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58)
나의 악당들 158화
40. 다시, 추적자들(2)
나는 사방을 살피며 정신없이 내달 렸다. 새벽의 어둠 덕에 다행히 사 람과 마주치진 않았다.
그러다 어느 창고 뒤편의 으슥한 공간을 발견한 나는 그곳에 아탈란 테를 눕혔다.
“하악, 흑—”
뒤따라온 뭉치는 가쁘게 숨을 고르 며 원로의 시신을 바닥에 내려놓았 다. 녀석은 시신을 옮기느라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였다.
나는 아탈란테의 허리띠를 끄르고 기도를 확보한 뒤 뭉치를 돌아보았 다.
“왜 그랬어?”
“네?”
“왜 죽였냐고.”
뭉치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낸 뒤 잠시 눈을 깜빡거렸다.
“말 놉이려고 해써요.”
“말을 높여? 소리 지르려고 했다 고?”
“네.”
“그럼 그냥 제압만 하면 되잖아. 죽일 필요까진 없었어.”
“에……
녀석의 표정이 흐려졌다.
“대답시킬 거 이써요?”
“……저 노인한테?”
“네, 네.”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
내 질문에 뭉치는 얼굴이 조금 흐 려진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답시킬 거 엄쓰면, 그럼, 에, 안 주길 필요 엄슴미다.”
“••••••뭐?”
녀석이 무어라 설명을 하려 애썼지 만, 밀라놀어가 워낙 형편없어서 도 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리둥절한 표정이나 말의 뉘앙스로 미뤄보아, 뭉치는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골이 지끈거려서 무의식중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됐어, 나중에 얘기하자.”
“에, 네……
시무룩한 얼굴로 내 눈치를 살피는 뭉치를 무시하고, 바닥에 뉘어둔 아 탈란테를 살폈다.
혈조술을 이용해 확인해보니 다행 히 별 이상은 없어 보였다. 입에서 피를 흘리기에 걱정했는데, 고통을 참느라 볼 안쪽을 깨물었을 뿐 내장 이 상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어쩌지.
우리는 아탈란테의 씨족 원로를 죽 였다. 그가 무고한 희생자였는지 아 닌지를 떠나서, 살인은 살인이었다. 뒤처리가 결코 쉽지는 않을 터였다.
“으음-”
고민도 잠시, 아탈란테가 신음을 흘렸다. 눈을 감은 채 인상을 찌푸 리는 것이, 곧 일어날 것 같았다.
대충 생각을 정리한 나는 얼른 뭉 치에게 다가가 조용히 명령했다.
“영주관에 가 있어.”
“네?”
“여긴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넌 영 주관에 가 있으라고.”
“넵, 알게씀미,”
“쉿. 빨리 가.”
합, 하고 입을 다문 뭉치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까. 아탈란테 가 천천히 눈을 떴다. 호박색 눈동 자가 느릿하게 깜박거린다.
“……닉스? 너야?”
“아탈란테.”
“네가 왜 여기에,”
상체를 일으킨 그녀는 숙취에 시달 리듯 이마를 감싸 쥐었다.
“끄응.”
“ 괜찮아?”
“……으, 아니.”
한참을 끙끙대던 아탈란테는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불쑥 손을 들었 다.
“엉덩이 좀 만져도 될까?”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엉덩이 만지게 해달라고. 그러면 좀 나을 것 같으니까.”
조여졌던 긴장이 탁 풀리는 멋진 헛소리 였다.
내가 가만히 인상을 찌푸리자 그녀 는 아쉽다는 듯이 쯧, 혀를 차곤 잿 빛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근데,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그게.”
난 눈썹을 긁적거리다가 설명을 시 작했다.
“……그러니까.”
아탈란테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산책을 하던 중에 우연히 우리를 발견했다고? 하필이면 마우리오가 나를 고문하던 중에?”
“맞아.”
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녀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네가, 그 마우리오를, 죽였 다고?”
“……실수였어. 기절만 시킬 생각 이었는데,”
“시체는?”
“들고 왔어.”
내가 원로의 시신이 있는 쪽을 가 리키자, 아탈란테는 비틀거리며 몸 을 일으키더니 그쪽으로 다가갔다.
“……
마우리오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얼 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몄다. 경악을 중심으로 분노와 슬픔, 안도와 희열 이 어지럽게 얽혀들었다.
“……운명이, 이렇게……
시신 앞에 멍하니 선 아탈란테는 혼자서 무어라 중얼거렸다. 나는 그 녀에게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그대로 뒀다간 네가 누명을 쓸 것 같았어. 그래서 일단은,”
“그럴 일 없어.”
“••••••뭐?”
“나는 아순의 일원을 죽일 수 없 어. 씨족 전체가 아는 사실인걸.”
아탈란테는 한쪽 무릎을 꿇더니 마 우리오의 품을 뒤적거렸다.
나는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다가 추 측하고 있던 바를 꺼내놓았다.
“너, 저주에 걸렸구나.”
“……저주는 아니야. 일종의 금제 지.”
“금제? 무슨 금제?”
“정확히는 몰라.”
그녀는 돈주머니와 패물 따위를 챙 기며 말을 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에 걸렸거든. 여섯 살인가, 일곱 살쯤? 기억도 잘 안 나.”
“금제를 건 게 누군데? 너희 원로 들?”
“응.”
……원로들이 아주 어린 시절에 걸 어둔 금제라. 대충 감이 오는구만.
아탈란테는 원로의 목을 더듬어보 다가 슬쩍 미간을 좁혔다.
“밧줄을 썼어?”
“……밧줄? 아- 응. 밧줄을 썼지.”
“으흠.”
그녀는 뭔가 눈치챈 듯했지만, 콧 소리를 내며 눈썹을 들썩일 뿐 별다 른 추궁은 하지 않았다.
아탈란테는 마우리오의 목에 걸려 있던 펜던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끝이 진녹색 보석에 닿은 순간.
치익!
요크 ”
마치 뜨겁게 달군 불덩어리를 만진 것처럼, 아탈란테는 손끝을 데고 말 았다. 그녀는 이를 악문 채 펜던트 를 바닥에 내던지곤 가죽 부츠로 단 숨에 짓밟아버렸다.
파각!
펜던트에 박힌 진녹색 보석은 마치 유리구슬처럼 간단히 조각나버렸다. 뒤이어 후웅, 하는 바람 소리와 함 께 마력이 흩어져간다…….
“하, 하아.”
아탈란테는 웃음인지 탄식인지 모 를 한숨을 내뱉었다.
“그거, 마도구 아니었어? 그렇게 막 부숴도 되는 거야?”
“……그러게.”
호박색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 시선을 통해, 격동하는 감정이 선명 하게 전해져왔다.
“그냥, 별생각 없이 움직여버렸네.”
“금제를 푼 거야?” 아탈란테가 픽, 웃으며 고개를 내 저었다.
“아니. 다른 원로들도 저거랑 똑같 은 물건을 가지고 있는걸. 금제가 풀리려면 멀었지.”
그 내용과는 달리, 그녀의 목소리 에선 왠지 모를 상쾌함이 느껴졌다.
나는 가만히 눈썹을 긁적거렸다.
“……이거, 일이 어떻게 굴러가는 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뭐가 뭔지 설명 좀 해줘.”
“알겠어. 하지만 그전에.”
“ 엇,”
말을 하다 말고, 그녀는 뜬금없이 양팔을 뻗어 내 목을 끌어안았다. 그러곤 몸을 바짝 밀착시키며 키스 를 퍼붓는 것이었다.
“야, 뜬금없이 뭐 하읍,”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밀어내려 했 지만, 아탈란테는 머리칼을 보랏빛 으로 물들이며 나를 강제로 끌어당 겼다.
비약적으로 강해진 근력…….
공허 계열의 1랭크 스킬인, ‘공허 의 힘’을 발동한 게 분명했다.
“아, 아탈란테, 잠깐만,”
“닥치고, 축하나 해줘.”
“축하는 무슨, 읍-”
그녀는 나를 입술부터 먹어치울 기 세로 덤벼들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 닌 것 같았다.
아탈란테는 보랏빛 안광을 줄줄이 뿜어내고 있었는데, 난 어쩐지 거기 서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해방감과 죄책감. 설렘과 두려움.
고양된 것으로 모자라 언뜻 광기마 저 비치는 듯한 감정들이다.
비전에서 비롯된 보랏빛이 주변의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자칫하다 간 목책의 경계병들에게 들킬 수도 있는 상황…….
……에라이.
나는 아탈란테의 입술을 단단히 틀 어막은 채 왼팔로 그녀를 안아 들고 오른손으로는 흐룬팅을 뽑아 들었 다. 그러곤 등지고 있던 창고로 다 가가 문틈으로 칼날을 집어넣어 빗 장을 잘라버렸다.
억지로 열고 들어간 창고 한켠에는 말먹이용 건초가 한가득 쌓여 있었 다. 아탈란테를 그 위로 밀쳐 버린 뒤, 창고의 문을 도로 닫았다. 잘린 빗장은 흐룬팅으로 대신했다.
한 기인(奇人)이 있었다.
그는 온갖 기기묘묘한 재주를 부렸 고, 신출귀몰했으며, 세상사에 모르 는 일이 없었다.
기인과 마주친 누데인족들은 그를 반신으로 여기며 숭배했으며, 무녀 를 바쳐 그의 씨를 받아내었다.
기인은 무녀를 잉태시킨 뒤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져버렸 다. 모든 이에게 전하는 예언을 하 나, 무녀에게만 전하는 전언을 하나 남긴 채였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아틸리아였 다. 기인의 예언을 따르면, 민족을 구원할 아이였다.
아틸리아는 기인의 딸답게, 그가 부리던 여러 재주 중 하나를 아주 어린 시절부터 깨우쳤다. 바로 비전 의 힘이었다.
알 카다리 씨족의 원로들은 비범하 게 성장해가는 아틸리아를 지켜보며 불안에 떨었다. 아틸리아가 그녀의 아버지처럼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 질 것을 두려워한 탓이다.
그 무렵, 무녀가 죽음을 맞았다.
그녀는 아틸리아에게 기인의 전언 을 속삭이며 눈을 감았고, 원로들은 아순에 모여 결단을 내렸다. 아틸리 아가 더 크기 전에 힘과 정신을 제 압할 금제를 걸자고.
씨족의 장과 원로들은 아틸리아를 통제할 고삐를 얻었고, 그녀의 부모 노릇을 하게 되었다. 반신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만족감은 덤이었다.
명실공히 씨족 최고의 전사가 된 아틸리아가 23번째 생일을 맞을 즈 음, 알 카다리 씨족은 마르바 지방 의 주도(主都)인 뮬팅엄을 지나고 있었다.
계획된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누데인족이 방랑을 하는 것은 너무 나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기후가 온 화하고 민심이 좋은 중남부 지방들 은 특히 선호되는 경유지였다.
그래서 알 카다리 씨족은 2, 3년에 한 번씩은 뮬팅엄을 지나며 장사를 하거나 품을 팔곤 했다.
그렇게 일상적으로 흘러가던 여정 은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게 된다. 마르바 지방의 주인인 트리스탄 백
작으로부터의 제안이었다.
-내 봉신이자, 롱빌의 영주인 말로 리 남작이 미친 짓을 벌인다. 내 아 들인 도일을 도와 영지를 회수토록 하라.
사실상 명령이나 다름없는 제안이 었지만, 그 보상만은 달콤했다.
일을 마치고 적절한 양의 금은을 준비한다면 뮬팅엄 근처에 있는 장 원을 하사하겠노라고, 백작이 직접 약속했기 때문이다.
백작은 심려 깊게도 교회의 공증을 받은 서류까지 준비해주었고, 아순 은 즉시 제안을 받아들였다.
원로들은 ‘하레스 키스(아순을 지 키는 호위병)’들을 제외한 씨족의 정예전사들을 아틸리아에게 맡겼다.
트리스탄 백작의 차남인 도일 뮬린 은 머리 회전은 빠르지만 오만한 망 나니로 악명을 떨친 자였다.
그 악명이 어찌나 높았는지, 트리 스탄 백작의 장남이 요절했을 때는 수십 명의 가신들이 도일이 아닌 그 의 여동생을 후계자로 지명하라고 백작에게 읍소했을 정도였다.
여동생인 클라리사에게 후계자 자 리를 빼앗긴 도일은 원한을 뼈에 새 기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말로리 남작의 정신 나간 선포를 들었고, 트리스탄 백작 을 찾아가 간곡한 청을 올렸다. ‘백 작 자리 안 물려줄 거면 롱빌이라도 먹게 해주세요!’라는 게 그의 요지 였다.
트리스탄 백작은 결국 도일의 청을 받아들였다. 왕국에 손꼽히는 대귀 족인 그도, 결국은 50대에 접어든 마음 약한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지원을 업은 도일은 여러 카드를 준비했다. 아틸리아의 수렵 제 우승 역시 그 카드 중 하나였다.
많은 희생과 노고 끝에 도일에게 쓸만한 카드를 쥐여준 아틸리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모두 끝났 다고 여겼다.
하지만 도일은 롱빌을 완전히 차지 할 때까지 알 카다리 씨족이 협력해 줄 것을 요구했고 원로들은 이를 거 부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합의가 끝난 뒤, 도일 일행 은 황금 칼 선술집에서 여독을 풀기 로 했다.
도일은 여느 때처럼 가병(家兵)들 을 부려 다른 손님들을 모조리 쫓아 낸 뒤 홀로 술판을 벌였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음욕을 이기지 못하고 미녀의 방에 침입했다.
한밤의 침입을 받은 미녀는 다름 아닌 아틸리아였고, 그녀는 도일을 두들겨 패버렸다.
소란을 알아챈 원로 마우리오가 금 세 옆방에서 찾아왔고, 코가 부러지 고 입술이 터진 도일을 보고 대경실 색했다.
마우리오는 기절한 도일을 방에 두 고 아틸리아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러곤 이 일을 덮기 위하여 도일과 동침하라고 명령했다.
-도일 공자님은 호쾌하신 분이니, 깊이 사죄하며 정성껏 봉사하면 코 가 부러진 것도 훈장으로 여기실 게 다. 가서 네가 저지른 일에 대한 책 임을 져라.
마우리오의 개소리에 아틸리아는 극히 분노했다. 그렇게 둘의 대화가 말다툼으로 번지자 마우리오는 끝내 ‘금제의 펜던트’를 꺼내 들었다.
아탈란테의 숨 가쁜 이야기가 끝나 고 창고를 나설 즈음, 어느새 동쪽 에서는 말간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도일은 백작위를 노리고 있어.”
“후계자 자리는 여동생한테 넘어갔 다며.”
“다시 뺏어오겠다는 거지. 금광이 있으니까.”
아탈란테는 부츠 끈을 당기며 말을 이었다.
“롱빌을 차지하자마자 영지민들을 총동원해서 금광을 캘 거래.”
“영지민들을 총동원하면, 농사는?”
“식량이야 사들이면 되는걸.”
“……뭐,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긴 하지. 근데 농사꾼으로 살던 사람들이 그렇게 순순히 금광 일을 하려고 할까?”
“으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 연히 영지민들의 뜻이랑은 상관없지.”
잿빛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리며 자 스민 향기가 풍겼다. 붉은 천이 머 리칼을 들어 올리는 동안 솜털이 솟 은 목덜미가 시선을 끌어당겼다.
“2, 3년 동안 영지를 끝까지 쥐어 짜서 돈을 최대한 끌어모은 뒤, 그 걸 바탕으로 영지를 뒤집을 셈인 거 야.”
“2, 3년 안에?”
“그쯤이면 트리스탄 백작이 죽을 테니까.”
“백작 나이가 몇인데 벌써 죽어?”
“쉰 조금 넘었을걸.”
“쉰이면 팔팔할 때 아닌가? 대귀족 이잖아.”
“그렇지도 않은 게, 천일 전쟁 때 너희 주군에게 화살을 맞고 낙마한
후로는 쭉 골골거리고 있대. 옥살이 를 하느라 몸이 약해져서 사제의 치 료도 안 먹힌다나.”
새삼 엘렌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다른 귀족도 아니고, 제오레 왕가 의, 그것도 울카르 왕자한테 서임을 받아? 울카르 왕자가 적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말뜻을 정확히 알겠다.
천일 전쟁 때 일곱 대귀족과 싸워
서 셋을 포로로 잡고 둘을 죽였다던 가. 앞으로의 여정이 심히 걱정스럽 구만.
……에이, 기사 서임은 괜히 받아 가지고.
내가 속으로 투덜거리는 사이, 아 탈란테가 다가와 목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속삭임.
“남작부인을 설득해.”
“••••••뭐‘?”
“이대로 버티면 롱빌의 영지민들은 트리스탄 백작의 군대에 짓밟히고 도일에게 착취를 당한 다음, 뮬팅엄 을 향해 진군하게 될 거야. 남작부 인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하 거나 그보다 못한 신세가 되겠지.”
짧은 입맞춤이 지나갔다.
“백작에게 온전한 상속을 약속하고 시간을 벌어. 그동안 영지민들을 다 른 지방으로 도망치게 해. 남작부인 도 마찬가지고.”
“……말은 해볼게.”
물러서려는 그녀의 손을 다시금 잡 아챘다.
“너도,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거 잊지 마.”
“……서던셔에 있다는 네 장원 말 이야?”
«으 » 흐*
아탈란테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말했잖아. 누데인족에게 북방은 너무 춥고 위험해. 상행을 할 만한 도시도 적고.”
“그래도 주인 눈치는 안 봐도 되잖 아.”
그녀의 미소가 조금 더 진해졌다.
“갈게.”
“괜찮겠어, 안 도와줘도?”
나는 구석에 처박혀 있는 원로 마 우리오의 시체를 턱짓했다. 아탈란 테의 이야기를 들은 덕에 죄책감 따 위는 진즉에 사라진 뒤였다.
“괜찮아. 나한테 계획이 있으니까.”
평온함을 되찾은 눈동자가 아침 해 에 물들며 황금빛을 띠었다.
“닉스.”
“ 응?”
“고마워.”
“……고맙긴. 그냥 우연이었는데.”
“그래도,”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덧붙였다.
“만약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끼어 들지 마.”
“……뭐?”
“자칫 너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었 어. 이번엔 운이 좋았지만, 다음번엔 어떨지 몰라.”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저었 다.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할 수 있어. 난 너한테 목숨을 빚졌으니까.”
“먼저 빚을 진 건 나였어.”
우리가 두 번째로 만났을 때를 말 하는 것이다. 용병들의 시체 때문에 오해를 하여 싸움이 붙었을 때.
“……그건 목숨을 빚졌다고 하기
엔,”
“어쨌든.”
아탈란테는 마우리오의 시신을 들 쳐메며 진지한 얼굴로 당부했다.
“부탁이니까, 오늘 같은 일이 생겨 도 나서지 말아줘.”
“아탈란테.”
“나를 위해서라도. 알겠지?”
곱게 미소를 짓는 그녀를 향해, 나 는 끝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괜히 한숨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