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63)
나의 악당들 263화
51. 진실, 이별(5)
여명이 번질 즈음, 북동쪽에서 불 어온 바람이 먹구름을 산맥 너머로 밀어내었다. 덕분에 간밤 내내 몰아 치던 눈보라도 씻은 듯 모습을 감추 었다.
그렇게 드러난 맑은 하늘은 여느 가을날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청 명했다. 볕이 간만에 위세를 부려준 덕에 근래 중 가장 따뜻한 날이 될 것 같았다.
신참병 서넛이 길드홀 앞뜰에 쌓인 눈을 쓰는 동안 힉스와 로웬은 이르 게 차려진 조식상을 정리했다.그리 고 헤일라가 찻주전자를 화로에 올 려 일상을 가장한 손님맞이를 마칠 무렵, 샤엔나 남작이 찾아왔다. 완전 무장한 기사들과 기병대를 거느리 고.
내가 청한 대로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남작은 그녀의 뒤에 늘어선 기 사들처럼 판금갑옷을 걸친 채였는 데, 한 눈에 보기에도 낯이 썩 좋지 않았다.
“아침부터 어쩐 일이십니까, 남작 님?”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태연 히 질문하니 빈 테이블에 투구를 올 린 샤엔나 남작은 날 빤히 바라보았 다. ‘이 새끼가 지금 진심으로 묻는 건가?’ 하고 탐색하는 눈빛이었기에 난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선량 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남작은 입을 꾹 다문 채 내 얼굴 을 계속 뜯어보았다. 침묵이 꽤 길 게 이어졌지만 먼저 찾아온 주제에 언제까지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 은 없는 노릇이라, 샤엔나 남작은 마치 소태를 씹은 듯한 표정으로 입 을 열었다.
“……간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나?”
“간밤에 있었던 일이요?”
잠시 귀밑을 긁다가 뒤늦게 떠오른 척 눈을 크게 떴다.
“아, 탈옥수 얘깁니까? 비둘기인지 황새인지가 물어갔다던?”
“……비둘기도, 황새도 아니다. 하 지만 비슷한 이야기이긴 하지. 그래 서, 아는 바는?”
“아는 바? 방금 말씀 드린 게 전 분데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팔짱을 꼈 다. 남작의 미간이 좁혀졌지만 아랑 곳 않고 말을 이었다.
“괴물도 아니고 날짐승이 감옥을 깨고 죄수를 물어가다니 참 신기한 일입니다. 뭐, 그 일 때문에 난처해 진 사람도 있겠지만요.”
“난처한 정도가 아니라 죽은 자도 있다.”
“아, 저런. 유감입니다.”
나름 진심으로 한 말이었는데, 그 녀는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순진무구한 얼굴로 질문했다.
“그 일 때문에 오신 겁니까? 의뢰 라도 하시려고요?”
“의뢰?”
“네. 제가 비록 신분은 기사지만 아래에 있는 놈들 대부분이 용병이 라 가끔 의뢰도 받습니다. 물론, 조 건이 좋으면요.”
내 천연덕스러운 말에 샤엔나 남작 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그녀는 장검의 퍼멀에 쇠장갑 낀 손을 얹고 있었는데, 일순 ‘까드득’ 소리가 들 렸다.
“죄수 하나 잡는 일에 네 도움 따 위는 필요 없다.”
“아, 그러십니까? 다행이네요.”
“다행이라고?”
“네. 새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멍청 한 일엔 별로 자신이 없어서요.”
“이, 이—”
남작이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 그 녀가 거느리고 온 기사들 사이에서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수염을 길 게 기른 마법사, 마스터 세첸토였다.
이미 마력의 흐름을 통해 눈치채고 있었던바, 그는 기사들 사이에 몸을 숨긴 채 그림자를 부리고 있었다. 아마 길드홀을 싹 훑었겠지.
하지만 나도 바보는 아니라서 주문 도둑 사이츠나 마스터 하그니처럼 시비 걸릴 여지가 있는 자들은 미리 의사나 서기 따위로 위장시켜두었 다. 저들이 찾는 렝카는 당연히 여 기에 없고.
역시 별 성과가 없었는지, 마스터 세첸토는 샤엔나 남작과 눈을 마주 치곤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좋다.”
좋긴 뭐가 좋아?
샤엔나 남작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 나더니 날 노려보았다.
“충고 하나 하지.”
“••••••네?”
“행동을 삼가라.”
그녀는 상체를 숙여 얼굴에 음영을 드리웠다. 그리고 속삭이는 듯한 나 직한 목소리로 경고를 하는 것이었 다.
“디딜 언덕도 없는 주제에 멋대로 날뛰지 말고, 거물이라도 된 양 귀 족들을 자극하지 말란 소리다. 언젠 가 새 시대를 맞이하며 네 주군과 함께 비참한 꼴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어디서 본 건 있는 모양인데, 그래봤자 주름 하나 없는 하얀 얼굴 이라 위압감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난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 소리에 막 돌아 서려던 샤엔나 남작이 도로 나를 향 해 눈을 하얗게 뜨는 것이었다.
“……뭐가 웃기지?”
“흐흠. 아, 이런.”
난 눈 아래를 쓸어내리며 사과의 말을 건네었다.
“죄송합니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 시는 분이 제 걱정을 해주시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서.”
“……뭐, 라고?”
남작의 얼굴이 당혹 내지는 분노로 붉게 물들어갔다. 그녀의 기사들 역 시 ‘감히!’ 내지는 ‘저 무도한 자가 따위의 말을 지껄이며 몸짓으로 나를 을러대었다.
……우습지도 않구만.
테이블을 짚고 천천히 일어섰다. 내려다보던 시선이 한순간에 크게 역전되자 샤엔나 남작은 흠칫 뒷걸 음을 쳤고, 그녀의 기사들은 칼손잡 이에 손을 올렸다.
내가 끌어올린 혈기를 느꼈는지 마 스터 세첸토는 굳은 얼굴로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웃는 얼굴로 그들을 타일렀다.
“죄수 관리 하나 못해서 일을 그르 친 주제에 왜 엄한데 와서 강짜를 부리십니까? 이럴 시간에 꼬랑지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달려가서 반 역자나 잡으십쇼.”
“이, 무엄한-”
“다른 왕의 기수가 죽었는데 그분 을 죽인 자를 놓치고 빈손으로 돌아 가면 국왕 폐하께서 아주 좋다고 하 시겠습니다. 기왕에 다 개판 된 거, 정 원하시면 한 손 보태드릴까요?” 샤엔나 남작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부들거리다가, 문득 다른 시선들을 느꼈는지 곁눈질로 실내를 살폈다.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고 선 우 테콰이, 가죽 카우치에 앉아 수정구 를 만지작거리는 엘렌, 좁은 테이블 에 앉아 차를 홀짝이는 헤일라, 여 기저기 흩어져 앉아있는 용병들까 지.
남작은 마른침을 삼켰다. 며칠 전 있었던 전투에서 여기 모인 이들이 어떤 활약을 했는지 똑똑히 지켜본 탓일 터다.
“이, 이……
남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뭐가 그리 분 한지 옅은 갈색 눈동자엔 물기까지 맺혀 있었다.
그것도 잠시, 샤엔나 남작은 표독 스러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두고 보자.”
하고 쏘아붙인 뒤 홱 돌아서고 마 는 것이었다.
……세상에, ‘두고 보자’라니. 이 대사를 실제로 들을 줄이야.
그렇게 길드홀을 나선 남작은 말에 올라 고삐를 채며 나를 다시 한번 노려보았다. 그리고 기사들과 기병 대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길을 따라 내달렸다. 역시 렝카와 자나바스를 추격하러 나서기 전에 찔러나 볼 심 산으로 들른 모양이다.
일백여 기수의 말발굽 뒤로 눈 섞 인 개흙이 마구 튀었다. 길을 진창 으로 만들며 사라지는 샤엔나 남작 과 그녀의 군대를 지켜보며, 부디 다시는 만날 일이 없길 빌었다.
……요 앞에다 소금이라도 좀 뿌릴 까?
샤엔나 남작이 직접 기병대를 이끌 고 추격에 나선 덕에 우리 일행은 자유를 되찾았다.
사실, 찝찝한 부분이 있긴 했다. 이노멘 남작이 죽기 전 내게 찾아와 했던 말 때문이다. 왕의 열일곱 번 째 기수가 되라는 제안 말이다.
-부디 옳은 판단을 하게. 그대와, 그대의 동료들을 위해서.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보자면 ‘우리 쪽에 붙든가, 아니면 적이 되든가’ 정도의 뉘앙스였다.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제안이었지.
그래서 이대로 떠나면 국왕인 라이 오넬 3세나 왕태자 자카리스에게 찍 혀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별 상관 없을걸.”
헤일라는 차를 홀짝이며 내 의문 어린 시선에 답을 내놓았다.
“제안자가 죽었으니까. 우리만 입 을 다물면 없던 일로 만들 수 있 어.”
“……다른 남작들은? 이노멘 남작 이 우리에게 그런 제안을 한 걸 모 를까?”
“세 남작은 왕에게 각자 다른 임무 를 받아 왔고, 널 회유하라는 명령 은 이노멘 남작만의 임무였을 거야. 샤엔나 남작의 태도를 보면 짐작할 수 있어.”
“그런가……. 근데 이노멘 남작의 측근들은 알 텐데?”
“그래도 상관 없어. 어차피 이건 위신의 문제니까.”
“••••♦•위신?” 헤일라는 긴 눈매를 나른하게 늘어 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왕의 입장에서 보면, 자식을 섬기 는 기사에게 작위를 제안했다가 거 절당하는 거야. 세간에 알리고 싶은 이야기는 아닐걸.”
“아. 하긴, 이노멘 남작이 비밀리에 제안을 해온 것도 그런 문제 때문이 랬지.”
“응. 그러니 네가 말하지 않는 이 상 이 문제가 불거질 확률은 아주 낮아.”
그러니까, 이제 완전히 자유의 몸 이라 이거지? 속이 다 후련하네.
뭐, 죽은 이노멘 남작에겐 좀 미안 하군. 언젠가 혼켈 가문의 사람을 만나면 잘해줘야겠다.
다음 날, 난 헤일라의 조언 덕분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우테콰이를 배웅 할 수 있었다.
“진짜 혼자 갔다 오게?”
“옳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콜이랑 스티 드먼이라도 데려가.”
“되었다. 이것은 오롯이 대전사의 일이다.”
“뭐, 그렇다면야……
“간다.”
그 말만 남기고, 우테콰이는 홀로 남쪽으로 향했다. 성문까지 나가서 그 뒷모습을 지켜보는데,
저 새끼, 죽어도 안 돌아보네. 어 지간히도 쿨한 놈이구만.
한편 엘렌은 우테콰이가 떠나고 이 틀 뒤 저녁 무렵에야 황금판의 점검 을 마무리 지었다.
소식을 듣고 녀석의 방에 찾아가 니, 엘렌은 졸린 얼굴로 침대에 기 대어 앉아 있었다. 요 며칠간 잠도 줄여가며 이것저것 실험을 해서 그 런지 꽤 피곤한 모양이다.
“어때? 이상은 없고?”
“응. 수식을 해석해 보니 목적지도 궁전이 맞는 것 같아.”
주문에 필요한 재료가 그리 넉넉하 진 않아서, 차원문은 평범한 문짝 정도의 크기로 약 10초간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10초라. 퍽 애매한 시간이다.
조금 서두른다면 열 명도 넘게 통 과할 수 있겠지만, 문을 통과하는 도중에 차원문이 닫히기라도 하면 그대로 몸이 잘려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예닐곱 정도만 이용하는 편 이 안전하리라는 게 엘렌의 설명이 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차원문을 이용 한 이동은 편도행 티켓이다.
황금판에 라-팔라이스 궁전의 좌 표가 정확히 입력되어 있으니 그쪽 으로 이동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궁 전에서의 일을 끝마쳤다고 해서 이 리로 돌아오는 건 불가능하다는 소 리다.
“차원문을 위한 좌표를 측정하기 위해선 ‘차원의 나침반’이 필요해.”
“차원의 나침반?”
“응. 아주 희귀한 마도구야. 내가 아는 건 라-팔라이스 궁전의 비고 (秘庫)에 있는 하나가 전부고.”
한마디로, 일단 차원문을 넘어가는 순간 세테니오라 수도원을 구하러 가는 건 불가능해진다는 소리다.
차원문을 넘자마자 수도원을 향해 출발한다고 쳐도 족히 4개월은 걸릴 테고, 그럼 뒷북도 한-참 뒷북일 테 니까.
“……흐음, 좀 꼬이네. 궁전에서의 일을 처리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그건 정확히 몰라. 짧으면 한 달 만에 끝날 수도 있고, 길면 일 년이 넘게 걸릴 수도 있어.”
“뭐? 어째서?”
“스승님을 죽였다는 누명이야, 사 이츠를 잡았으니 쉽게 벗을 수 있겠 지.”
엘렌은 차분히 가라앉은 얼굴로, 하지만 파랗게 불타는 눈으로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갈나르야.”
“네 삼촌? 너한테 누명을 씌운 새 끼잖아. 누명을 벗으면서 놈도 잡아 넣으면 되는 거 아냐?”
“소용 없어. 일부러 누명을 씌운 게 아니라 정황을 보고 오판한 것 뿐이라며 거짓말을 할걸.”
“게다가, 갈나르는 스승님이 돌아 가시며 생긴 공석을 차지했어.”
“공석? 무슨 공석?”
“그랜드마스터. 궁전의 그랜드마스 터가 될 수 있는 건 당대에 가장 뛰어난 일곱 명뿐이거든.”
파란 눈동자가 더욱 사납게 불타올 랐다.
“아무리 내가 라다칼린의 적통이라 고 해도 지금의 갈나르에게 정면으 로 싸움을 걸 수는 없어. 그랜드마 스터인데다가, 놈도 나름 라다칼린 의 직계니까.”
“그럼 어쩔 셈인데?
“먼저……. 다른 그랜드마스터들과 날 믿어줄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놈 을 그 자리에서 밀어내야 해. 처치 하는 건 그다음이고.”
엘렌은 잠시 말을 고르더니 다짐하 듯 덧붙였다.
“긴 싸움이 되겠지만, 마지막 승자 는 내가 될 거야.” 갈나르가 궁전의 그랜드마스터가 된 이상,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권 력은 강력해질 것이다. 그러면 다음 번엔 더 강력한 마법사들을 보내 엘 렌을 죽이려 할 테고.
세테니오라 수도원을 포위한 언데 드 군대도 골치 아프지만, 궁전의 그랜드마스터 갈나르도 시급한 문제 인 셈이다.
“어쨌든, 궁전에 갈 수 있는 건 여 섯 내지는 일곱뿐이라는 거지? 돌아 올 땐 차원문을 이용할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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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누굴 데려갈진 고민을 더 해보자. 어차피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우테콰이가 돌아올 때까진 기다려야 할 테니.” 녀석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전히 무표정한 채, 눈만 파랗게 빛내고 있다.
곧 해가 지나 나이를 한 살 더 먹 어도 엘렌은 고작 열여덟 살이다.
열여덟. 누명이니 복수니 하는 가 혹한 운명에 맞서기엔 버거운 나이 겠지.
“ 엘렌.”
“ 안아줄까?”
짓궂게 웃으며 양팔을 벌리자, 엘 렌은 여느 때처럼 앙탈을 부리는 대 신 얌전히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은은한 라임 향기를 맡으며 녀석의 자그만 등을 토닥여주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엘렌은 내 품에 안긴 채 잠들어 버렸다.
이름 : 엘렌
레벨 : 29
클래스 : 원소마법사
능력치 : 남은 보너스 – 0
근력 – 13(16) 민첩 – 14(18) 건강 – 17(24) 마력 – 45(125) 스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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