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60
60화
와이번.
입은 악어처럼 크고 목은 길쭉하며 성체는 날개 포함 10미터에 육박하는 초대형 마물로, 드래곤을 제외하고 하늘을 나는 마물 중 가장 강력하다.
성인 팔뚝 길이의 발톱이 달린 두꺼운 두 발은 황소도 그 자리에서 찢어발길 만큼 강력한 악력을 지니고 있다.
카난이나 오우거처럼 일반적으로 단독 행동을 하는 것이 인간들에게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래서, 저희 왕궁에서 아이드 남작님의 활약을 인상 깊게 듣고 와이번 건을 추천하게 되었습니다.”
“와이번 테라…….”
데브리 남작이 가져온 의뢰는 테라라는 이름을 가진 와이번을 잡는 것이었다.
마물에게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은 사람들과 마주하고도 오래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아이드 남작령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테라 마을이라는 곳이 나온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북적거렸지만 와이번의 등장으로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
해당 영지의 영주가 한 번, 국가에서 한 번, 총 두 번의 토벌대를 파견했지만 백여 명의 사상자를 낳고 실패로 돌아갔다.
손해가 막심하여 결국 마을이 버려졌는데, 두 달 전부터 이 와이번이 영역을 넓히려고 한다는 제보가 들어온 것이다.
가브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는 듯하자 데브리가 말을 이었다.
“그, 워낙 무위도 출중하시고 명성을 쌓기에도 좋은 일이니까……. 성공하신다면 테라 마을도 남작령에 귀속시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어쩌면 승작의 기회도…….”
“돈 아까우니까 나한테 그놈을 잡아라?”
전혀 쓸모없는 보상이다.
폐허가 된 마을을 되살리려면 지금 금고에 있는 전 재산을 쏟아부어도 모자라다.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승작에 가장 큰 관여를 하는 왕궁에서 그의 존재를 알고 찾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레멜리오 자작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맞는 말이기에 데브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왕궁 입장에서는 어차피 이름 없고 연줄도 없는 남작, 명성에 눈멀어 수락했다가 잡으면 돈도 안 쓰고 골칫거리 없어져서 좋고, 실패해서 죽어도 아무 문제가 없으니 찾아온 것이다.
땀을 삐질 흘리는 데브리를 보며 가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소.”
“감사합니다! 왕궁에서 남작님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실 겁니다!”
데브리는 벌떡 일어나 가브가 내미는 손을 맞잡아 흔들고는 도망치듯이 그곳을 벗어났다.
* * *
벌떡.
금발의 제이니는 오늘도 늦잠을 자며 뒹굴뒹굴하다가 지루함을 못 이겨 침상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열고 나오자 호위 기사 허틀이 그녀를 맞이했다.
“일어나셨습니까? 식사 준비시킬까요?”
제이니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는 허틀의 팔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거 언제 풀어요?”
“아…… 잘 모르겠습니다. 거의 반 넘게 잘렸으니까 한참 걸릴 것 같은데.”
“한 손 못 쓰니까 불편하지 않아요?”
허틀은 왼팔을 휘적거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맞는지, 금방 적응했습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걱정은 무슨, 빨리 나아야 호위 노릇 제대로 할 거 아니야? 전에도 내가 맞을 뻔했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고, 진짜…….”
“아, 죄, 죄송합니다.”
제이니는 특유의 표독스러운 눈빛을 쏘고는 휙 돌아서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오늘따라 복도가 텅텅 비어 있었다.
“뭐야, 다 어디 갔나? 나만 빼놓고?”
제이니는 식당 코앞에서 방향을 틀어 밖으로 나갔다.
아이드 내성 입구는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두마차에는 짐이 한가득 실려 있고, 발튼과 위케리스 십인대가 철갑옷을 제대로 챙겨 입고 있으니 비장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전쟁이라도 났나?”
“아뇨, 와이번 잡으러 간답니다.”
“와이번? 미친…….”
제이니는 가브와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엘을 보다가 조용히 속삭였다.
“그럼 다 나가고 쟤만 남는 거잖아? 이참에 도망칠까?”
“도, 도망 말입니까? 그게…… 여기도 음식도 잘 나오고, 생활도……. 굳이 도망을…….”
허틀의 반응에 제이니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뭐야? 나랑 도망치기 싫어? 그새 여기에 정이 들었어? 좋아하는 여자라도 생겼나? 아빠한테 다 이를 거야, 진짜. 완전 배신자. 됐어. 나 혼자 갈 거야.”
허틀이 당황하여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릴 때, 뒤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검은 머리, 세실리아 씨도 안 나갑니다.”
“어맛, 깜짝이야! 아 씨.”
제이니는 갑자기 나타난 기사 멜론을 보고는 고개를 숙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도망치려던 계획을 들킨 것도 있고 잘못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메, 멜론 경.”
허틀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직접 멜론의 오른팔을 자른 경력이 있다.
“도망치려면 크레스성에 계신 남작님도 성을 버리고 함께 도망치십시오. 그게 아니라면 남아 있는 게 나을 겁니다.”
“뭐래……. 안 도망쳐요, 안 도망쳐.”
제이니는 팔짱을 끼며 뒤돌아섰고, 허틀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었다.
멜론은 허틀의 오른팔을 가만히 보며 가브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오크가 멜론 경의 복수를 하게 놔뒀소. 절반 정도만 성공했소.”
멜론은 피식 웃음을 짓고는 허틀에게 말했다.
“약 너무 자주 뿌리지 마시오. 안에 힘줄하고 혈관이 다 자리 잡기 전에 붙으면 안 되니까.”
“아, 예 에.”
멜론은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허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토벌대를 보았다.
이엘의 걱정으로 가득한 눈빛을 보면 마치 진짜 남매인 듯 보였다.
“오라버니, 위험하면 그냥 바로 도망치세요. 그런 거 안 해도 돼요. 내가 먹여 살릴게요. 까짓것 세금 왕창 올려 버리면 되지.”
이엘은 가브가 남의 영지 문젯거리를 해결하고 다니는 것이 돈을 벌어서 영지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알고 있다.
가브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타일렀다.
“나는 영주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세율이 자주 변동하는 영주는 싫더군. 다녀오마.”
“예…… 오라버니! 오라버니 죽으면 저도 콱 죽어 버릴 거니까 죽지 마세요! 아셨죠?”
이엘의 다소 격한 표현에 가브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시선을 거두었다.
세실리아가 가브에게 붙으며 속삭였다.
“좋으십니까? 따라 죽는다는 여자도 있어서.”
이엘을 잘 받아 주면서도 이럴 때는 까칠하게 반응하는 세실리아였다.
가브는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잘해 줘라.”
“예, 어제도 제 방에 와서 잤습니다.”
“그렇군.”
이엘은 전에 비해서는 많이 밝아졌지만 아직 우울증을 완전히 털어 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가브에게는 집착을, 세실리아에게는 의지를 많이 했다.
그 때문에 오늘은 발튼이 아닌 세실리아가 성에 남은 것이었다.
“가자.”
“예! 주군!”
“예! 각하!”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아이드 성 동문 입구, 궁정 귀족 데브리 남작과 처음 보는 사내 열댓 명이 가브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사내들은 모두 철갑옷을 입었고 무기도 날카로웠다.
가브가 가까워지자 데브리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남작님 오셨습니까? 때맞춰 왔군요.”
“예, 이자들은 뭡니까?”
와이번을 토벌한다는 날짜만 알려 줬지, 데브리 남작이 온다는 것도, 다른 병사들이 온다는 것도 사전에 협의가 없었다.
“아, 제가 남작님이 정말 믿음직스럽다고 누누이 말씀을 드려도, 위에서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라고……. 그래서 수소문하여 데리고 온 와이번 전문 사냥꾼들입니다. 방해는 되지 않을 실력자들입니다. 아, 당연히 이들의 품삯은 저희가 냅니다. 걱정 마십시오.”
데브리의 말에, 그 뒤에 있던 턱수염이 지저분한 사내가 중얼거렸다.
“방해는 무슨 방해. 근데 귀하신 분이 와이번을 잡아 보셨으려나 모르겠네?”
작지만 가브는 물론 부하들에게도 다 들릴 목소리였다.
발튼이 욱해서 나오려는데 그보다 먼저 위케리스가 검병을 쥐며 한 걸음 나왔다.
“게스기, 주둥이가 찢기고 싶구나.”
게스기라 불린 사내는 위케리스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부하들도 위케리스를 보곤 웅성거렸다.
대부분 아는 눈치였다.
“오호, 이게 누구야? 미친개랑 그 떨거지들이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요즘 안 보이더니 귀족 나리 밑에 들어간 거야? 잘 어울리네! 조신해 보이고.”
게스기는 위케리스가 십인대와 함께 마물 사냥꾼으로 한창 활동할 때 자주 마주쳤던 사냥꾼이다.
게스기는 위케리스가 맡았던 의뢰를 가격을 낮춰서 자주 빼앗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저 미친 새끼가.”
“저, 저, 씨.”
게스기의 도발에 십인대원들이 발끈할 때, 위케리스가 진정시키며 이죽거렸다.
“우리야 좋은 군주님 만나서 조신하게 잘 있지. 그런데 니네가 언제부터 와이번 전문 사냥꾼이 됐냐? 설마 귀족분들을 상대로 사기 치는 거야? 그렇게 돈이 궁해졌어?”
위케리스의 말에 데브리는 얼굴이 붉어졌고, 게스기는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무, 무슨 개소리야! 이거 안 보여? 지금까지 잡은 와이번만 네 마리야, 네 마리! 우리가 전문가 아니면 누가 전문가야? 지는 한 마리밖에 안 잡아 봤으면서.”
게스기는 와이번 이빨을 꿴 목걸이를 보여 주며 큰 소리를 쳤다.
그의 대원들도 동일한 목걸이를 한 것을 보니 자부심이 대단한 듯했다.
“두 마리거든? 그것도 하나는 니네가……!”
위케리스는 발끈하여 소리치다가 멈칫했다.
현재 상황을 뒤늦게 인지한 것이다.
그는 자라처럼 목을 집어넣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가브의 눈치를 보았다.
조용히 있으니 더욱 무서웠다.
며칠 전에 그에게 찔린 허벅지가 시려 왔다.
가브는 위케리스와 게스기를 한 번씩 번갈아 보고는 말고삐를 다잡았다.
“가자.”
“예! 각하!”
그 자존심 강한 위케리스가 눈치도 보고 각을 잡는 모습에 게스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봉급을 많이 주나?’
게스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위케리스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 게스기의 뒷모습을 데브리 남작이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젠장, 백 명이서도 못 잡은 걸 이놈들이 어떻게 잡겠냐고. 확인을 왜 두 눈으로 직접 하라는 거야, 썅…….’
데브리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그들을 쫓아갔다.
죽은 마을 테라.
마을 초입에 다다르자 기운부터가 남달랐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말을 아꼈고, 떨리는 숨만 작게 내뱉었다.
까악, 까악, 까악.
마치 사람이 따라 하는 것처럼 정확한 발음으로 울어 대는 까마귀가 그들을 반겼다.
마을은 완벽한 폐허였다.
성한 건물보다 부서진 건물이 더 많았다.
까맣게 타 버린 사체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다.
와이번 테라에게 죽은 사람들이 구울로 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태워 버린 것이다.
드르르륵.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서른 명 가까운 인원이 모두 철갑옷을 입으니 금속 마찰음이 마차 바퀴 소리보다도 더 컸다.
데브리는 처음에 하늘을 날아다니는 와이번을 잡는데 왜 민첩한 가죽갑옷이 아닌 철갑옷을 입는지 이해를 못 했다.
게스기는 데브리의 물음에 전문가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설명해 주었었다.
“남작 나리, 가죽 입는다고 피하고, 철갑옷 입는다고 못 피하는 거 아니에요. 잡으려면 무조건 붙을 수밖에 없는데, 그 우악스러운 발에 잡히면 가죽갑옷 따위는 다 뚫리고 꼬치가 되는 겁니다. 배에 이따만 한 구멍이 생기는 거예요. 그리고 그놈들도 무거우면 들었다가 얼마 못 가서 떨어트려요. 철갑옷이, 잡혀도 그나마 살 가능성이 높은 거지.”
데브리는 그의 말을 상기시키며 자신의 배를 한번 내려다보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마을 중앙에 높이 솟아 있는 예배당 꼭대기가 눈에 띈다.
그 뾰족한 지붕에 마치 제물처럼 시체 하나가 꽂혀 있었다.
신부복을 입은 그 시체는 이미 살점 하나 붙어 있지 않았다.
“그, 어, 어디까지 들어가시는 겁니까?”
척.
데브리 남작의 물음에 가브의 발이 멈춰 섰다.
가장 선두에 있던 그가 돌아서자 그 뒤에 있던 사람들도 차례대로 뒤를 돌아보았다.
결국 모두가 데브리를 보자 그가 식은땀을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아, 아니, 가시던 길 가시…….”
“가장 잘 보이는 곳까지.”
가브는 묵직한 한마디를 남기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