않았다.
그 전까지, 부유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 만큼 강해지고 싶었다.
조만간 별다른 일이 없다면 배드 엔딩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테니 단련에 치중할 수 있으리라.
“후우.”
쿠우웅──!
콰앙──!
아카데미 훈련장.
나는 원소 마법으로 갖가지 마물 환상들을 처치해가고 있었다.
이제는 최약체 타이틀을 벗어던진 까닭에, 실력 문제로 괜한 시비를 걸어오는 학생들은 없었다.
오히려 감탄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잔야의 지팡이를 다루는 모습이 꽤 구경거리가 되는 모양이었다. 괜히 어깨가 으쓱거리네.
합동 실습 평가 결과, 나는 30등으로 시험을 통과했다. 개구리 마족을 상대하는 데 시간을 소요한 것 치곤 나름 기대 이상의 성적이었다.
‘꼼수 좀 부렸지만.’
물론 게임 지식이 큰 역할을 했지.
게임 지식 없이 순수한 실력만으로 시험을 치렀다면 중위권, 잘해도 중상위권 수준이었으리라.
카야에게는 미안했다. 루체를 이기고 싶었을 텐데.
그래도 자기 승부욕과 아카데미 평화를 지키는 일은 저울질할 것도 못 된다며 그녀는 웃으며 넘어가 주었다.
단지 이브 로펜하임에게 밉보인 게 한이 되었을 뿐.
이브와 관련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카야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도는 게 엿보였다.
태어나서 이토록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던 적은 처음이랜다.
여담이지만, 내 가족에게도 정체를 숨겨 왔느냐고 묻길래 대충 그렇다고 답했다.
뜻밖에 내 누나, 이브 로펜하임이 평범해 보여서 놀란 듯했다.
카야의 부모는 검성과 천재 마법사이니, 내 가족은 얼마나 더 대단한 사람들일지 내심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이 누나는 언제까지 미행할 생각이냐?’
합동 실습 평가가 끝난 이후, 이브가 내게 말을 걸어오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가끔 [천리안]으로 내 주위를 둘러보면 스토킹하는 그녀를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지금 훈련장에는 없는 듯하지만.
아마도 조만간 대화를 나눌 일이 생길 지도 모르겠다.
‘신경 쓰여….’
악신을 쓰러뜨리기 위한 내 여정이 종지부를 찍는 날.
내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게 될지, 이 세계에 남겨지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나야, 사람이니 당연히 혈육이 그리울 때도 있었다.
그러니 이 세계에서 이 몸의 혈육인 이브와 친하게 지낼까, 하는 개인적인 욕심도 문득 들고 말지만.
‘애써 그럴 필요까진 없겠지.’
나는 아이작의 어린 시절을 아예 모른다.
아이작이 어떤 인연을 쌓았는지, 이브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추억을 지녔는지….
그렇다고 굳이 죽은 아이작의 과거사를 지금부터 파헤치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는다.
그런 고민은 악신을 쓰러뜨린 뒤에 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당장에는 부유섬을 쓰러뜨리기 위해, 평소보다 몇 배의 효율로 단련에 매진하고 싶었다.
그리 매일 단련하고.
코피를 잔뜩 쏟아도 마법 시전을 멈추지 않고.
도로시에게 버프 마법을 부탁해 억지로 컨디션을 회복시켜 다시 단련하고.
수업과 책을 통해 배운 내용을 마법에 응용하길 반복하고.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미친 듯이 단련하고 보니.
열흘 뒤, 평소에 누적되어 있던 피로까지 겹쳐져.
털썩.
어느 순간, 돌연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