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525)
나의 악당들 525화
67. 아이스보발트의 영주(18)
컨휘어는 일단 인원 제한부터 확인 했다.
프로스하펜까지의 여정이야, 절반 이상이 내 영지에 걸쳐있고 나머지 인 앙스트 지방 역시 우호적인 땅이 므로 보는 눈을 신경쓸 필요성이 낮 은 편이었다.
반면 밀라놀 왕국으로 넘어간 뒤는 사정이 달랐다. 일행의 규모나 행색 이 너무 눈에 띄는 수준이라면 왕도 에 닿기도 전에 근왕파 귀족들, 그 리고 자카리스에게 우리의 소식이 들어갈 테니까.
“일단 모든 부대의 규모는 열 명 안팎으로. 많아도 스물은 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별개로 위장 신분도 준비해야겠고.”
“최대 이십……. 그 방침은 본대에 도 적용되는 겁니까?”
“당연하지.”
계엄령 같은 것이 선포된 상황도 아니니, 왕국의 지방 영주들이 영지 를 오가는 모든 행인들을 대상으로 검문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 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새 로 사업을 시작한 행상인 무리 노릇 을 하든 고용주를 찾아 떠도는 용병 단 노릇을 하든 위장 신분은 필요할 터였다.
“……그렇다면, 일단 본대는 경호 대로 구성하는 게 좋겠습니다.”
“어. 애초에 이런 일을 위해 키워 둔 놈들이니, 오랜만에 밥값을 해야 지.”
경호대는 이름 그대로 내 근접 호 위를 맡은 부대다.
다만 그러한 명목과는 달리 일상적 인 경호는 거의 수행하지 않는데, 적어도 이 아이스보발트 안에는 내 신변에 위협을 가할 의도나 능력을 지닌 자가 존재할 수 없었던 탓이 다.
내가 이들에게 기대하는 건 ‘특수 한 상황’에서 유의미한 무력을 발휘 하는 것이었다. 수천의 일반병사들 이 힘을 쓸 수 없는 전투에서, 뛰어 난 개인 기량을 바탕으로 제 몫을 해줄 수 있는 전력이라고 할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캠페인 진행을 위해 준비한 소수 정예였다.
앞으로 닥칠 캠페인들을 곱씹어본 바, 대군을 동원해 봐야 큰 소용은 없으리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천공의 고대도시인 제도(帝都)는 그 접근 수단을 고려했을 때 백 단 위 병력조차 올려보내기 어려울 터 였다. 지저(地底)도 별다를 것이 없 어서, 그 멀고 험한 원정길을 통해 대군을 이끌고 가자면 보급소요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아마 ‘방책’에 이르기도 전에 영지 살림이 파탄 나 겠지.
명계나 암흑계는 더 말할 것도 없 고……. 아니, 당장 왕도만 해도 마 찬가지 다.
전투여단에 속한 병력이 수천이라 한들, 저 멀리 왕도에 온전히 힘을 투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무거운 쇠뇌로 쏜 화살도 끝에 가서 는 비단 한 겹 뚫지 못하는 법.
이러한 사정, 그러니까, 공세종말점 을 극대화해야 하는 형편 때문에라 도 나는 소수의 정예를 공들여 육성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물이 바 로 경호대에 속한 열여덟 명이다.
“프리츠도 데려가시는 겁니까? 그 러면 주군의 흉내를 낼만 한 자가 없습니다.”
“아, 프리츠?”
칼날만 전쟁 당시, 나는 별동대를 이끌고 칼날만을 넘는 임무를 맡았 다. 그때 하이캐슬을 공략하던 두 선제후의 군대가 내 부재를 눈치채 지 못하도록 얕은 수작을 부렸다. 나와 체형이 가장 비슷한 프리츠에 게 적기사 행세를 시킨 것이었다.
후일 잡아들인 포로들에게서 알아 낸 바, 그 속임수는 고작 닷새째 간 파당했더랬다. 닷새라고 하니 금세 들킨 것 같긴 하지만, 달리 생각하 면 나흘 간은 속임수가 먹혔다는 뜻 이므로 영 헛수고는 아니었던 셈이 다.
“뭐, 괜찮아. 어차피 길어야 반년 짜리 부재니까. 소문이 돌기 시작할 무렵이면 왕도의 일은 다 마무리된 다음일걸?
“그래도 주군. 상대가 미심쩍어할 정황은 최대한 숨기는 편이 낫지 않 겠습니까. 왕도에 숨어드는 건 용의 아가리 속에 머리를 들이미는 것과 같습니다. 백번 조심해도 모자랄 일 입니다.”
컨휘어의 잔소리가 길어질 기미를 보이자, 나는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 그만. 됐어. 그쪽으로는 헤일 라한테 생각이 있다고 했으니 알아 서 할 거야.”
경호대의 주된 구성원은 ‘가시 돋 친’ 프리츠, ‘거인 사냥꾼’ 콜, ‘빡빡 이’ 스티드먼, ‘암표범’ 미라, ‘괴물 종자’ 골만 등 칼날만 전쟁 이전부 터 나를 따르던 친병들이었다.
나와 고락을 함께한 전우들인 동시 에, 그 대가로 큰 출세를 경험한 심 복들. 내 많은 부하들 중에서도 특 별히 믿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 외에도 셀-시드 류의 대표자 인 ‘발키리’ 틸로리아, 제국을 떠돌 아다니던 검호였으나 칼날만 전쟁 중 내 밑으로 들어오게 된 ‘겔리아 몬’, 뜬금없이 미라와 눈이 맞는 바 람에 아이스보발트에 정착하게 된 ‘노래하는 마도사’ 에포즈도 있었다.
이들은 부하라기보단 차라리 식객 에 가까웠으나, 나름 안전장치-아이 스보발트에 거주 중인 가족들-가 갖춰진 탓에 믿을 수 있는 존재들이 다.
이처럼 경호대는 하나하나가 개성 있는 자들이지만, 그 사이에서도 이 색적인 것이 한때 ‘청염의 마귀들’ 에 속했던 5인방이다. 이오피야의 도움으로 세뇌에서 풀려난 알첸버그 의 마법병단, 그중에서 특별히 발탁 된 녀석들.
알첸버그의 마법병들은 본래 반쪽 짜리 마법사로, 습득한 주문이라고 는 ‘화염구’나 ‘화살번개’, ‘돌풍’ 같 은 공격 주문 하나와 제 생명력을 불태워 마나를 보충하는 ‘연소’가 전부였다.
그러나 개중에도 나름 재능이 있는 자들이 있어서, 마스터 에포즈나 마 스터 하그니 등 수준 높은 마법사들 이 각자 몇 명씩을 제자로 들여 전 투마법사로 길러냈다.
그 재능있는 자들 가운데, 내가 다 시금 골라낸 다섯 명이 경호대에 속 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삼백 명 조 금 안 되는 청염의 마귀들 사이에서 고르고 고른 인재들이 경호대의 5인 방인 것이다.
전투마법사로서의 실력도 꽤 만족 스럽지만,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건 그들의 마음가짐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칼날만 전쟁 중 ‘차원 인장’을 활용해 사벨라드 방 백을 납치했더랬다. 그 과정에서 노 예들에 대한 구속력을 강탈했고, 그 들의 영혼에 새겨진 충성의 대상을 나로 바꾸었다.
이오피야는 오래간 공을 들여 영혼 의 낙인을 지워냈지만, 정신에는 여 전히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틀 림없었다. 5인방이 나에게 선택을 받았다는 통보를 받고 감격에 겨워 흘린 눈물이 그 증거였다.
게다가 강력한 공성 병기 정도로 취급받던 시절의 전투본능도 여전히 살아 있는 모양새였다.
제 삶을 불태워 적을 죽이는 짓거 리를 밥 먹듯이 하던 경험 덕일까, 전투에서의 저돌성이 일반적인 마법 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눈앞 에 짓쳐 드는 창칼을 두려워하는 법 이 없었고, 필요하다면 제 발밑에라 도 화염구를 내리꽂을 수 있는 녀석 들이다.
맹목적인 충성심과 제 목숨을 아끼 지 않는 저돌성의 절묘한 조화는, 내가 5인방에 대한 지원을 전혀 아 끼지 않는 이유였다.
“이 인원을 다 본대에 배치할 수는 없지. 너무 많아.”
이미 본대로 편성된 인원만 해도 나, 뭉치, 이오피야, 하그니, 시모스, 사이츠까지, 벌써 일곱이다.
여기에 경호대를 전부 더하면 스물 다섯인데, 역시 많은 수는 아니지만 군소 영주들에게서 경계심을 살 수 도 있는 규모다.
“왕국으로 넘어간 뒤에는 절반으로 나눠야겠군요. 남은 경호대는 가장 근거리에서 진행하는 분견대로 편성 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편성도를 손 으로 짚었다.
“일단 프리츠, 이 새낀 내가 데리 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겠고.”
“골만 녀석도 데리고 계셔야 몸이 편하시 겠죠.”
“어. ‘전도사’는 분견대로 빼. 안 그래도 몰래 돌아다니느라 짜증 날 텐데 설교까지 듣고 싶지는 않아.”
“신성력을 갖춘 인원이 하나는 있 어야 하지 않습니까? 테오도라 공녀 님께서는 동행하지 못하신다 들었습 니다.”
“됐어. 그놈 신성력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나름 성당기사 아닙니까.”
“짝퉁 성당기사지. 그리고 일행에 마법사가 몇인데 신성력이 아쉽겠 냐?”
“하긴, 알겠습니다. 그러면 기돈을 빼셨으니 대신 미텔먼을 데려가시 죠.”
“그래. 마법사는 많을수록 좋으니 까 에포즈도 넣고, 부부를 떨어뜨려 놓을 순 없으니 미라도 넣고.”
“틸로리아는 분견대로 돌리는 게 좋겠습니다. 기동력이 워낙 뛰어나 기도 하고, 엘렌 님께서 그다지 좋 아하시지 않을,”
“아니, 그건 안되지.”
“예? 어째서……
컨휘어의 의아한 표정에 나는 어깨 를 으쓱이며 답했다.
“걔 놀려 먹는 게 얼마나 재밌는 데. 그건 포기 못해.”
“••••••아, 예.”
“마귀 5인방 중에서는, 음, 이렇게 둘.”
“‘칼아인’, ‘엔글리우’. 그 둘이 가 장 쓸만하지요.”
“마지막으로, 중간중간 공주님에 대한 정보를 확인해야 하니까 셰아 까지.”
“시기가 절묘하군요.”
“뭐가?”
“셰아 말입니다. 엿새 전에 수련을 마무리한 것으로 압니다. 모르셨습 니까?”
“아, 그래? 벌써 일년이 지났어?”
나는 ‘영리한’ 셰아가 ‘코발 류’의 창시자, 그리몬스 코발의 제자가 되 었음을 떠올리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제국의 내로라하는 검의 달인이 왕국의 촌구석 폴빌 출신의
소녀를 정식 제자로 들이다니.
뭉치의 수하인 ‘가면 쓴 그림자’들 덕에 알아낸바 늙은 달인은 셰아에 게서 대단한 검재(劍才)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나 역시 셰아의 몸놀림 이나 칼놀림을 보고 꽤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게 나이 아흔 먹은 달인에게도 어필하 는 수준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더 랬다.
“대체 뭘 보고 그런 걸까. 나한테 ‘맹금의 비행’ 뺏겼다고 줄곧 은거 해 있던 그 쪼잔한 노인네가.”
“나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좋은 일이지.”
“정 의문스러우시다면 주군께서 직 접 확인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겁니 다.”
“그래, 뭐.”
내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자, 컨 휘어는 분견대 편성안을 제시했다.
“분견대는 총 450명, 24개 조로 편성하겠습니다.”
“뭘 그렇게 많이 보내?”
“왕도까지 들어가는 건 여덟 개 조 뿐이고, 나머지는 예비대로 왕도 주 변의 야지에서 대기할 예정입니다.” 컨휘어가 밀라놀 왕국, 개중에서도 왕도를 중심으로 한 지도에 24개의 말판을 올려 분견대들의 대기 장소 를 설명했다. 나는 가만히 귀를 기 울이다가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보급을 적어도 반년은 유지해야 하는데……. 450명 분의 보급을 이 먼 거리에서 어떻게 유지하냐.”
“초기 보급을 넉넉히 하고, 기회가 닿는 대로 보급대를 보낼 예정입니 다. 다만 보급대 운용이 쉬울 리 없 으니 현지에서 수매하는 것이 주가 될 예정입니다.”
“이걸 길면 반년까지도 유지해야 하는데……. 돈 엄청 깨지겠네.”
“여차하면 용병으로 위장한 분견대 는 실제로 의뢰를 수행하여 자금을 충당할,”
컨휘어가 괜히 헛소리를 하자 나는 슬쩍 미간을 좁혔다.
“왕도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그럴 거면 차 라리 분견대 수를 줄여.”
“죄송합니다, 주군. 제가 실언을 했 습니다. 이는 예비계획으로, 작전이 과하게 장기화될 상황에 대비한 것 이었습니다.”
“반년 이상으로 길어질 것 같으면 튀어야지, 무슨 앵벌이를 시키냐. 우 리가 거지도 아닌데……
난 미심쩍은 기색으로 눈썹을 긁적 였다.
“……거지 아니지?”
컨휘어는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 다.
“군비는 충분하고, 라넌 님을 통해 은행의 환어음도 충분히 확보해 두 었습니다.”
“그래?”
“예. 분견대가 배를 곯는 일은 없 을 겁니다. 지휘관이 지갑을 잃어버 리지만 않는다면요.”
“좋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컨휘어의 보 고가 이어졌다.
“각 분견대는 최소 열여섯, 최대 스무 명으로 구성했습니다. 모든 분 견대는 은검대대에서 뽑은 숙련병들 을 중심으로 했습니다.”
전투여단에 속한 대대 중 하나인 ‘은검대대’는 울카르 왕자님의 직속 병사들을 주축으로 한 부대로, 지휘 관 역시 왕자님의 직속 장교였던 길 버트가 맡았다.
나를 왕자님의 대리로 여기는 만큼 그 충성심이 대단하고, 숙련병으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전투여단 중에 서도 최고의 정예 대대다.
“여기에 더해 자유연대와 방패처녀 의 용병대에서 밀라놀 출신이거나 밀라놀어에 능한 이들을 차출하여 고르게 편성했습니다.”
자유연대는 모든 구성원이 알첸버 그의 부왕에 의해 대륙 각지에서 모 여든 노예였으므로 그 출신성분이 다양했다.
한편 ‘방패처녀’ 그라니아의 용병 대는 칼날만 전쟁이 끝난 뒤로도 아 이스보발트에 본부를 둔 채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상인 호위나 마을 경 비 같은 의뢰를 수행하며 돈벌이를 하는 중이지만, 그런 자잘한 일을 하며 삼백 명이 넘는 인원을 유지하 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실 제로는 내 개인 용병대 노릇을 하며 조금 지저분한 심부름을 해주고 있 었고, 이번 일에도 동원될 예정이었 다.
그라니아의 용병대는 밀라놀 왕국 남부에 뿌리를 둔 것이나 다름없으 니, 왕국에서의 활동에 대해서는 별 로 걱정할 바가 없을 것이다.
“돌격대대에서는 아예 하나도 안 뽑고?”
“예. 그쪽은 대다수가 겔란인이라 서 밀라놀어 할 줄 아는 이가 드물 어서 말입니다. 또한 오브도르프 현 지에서 뽑은 병사들이니 방어전에는 충실할지 몰라도, 외지에서 작전의 상세도 모른 채 임무를 수행하는 건 어 려 우리 라고 판단했습니 다.”
컨휘어의 말대로 ‘돌격대대’는 드 펠켄 방백령 일대에서 뽑은 상비병 들로 구성된 부대였다. 한때 ‘중장 병’이라고 불렸던 괴력의 여인, 데 르비쉬가 지휘관을 맡아서인지 병사 들도 데르비쉬를 닮은 부대였다.
말하자면, 겔란인 중에서도 덩치 크고 힘 세고 성격 더러운 놈들을 500명 뽑아 무거운 장비를 입혀둔 무리라고 할까. 데르비쉬가 직제상 컨휘어의 하급자이긴 하지만 엄연히 기사 작위를 받은 만큼, 그녀의 지 휘를 받는 돌격대대의 병사들은 자 부심이 상당했다.
“훈련대대야 뭐, 징집병들을 이런 일에 쓸 수는 없고. 마지막으로 친 위기병대는……. 나 없어졌다고 광 고할 수는 없으니 여기 남아 있어야 겠네.”
“그렇습니다.”
“좋아. 이 정도면 되겠네.”
나는 편성도를 마지막까지 확인한
다음 탁자를 툭툭 두드리며 컨휘어 를 돌아보았다.
“시간은 얼마나 필요해?”
“이미 준비는 마무리 단계라, 글피 면 출정할 수 있습니다.”
“글피. 그렇게 하자.”
내가 할 일은 다 끝난 것이다.
컨휘어를 돌려보낸 나는 창밖을 바 라보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정든 도시, 그리고 영지를 오랜만 에 떠난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가슴 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