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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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악당들 292화
53. 한밤의 태양(11)
빈틈을 노리고 막벽에 뛰어든 구울 두 놈을 베어 넘길 즈음, 골만이 다 급히 고함을 질렀다.
“나, 나리! 저기 좀 보십쇼!”
얼굴을 창백하게 물들인 골만은 창 끝을 들어 성곽 아래, 목 없는 기사 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놈들이 옵니다!”
“……후우.”
나도 모르게 인상이 구겨진다.
목 없는 기사, 둘라한들은 휘황한 장비를 두른 해골기사 열댓 기를 거 느리고 우테콰이에게 덤벼들고 있었 다.
“제기랄.”
홀긋 돌아보니 문루에 선 수도사제 는 여전히 분노한 음성으로 기도문 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기세가 여 전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며, 난 컨휘어를 불렀다.
“내려가야겠다! 여긴 네가 지휘 해!”
“예? 내려가다니요, 너무 위험-”
“어떻게든 사제님을 지켜!”
흉벽 사이에 발을 올린 채, 난 반 쯤 윽박지르며 그에게 당부했다.
“이 막벽이 넘어가더라도 사제님은 지켜야 해. 놈들이 내뿜는 더러운 안개에 질식하지 않으려면!”
“저희론 무리입니다, 나리께서 계 셔야 합니다!”
“둘라한들을 처리할 기회야! 저놈 들과 밴시만 없으면 좀비는 그저 뇌
없는 시체들에 불과해!”
“성당 쪽에서 지원이 올 것을 기다 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성당 쪽을 살펴보았다. 전투가 벌 어진 건 틀림없는데, 한 시간쯤 전 에 허연 불꽃이 치솟은 후로는 깜깜 무소식이다.
성당에 있을 헤일라와 용병들에 대 한 걱정으로 입술을 깨물며, 난 고 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때까지 못 버텨.”
성곽 아래엔 좀비들이 가득하고, 둘라한과 해골기사들은 승세를 굳히 기 위해 우테콰이를 죽이려 드는 와 중이다. 요행을 바라고 기다릴 때가 아니라 무모하더라도 승부를 볼 때 다.
“나리!”
무어라 만류하려는 컨휘어를 뒤로 하고, 난 단숨에 성곽 아래로 몸을 던졌다.
“Athar, Marta—I”
타이밍 좋게도, 막 광폭화한 우테 콰이가 둘라한들을 향해 마주 덤벼 들었다. 검게 번뜩이는 광기 어린 안광에 이어, 주홍빛 불길을 머금은 쇠사슬이 사방을 휩쓸었다.
푸쉬익!
세 둘라한은 몸에서 허연 수증기를 뿜더니 자세를 웅크렸다. 그들 중 둘은 쇠사슬 채찍을 막아섰고, 나머 지 하나는 우테콰이를 향해 제 머리 통을 집어던졌다.
«o ” —–9
우테콰이는 ‘모신의 인도’를 깨우 친 덕에 광폭화 중에도 일말의 이성 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방 을 가득 채운 사악한 기운은 일말의 이성마저 뒤엉키게 만들었다.
결국 놈은 둘라한들 앞에서 침착함 대신 광전사다운 저돌성을 꺼내 들 었다. 한마디로, 미친놈처럼 덤벼들 었다는 소리다.
“그르르!”
우테콰이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커다란 머리통을 주먹으로 쳐낸 뒤 쇠사슬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둘라 한들과 뒤엉켜 서로 뼈를 취하는 육 박전에 돌입했다.
거기에 끼어들려는 나를, 해골기사 들이 막아섰다.
“그어어, *따다닥* 끄으!”
놈들은 이를 따닥거리며 꽤 잽싼 몸놀림으로 덤벼들었다.
루크를 따라다니며 경험치를 쌓아 해골기사로 승급한 놈들답게, 사우 스하버에서 해골병사로서 맞붙었을 때와는 몸놀림의 수준이 전혀 달랐 다.
“이 뼈다귀 새끼들이,”
목표는 서둘러 둘라한들을 처치한 뒤 어떻게든 밴시를 소멸시키는 것 이었지만, 해골기사들은 날 순순히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흰 바탕에 검은 그림이 새겨진 커 다란 방패, ‘잊혀진 십자군’를 든 해 골기사가 제 무장을 믿고 몸을 들이 밀었다.
퓨어화이트, 아니, ‘순백’이라 불리 는 백색의 판금갑옷에 ‘기사단의 충 의’라는 이름의 투구까지 쓰고 있어 서 도저히 틈이 보이질 않는다.
재빨리 뽑아 든 검은 얼음으로 놈 이 휘두른 철퇴, ‘낙성’을 흘려내었 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핏빛 선 봉장’, ‘황홀한 죽음’, ‘이른 수확’ 등 온갖 진귀한 장병기들이 나를 노 리고 한꺼번에 짓쳐 들었다.
“크, X팔-”
몸으로 받아낸다는 선택지는 처음 부터 없었다. 하나하나가 마법이 깃 든 판금도 우습게 찢어버릴 만큼 강 력한 무기들이다. 게다가 살짝 베이 기만 해도 심각한 출혈과 상식 이상 의 고통, 괴이한 저주 따위가 남을 터였다.
난 뒷걸음치며 샛별을 휘둘렀다. 동시에 혈조술을 펼쳐 어깨를 피의 방패로 감쌌다.
붉은 연기를 머금은 삼첨도가 턱 아래를 스쳤고, 섬뜩할 만큼 날카로 운 삼지창이 하얗게 번쩍이는 칼날 에 까가각! 걸려 땅에 처박혔으며, 자루 길이가 2미터도 넘는 대낫이 양발 사이에 틀어박혔고, 다섯 방향 으로 뿔이 돋은 메이스가 어깨를 비 스듬히 후려쳤다.
콰악!
“끄윽,”
피의 방패가 단숨에 깨졌다.
메이스의 머리에 돋은 뿔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견갑 틈을 파 고들었다. 난 즉시 검은 얼음을 놓 고 메이스의 자루를 꽉 붙들었다. 그리고 몸을 뉘었다.
쐐애액!
눕자마자 뼈화살과 빛의 화살, 그 리고 웬 시꺼먼 탄환이 눈앞을 난도 질했다. 뒤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해골기사들이 일제히 사격을 한 것 이었다.
“흐읍!”
나는 뿔 달린 메이스, ‘맘몬의 손’ 을 움켜쥔 채 뒤로 데굴데굴 굴렀 다. 메이스를 쥔 해골기사는 내 우 악스러운 손길에 저항하지 못한 채 덜그럭거리며 내게 따라붙었다.
“후욱, 후-”
그렇게 대여섯 바퀴쯤 굴러 진창에 서 일어날 즈음, 내 손엔 투구를 쓴 해골기사의 머리통이 들려 있었다. 한 덩이가 되어 뒹굴던 와중에 턱 아래로 샛별을 욱여넣어 목뼈를 잘 라버린 것이다.
제 동료의 죽음에 놀란 건지, 아니 면 그저 태세를 정비하는 건지 잠시 멈춰선 해골기사들을 바라보며 난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하나.”
그러거나 말거나, 나름 포위망을 갖춘 해골기사들은 ‘따다닥, 딱!’ 요 란스러운 잇소리를 내며 일제히 덤 벼들었다.
“야, 우테콰이!”
무겁기만 한 메이스를 집어 던졌 다. 둘라한들과 뒤엉켜 있던 우테콰 이는 입에 거품을 문 채 ‘그으, 하!’ 하고 웃더니 ‘맘몬의 손’을 주워들 었다. 썩 마음에 든 눈치다.
꽈득.
샛별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며 해골기 사들에게 덤 벼들었다.
인간을 초월한 육신에 혈조술이라 는 초능력이 더해진 덕에 난 어지간 한 전투가 아니고서야 죽음의 공포 를 느끼지 못했다.
실험해 본 적은 없지만, 배에 주먹 만 한 구멍이 뚫려도 목숨을 부지할 자신이 있었다. 어지간해선 죽지 않 으리라 확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 다.
눈앞의 해골기사 열넷 중 태반은 내 갑옷과 뼈를 단숨에 잘라 버릴 수 있는 무기를 쥐고 있다. 게다가 놈들에겐 피가 없어서 난 전력의 절 반도 채 발휘할 수 없다.
“후욱, 후!”
죽음에 대한 공포가 고개를 든다.
심장이 빠르게 뛴다. 사지말단이 뜨거워지는 감각과 함께 긴장감이, 전율이 몸을 지배한다.
키가/
샛별과 맞닿은 푸른 도끼, ‘청뢰’를 통해 전류가 쏟아진다.
“그르극, 흐-” 눈앞이 허옇게 물들며 턱과 손발이 덜덜 떨리는데, 어째선지 웃음이 터 져 나온다. 목을 뒤로 젖혔다 앞으 로 내리찍어 스컬캡을 쓴 두개골을 통째로 깨뜨렸다.
M 둘’—아
포위된 상황에서 공격을 한 대가로 잠시간 진창을 굴러야 했다. 전설적 인 무기들이 불과 2, 3센티의 간격 으로 땅에 파바박, 박혀왔다. 공격을 모조리 피해낸 건 순전히 요행이었 다. 환상적인 경험에 아랫배로 피가 몰리는 것 같다.
진창을 구르다 말고 개구리처럼 깡 충 튀어 올랐다. 까그극! 날붙이 몇 개가 판금갑옷을 스치며 불똥을 튀 겼다. 난 아랑곳하지 않고 샛별을 휘둘렀다. 보랏빛 삼지창을 휘두르 던 놈이 허리가 갈라져 바닥을 뒹굴 었다.
“ 넷,”
셋이 아니라 넷이다. 저 멀리서, 마법 장궁 ‘보레앗쿰’을 든 해골이 방금 뭉치의 발차기에 목이 날아갔 거든. 언제 봐도 녀석의 발차기는 일품이다. 다리가 예뻐서 그런가?
써컥!
“끄악,”
한눈을 판 대가를 치렀다. 사각에 서 날아든 장검에 허리를 틀었는데, 재수 없게도 손가락 끝이 걸렸다. 왼손 중지와 약지 끝 한 마디씩이 잘린 것이다.
사왕의 비늘수갑마저 단숨에 갈라 버릴 만큼 예리한 칼날. ‘거궐’이다.
“이 엿 같은 놈이,”
샛별의 십자막이를 이용해 거궐을 찍어눌렀다. 무기를 제압당해 버둥 거리는 놈의 투구 눈구멍에 끝이 잘 려나간 손가락을 욱여넣었다. 총구 가 둘인 산탄총이 불을, 아니, 피를 뿜었다.
쾅!
혈편에 난도질당한 두개골이 산산 조각 났고, 빈 투구가 굴러떨어졌다.
“다서- 그혹!”
쓰억!
붉은 연기를 뿜는 ‘핏빛 선봉장’이 등허리를 한 움큼 베고 지나갔다. 마법이 걸린 판금갑옷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는 일격.
다행히 마지막 순간에 몸을 비튼 덕에 척추가 상하진 않았다. 난 또 다시 짐승처럼 몸을 구르며, 벌써 살이 차오르기 시작한 왼손 끝으로
진창을 홅어 거궐을 쥐었다.
“O •흐 ” –9
오래된 칼날이 풍기는, 아슬아슬한 예리함이 등골을 저며온다. 함부로 다뤘다간 금세 부러지리라는 걸 알 았지만, 지금은 그딴 걸 신경 쓸 여 유가 없었다.
“그아합!”
중무장한 해골기사가 앞을 막아서 자 놈을 향해 거궐을 힘껏 그어 내 렸다. 삽시간에 덧입힌 피의 칼날도 함께였다.
까가가강!
투구 ‘기사단의 충의’와 방패 ‘잊혀 진 십자군’이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쪼개졌다. 그 안에 담긴 뼈다귀도 함께였다.
“여, 넛!”
유니크 방어구 둘을 한꺼번에 가른 대가로, 낡은 명검은 절반으로 똑 부러졌다.
난 소검이 된 거궐을 내팽개치며 스텝을 밟았다. 이번엔 한 합에 상 대를 처리한 덕에 포위망에서 쏟아 지는 공격을 비교적 손쉽게 피할 수 있었다.
“ 일곱-”
뭉치의 운검이 또 다른 해골기사의 목을 날렸다. 철탄환을 재어 날리는 석궁(Stonebow)을 든 놈이었다.
바위 같은 방패를 든 해골기사가 뭉치에게 덤벼들었지만, 녀석은 버 드나무처럼 몸을 흔들어 공격을 홀 려내곤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흐, 슬슬 쫄리지?”
‘망자의 십자궁’을 든 놈과 ‘코린토 스의 바위’를 든 놈이 뭉치에게 묶 인 탓에, 나와 대치 중인 해골기사 는 고작 여섯에 불과했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우테콰이는 세 둘라한 중 하나를 반으로 찢어발 긴 참이었다.
“안 쫄려? 너희 형님들도 다 썰려 나가고 있는데?”
난 그렇게 지껄이면서도 등허리의 상처에 혈기를 집중시켰다. 거궐을 휘두르느라 더 크게 벌어진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어간다…….
“가진 장비 다 두고 가면 특별히 살려줄…… 어, 이미 뒤진 새끼들이 라 별 의미는 없나?”
회복할 시간을 벌 셈이었는데, 예 상치 못한 일이 둘이나 발생했다.
“꺄윽!”
“뭉치야!”
뭉치는 ‘망자의 십자궁’을 든 해골 기사에게 암습을 가했으나, 불행히 도 단단한 방어구에 가로막힌 모양 이었다. 게다가 반격까지 받아서 길 쭉한 뼈화살에 어깨를 꿰뚫린 상태 였다.
“으, 흐……
뭉치는 사방에서 덤벼드는 좀비 떼 를 뿌리치고 간신히 어둠 속으로 녹 아들었다.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과 장 좀 보태 제 키만 한 쇠뇌살에 꿰뚫렸으니 더 이상의 활약은 불가 능할 터였다.
“안 돼, 물러서지 마-!”
“사제님을 지켜!”
발악에 가까운 소란에 뒤를 돌아보 니 유체화한 구울 하나가 문루 위를 덮치고 있었다. 수비대 하사관과 컨 휘어를 비롯한 용병들이 놈을 막아 섰지만, 구울은 제 몸을 던져 방어 벽을 허물어버렸다.
“삿되고 하찮은 존재여, 주의 미천 한 종이 명하노니, 물러서라!”
늙은 수도사제가 위엄찬 목소리로 호통을 치자 광륜이 빛을 더했다.
끼이야아악!
그러나 최후의 구울은 제 몸이 광 륜의 힘에 불타오르는 와중에도 돌 진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푹!
갈고리 같은 발톱을 늙은 수도사제 의 가슴팍에 박아버렸다.
“커, 커헉!”
“사제님!”
분노하고 당황한 병사들이 구울을 난도질했다.
“주여, *거흐윽* 빛의 주인이여,”
늙은 수도사제는 마지막 숨결까지 기도를 뱉었다. 광륜이 번쩍였다.
쩌엉!
걸레짝이 된 채 허물어지던 구울은 물론, 반경 200여 미터 안에 있던 모든 좀비들이 소금기둥으로 변했 다.
끼끼끼끼끼-!
그러한 기적이나 제 졸개들의 희생 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밤하늘을 노닐던 마지막 밴시는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아직도 끝없이 물결치고 있는 시체의 군세 를 수도원을 향해 밀어 넣는 것이었 다.
이제 신의 보호는 없다. 시체들이 풍기는 부패의 안개는 물론이고, 사 방에 깔린 사악한 기운도 스멀스멀 막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X팔••••••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온다.
아니 진짜, 대체 이걸 어떻게 이기 란 거야?
우두머리인 루크는 기습으로 죽였 고, 신성결계를 이용해 좀비를 족히 2천 마리는 태웠고, 억지 승부수로 둘라한과 해골기사들까지 거의 다 썰어 넘겼는데, 대체 뭘 더 하라고?
설마 성자 아벨이 죽은 걸로 결말 은 정해졌던 건가? 이렇게 언데드 군세에 파묻혀 끝나는 게 나의 예정 된 운명이었다고?
“개 같네, 진짜……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아직 최후 의 몸부림이 남았다.
좀비들을 지휘할 수 있는 개체인 둘라한과 밴시를 모두 없앤 뒤 어떻 게든 막벽을 틀어막거나 도망쳐야 한다.
용병과 병사들은 대부분 죽겠지만, 나와 동료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그 렇게 해야 한다…….
“끄으으으!”
그때, 좀처럼 들어보지 못한 음성 이 귓가를 울렸다.
“……우테콰이?”
“ 으음-”
얼른 돌아보니 어깨에 양날도끼를 박은 우테콰이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신음하고 있었다. 도끼날은 심장 에 닿았을지 안 닿았을지 헷갈릴 만 큼 깊이 들어간 채였다.
이제 우테콰이 앞에 남은 둘라한은 하나뿐이었으나, 함부로 움직였다간 심장이 터질 터였다.
“이런 미친,”
난 얼른 놈에게 달려가려 했으나, 해골기사들이 앞을 막아섰다. ‘망자 의 십자궁’을 든 해골기사도 기다렸 다는 듯 나를 향해 쇠뇌살을 쏘았 다.
“큭!”
턱을 젖혀 가까스로 뼈화살을 피한 뒤, 샛별을 크게 휘둘렀다. 금방이라 도 덤벼들 듯 기세를 돋우던 해골기 사들이 한 걸음 물러섰다.
까드득.
놈들의 몸짓에서 시간을 끌려는 의 도가 훤히 보여서 절로 이가 갈린 다.
어쩔 수 없군.
아엘로포스를 이용해 둘라한을 기 습하는 것. 이게 내 마지막 수다.
두어 호흡 안에 둘라한을 처리하면 활로를 틀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 하면 해골기사들의 협공을 맞아 발 이 묶일 거다. 그럼 저 끝도 없는 좀비 군세에 파묻히고 말 테고.
“후우.”
마지막으로 숨을 가다듬는데…….
어째 시야 한쪽이 간지럽다.
나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수도원으로 들어오 는 두 갈래 길 중 오른쪽에서, 태양 이 떠오르고 있었다.
“……어어?”
순간적인 인지부조화에 머리가 어 지럽다.
“해가, 뜬다고?”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아직 겨울 이라 아침 7시는 되야 해가 뜨는데, 이 한밤중에 왜?
게다가…… 저긴 서쪽인데? 그 순간, 저 멀리 태양에서 광선 한 줄기가 뻗어 나와 밴시를 비추었 다.
끼이이에에엑-!
이번에 놈이 내지른 비명은 사악한 기운이 담긴 술수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공포를 느끼며 내지른, 소멸 을 앞둔 자의 단말마였다.
으어어어—!
저 멀리서부터, 얼어붙은 시체들은 힘없는 외침을 남기고 빛에 삼켜졌 다. 말간 태양이 어둠을 살라 먹으 며 떠올랐다.
아니, 이리로 달려오고 있었다.
열댓 기의 기수가 태양을 몰아 이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다.
= = = = /
7″『’『〒/
각진 횡대로 가도를 채운 기수들 이, 하얀 빛을 뽐내며 암흑을 밀어 냈다.
내 시선은 자연스레 기수들의 중 앙, 선두에 꽂혔다.
“주께 영광을!”
우렁찬 목소리. 여성의 것이었다.
“저들에게는, 안식을!”
겔란어, 그러니까, 미테르게란트의 언어였다.
“그리고, 나에겐 오직 명예만을!”
난 그 순간 저들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칼단다리 교단의 성기사 들, 그리고, ‘기름 부음 받은 자’.
째
태양이 또 한 번 광선을 내뿜었다. 성기사들의 대열로부터 수도원의 입 구까지의 너른 길, 그 안의 망자들 이 모조리 불타 흩어졌다.
난 그 신성한 불길 안에 멍하니 서 있었다. 불길은 날 태우기는커녕 자잘한 생채기마저 앗아가고 있었 다.
저편에 무릎을 꿇고 있던 우테콰이 역시 ‘끄응’ 소리를 내며 도끼를 뽑 았는데, 피가 몇 방울 흐르기도 전 에 상처가 아물었다.
한편 내 손 안의 샛별은 점차 빛 을 잃어갔다. 주변의 악이 일소되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한편으론 그 장 검의 이름대로 태양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 것 같았다.
멍청히 샛별을 내려다보는 동안, 파도를 이루던 언데드의 군세는 녹 아내리거나 흩어졌다.
밴시는 물론이고 우테콰이의 목을 노리던 둘라한 역시 태양에 잡아먹 힌 탓이다.
따각따각.
어느새 속도를 늦춘 성기사들 사이 에서, 선두에 서 있던 이가 고삐를 채며 다가왔다.
“ 그대는?”
영롱하고 뚜렷한 목소리.
기창(W槍)의 끄트머리에 ‘신성태 양’을 두른 성기사가 어느새 5, 6미 터쯤 앞까지 다가와 나를 내려다보 고 있었다.
혹시 치료가 필요한가?”
“아니, 아닙니다.”
난 흠칫 놀라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전, 포이닉스라고 합니다.”
“과연.”
짧은 음성에 웃음기가 서렸다. 그 녀는 고삐를 채쳐 내게 조금 더 다 가왔다.
“외숙께 들은 대로 헌앙한 기사로 구나.”
십자문양이 새겨진 풀헬름이 벗겨 지고, 그녀가 띄운 태양을 닮은 연 한 금발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실질적으로나 은유적으로나 빛이 나는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난 가만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를 아는가?”
“예.”
난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깜빡이다 가 다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새 빛에 적응했는지, 그녀의 얼굴이 조 금 더 또렷하게 보였다.
“칼란다리 교단의 성기사이신, 테 오도라 공녀님이십니다.”
정답이라는 듯 온화한 미소를 짓는 테오도라 공녀는, 모니터 너머로 보 았던 것보다 수십 배쯤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