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59
59화
가브 일행은 아이드 성을 떠난 지 2주 만에 귀환하였다.
마법사 니겔의 시체는 중간의 숲에 버려두었다.
하루만 지나면 마물들에 의해 갈가리 찢겨 살 조각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내성으로 들어가는데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세실리아가 십인대와 함께 복귀하고 있었다.
“주군!”
“지금 오는 거냐?”
“예, 딱 맞았네요.”
세실리아는 가브의 뒷모습을 보고 빠르게 와서 그런지 홍조가 살짝 떠 있었다.
복귀에 맞춰 이렇게 우연히 만난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들어가자.”
“예.”
멜론은 다른 마을을 순찰 도느라 바빠서인지 보이지 않았고, 마침 내성 밖에 나와 있던 이엘이 밝은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
“오라버니 오셨……. 어멋, 세실리아 씨!”
이엘은 세실리아를 발견하고는 구두가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달려와 그녀를 안았다.
세실리아는 얼굴이 붉어져 어색해했지만 차마 밀어내지는 못했다.
세실리아가 무뚝뚝하여 대화를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어려운 때에 지켜 주기도 했고 유일한 동성이기에 그녀에게 많이 의지하는 이엘이었다.
“아, 하하.”
“먼지가 왜 이렇게……. 어서 따뜻한 물을 데워 주세요.”
그녀는 질문을 길게 잇지 않고 하인에게 명하고는 그 옆의 가브를 반겼다.
“오라버니도 고생 많으셨어요. 가셨던 일은 잘되셨어요?”
“음.”
가브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세실리아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전과는 달리 생동감이 넘치고 기운이 밝다.
“이엘 님, 조금 달라졌네요.”
“네? 그런가요? 뭐가요?”
“음…… 그냥, 이것저것.”
“에이, 그게 뭐예요? 얼른 들어가요, 우리.”
이엘은 싱그럽게 웃으며 세실리아의 팔짱을 끼고는 잡아끌었다.
그때 금발의 여인 제이니 크레스가 자신의 기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인질로 잡혀 왔지만 할일이 없어 심심함에 몸을 배배 꼬고 있던 차에 밖이 북적거려 나와 본 것이다.
그녀는 세실리아를 발견하고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뭐야, 저년 안 보여서 좋아했건만 왜 또 왔…… 꺅!”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코앞에 세실리아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제이니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코에는 아직도 거즈가 붙어 있었다.
“확, 씨.”
주먹을 코앞에서 멈춰 세운 세실리아는 시선을 돌려 제이니의 호위 기사 허틀을 보았다.
한쪽 팔을 못 써서 그런지 자신이 모시는 귀족인데도 멍한 얼굴로 방치하고 있다.
전에 코뼈를 부러트렸을 때도 그랬다.
세실리아는 검지로 제이니를 가리키며 허틀에게 말했다.
“니 주인 주둥이, 간수 잘해라.”
“예? 아, 어, 그…….”
그가 어버버 하는 사이 세실리아는 이엘과 함께 들어갔다.
입을 다물고 있던 제이니는 뒤늦게 화를 냈다.
“허틀 경! 왜 가만있어? 나 또 코뼈 부러지면 좋겠어?”
“예, 예?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뭐야, 진짜 짜증 나! 인질 되니까 호위도 안 해 주고.”
허틀은 제이니의 투덜거림을 뒤로하고 세실리아의 뒷모습만 가만히 바라보았다.
* * *
캄캄한 집무실, 가브는 홀로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 있다.
‘몸이…… 이상해.’
마치 폭풍을 만난 돛단배에 서 있는 느낌이다.
몸 안에 있는 모든 물과 피가 출렁거리는 듯했다.
‘마법사의…… 저주인가.’
정확히 니겔이 죽을 때 반짝였던 빛을 보고 나서부터 이러하다.
눈을 떴을 때보다 감았을 때 더 심하다.
그러나 일부러 눈을 감고 이 현상에 집중했다.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주르륵.
극심한 어지럼증에 코에서 피가 흘렀다.
가브는 무언가 닿을 듯 말 듯 한 느낌에 코피를 무시하고 더욱 집중했다.
‘여기다.’
배꼽에서 3센티미터 아래쯤, 단전이라고 부르는 위치가 이 파동의 진원지였다.
그곳에서 지속적으로 물결을 일으킨다.
마법사의 몸에 있던 마나가 흩어지면서 몸에 충격을 준 것인가?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전투는 물론 일상생활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가브는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몸 안에 여기저기 깃들어 있는 마나를 그곳으로 이동시켰다.
뚝, 뚝, 뚝.
식은땀이 턱 끝에 맺혀 있다가 떨어진다.
바닥은 물기로 흥건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가브는 천천히 눈을 떴다.
“밤을 보냈나…….”
창문 너머로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손톱에 낀 때만큼 극소량이지만, 몸에 깃든 마나를 임의로 이동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나는 많이 사용할수록, 한계를 자주 두드릴수록 해당 위치에 쌓인다.
적재적소에 고루 분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건드리는 것은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래도 억지로 이 파동을 잠재운 것으로 만족했다.
마나 막이 얇아 찢어지기 전에 파동이 잦아들기를 바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가브는 이번 니겔 도적단의 일로 전력 부족을 절실히 느꼈다.
검은 로브가 소속되어 있는 그 무리가 얼마나 될지 모르나, 알아낼수록 더 크다는 것만 느끼고 있다.
그들을 상대하려면 개인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
명성을 높임과 동시에 단체의 힘을 키운다.
“다 모였나?”
“예! 각하!”
“예, 각하!”
가브는 내성 연병장으로 위케리스 십인대를 소환했다.
그들은 잘못한 게 있나 싶어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들은 처음부터 배운 거 없이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살아남은 용병들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용병식 전투는 마음에 들지만 쓸데없는 행동이 많았다.
곁가지만 쳐 내면 금세 최정예부대가 될 것이다.
가브는 이들을 시간이 날 때마다 직접 훈련시켜 기사에 버금가는 실력자들로 만들 계획이었다.
“그건?”
“예, 여기 있습니다.”
위케리스는 구석에 놓았던 큰 가죽 주머니 두 개를 가브에게 가져왔다.
가브는 입구를 봉하고 있던 줄을 풀고 주머니를 거꾸로 들었다.
터덩, 텅, 터덩.
그러자 초록색 액체가 담겨 있는 수백 개의 약병이 바닥에 쏟아졌다.
외상 치료제 중에 가장 보편적인 오크 피다.
“무기를 뽑아라.”
조장이었을 때 조원들에게 일대일로 생각나는 것들을 하나씩 툭툭 던진 적은 있어도 체계적인 훈련을 시켜 본 적은 없다.
그러나 훈련 과정이 머릿속에 문신처럼 깊게 새겨져 있었다.
고문에 가까운 훈련으로 헤딘을 기사급으로 만들었던 것이 자신감을 더했다.
초대 태제 카로스, 그는 이백 명에 가까운 해수를 모두 기사급으로 키운 능력자다.
그의 천부적인 능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릉.
가브는 허리춤에서 중검을 뽑아 검 끝으로 두 대원을 가리켰다.
“너, 너, 나와.”
“예, 각하.”
“예, 각하!”
가브의 부름에 두 대원이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용병들답게 한 명은 쌍단검, 한 명은 양손도끼로 무기도 다양하다.
“나를 죽여 봐라.”
그의 당황스러운 주문에 대원들은 뒷걸음질을 치며 말을 더듬었다.
“제, 제가 어찌…….”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일 때, 가브가 성큼성큼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검을 휘둘렀다.
채앵!
한 수 만에 쌍단검을 쳐 내고.
푹.
“끄으으악!”
바로 대원의 어깨에 중검을 쑤셔 넣었다.
검 끝은 그의 어깨를 관통하고 뒤로 삐쭉 튀어나왔다.
진짜로 관통을 당한 것이다.
그 살벌한 모습에 위케리스는 입을 쩌억 벌렸다.
퍽.
가브는 대원의 가슴팍을 발로 차서 구석으로 밀고 다른 대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이미 공포에 질려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처음 맞이하는 상대면 몰라도 전장에서 사신처럼 날아다니는 모습을 직접 봤으니 더욱 두려움이 큰 것이다.
“으, 으으.”
“두려워도 맞서야지.”
퍽, 퍽, 푹.
“악, 아아악!”
가브는 잔인하게 대원의 허벅지에 검을 쑤셔 넣고는 뒤돌아서 다른 대원들에게 다가갔다.
“다음은…….”
위케리스는 이대로 있다가는 자신의 십인대 모두 반병신이 될까 봐 앞으로 튀어 나갔다.
“각하, 각하! 이러다가 우리 대원들 다 죽습니다!”
“그래, 훈련에 예외는 없지.”
“네?”
가브는 대답 없이 위케리스에게 바로 검을 뻗었다.
다급히 들어 올린 위케리스의 검과 가브의 검이 교묘하게 얽히더니 하나가 저 멀리 날아간다.
채앵, 퍽!
“커헉!”
나름 마나가 깃든 기사급이라고 항상 자신만만했던 위케리스였지만 가브 앞에서는 모두와 평등했다.
위케리스는 자신의 검이 어디로 날아가는지도 확인하지 못하고 뒤통수를 엄습하는 큰 충격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
퍽, 퍽, 푹!
“꺼윽!”
저 멀리 연병장 관중석, 곰처럼 큰 덩치와 여우처럼 호리호리한 몸이 나란히 앉아 있다.
발튼은 두 손으로 어깨를 비비며 중얼거렸다.
“어우, 알고는 있었지만 참 살벌하시네.”
“그런가…….”
세실리아는 그 모습을 보며 상념에 젖었다.
지금은 약병도 옆에 쌓아 놓고 가르치기 위해 검을 휘두르지만, 예전에는 그 검에 맞아 죽으면 자격이 없는 자가 되었었다.
그녀가 보기에 지금 훈련은 사랑으로 가득한 부드러운 방식이었다.
발튼은 우수에 찬 눈으로 훈련을 보는 세실리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가끔 그녀가 이런 눈을 할 때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발튼이었다.
그때 하얗고 작은 무언가가 발튼의 눈을 빠르게 덮쳐 왔다.
콱!
“악! 끄, 내 눈! 진짜 찔렀어!”
“그러게, 누가 쳐다보래?”
발튼이 두 눈을 질끈 감고 손을 버둥거릴 때, 연병장으로 한 무리가 들어왔다.
이엘과 하인들이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손님 오셨어요!”
* * *
톡, 톡, 톡.
아이드 성 응접실, 육중한 몸의 중년인이 검지 손톱으로 유리잔을 두드리고 있다.
“흐음…….”
그의 불편한 한숨에, 같이 온 시종들과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이드 성의 하인들이 흠칫하며 눈치를 보았다.
“피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나오는데, 자기 피는 한 방울도 없었지.”
“무려 다섯 배가 넘었어, 다섯 배가! 내 병사들 말로는 남작이 데리고 온 열 명도 기사 버금가게 전장에서 날아다녔다더군!”
데브리 남작은 연회장에서 레멜리오 자작이 했던 말이 떠올라 헛웃음을 내쉬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레멜리오 그 작자는 항상 그랬다.
고작 한 달 전에 기사 시험에 합격하여 남작 위를 간신히 세습받은 주제에 무슨 그런 무위가 있겠는가?
허세가 가득 들어간 소문이 분명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그 허풍선이 때문에 명을 받고 수도에서 이 구석까지 온 자신의 처지에 짜증이 났다.
“대체 언제 오시는 거냐?”
그의 호통에 가까운 물음에 입구에 있는 하인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죄송합니다. 바로 온다고 하셨는데…….”
“너희 주인은 궁정 귀족이 우스운가 보군. 더 이상은 못 기다…….”
쿠궁!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굉음에 데브리는 깜짝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동시에 바깥쪽에서 하인의 외침이 들려왔다.
“영주님 오셨습니다!”
“영주님 오셨습니다!”
우렁찬 외침과 함께 여러 명의 발소리와 금속 마찰음이 들려왔다.
철컥, 철컥, 철컥.
확 달라진 공기와 이쪽으로 성큼성큼 가까워지는 묵직한 발소리에 데브리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긴장했다.
철컥, 철컥.
철갑 스치는 소리와 함께 새까만 무리가 응접실로 모습을 드러냈다.
데브리는 그중에 누가 아이드 남작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짙은 회색 갑옷에 여기저기 묻어 있는 검붉은 얼룩, 무엇을 하고 왔는지 아직 가시지 않은 싸늘한 살기, 번뜩이는 안광은 마주치기만 했는데도 오금이 저려 왔다.
데브리는 그를 보자마자 레멜리오가 퍼트린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저벅저벅.
가브가 눈을 마주치고 가까이 다가오자 데브리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먼저 숙였다.
“아이드 남작님을 뵙습니다.”
“왕궁에서 오셨다고.”
한마디 던졌을 뿐인데 그 묵직한 소리에 데브리는 몸이 다시 쪼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예, 궁정 남작 데브리라고 합니다.”
“먼 걸음을 하셨군. 앉으시오.”
“아, 예.”
앞에 ‘궁정’이란 호칭이 붙는 귀족은 따로 영토가 없는 왕궁 소속으로, 제국의 대소사를 관리한다.
데브리는 같은 작위에 궁정이면 대외적으로 더 높게 쳐주는데 자신이 오히려 극존칭을 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가브는 중검이 달린 허리띠를 풀어 바닥에 내려놓고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쿠웅.
검 하나뿐인데 그 소리가 육중하다.
보니까 두께도 굵고 길이도 조금 더 길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다고?”
“아, 예, 저, 저는…….”
데브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