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379)
나의 악당들 379화
62. 기만전술(6)
“전하, 적군이 움직입니다!”
“드디어.”
주둔지를 걷고 본격적으로 공격을 해오는 걸까?
아니면, 소수의 병력으로 먼저 간 만 보려는 걸까?
내성의 성탑에 모인 영주와 기사, 장교, 마법사들은 갖가지 의문을 떠 올렸다. 이를 머리에만 담아두지 못 한 자들이 입을 열었고, 회의장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모두 조용.”
울카르 왕자는 아니었다. 그는 테 이블을 박차고 일어나 즉시 전투태 세를 갖출 것을 명하며, 기사와 마 법사들을 돌아보았다.
“중기병대를 준비시키시오. 전투마 법사들은 하늘을 감시할 인원을 제 외하고 전부 따라오시오.”
최고지휘관인 울카르가 몸소 나서 는 상황이었으나, 그를 막아서는 이 는 없었다. 전투를 앞두고 논쟁 따 위로 시간을 낭비하는 건 머저리 같 은 짓거리라는 걸 다들 아는 것이 다.
수십, 아니, 수백 번이나 벌인 모 의전 덕에 기사와 장교들은 제 개인 적인 의사나 견해 등을 접어두는 방 법을 터득했다. 또한, 그들은 왕자의 전술적 성향이나 의사결정의 양식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의 손발이 되어 적과 싸울 준비가 끝난 것이다.
척후가 적의 움직임을 보고한 지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오백여 기 의 인마가 하이캐슬 서문을 뛰쳐나 갔다.
울카르는 투구를 쓰지 않았다.
덕분에 기병들의 선두에서 휘날리 는 긴 은발을, 하이캐슬의 수천 병 사들은 똑똑히 보았다.
‘거대한’ 안키르와 ‘화가’ 휠테르, ‘새매기사’ 지젤라, 그리고 내가 왕 자의 뒤를 따르는 것도.
우오오오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성벽에 올 라선 병사들이 고함을 터뜨렸다.
그 우레와 같은 소리가, 그 기세 가, 무기를 꼬나쥔 채 맹렬히 고삐 치는 기수들의 투지를 하늘 높이 밀 어 올렸다.
“아슬아슬하게, 구름 위로, 가W 걸음을.”
마스터 에포즈를 비롯한 마법사들 이 주문을 외웠다. 의지와 마나가 담긴 문장들은 발걸음을 가볍게 하 고, 근육에 힘을 더하고, 샛바람을 불렀다.
적진은 아직 한참 멀었기에 전력질 주는커녕 그 반의반도 안 되는 속도 로 달려가던 기병들은, 전투마법사 들의 주문에 힘입어 제법 신나는 박 자로 땅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적이다!”
녹은 땅을 북 삼아 이천여 개의 말발굽이 연주를 하는 와중에도, 안 키르 경의 목소리는 썩 또렷했다. 덩칫값을 하다못해 대단한 가성비를 자랑하는 성량이었다.
흐흐- 용병놈들입니다, 전하!”
숲을 빠져나와 하이캐슬을 향해 꾸 물꾸물 번져오는 군세는, 한눈에 봐 도 용병들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징집병이라기엔 무장이 괜찮았고, 가병이라기엔 복장이 제각각인데다 수도 너무 많았다. 아빌람버스 공작 이 고용했다는 용병 나부랭이들이 틀림없다.
다만 그 수가 꽤 많았다.
여전히 난 수백, 수천 병력을 단박 에 헤아리는 능력이 없었으므로 정 확한 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 군 기병들보다 훨씬 많은 건 분명했 다.
이 시점에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 의 기사와 기병장교들은 울카르가 내릴 명령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역시 그간의 모의전 및 훈련 덕분이 었다.
울카르가 왼팔에 달린 의수를 번쩍 치켜들었다. 활을 쥔 은빛 주먹은 머리 위에서 원을 그렸다.
모두가 예상한 수신호였기에, 기병 들은 즉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쏴! 쏘라고!”
“이 병신새끼들아, 자리 지켜!”
겔란어로 악을 쓰는 소리가 아련하 게 들려오고, 곧이어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쐐애애액-
기병대 사이에 섞인 전투마법사가 스물 가까이 되니, 주문으로 그 화 살비를 걷어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 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 마나가 아까웠다. 애 초에 기수와 말이 나란히 무거운 쇳 덩이를 두른 건 지금과 같은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까가강, 카앙!
화살이 갑주와 마갑을 연신 두드리 며 요란한 쇳소리를 내었다.
깨진 화살촉이나 부러진 활대 따위 가 시야를 어지럽혔지만 기병들은 묵묵히 고삐만 쳤다. 요란한 금속음 과 오싹한 비과음 사이로 드문드문
팍/ 하고 살 찢기는 소리가 들려왔 다.
뒤돌아보니 운 없이 눈구멍이나 관 절부 등 갑옷 틈에 화살을 맞은 이 들 몇이 허무하게 낙마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극히 소수였고, 나머지는 화살을 매단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을 달리고 있었다.
기병대의 진로는 적 용병들의 대형 과 평행선을 그리고 있었다. 거리는 사오십 미터 정도까지 좁혀진 뒤였 다.
흠.” 서로 얼굴이 보일 만큼 가까운 거 리. 얌전히 말만 달리기엔 손이 근 질거린다.
안장에서 투창을 뽑아 드는데, 울 카르가 한발 앞서 시위를 당겼다.
투두등!
그는 한 호흡에 화살 세 발을 쏘 아 용병 셋을 쓰러뜨렸다. 의수를 단 뒤로 활솜씨가 줄었다고 엄살을 부리더니, 개소리였던 게 분명하다.
그게 신호였다.
검창궁기를 기본기로 여기는 기사 들은 달리는 말 위에서도 자유자재 로 화살을 날렸다. 울카르만큼 정확 한 속사를 구사하는 자는 없었으나, 너덧 발을 날려 하나도 못 맞출 만 큼 형편없는 자도 없었다.
난 투창을 꼬나 쥔 채 기감을 끌 어올렸다.
혈조술이 제공한 시야 속, 부글거 리며 맥동하는 핏덩어리들 사이로 마력을 움직이는 놈이 보였다. 난 그리로 창을 던졌다.
“께륵-”
수인을 짚고 무어라 중얼대던 여자 가 두꺼비 같은 소리를 내며 모로 나자빠졌다. 내 예상대로 마법사였 는지, 주변 용병들은 대경하여 쓰러 진여인을 살폈다.
사실 지금 정도의 거리면 마법사의 공격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공격 주문을 수십 미터씩 날려 보내는 건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기예에 속하니 까. 용병질이나 하는 마법사가 그렇 게 수준이 높을 리가 없지.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난 마법 사들만 노리고 투창을 던졌다. 적진 에 진입했을 때 변수가 될 수도 있 고, 어중이떠중이들보단 경험치를 많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투창을 네 개째 던졌을 무렵, 드디 어 울카르가 고함을 질렀다.
“돌격!”
열일곱 살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전 투를 승리로 이끌며 전쟁의 고인물 로 거듭난 왕자는, 말을 달리며 화 살을 날리는 와중에도 용병 대열의 균열을 포착했다.
그는 곧장 말머리를 돌리며 화살 두 발을 날렸다. 기병대의 기세에 눌려 뒷걸음질 치던 두 방패병의 머 리에 푸른 깃대가 돋아났다.
왕자와 말머리를 같이한 채 잠시 긴가민가하던 나는, 한 쌍의 푸른 깃대를 보며 칼을 뽑아 들었다.
이제 내 시간이다.
“이랴, 가자!”
거칠게 박차를 가하자, 바이콘은 더 거칠게 투레질하며 앞으로 쏘아 져 나갔다.
급작스러운 가속에 기병들로부터 툭 돌출되었지만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선봉의 임무는 적을 들이받 는 거지, 아군을 돌보는 게 아니니 까.
보드랍게 녹은 땅을 박차며 전력으 로 내달리기를 몇 초.
“으, 으어억!”
“X발, 비켜!”
거대한 마수의 돌진에 혼비백산한 용병들을 단숨에 파고들었다.
‘검은 얼음’에서 2미터도 넘게 돋 아난 검붉은 칼날이 사방을 휩쓸었 다. 인간이었던 살덩이들이 이리저 리 동강 난 채 하늘로 치솟거나 바 닥을 나뒹굴었다.
“후우.”
아군 기병대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는 이미 내 관심 밖이었다. 나는 칼 을 휘두르며 오직 앞으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막아, 막아!”
“무너지면 끝장이야!” 빽빽 고함을 지르는 놈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적진에 뛰어들어 날뛰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목 소리를 향해 투창을 던질 수 있으니 말이다.
크흥!
벌써 온몸을 흠뻑 적신 바이콘은 내가 통제하기 어려울 만큼 흥분한 상태였다.
제멋대로 달려 나가 도망치는 용병 의 등을 뿔로 꿰뚫고, 그 옆 놈을 짓밟더니 머리통을 통째로 씹어먹었 다. 검고, 희고, 푸르고, 붉은 무언 가를 아가리에 잔뜩 묻힌 바이콘의 모습에 기세 좋게 덤벼들던 용병들 중 몇몇이 허리를 접고 속을 게워냈 다. 당황한 고참 용병이 그들을 윽 박질렀다.
“흐,”
손을 가볍게 휘둘러 칼끝으로 그의 목젖을 가르고, 막 뽑아 든 투창으 로 바이콘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크르 릉/
“얌전히 굴어. 뿔 하나 뽑아서 유 니콘으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내 말을 알아들은 걸까? 허벅지를 조이며 허리를 뒤트니, 바이콘은 콧 김을 쉭쉭 뿜으면서도 얌전히 머리 를 돌렸다.
쾅!
무심히 뻗은 손길에, 피로 홍건한 바닥을 밟으며 달려들던 용병 예닐 곱이 산산이 비산했다.
“o〒o o 흐 ” — —–이 –—•
“아, 안 되겠어.”
진한 비린내 사이로 얼핏 지린내가 섞이고, 악에 받친 욕지거리 사이로 신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흐.”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웃음을 숨기고자 랭볼 트 경이나 안키르 경이 종종 하던 걸 따라 해보았다.
“여기, 은왕자의 적기사가, 왔다!”
썩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단어 사 이로 참아내지 못한 웃음기가 섞인 탓이다.
내 우스꽝스러운 자기소개에도 불 구하고, 아빌람버스 공작의 용병들 은 충분히 만족할만한 반응을 보여 주었다.
“물러나- 후퇴, 후퇴다!”
“이런 제길, 누구 마음대로 후퇴라 는 것이냐!”
“도망쳐!”
찐득한 진창을 나뒹굴고, 바닥을 긁어대고, 앞선 전우를 당기며, 용병 들은 사방으로 도망쳤다.
마치 짠 것처럼 수백 명의 사람들 이 동시에 뒤돌아 달리는 장면은 썩 재미있는 것이었다.
난 뱃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소리를 마음껏 터뜨리며 박차를 가 했다.
그리고 슬슬 적보다 아군 기병들이 주변에 더 많이 보일 즈음.
용병 대열은 완전히 두 동강 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