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11)
나의 악당들 211화
46. 꿈의 주인(1)
김승수로서의 기억대로 스타메이커 솔레바는 꽤 까다로운 상대였다.
솔레바 자체도 강력한 마법사인 데 다 놈이 타고 있던 드레이크 역시 어지간한 네임드보다 위험한 괴물이 었다. 황금 고리를 이용해서 소환한 노예들도 꽤 강했고.
그리고 게임에서 마주쳤던 것보다 도 놈이 더 강하게 느껴진 건 다른 네임드를 둘이나 더 달고 나왔기 때 문일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게임에서 솔 레바가 소환하는 노예는 ‘순백의 기 사 아치발드’, ‘실버팽’, ‘벼락도끼 슝카슬레’ 이렇게 셋뿐이었거든.
근데 어찌 된 영문인지 현실에선 ‘산 드루이드 운스테드’에 ‘굴의 마 녀 세잘라’까지 딸려 나왔다. 이 둘 은 원래 독립된 랜덤 네임드로 등장 하는 놈들인데 말이다.
뭐, 내 상상력을 약간 동원해 보자 면…….
사악한 안개 속을 헤매던 솔레바가 우연히 ‘산 드루이드 운스테드’와 ‘굴의 마녀 세잘라’를 만나 그들까 지 노예로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전후 사정을 아는 여섯 명은 모두 시체가 돼버렸으니 이제 와서 진실 을 들을 방법은 없겠지.
어쨌든, 솔레바와 그 노예들을 상 대로 벌인 전투는 사실상 네임드 예 닐곱 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것 과 비슷한 난이도였다.
그리고 고생을 한 만큼 꽤 괜찮은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난 하얀 갑주를 입은 사내인 ‘순백의 기사 아치발드’를 살폈다.
“……주여, 어찌 이런 재앙이.”
쇠뇌수 기돈은 이마와 가슴팍을 한 차례씩 짚더니 하늘을, 아니, 희뿌연 안개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성당기사를 죽이다니, 크나큰 죄 악입니다. 광명의 주께서 이를 기억 하시고 언젠가 벌하시겠지요.”
“글쎄.”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 주님도 용서해 주시지 않을까? 사실 그렇잖 아, 중무장한 기사가 덤비는데 성당 기사인지 뭔지 알게 뭐냐고.”
“저도 눈이 있습니다, 나리. 그가 신성한 권능을 사용하는 것을 똑똑 히 봤단 말입니다.”
“ O 으” — 丁그»
내가 귀찮은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눈썹을 긁적거리자, 한창 무덤을 파 던 말총머리 프리츠가 삽을 흙바닥 에 팍, 박으며 빈정댔다.
“니미, 그럼 뭘 어떡해? ‘아이고, 성당기사께서 납셨네. 제 목 여깄으 니 얼렁 가져가십쇼’ 했어야 됐냐?”
“그런 게 아니라 목숨을 붙여두기 위해 노력은 해야 했다는 거다. 주 의 분노가 두렵다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지.”
“하, 주의 분노? 느그 교단의 주님 은 속이 네 거시기만큼 옹졸한가 봐? 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 껄이고 있어, 등신 새끼가.”
프리츠의 폭언에 기돈의 얼굴이 벌 겋게 물들었다.
“이 개 같은 자식, 네 더러운 혀를 잘라 버리겠다.”
“그 전에 엿 같이 생긴 네 면상이 먼저 으깨질걸?”
“그래, 한번 해봐-!”
기돈이 벌컥 성을 내며 덤벼들자 낄낄거리던 프리츠도 마주 주먹을 쥐며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만!”
그들이 맞붙기 직전, 스티드먼 등 다른 용병들이 나섰다.
“이 꼴통 같은 새끼들, 물러서!”
“기돈, 네가 참아! 저 새끼 입에 걸레 문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주 그냥, 오합지졸이 따로 없구만.
다들 베테랑 용병답게 싸움은 한가 락 하는데, 군인보단 깡패에 가까운 새끼들이라 툭하면 별의별 사고가 터진다.
군대에서 견장 한 번 못 달아본 데다 회사에서도 항상 졸병 신세였 던 나로선 이런 깡패 새끼들을 통제 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 다.
“ 에휴.”
내가 한숨을 내쉬며 메마른 양벚나 무에 등을 기댈 무렵, 한쪽에서 들 려오던 요란한 코골이가 끝났다.
“ “7 o 으 ” ―L–T그 •
으르렁거리며 기지개를 켠 우테콰 이는 숙취에 앓는 사람처럼 잔뜩 찌 푸린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손 바닥에 묻어난 피며 체액을 보곤 미 간을 좁히며 손을 터는 것이었다.
“이거 놔! 저 개자식, 뱀 같은 눈 깔을 터뜨려버리겠어!”
“하! 입만 털지 말고 한번 해보라 고!”
그러는 동안에도 용병들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우테콰이는 가슴을 부풀리며 숨을 마시더니,
‘‘닥, 쳐-!”
공기가 파르르, 떨릴 정도로 고함 을 내질렀다.
우레 같은 목소리에 깜짝 놀란 용 병들이 우뚝 멈춰 섰다. 우테콰이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더니 프리츠에게 물었다.
“무덤은?”
“……어, 대충 다 팠수.”
“두 개 더 파라.”
“예에? 뭐 하려고,”
“묻을 사람 둘 더 있다.” 프리츠와 기돈은 자신들을 향하는 우묵한 시선에 얼굴을 새하얗게 물 들였다.
“허, 허허. 형님도 참, 농담을 해도
“농담? 그런 것 같나?”
“……어,”
두 용병의 입술이 바짝 말라붙을 즈음, 우테콰이가 피식 웃음을 터뜨 렸다.
“너희 신의 기사와 초원의 전사를 위한 무덤이다.”
“ 아,”
“뭐 하나? 어서 파라.”
프리츠와 기돈이 헐레벌떡 삽을 집 어 들며 소란은 일단락되었다.
“나리.”
그 광경을 보며 쓴웃음을 짓고 있 던 베테랑 컨휘어가 내게 조심스럽 게 조언을 해왔다.
“저 성당기사의 장비는 챙기지 않 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으 하
아치발드가 입고 있는 건 제대로 된 판금갑옷이었다. 아마 ‘왕립 도 르메나 갑주 공방’에서 만든 물건
같은데…….
“뭐, 그래. 저런 물건을 함부로 먹 었다간 체할 테니.”
“맞습니다. 교단의 성직자들에게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고, 기돈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끙, 아쉽구만. 갑주에 은은하게 흐 르는 신성력만 아니면 까맣게 칠해 버린 뒤 입고 다닐 텐데.
결국 난 아치발드의 목 없는 시체 가 순백의 판금갑주를 입고 부러진 양손검을 안은 채 무덤에 들어가는 꼴을 지켜만 봐야 했다.
“……쩝.”
역시 난 판금갑옷과는 인연이 없는 걸까. 매번 갑주를 바꾸는 것도 지 긋지긋한데.
다음은 ‘굴의 마녀 세잘라’였다.
뭉치에게 목이 갈라져 죽은 그녀는 헤진 로브를 입고 있었다. 가진 거 라곤 낡은 주사위와 가죽 인형, 사 람의 손뼈 등 쓸모를 알 수 없는 잡동사니들뿐이 었다.
“그래도 이건 좀 쓸 만해 보이더라 고요.”
주근깨 미라가 그렇게 말하며 내민 것은 검은색 나무 지팡이였다. 따로
칠을 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색 깔인 모양이었다.
어느새 명상을 마친 엘렌은 그 지 팡이를 살펴보더니 심드렁한 표정으 로 입을 열었다.
“미루나무 지팡이네. 한 200년쯤 묵은 모양인데.”
“귀한 거야?”
“뭐, 나름. 소환사나 강령술사들이 즐겨 쓰는 물건이야. 지배력을 강화 해주거든. 시렌이 있었으면 좋아했 을 텐데.”
기억하기로, 라오 가문의 마법사인 시렌은 한 번에 소환할 수 있는 골 렘의 수가 기껏해야 두엇이었더랬 다. 이 지팡이를 사용했으면 그 수 가 좀 늘어났을 거라는 게 엘렌의 설명이었다.
꽤 귀한 물건이지만 당장은 쓸모가 없어서 챙겨만 두기로 했다.
이 지팡이도 그렇고, 영혼주술사 카라멕에게서 얻었던 ‘사건의 무지 개’ 세트도 그렇고…….
아무리 귀한 마도구라도 쓸 사람이 없으면 귀찮은 짐덩이에 지나지 않 는군. 이래서 능력 있는 동료를 모 으는 게 중요하다니까.
세 번째는 ‘산 드루이드 운스테드’ 였다.
아까 솔레바가 불었던 ‘고룡의 뿔 피리’는 원래 이 드루이드의 물건이 었다. 뿔피리를 불어 광역 마비를 건 뒤 곰으로 변신해서 돌진해 오는 게 패턴이었지.
고룡의 뿔피리는 무척 유용한 물건 이지만, 아쉽게도 콜의 화살에 박살 이 나버렸다. 오래된 물건이라 마력 이 거의 휘발된 상태였지만 그래도 열 번은 더 쓸 수 있었을 텐데……. 뭐, 어쩔 수 없지.
드루이드가 쓰고 있던 산양뿔 투구 도 마도구였는데,
“보시다시피, 이렇게 됐네요.”
미라는 투구의 잔해를 보이며 어깨 를 으쓱였다.
……이건 내가 망가뜨렸다. 드루이 드의 잘린 머리를 축구공처럼 걷어 찬 뒤 혈조술로 터뜨려버리면서 투 구도 같이 박살 났거든.
하, 매번 이런다니까. 피만 보면 별 이상한 짓거리를 다 하니…….
안 되겠다. 오늘은 자기 전에 명상 을 한 시간쯤 해야겠어.
“근데, 우테콰이.”
“음?” “이놈도 드루이드인데, 따로 안 챙 겨줘도 되냐?”
“모른다.”
“몰라?”
우테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드루이드는 초원의 드루이드 아니다. 산의 드루이드다.”
“……다른 거야, 둘이?”
“옳다. 기원, 문화, 정신 다르다.”
놈은 두꺼운 턱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아마도, 높은 곳에 두는 것으로 족하다.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흠, 풍장 같은 건가?
네 번째는 ‘실버팽’이었다.
“이거 보세요. 그 할머니, 심상찮은 물건을 세 개나 가지고 있더라고요.”
미라가 마도구들을 늘어놓으며 눈 을 빛내자 엘렌은 혀를 내둘렀다.
“마력도 없는 주제에 무슨 재주로 이렇게 마도구를 찾아오는 거야?”
“마도구를 찾는 거랑 마력이 무슨 상관이에요?”
“무슨 상관이냐니? 마도구인지 아 닌지 알려면 마력을 느껴야 하잖 아.”
미라는 슬쩍 미소를 짓더니 손가락 을 까닥거렸다.
“그건 엘렌 님 같은 마법사들이나 할 수 있는 거고, 저희에겐 다른 방 법이 있다고요.”
“다른 방법?”
미라는 코를 찡긋거렸다.
“네. 돈 냄새를 맡는 거예요.”
“……신기한 재능이네.”
“ 타고났죠.”
떨떠름해하는 엘렌과 뿌듯한 표정 의 미라를 뒤로하고, 실버팽의 마도 구들을 살폈다.
짐승에게 채울 법한 검은색 가죽 목줄이 하나, 칼이 두 자루였다.
엘렌은 물건들을 살펴보더니 신중 한 투로 말했다.
“칼에 걸린 주문은 둘 다 간단한 거네. 하나는 칼날을 더 예리하게 만드는 주문 같고. 다른 건, 음, 힘 을 강하게 해주는 건가?”
“오, 그래?”
끽해야 매직아이템 수준이겠지만, 썩 반가운 말이다. 왜냐면 ‘예리함 강화의 주문’이 걸린 칼은 꽤 특이 한 물건이었거든.
“뭉치야. 이거 너희 동네 거 아니 냐?”
“에, 조금 달라요. 그래도 비슷해 요.”
“한번 쥐어볼래?”
“네, 네!”
뭉치는 퍽 활기찬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게 혼나느라 눈물을 글썽거릴 땐 언제고, 잠시 놀아줬다 고 기운을 회복한 모양이다.
녀석이 받아든 칼은 날 길이가 50 센티는 될까 싶을 만큼 짧았다.
밀라놀 왕국의 사람들의 눈엔 그 모양이 퍽 신기하겠지만 내겐 꽤 익 숙했다. 사극에서 자주 봤거든.
게임을 할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자 면, 아마 저 종류의 칼을 ‘운검(雲 適)’이라고 했던 것 같다.
늙은 늑대인간이 이런 걸 어떻게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뭉치가 좋아하니 됐지.
운검을 빙글빙글 돌리고, 휘두르고, 찔러보던 뭉치는 반짝거리는 눈빛으 로 나를 돌아보았다.
“뭐‘?”
“헤.”
녀석의 바보 같은 웃음에 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기쁜 척 품에 안겨 오는 뭉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자니, 옆에 선 엘렌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안 끝났거든? 좀 비켜.”
“ 엣,”
어깨를 움츠린 뭉치가 나를 올려다 보기에 웃으며 어깨를 두드려주었 다. 녀석은 불만스러운 듯 입을 오 물거리다 물러났고, 세잘라가 입고 있던 로브를 찢어 운검을 둘둘 말았 다.
“자, 그럼 다른 칼은……
근력 강화 옵션이 붙은 칼은 누데 인 족들이 주로 사용하는 양식의 곡 도였다. 슬쩍 쥐어보니,
“흐음.”
……딱히 느껴지는 건 없군.
아마 고정 수치 증가가 아니라 ‘근 력이 X 이하일 시 X만큼 증가’ 어 쩌구 하는 옵션인 것 같다.
뭐, 대단한 마도구는 아니어도 날 에 새겨진 물결무늬나 잘 잡힌 무게 중심을 보니 그 자체로 꽤 괜찮은 칼 같았다.
나는 곡도를 쓸 만한 용병들을 돌 아보았다.
“갖고 싶은 사람?”
“전 됐어요.”
주근깨 미라는 고개를 저으며 허리 춤에 찬 검을 툭툭 두드렸다.
“이 아밍소드도 마도구니까요. 마 법검을 두 개나 가지고 있어서 뭐하 겠어요? 욕심 많은 년인 거 들켜서 욕이나 처먹지.”
빡빡이 스티드먼도 ‘참살의 언월 도’를 내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전 이 펄션이나 먼저 익숙해지렵 니다.”
베테랑 컨휘어는 손때 묻은 참수검 을 내려다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용병질을 오래 하다 보니 깨달은 건데, 어지간한 명검보단 쓰던 칼이 낫더군요.”
애꾸눈 시모스는 안대 아래를 긁적 거리며 말했다.
“모양을 보니 칼날에 번개를 흘려 넣다 손바닥이 베일 것 같은데요. 전 됐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다 슬쩍 내 눈 치를 살폈다.
“어, 물론, 나리께서 쓰라고 하면 그냥 쓰겠습니다.”
“됐어.”
시모스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고, 그 옆에 서 있던 중장병 데르비쉬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 뭐야, 이 분위기? 나리, 그거 제가 써도 됩니까?”
“안 될 건 뭐야. 공짜도 아닌데.”
“공짜가 아니라됴?”
“당연히 돈을 내야지.”
“나리께요?”
“일행 전체한테 분배할 거야. 뭐, 거기엔 나도 포함되지.”
데르비쉬는 물론이고 다른 용병들 도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을 지 었다. 으휴, 한숨이 절로 나오는구 만.
“뭐야, 다들 골팟 몰라?”
“……골, 팟? 그게 뭡니까?”
난 지구의 게이머들이 지혜를 모아 발명한 보상 분배 방식을 소개했고, 용병들은 그 합리성에 감탄하며 동 의를 표했다.
“아니, 잠깐.”
반면 데르비쉬는 뭔가 불만이 있는 지 뭉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여자는 돈을 안 냈잖습니까? 왜 저만,”
“넌 뭉치보다 약하잖아.”
“게다가, 넌 내게 고용된 용병이야. 차등을 두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
할 말을 잃은 데르비쉬는 결국 똥 씹은 표정으로 돈주머니를 끌렀다.
그녀는 가지고 있던 전 재산에 더 하여 이번 전투로 받게 될 전투수당 과 한 달 치의 주급을 미리 받아 금화 25장을 만든 뒤에야 누데인 곡도를 얻을 수 있었다.
뭐, 금화 25장이면 그리 비싼 값도 아니다. 말 몇 마리 값에 마법검을 한 자루 산 건데, 이 정도면 아주 합리적이지.
“……흠, 괜찮은데?”
이를 깨달은 건지 아니면 힘을 강 해지는 걸 느낀 건지, 데르비쉬의 일그러졌던 표정은 곡도를 쥐자마자 슬쩍 풀어졌다.
그녀가 낸 금화를 일행들과 분배한 뒤, 엘렌을 돌아보았다.
“그럼 이 목줄은 뭐야?”
“……음, 일단 ‘흐릿함’이 새겨진 것 같긴 한데.”
“흐릿함?”
흐릿함이라면 롱빌에서 간접적으로 겪어본 바가 있었다.
용병인 ‘조 아저씨’의 패거리가 흐 릿함의 물약을 마시고 길가에 숨어 있다가 아탈란테의 일행을 습격했었 지.
“주문을 발동할 수 있는 마도구면 꽤 귀한 물건 아니야?”
“그렇긴 한데, 뭔가 다른 것도 있 는 같아.”
“그게 뭔지는 모르고?”
« O ” 흐.
나는 눈썹을 긁적거리다가 입을 열 었다.
“일단 한번 차볼까? 나도 마법저항 력이라면 꽤,”
“멍청아, 얼빠진 소리 하지 마.”
엘렌은 분홍빛 입술을 깨물며 목줄 을 다시 살펴보았다.
“늑대인간이 쓰던 물건이야. 혹시 변이 계열의 저주 같은 게 걸려있을 지도 몰라.”
“변이의 저주?”
난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렸다가 뭉 치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어쩐지 귀를 쫑긋 세운 채 눈을 빛내고 있 었다.
내 시선을 따라간 엘렌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 이걸 함부로 썼다간 뭉치가 그랬던 것처럼 개나 돼지로 변해 버 릴지도 모른다고.”
“그럼 일단, 건드리지 말고 보관해 둘까?”
“응. 교회에서 정화를 받기 전까진 그러는 게 낫겠어.”
……배낭에 들어가는 목줄에 웬 시 선 하나가 집요하게 따라붙는 것 같 은데. 기분 탓인가?
실버팽의 시체를 불태운 뒤 ‘벼락 도끼 슝카슬레’의 장비를 살폈다.
“이것도 뭔가 심상치가 않죠?”
미라가 내민 것은 자루가 흰 도끼 였다. 그녀의 말대로 도끼의 날에서 뭔가 기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래. 원소의 기운이 느껴지는.”
“잠깐.”
엘렌이 그것을 감정하기도 전에 우 테콰이가 나섰다.
“이 도끼, 내가 보관한다.”
“네가?”
“옳다. 그의 가족들에게 전해줄 것 이다.”
“……뭐야, 아는 놈이었냐?”
“그 전사의 이름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수에아탄 부족의 전사임은 안 다.”
그러고 보니 놈은 슝카슬레의 시체 를 묻기 전에 그의 팔에서 깃털 장 식띠를 챙겨뒀더랬다. 아마 그걸로 출신을 파악한 거겠지.
“수에아탄, 바람의 언덕에서 보물 만든다. 그 도끼도 그것이다.”
“이 도끼가?”
“그렇다. 나, 초원의 대전사다. 이 웃 부족의 보물 지켜준다.”
“그래?”
나는 눈썹을 긁적이며 일행을 돌아 보았다.
“이 도끼, 우테콰이가 보관한다는 데 혹시 불만 있는 사람?”
있을 리가 없지.
우테콰이는 슝카슬레의 도끼를 가 죽으로 곱게 싸서 배낭에 집어넣었 다.
옵션이 궁금하긴 한데 이런 문제로 우테콰이에게 시비를 거는 건 멍청한 짓이지. 그냥 없는 셈 치자.
그리고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대망의 하이라이트인 스타메이커 솔레바의 장비들이었다.
“이건 내가 쓸게.”
엘렌은 심홍색 깃털이 꽂힌 고깔모 자를 집어 눌러썼다. 녀석의 머리엔 좀 커 보이긴 해도 워낙 마스크가 좋아서 그냥 어울린다.
그리고 뭐, 마법사에게 고깔모자는 국룰이니까.
“그건 뭐 하는 물건인데?”
“잠깐만.”
엘렌은 눈을 감아 정신을 집중했 고, 고깔모자에 꽂힌 심홍색 깃털이 번쩍 빛났다. 그와 동시에 녀석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오!”
“우왓-”
용병들이 경악성을 내지르며 주변 을 돌아보았지만, 엘렌은 어디에서 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뭉치 나 나도 녀석의 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몇 초쯤 지났을까.
뒤에서 별안간 인기척이 느껴졌고, 난 얼른 뒤돌아 내 뒤통수를 치려던 완드를 낚아챘다.
W O ”
=
“……뭐 하는 거야?”
완드를 빼앗긴 엘렌은 뻘쭘한 얼굴 로 대답했다.
“그냥, 장난 한번 쳐봤어. 불만이 야‘?”
“참나.”
난 피식 웃으며 완드를 내밀었고, 녀석은 심통한 얼굴로 그걸 돌려받 았다.
“그건 뭐였어? 투명화는 아닌 것 같았는데.”
“잠깐 차원의 경계로 빠져나간 거 야.”
“차원의 경계로?”
“응. 정확히 말하면 몸의 구조를 바꿔서 다른 차원과 존재의 상을 걸 치는……. 아, 어차피 마력이 엄청 많이 들어서 나밖에 못 써.”
그 능력이나 외양을 보고 대충 짐 작은 하고 있었는데, 역시 ‘샛길 걸 음의 모자’인 모양이다.
발동 효과인 ‘차원 경계로의 피신’ 이 꽤 유용한 생존기라서 레어아이 템 주제에 고레벨 캐스터들에게도 많이 기용되는 장비다.
엘렌에게 딱 좋은 장비를 얻었군. 녀석이라면 잘 쓰겠지.
솔레바가 걸치고 있던 화려한 로브 역시 눈에 익었는데, 날붙이로 하는 공격을 어느 정도 막아주는 ‘위엄찬 예복’이었다.
물론 엄청나게 좋은 물건이지만 용 병들이 사용할 수는 없었다. 자락이 너무 길고 옷깃도 높아서 엄청나게 걸리적거렸거든.
엘렌이 쓸 수도 없는 게, 녀석은 이미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로브를 입고 있단 말이지. 게다가 위엄찬 예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좋은 물건이기도 하고.
엄청 유용한 물건인데 쓸 사람이 없어서, 나는 슬쩍 헤일라를 돌아보 았다.
“헤일라, 이거 네가 입고 있,”
“싫어.”
그녀답지 않은 아주 민첩한 대답이 었다.
“……어?”
내가 눈을 휘둥그레 뜨니, 헤일라 는 눈을 깜빡거리며 그 이유를 설명 했다.
“난 그런 거 못 입어.”
“왜?
“못생겼잖아.”
“……지금 그런 게 문제냐? 안전이 먼저,”
“안전이 걱정되면 차라리 반지나 더 만들어 줘.”
그녀의 태도가 보기 드물게 단호했 기에, 난 결국 위엄찬 예복을 배낭 에 처박아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