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446)
나의 악당들 446화
66. 은왕자(1)
쨍!
말간 해가 어둠을 사르며 떠오른 다. 아수라장을 열어 춤추던 자들은 북쪽에서 뻗어온 하얀 광선에 눈살 을 찌푸리고 팔을 쳐든다.
난 새벽에 솟은 태양 속에서 희미 한 그림자를 보았다. 큰 물결이 허 연 햇빛을 후광처럼 두르고 미끄러 져 내려온다…….
“저게 무슨-”
“경계! 대열을 갖추고 경계하라!”
둥둥, 두둥둥.’
선제후들의 군대에서 북소리가 터 져 나왔다. 그러자 오천에 이르는 군대에서 한 덩어리가 질서정연하게 떨어져 나와서는 북쪽을 향해 방진 을 짜는 것이었다.
쏴아아아-
뜬금없이 떠오른 태양에 정화되기 라도 한 듯, 투명한 바닥을 내보인 수면이 거친 포말에 뒤덮였다. 시나 브로 굵어진 물줄기가 마침내 강가 로 넘쳐흐른다. 방금까지만 해도 맨 땅을 딛고 있던 병사들은 신코를 적 시는 강물에 혼란스러워하는 눈치 다.
“……물러서. 물러서라, 천천히!”
바이콘을 몰아 접근해 오는 적들을 들이치는 동시에 아군을 향해 빽 고 함을 질렀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듯, 도하해 오는 적에 맞서 강기슭을 지키던 병사들은 연신 뒷 걸음질을 친다.
“엇, 어어-”
“빨리 움직여! 앞으로 가!”
“젠장, 밀지 마!”
끽해야 허벅지 어림에서 찰랑대던 강물이 어느새 허리 위까지 불어났 다. 한창 강을 건너던 제국군 병사 들이 허둥대기 시작했다.
“요란 떨지 마라!”
“물에 발을 들인 자는 계속 전진! 나머지는 대기!”
노예군단의 지휘관과 스트롬 가문 의 하사관들이 호통을 치는 사이 강 물은 점점 더 빠르게 불어났다. 조 급한 걸음으로 철벅대던 병사들 중 몇몇이 강해진 유속에 비틀거리거나 넘어졌고, 급기야 비교적 하류에 있 는 병사들 중에서는 균형을 잃고 떠 내려가는 경우까지 생겼다.
“밀어붙여! 더 빨리!”
“돌격, 돌격하라!”
뒷줄의 병사들이 헤엄까지 쳐가며 빠져나오고서야 모든 제국군이 강을 벗어났다. 그러고도 강물은 계속해 서 불어났고, 마침내 창백한 태양을 등진 큰 물결이 전장을 덮쳐왔다.
“후나피!”
“사령관님, 저기-”
“그래.”
정신없이 물러서다 한데 뭉치게 된 아군 병사들을 돌아보며, 나는 씩 미소를 지었다.
“지원군이야. 지원군이 왔다!”
내 고함이 끝나기 무섭게 북쪽으로 부터 지극히 비현실적인 풍경이 밀 려든다.
콰아아아!
숲속을 흘러 회랑지대의 강으로 합 류하는 시냇물은 몇 시간 전보다 족 히 너덧 배는 굵어진 채였다. 그 위 로 미끄러지는 커다란 물결은 일단 의 함선을 등에 이고 있었다.
그래, 배다.
거센 물결을 탄 배가, 한 척도 아 니고 무려 여덟 척이나 수풀 사이에 서 튀어나온 것이다.
한 쌍의 사각돛과 줄지은 노를 갖 춘 배들은, 대양을 가르는 범선들만 못해도 충분히 덩치가 컸다. 또한 하나같이 두 돛의 끄트머리에 두 가 지 깃발을 매단 모습이다.
뒤쪽 돛에 달린 깃발에는 곧은 창 과 매가 교차하는 그림이 수놓아져 있었다.
나는 문장에 대한 지식이 얕다 못 해 없다시피 하다. 그러나 저 문장 은 하이캐슬에서 모의전을 벌일 때 몇 번 본 적이 있다. 액소드브룩과 함께 왕국의 서쪽 경계를 지키는 변 경백의 가문, ‘드리시르’의 문장이 다.
그리고, 앞쪽의 돛에 달린 깃발은 나는 물론이고 아군 모두에게 아주 친숙한 것이었다.
은색의 갈기를 휘날리며 포효하는 사자. 울카르 왕자의 문장이었다.
“우와아아아악!”
고작 마흔 명쯤 남아 내 주변에서 턱을 덜덜거리던 항병들도, 피투성 이가 된 채 숨을 고르던 얼쇼어의 바다사나이들도, 끝끝내 도망치기를 거부한 어린 나가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밀그레스터의 정예들도, 비틀대며 일어나는 우두머리를 따라 전의를 다지던 누데인족 전사들도. 은빛 사자를 발견하자마자 목이 터 져라 함성을 지른다.
쩌엉-
함성에 답하듯 상서로운 백광이 기 세를 더했다.
이제 보니 ‘신성태양’이 광선을 뿜 어대고 있는 건 함대의 최후미였다. 선두의 배에는 그보다 못해도 나름 존재감을 뽐내는 하얀 불꽃이 피어 올랐다.
“으, 하하하-!”
우렁차게 웃고 있는 사내는, 다름 아닌 안키르 경이었다.
거대한 기사는 펄떡거리는 선수에 아슬아슬하게 서서는 광명교의 3대 성인 중 하나인 ‘흰 목동’의 정강이 뼈를 치켜들고 있었다.
“Visandrin, aiunde geos- ”
마력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울려 퍼져 돌아보니, 선두 함선의 선교에 올라선 마법사가 지팡이를 치켜든 채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울카르 왕자의 심복 마법사, 마스 터 리몬드다.
그의 지팡이에서 시작된 시퍼런 기 류 끝에는 벌거벗은 사내의 형상을
한 물의 정령이 선박들을 받친 물결 을 이끌고 있었다.
쏴아아!
강물이 거칠게 휘는 지점에서, 정 령계에서 온 청년은 물거품을 모아 일곱 마리 백마를 빚어냈다. 그가 선두의 배를, 일곱 백마가 나머지 함선을 잡아끌었다. 몰아쳐 파도가 된 강물이 강기슭에 산산이 부서졌 지만 함대는 부드럽게 강굽이를 넘 어섰다.
그러나 마스터 리몬드도 여덟 척의 선박을 온전히 지탱하기는 역부족이 라, 함대는 바윗돌이나 강가에 부대 끼며 뱃전에서 나무 파편을 흩뿌려 댔다.
“강가에서 물러서!”
“궁수, 전원 사격 준비!”
갑자기 나타난 함대에 제국군 장교 들이 급히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궁수 대신 엘렌을 견제하던 파괴술 사들이 공격을 퍼부었다.
진즉 대비했다는 듯, 함선에 타고 있던 마법사들도 곧장 방어 주문을 펼쳤다.
꾸르릉!
강물을 흠뻑 머금은 개흙 더미에서 거대한 촉수가 여섯 개나 솟아났다. 흰 빛기둥과 자줏빛 구체 등이 진흙 촉수와 부닥쳤다.
꽈광!
폭음과 함께 진흙의 비가 쏟아졌 다. 그에 가려 허연 빛이 깜빡거리 는 사이 드디어 함대가 전장의 코앞 까지 다가왔다.
쿠구궁!
나무 파편이 비산했다.
강굽이를 넘느라 속도가 한껏 더뎌 졌으나 우당탕 구르듯 밀려오는 함 대의 기세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거기에 충격력까지 보탤 셈일까, 선 두 함선의 선교에 우뚝 서 있던 거 인이 가슴을 부풀렸다.
“포이닉스-!”
팽팽하던 사각돛이 돌연 뒤로 부풀 었다. 천지를 뒤집는 듯한 포효에 충격파가 터지는 것만 같았다.
“Hatanka’a으, su—ray!”
‘대전사가 왔다’하고 외치는 그 반 가운 목소리에 나는 웃음을 터뜨리 고 말았다.
너른 가슴팍에 못 보던 문신-호랑 이와 곰을 형상화한, ‘맹수의 혼령 문신’이다-을 새긴 우테콰이는, 갑 판을 박차며 높이 뛰어올랐다.
쿠웅!
“억, 어어!”
“으아, 우웨에엑-!”
배가 뒤집힐 듯 크게 출렁거렸다.
전투를 앞두고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던 병사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하 필 거인 근처에서 주문을 외던 마스 터 리몬드는 그만 나자빠지고 말았 다. 가뜩이나 눈 밑이 퀭하던 리몬 드는 그대로 기절했고, 물의 정령 ‘비산드린’ 역시 물거품이 되어 사 라졌다.
“하하! 꽉 잡아라-!”
정령과 일곱 백마가 사라지자 함대 는 제멋대로 휘청거리다가 강기슭을 덮쳤다. 안키르 경은 뭐가 그리 홍 겨운지 횃불처럼 타오르는 성인의 정강이뼈를 마구 휘저었다.
“우오오오-”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관 심도 없는 듯, 회색 바람과 지옥불 을 휘감은 채 밤하늘을 가른 우테콰 이는 마치 유성처럼 추락했다. 놈은 범람한 강 너머, 이교도 노예군단 한가운데에 떨어지며 ‘발구름’을 펼 쳤다.
꽈앙!
지진이라도 난 듯 일대가 뒤흔들렸 다. 짓밟힌 꽃과 풀로 가득하던 땅 거죽이 뒤집히고 먼지구름이 일었 다. 둥글게 퍼지는 먼지구름을 따라, 이백 명도 넘는 노예병들이 엉덩방 아를 찧었다.
“알, 첸, 버, 그-!”
성난 고함에 이어 통나무 같은 종 아리에 휘감긴 느티나무 문신이 빛 을 뿜었다. 내 머리통만 한 근육이 꿈틀대더니 불길을 뿜는 쇠사슬이 사방을 훑었다. 반경 수십 미터가 그에 휩쓸렸고, 우테콰이는 말끔히 치워진 대지를 향해 달려 나갔다.
저 멀리 언뜻 보이는 제국군 수뇌 부에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잠시, 아군의 기적적인 분 투로 격퇴당했던 기병대가 우레거인 을 향해 고삐를 쳤다.
그동안 여덟 척의 함선이 강기슭 곳곳에 좌초- 아니, 정박했다.
쾅!
“우와악!”
근처 바위에 뱃머리를 박은 함선에 서 수십 명의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 다. 그들은 거의 구르듯 땅을 디디 더니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제국 군 병사들에게 곧장 들이닥쳤다.
“덤벼, 이 쥐좆만 한 새끼들아!”
선박에서 쏟아진 병사들 중 선두로 뛰쳐나온, 검붉게 옻칠한 갑옷의 전 사가 걸쭉한 욕설을 내질렀다.
……와. 쌍욕이 이렇게 반가울 수 도 있나.
“저 목소리-”
“프리츠? 프리츠 같은데?”
내 곁을 지키고 선 스티드먼과 미 라가 중얼거리는 사이, 말총머리 프 리츠는 도리깨를 벼락같이 휘둘렀 다. 어느 장교와 그의 호위병 넷을 순식간에 쓰러뜨리고, 제 앞을 막아 선 방진을 향해 자루가 짧은 도끼를 내던졌다.
쫘자작!
“끄르륵-”
두꺼운 천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도끼날이 ‘전격’을 뿜었고, 기 세를 몰아 작은 부대 하나를 완전히 허물어뜨린 프리츠는, 날카로운 돌 기가 여럿 솟은 쇠장갑을 치켜들고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돌, 격!” 낯익은 얼굴들이 줄줄이 뒤를 이었 다.
질 좋은 판금갑주에 푸른 날의 도 끼를 쥔 데르비쉬, 마찬가지로 판금 갑주를 입고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글레이브를 휘두르는 에손, 어지간 한 양손검보다도 긴 칼을 회초리처 럼 다루는 움베르타, 쇠투구를 썼음 에도 얽은 화상자국이 선명한 도넬, 쇠몽둥이로 중무장한 적병의 머리를 수박처럼 깨뜨리는 골만, 눈 아래를 가리는 면갑을 썼지만 착 가라앉은 눈빛까지 숨기지는 못한 딜런, 팔꿈 치까지 덮는 길쭉한 쇠장갑을 차고 무식하게 생긴 막도를 휘두르는 타
가트……. 절묘하게도, 근처에 대가리를 박고 멈춰선 함선은 내 친병과 용병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일흔이 조금 넘는 부하들은 강가에 산재해 있던 적병들을 눈 깜짝할 새 격파하고 내 쪽으로 달려왔다.
“나리!”
혼란한 와중에 가장 먼저 내게 달 려온 것은, 내 사병들 사이에서 지 휘관 노릇을 해주는 베테랑 컨휘어 였다.
“컨휘어! 이게 도대체 어떻게…… 어?”
마법이 걸린 전쟁망치와 뿔이 솟은 방패로 무장한 컨휘어 옆에는 경갑 을 걸친 셰아가 따라붙었는데, 그녀 는 아주 낯익은 여인을 부축하고 있 었다.
“<가•니
활동적이면서도 맵시 있는 차림새 에 커다란 배낭을 멘 절세미녀는, 다름 아닌 헤일라였다.
“무슨 일이야? 얘 왜 이래. 다쳤 어?”
안 그래도 하얗던 얼굴이 흡사 백 지장처럼 창백했기에, 깜짝 놀란 난 바이콘에서 내려 헤일라를 넘겨받았 다.
“그게.”
‘영리한’ 셰아는 어색한 얼굴로 투 구 아래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조금 어지러우신 모양이에요.”
“어지러워, 왜?”
그에 대한 대답은, 셰아가 아니라 헤일라가 내놓았다.
“조금, 멀미가 나서.”
“••••••멀, 미‘?”
난 황당함에 말을 더듬고 말았다.
“아일란트 사람이 무슨 멀미야? 바
다도 건너왔으면서-”
“나도 잘, 몰,”
어이가 없어서 말하다 말고 비틀거 리며 입을 가리는 웬수를 내려다보 는데, 컨휘어가 급박한 어조로 보고 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