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7)
나의 악당들 017화
5—2. 정비(2)
길리우스 아저씨가 속한 패거리는 총 여섯 명, 전사 네 명과 궁수 한 명, 성직자 한 명으로 이루어져 있 었다. 패거리의 리더는 ‘그라니아’라 는 이름의 용병이었다.
내가 이 패거리와 교분을 나누게 된 것은 길리우스 아저씨의 넉살 덕 분이었다.
부둣가 전투가 끝나고 보수를 받은 뒤 전리품을 챙기는데 친한 척을 해 오더라고.
물론 그라니아 패거리 안에서도 날 꺼리는 사람이 몇 있었다. 전투 중 에 미친듯이 날뛴 내 모습을 봤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내가 사용 하는 혈조술이 여러모로 불길한 모 양새를 내는 기술이기도 했고.
하지만 내 예의 바른 태도와 멀쩡 한 외양 덕분에 곧 모두와 어느 정 도 친분을 쌓게 되었다. 또라이는 싫지만, 우리 편인 또라이이라면 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러고 같이 술을 한잔한 뒤엔 패 거리 전체가 뱃고동 여관으로 숙소 를 옮겨버렸다. 마침 묵고 있던 여 관에 불만이 있었다곤 하지만… 참 으로 호쾌한 용병들이었다.
길리우스 아저씨 다음으로 나와 가 장 친해진 사람은 패거리의 리더인 그라니 아였다.
내가 부둣가의 전투에서 넋을 빼며 솜씨를 구경한 그 주홍빛 머리칼의 여전사. 그녀가 바로 그라니아였다.
그녀가 리더로서 어떤지는 잘 모르 겠지만, 내가 보기엔 확실히 실력 있는 전사였다.
딱!
“집중해!”
“ 앗.”
내 집중력이 흐트러진 틈을 타 그 라니아가 원방패를 밀어 올리며 내 목검과 팔을 쳐냈다.
가드가 열리자마자 그라니아의 목 검이 턱을 향해 짓쳐 든다.
우=7 하
재빨리 버클러를 당겨 올리며 막아 냈지만, 그라니아는 버클러를 두들 긴 반탄력을 이용해 손목을 돌려선.
탁!
반대편 어깨를 내리쳤다.
“쯧, 맞았어.”
내가 패배를 시인하며 물러서자 그 라니아도 멈춰 서며 질문했다.
“이번에도 방패랑 검의 사이가 벌 어졌지?”
“응, 맞아.”
“버클러를 운용할 땐?”
“양손의 연계에 특히 주의를 기울 이라고.”
“그래. 다시 간다.” 말이 끝나자마자 그라니아가 자세 를 취했다.
왼팔에 쥔 원방패로 머리와 어깨를 비스듬히 가리고 검을 중단으로 든 자세였다.
“후우.”
나도 심호흡하곤 자세를 취했다.
양 다리를 앞뒤로 조금 벌려 구부 린 후, 목검과 버클러를 앞으로 모 아 뻗은 자세였다.
그라니아는 용병 중에서도 기술이 뛰어난 편이었다.
아무리 내가 힘과 속도를 제한하고 있다곤 하지만 체격이나 리치, 몸무 게 등은 여전히 그라니아보다 포이 닉스가 절대적으로 우세했다.
그런데도 기술과 경험의 차이 때문 에 나는 그녀를 좀처럼 당해낼 수가 없었다.
나와 그라니아의 대련은 짧으면 서 너 합, 길면 열댓 합 만에 끝났고, 곧바로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한 반복 속에서 나는 계속해서 교정을 받고, 경험하고, 이론을 체화
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그라니아에게 서 검술을 배운 지가 벌써 닷새째였 다. 아니, 검술뿐만이 아니라 방패술 을 포함한 전투기술 전반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고 봐야겠지.
이렇게 된 계기는 내 요청 때문이 었다. 그녀의 실력을 기억하고 있던 내가 대가를 제시하고 가르침을 부 탁한 것이다.
내 부탁을 받고 그라니아는 처음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부둣가에서의 활약으로 ‘미치광이 검사’라는 웃기지도 않은 별명을 얻 은 나다.
그런 내가 검술을 가르쳐달라고 하 니 그라니아는 놀리는 줄 알았던 것 이다.
물론, 몇 차례의 대련 후엔 그런 의심을 거두었다. 내가 격검(擊劍) 의 기본도 모르는 초보라는 것을 알 아차렸기 때문이다.
내 기술과 육체의 어마어마한 격차 에 그라니아는 의문스러워했지만 별 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저 대 가를 받은 만큼 대련을 해줄 뿐이었 다.
그라니아의 가르침은 예상대로 실 전적이었고, 예상외로 과학적이었다. 아니, 역학적이라고 해야 하나?
따닥!
허공에서 목검이 부딪히자, 나는 바인딩(칼날끼리 서로 접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유지한 채 슬쩍 밀 어붙여 보았다.
“훕
물러나던 그라니아는 짧게 숨을 뱉 으며 원방패를 위로 쳐올리며 내 목 검을 떨쳐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은 틈.
땅!
작은 틈을 순식간에 파고든 목검이 내 흉갑을 때리며 경쾌한 소리를 내 었다.
“끙. 졌어.”
“외력(外方)에 주의하라니까. 그리 고, 바인딩할 때는 누르고만 있는 게 아니라……
“누르면서 당기거나 누르면서 밀어 라. 유연하게.”
“맞아. 다시 간다?”
그라니아는 재차 자세를 잡고 다가 오기 시작했다.
으, 상단이 방패로 꽉 막혀 있어 노릴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그라니아의 방패를 뚫고 유효 타격 을 넣는 것은 엄청난 집중력과 행운 을 요하는 일이었다.
그라니아는 그리 덩치가 큰 편은 아니었다. 키가 160 중반쯤 될까?
물론 키가 작다고 약해 보이는 것 은 아니었다. 코를 가로지르는 흉터 와 그을린 피부, 작지만 단단한 근 육이 그녀가 쌓아온 경험을 대변하 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신중히 스텝을 밟으며 빈틈을 살폈다.
둥근 투구에 누비갑옷을 걸친 채였 지만 하체는 종아리가 드러난 천 바 지만 입고 있었다.
결국, 난 그 탄탄한 종아리의 유혹 에 못 이겨 하단을 향해 목검을 찔 러갔다.
“흣!”
젠장, 그라니아는 잽싸게 엉덩이를 뒤로 빼며 목검으로 내 머리를 노리 고 목검을 내리쳐왔다.
땅!
버클러로 공격을 튕겨낸 뒤, 그라 니아의 팔을 노리고 목검을 찔렀다. 재빨리 뻗어진 찌르기가 그녀의 하 박을 때리는 데 성공했지만, 이미 그라니아의 목검이 내 손목을 훑은 후였다.
내가 손을 들어 올리자, 그라니아 는 짧게 숨을 고르더니 물러나며 물 었다.
“후우, 후우, 팔은 어디에 붙어있다 고?”
“어깨에.”
“후우, 어디가 아니라?”
“엉덩이가 아니라.”
“그래. 하단을 노릴 땐 그만큼 리 치에서 손해를 보기 때문에 항상 상 단을 주의해야 해.”
“알겠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련은 재개 되었다.
그라니아가 서너 차례 간단한 견제 공격을 해오자 나는 침착하게 목검 을 쳐내며 천천히 다가섰다.
그러자 그라니아는 돌연 숨을 삼키 며 돌진해 왔다.
“흡!”
그라니아의 양손이 엇갈리며 칼끝 이 그녀의 원방패 안쪽 면을 밀었 다. 그러자 원방패는 오른쪽으로 휙 젖혀졌고, 그 뒤에서 목검이 튀어나 왔다.
방패와 무기의 포지션이 순식간에 바뀌는 변칙적인 찌르기 공격이었 다.
딱!
나는 재빨리 손목을 돌려 목검으로 공격을 쳐내곤 버클러로 그라니아의 방패를 밀쳤다. 그러면서 그녀의 어 깨를 팔로 얽고 다리를 걸었다.
그라니아는 재차 목검을 휘둘렀지 만 이미 난 그녀에게 바싹 붙어있던 터라 유효 타격은 불가능했다.
“으읏. 그라니아가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 지만, 이미 상체는 제압당하고 다리 까지 걸린 상태.
나는 안다리를 걸어 그라니아를 완 전히 넘어뜨려 버렸다.
휙.
목검으로 마무리하기엔 간격이 나 지 않았기에, 난 재빨리 목검을 놓 아버리곤 주먹으로 그라니아의 턱을 살짝 두드렸다.
“으, 졌어.”
패배를 시인한 그라니아는 내 손을 붙잡고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이제 레슬링도 익숙해졌네. 아니, 익숙해진 정도가 아니라 노련해진 건가?”
“프흐, 그게 차이가 있어?”
내 물음에 그라니아는 쓴웃음을 지 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나마 기술은 내가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젠 잘 모르겠 어. 정말 처음 배우는 거 맞아?”
내가 말없이 웃어 보이자 그라니아 는 찝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내가 장난이나 치기 위해 은 화를 다섯 닢이나 썼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건, 그라니아 의 가르침은 내가 치른 대가가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이었다. 너무 적게 준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 도였다.
고작 닷새간의 수련이었지만 나는 엄청난 발전을 이뤄내었다.
그라니아와의 대련 전적이 첫날 아 침엔 43전 41패, 오늘 아침은 21전 11패니까… 승률로 따지면 열 배도 넘게 뛰었다. 아마 첫날의 나와 지 금의 내가 싸운다면 아마 열 번 중 아홉 번은 지금의 내가 이기지 않을 까 싶다.
이건 그라니아의 가르침이 훌륭했 던 탓도 있지만, 내 몸에 내재된 기 억 때문이기도 했다.
다크월드 게임의 플레이어블 캐릭 터들은 처음부터 일반 양민이 아니 라 충분히 훈련된 자들이었다.
원소마법사만 하더라도 설정상으로 는 마법을 전혀 모르는 소년 소녀가 아니라 라-팔라이스 궁전에서 십 년 동안 수련을 한 마법사였다.
그것은 혈기사도 마찬가지였다.
포이닉스는 기사의 종자였다. ‘혈 기사’라는 클래스 이름 자체가 이러 한 설정 때문이었다. 혈조술을 발현 시킨 기사라는 설정 말이다.
기사의 종자란 유년기부터 시작하 여 십 대의 대부분을 전투기술 숙달 에 공을 들이는 존재였다.
아마 포이닉스 또한 그러했을 테 고, 그때 숙달한 기술들이 머리에는 남아있지 않아도 몸에는 새겨져 있 는 것 같았다. 대련을 하며 급격히 실력이 느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거다.
그리고 조심스레 추측해 보건대, 아마 지금도 포이닉스의 실력을 모 두 뽑아낸 건 아니지 싶다.
서임만 받지 못했을 뿐 기사나 다 름없는 포이닉스가 한낱 용병보다 기술이 부족할 리가 없을 테니까 말 이다.
이어지는 대련에서 나는 세 번을 내리 이긴 후에야 파김치가 된 그라 니아를 놓아주었다.
우물가에 주저앉은 그라니아는 땀 과 흙먼지를 털어내며 툴툴거렸다.
“하아, 하아- 죽겠다. 오늘 저녁에 도 할 거야? 내일 하수도 내려간다 며?”
“오늘은 쉬어야지. 그리고 한동안 은 혼자 연습해 볼게.”
“그래? 뭐, 이제 가르칠 것도 없었 어. 실전에서 잘 다듬어봐. 진짜 처 음 배운 거면 넌 타고난 천재일 테 니까 실력은 금방 늘 거야.”
그라니아는 안도한 듯,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뭔가 생각났다 는 듯 물었다.
“아, 너 방패 주문했다고 하지 않 았나?”
“응. 안 그래도 슬슬 찾으러 갈 참 이었어.”
“네 버클러 꽤 좋은 물건 같은데, 아쉽지 않아? 다루는 법도 꽤 익혔 잖아.”
겪어본 실전은 고작 두 번이었지 만, 나는 나름 죽음을 넘나드는 위 기를 겪으며 많은 걸 배웠다.
그리고 그 위기 속에서 가장 위협 적이었던 것은 다름 아닌 화살이었 다.
배 위에서도 화살에 맞아 죽을 만 큼 다쳤고, 부둣가에서도 화살 때문 에 지릴 뻔했으니까.
난 눈앞의 창이나 도끼보다 눈 깜 짝할 사이에 날아드는 화살이 몇 배 는 더 무서웠다.
그래서 그라니아가 쓰는 것처럼 큼 직한 원방패를 주문한 것이다.
지금 사용하는 버클러가 매직 아이 템이건 뭐건 상관없었다. 아마 사정 이 안 됐으면 문짝이라도 떼서 들고 다니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난 화살이 무서웠다.
“괜찮아. 길리우스 아재 방패로 많 이 연습했으니까. 그리고 기왕이면 좀 더 묵직한 게 좋겠더라고. 이건 쇳덩이긴 한데 워낙 작아서.”
“하긴, 버클러는 휴대하긴 편해도 안정감이 부족하지. 큰 전투에서 쓰 기엔 조금 아쉽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라니 아가 여관으로 들어가자, 나는 습관 처럼 우물에서 물을 길어 세수를 했 다.
그때 였다.
“ 야.”
“으엉?”
코를 풀다 말고 고개를 들어보니 거기엔 엘렌이 서 있었다.
뭐야, 이 녀석? 자꾸 어디서 튀어 나오는 거야?
나는 잽싸게 세수를 마무리하곤 소 매로 대충 눈가를 훑으며 물었다.
“명상하러 간 거 아녔어?”
“하려고 했는데, 집중이 잘 안 돼 서.”
“집중? 야, 원래 그런 건 다 집중 안 돼도 엉덩이로 버티면서 하는 거 야. 나이도 어린 녀석이 무슨,”
“아씨, 누가 들으면 진짜 아저씬 줄 알겠네. 나랑 몇 살 차이도 안 나면서 가르치려 들지 좀 마.”
•••이년 보게,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 이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