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91)
나의 악당들 291화
53. 한밤의 태양(10)
세테니오라 수도원의 문루 위에서, 포이닉스가 고함을 내질렀다.
“밀어내—!”
그의 고함에 용병과 병사들이 이를 악물고 무기를 휘둘렀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언데드들은 끝도 없이 성곽을 기어올랐다.
“여기, 지원이 더 필요합니다!”
“그딴 거 없으니 너희끼리 밀어붙 여! 그깟 좀비 새끼들한테 겁먹지 말고!”
포이닉스가 선 문루 왼편, 앞으로 툭 돌출된 능보(穆bastion)는 이 미 좀비들에게 점령된 상태였다.
병사들이 몸으로 틀어막고 있었으 나, 하사관의 윽박에도 불구하고 방 어선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 로웠다.
“컨휘어!”
“예, 다녀오십시오!” 포이닉스는 곧장 ‘아엘로’ 하고 중 얼거리며 펑! 솟아올랐다. 그렇게 복잡한 성벽 위를 단숨에 가로질러 좀비들이 우글대는 능보에 떨어졌 다.
“뒤, 져라!”
서리가 낀 시체들 사이에서, 포이 닉스는 두 자루 장검을 마구 휘두르 며 무인지경으로 날뛰었다.
오른손의 샛별은 칼날을 횃불보다 도 밝게 빛내며 사악한 기운을 불살 랐다. 왼손의 검은 얼음은 장창만큼 길어진 채 원을 그리며 사방을 휩쓸 었다.
희고 검은 두 자루 검이 번뜩일 때마다 적으면 두엇에서 많으면 열 구도 넘는 좀비들이 바닥을 나뒹굴 거나 성곽 밖으로 추락했다.
사지가 잘리고, 몸통이 녹아내리고, 머리통이 날아간 채였다.
“이런 젠장-”
그러나 지금 밀려드는 언데드 군세 에 비하면 포이닉스가 처치하는 좀 비들은 한 줌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아무리 동분서주 애를 써도 좀비들이 막벽 위로 올라오는 것을 완전히 틀어막을 수는 없었다.
쐐애액-
등골이 오싹하는 파공성에, 포이닉 스는 얼른 몸을 젖혔다. 그 순간 길 쭉한 뼈화살이 찌이익, 옆머리를 긁 고 지나갔다.
“저 개 같은 새끼,”
흘러내리는 피를 수습하며, 그가 살벌한 눈빛으로 노려본 건 저 멀리 좀비들 사이에서 쇠뇌살을 재고 있 는 해골기사였다.
놈은 리벳이 빼곡하게 박힌 천갑옷 을 입고 널찍한 스카프를 두건처럼 둘렀으며, 창백한 연기가 흐르는 백 색의 중쇠뇌를 재장전하고 있었다.
포이닉스는 김승수로서의 기억을 더듬어 그 쇠뇌가 ‘망자의 십자궁’ 이라는 이름을 가진 진귀한 물건임 을 알아챘다.
“에손, 투창!”
“여깄습니다!”
폴해머를 휘둘러 막 흉벽을 타넘던 좀비의 머리를 부순 에손은, 투창이 담긴 가죽집을 발끝으로 걷어찼다.
쭉 미끄러져 오는 가죽집을 발로 밟으며, 포이닉스는 혈기를 끌어올 렸다. 검은 얼음에 맺힌 길고 날카 로운 고드름이 산산이 박살 났다.
수십 조각으로 깨진 검붉은 얼음 파편들은 성곽 아래로 흩어지기 직 전, 카앙/ 날카로운 굉음을 내며 한 꺼번에 폭발했다.
그어어어—
혈편의 폭풍에 전신을 난도질당한 시체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그 틈을 타 포이닉스는 검은 얼음 을 칼집에 집어넣고 샛별을 왼손으 로 옮겨 쥐었다. 동시에 가죽집에서 비죽 튀어나온 투창 하나를 발끝으 로 차올렸다.
쐐액!
직후, 시뻘건 불빛이 아른거리는 전장에 까만 실선이 그어졌다. 포이 닉스가 던진 투창이 벼락처럼 날아 가 쇠뇌를 든 해골기사의 복부에 정 확히 틀어박힌 것이다.
콰직!
경쾌한 소리에 이어 쇠뇌를 든 해 골기사가 형편없이 땅을 나뒹굴었 다. 그러나 포이닉스는 ‘아으씨’ 신 음을 흘리며 인상을 구겼다.
“그우으.”
그 신음에 답하듯, 휘황한 장비를 두른 언데드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는 듯 몸을 일으켰다.
갑옷에 투창이 박혀 대롱거리긴 했 으나 내장은커녕 거죽도 없는 놈이 니 사실상 타격은 없는 것이나 마찬 가지였다. 머리가 날아가거나 허리 가 끊어지지 않는 이상 놈은 끝없이 일어나 화살을 쏘아댈 터였다.
이를 간 포이닉스가 재차 투창을 던졌다. 그러자 이번엔 무기 없이 묵직한 방패만 든 해골기사가 제 동 료 앞으로 나섰다. 투창은 화강암을 깎아 만든 것 같은 육중한 방패에 불똥만 남긴 채 튕겨 나갔다.
‘망자의 십자궁’을 장전하는 놈 옆 에서 하얀 목궁을 쥔 해골기사가 빈 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분명 비어 있던 시위에 바람이 휘몰아치더니 하얗게 빛나는 화살이 돋아나는 것 이었다.
진귀한 마법의 장궁인 ‘보레아쿰’ 이 향하는 곳을 확인한 포이닉스는 대경실색하여 빽 고함을 질렀다.
“사제님을 지켜!”
그가 말한 ‘사제님’이란 막벽 중앙, 문루 위에 선 늙은 수도사제를 이르 는 것이었다. 목이 쉬었음에도 여전 히 우렁찬 음성으로 기도를 읊조리 는 노인 앞으로, 베테랑 컨휘어가 몸을 날렸다.
쾅/
그가 내민 마법 방패의 강철 뿔이 번쩍 빛났다.
마법을 튕겨내는 힘이 보레아쿰이 쏘아낸 빛의 화살을 밀어낸 덕에, 컨휘어는 쉽사리 충격을 견뎌낼 수 있었다.
“암흑의 세력은 주의 발아래 무릎 을 꿇으라! 모든 것을 밝히는 빛이 너희를 섬멸하리니, 감히 그분의 백 성을 해치지 못할 것이다!”
제 목숨이 위험했다는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지, 늙은 수도사제는 계속 해서 성난 목소리로 고함을 질러댔 다.
그의 등 뒤로 솟은 몸통만 한 광 륜이 하얀빛을 뿜었다.
끼이이이이-!
막벽 위를 선회하던 밴시와 구울, 망령 따위가 신성력에 짜그라지더니 비명을 내지르며 물러섰다.
신성결계를 갉아대던 언데드 비행 체들은 대부분 성당으로 날아갔으나 일부는 성벽 위로 날아왔다.
덕분에 포이닉스가 이끄는 수비대 는 정면의 좀비들을 막아서는 동시 에 정수리와 뒤통수를 간지럽히는 비행체들도 견제해야 했다.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데다 형체도 없는 유령들을 상대하는 건 보통 어 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늙은 수도사제는 수양이 깊어 그들을 쉽사리 퇴치할 수 있었으나, 좀비들이 내뿜는 ‘부패의 안개’를 정화하느라 신경을 쓸 틈이 없는듯 했다.
포이닉스와 우테콰이는 정면에서 쏟아지는 좀비들을 막아내는 동시에 기회를 노리는 해골기사와 둘라한들 을 견제해야 했다.
그리하여, 언데드 비행체를 처리하 는 건 한 사람의 전담이 되었다.
타닥.
궁수들이 칼과 창을 들고 방어선에 합류한 탓에 텅 비어버린 망루 위에 서, 검은 인영 하나가 솟구쳐올랐다. 수도사제의 치료와 포이닉스의 간호 로 컨디션을 회복한 뭉치였다.
높은 망루 위에서 뛰어오른 덕에, 뭉치는 횃불이 환한 지상과 먹구름 으로 흐린 밤하늘 사이를 잠시간 유 영했다. 그리고 허공에서 몸을 비틀 며 제 팔만 한 길이의 짧은 칼, ‘운 검’을 휘둘렀다.
끼약!
밴시 하나가 밤하늘에 그어진 은빛 궤적에 걸리더니 파스스- 모래처럼 흩어졌다.
뭉치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제 발등을 밟고 한 번 더 뛰어오르는 ‘상천제(上天桶)’의 수법 으로 제비처럼 쏘아져 나가며 재차 운검을 휘둘렀다. 푸른 기광을 머금 은 은빛 칼날은 어김없이 밴시를 소 멸시 켰다.
두 번째 밴시를 베어낸 시점에서, 뭉치는 막벽 바깥의 허공에 떠 있었 다.
뭉치가 짧은 순간 선보인 동방의 경공술은 진기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런 그녀라도 허공을 나는 건 불가 능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디디 는 건 전설로나 전해지는 경지였던 탓이다.
휘릭.
그러므로, 뭉치는 허공을 밟는 대 신 몸을 비틀어 왼팔을 내뻗었다. 동시에 무언가 쏘아지더니 망루의 울타리에 꽂혔다. 밧줄이 달린 쇠뇌 살이었다.
“훗!”
밧줄을 거머쥔 뭉치는 멋들어진 반 원을 그리더니 막벽 위에 착지했다. 그와 동시에 잽싸게 운검을 휘둘러 그녀에게 덤벼드는 좀비 셋의 목을 날려버렸다.
“어으씨, 뭐야?”
“우, 우워어.”
멍청한 감탄사를 흘리는 병사들을 무시하며, 뭉치는 뻐근한 손아귀를 쥐었다 펴며 신음을 삼켰다. 그간 근력이 꽤 강해졌다고는 하나 목뼈 셋을 연달아 끊어내는 건 여전히 어 려운 일이었다.
끼 야아 아아아 아악—!
뭉치의 활약 덕에 전장에 남은 밴 시는 단 하나뿐이었다. 제 동료들의 소멸을 지켜본 놈은 막벽 근처엔 얼 씬도 하지 않고 좀비들의 머리 위에 서 비명만 질러댔다.
그리고 그 비명에 담긴 사악한 의 지에 반응하여, 막벽 아래에 흩어진 좀비들의 잔해가 모여들기 시작했 다. 꿈틀대며 모여든 살점과 뼈는 서리와 썩은 피를 접착제 삼아 저들 끼리 뭉쳐갔다.
간혹 포이닉스의 장검, ‘샛별’이 정 화한 시체를 삼키고 치이익 연기를 내며 그에 맞닿은 살점이 녹아내리 기도 했으나, 그건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꿈틀거리는 살점 더미는 순식간에 막벽과 비슷한 높이로 솟구쳐올랐 다. 묘하게 인간의 형상을 닮은 살 점 덩어리를 보고 병사들은 경악하 여 비명을 내질렀다.
“으, 으어, 흉물이다-악!”
“불! 횃불을 던져야 해!”
“아니, 잠깐! 기름부터 끼얹어!”
겁먹은 병사들 사이에서, 불탄 도 넬이 악을 쓰며 기름이 담긴 항아리 를 던졌다. 몇몇 용병과 병사들이 그를 따라서 막벽 한쪽에 모아둔 기 름 항아리를 쏟아붓고 횃불을 집어 던졌다.
꾸워어어어억!
불길은 금세 맹렬히 타올랐고, 살 점은 빠르게 녹아내렸다. 불이 붙은 흉물은 전신에 붙은 수백 개의 아가 리를 통해 비명을 질러댔다.
허공에서 사기를 투사하여 홍물을 빚어내던 밴시는 막벽 아래 쌓인 시 체는 물론이고 멀쩡히 움직이는 좀 비들까지 끌어다 놈을 수복시켰다. 시체에 딸려온 눈과 서리가 화염을 덮었다. 전장에 퍼져 있던 사악한 기운에 힘입어, 흉물은 더욱 빠르게 몸집을 키워갔다.
끄우우-
8미터도 넘게 솟구친 흉물이 팔처 럼 늘어진 살점 덩어리를 내뻗었다. 막벽으로 향하는 그 육중한 손길에 병사들의 얼굴이 시퍼렇게 물들였 다.
“이런 씨, 피해!”
“온다-아악!”
콰앙!
수백 구의 시체가 뭉쳐 만들어진 홍물은 병사 열댓을 짓뭉개며 성곽 에 매달렸다. 그 충격에 막벽은 금 방이라도 무너질 듯 우르르 자갈과 돌조각을 쏟아냈다.
“음! 큰 사냥감이군.”
포이닉스 반대편에서 지옥불길채찍 을 휘두르던 우테콰이가 눈을 빛냈 다. 그것도 잠시, 그는 마력을 끌어 올려 회색 바람을 휘감은 채 몸을 날렸다.
“Shiko rec’ne(나를 보소서)!
쇠사슬 채찍이 흉물의 목에 휘감겼 다. 우테콰이는 전신 근육을 시뻘겋 게 부풀리며 쇠사슬을 당겼다. 성채 만큼 거대한 살점 덩어리가 기우뚱 앞으로 기울었다.
흉물이 균형을 잃자 우테콰이는 쇠 사슬 채찍을 움켜쥔 채 막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좀비 너덧을 깔아뭉개며 착지했다.
끄우욱
홍물은 막벽에 매달린 채 휘청댔 다. 이어서 목에 둘린 쇠사슬이 불 길을 뿜자 놈은 열기에 오그라들 듯 몸을 앞으로 수그렸다.
“그라아악!”
우렁찬 기합과 함께 우테콰이가 쇠 사슬 채찍을 잡아당겼다. 흉물은 마 치 뚱뚱한 탑이 기울어 무너지는 것 처럼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쿠우웅-
“으, 하-!”
흉물이 시체와 눈이 뒤섞인 진창에 몸을 뉘자 우테콰이는 비웃음을 흘 리며 도움닫기를 했다.
황소 같은 기세로 주변을 둘러싼 좀비들을 튕겨낸 뒤 훌쩍 도약하여 흉■물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소용돌 이치는 회색 바람을 오른발로 모아 흉물을 내리찍었다.
꽈르릉-!
대지를 뒤흔드는 발 구르기에 흉물 을 이루던 살점 덩어리가 맹렬히 터 져 나갔다.
단순히 뼈와 살점만 해체된 것이 아니라, 시체를 움직이게 하는 사악 한 기운이 산산이 흩어진 것이다.
막벽 밖으로 튀어나간 우테콰이가 신화 속 타이탄처럼 날뛰며 흉물을 제압했지만, 수도원의 위기는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