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96)
나의 악당들 096화
25. 장마(1)
밀라놀 왕국의 다른 지방들처럼, 세이번의 여름은 건조한 편이라고 했다. 가끔 지나가는 소나기 외엔 맑은 날씨가 이어지는 게 일반적인 경우라나.
그런 의미에서, 포위전이 끝날 무 렵 시작된 비는 조금 특별했다. 굵 어지고 가늘어지기를 반복하며 어느 새 3주나 이어졌기 때문이다.
때아닌 장마였다.
젖은 로브를 털기 위해 나무창을 여니 아침 해가 말간 얼굴을 내보이 고 있었다.
후두둑.
처마를 따라 물방울이 연달아 떨어 져 내린다.
일주일 전인가? 뱃고동 여관은 지 붕을 새로 갈았다. 슬슬 냄새가 나 는 밀짚을 치워 버리고 엮은 갈대를 올린 것이다.
주인아저씨가 돈을 넉넉히 쓴 덕에 일꾼들 너덧 명이 달라붙어 반나절 만에 끝내 버렸지. 지금처럼 잠시 비가 그친 틈을 타서 말이다.
아니, 이번에는 잠시 그친 게 아닐 수도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보니 그런 예감이 든다.
멍하니 창밖을 구경하다 로브를 접 고 잠자리를 정리했다.
“엘렌, 슬슬 일어나.”
“우음…”
눈을 부비는 녀석을 뒤로하고 협탁 위에 올려둔 양초를 켰다. 꿉꿉하고 어두운 방이 조금 밝아진다.
엘렌은 모포 안에서 한참이나 꼬물 거렸다.
“흐으으…”
양털을 채운 침구를 산 이후로, 엘 렌의 기상 시간은 차라리 전투에 가 까뭤다. 녀석은 포근한 이불의 끈질 긴 방어선을 좀처럼 돌파해내지 못 했다.
나는 튜닉만 걸친 채 흐룬팅과 단 검이 걸린 벨트를 매었다. 그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엘렌을 보고, 난 쓴웃음을 지었다.
“먼저 내려간다. 린지 올려보낼게.”
“ O 으”
1 층으로 내려가니, 여관은 벌써부 터 손님들로 붐볐다. 행상인과 용병, 선원과 전령 등 온갖 인간군상이 여 정에 나서기 위해 이른 식사를 하고 있었다.
다리아에게 식사를 부탁하고 어린 여급, 린지에게 동전을 몇 푼 쥐여 주었다. 엘렌의 목욕물과 시중값이 다.
계단을 오르는 린지를 뒤로하고, 스트레칭을 하며 뒷마당으로 향했 다.
“포이닉스, 오늘도 늦었다.”
“어, 그래. 너도 좋은 아침.”
하품을 하며 튜닉을 벗자, 우테콰 이는 콧김을 내뿜으며 덤벼들었다.
3주 전, 우테콰이는 지하군주에게 큰 부상을 입었다. 홈런볼처럼 날아 가 땅에 처박혔으니, 사실 목숨이라 도 건진 게 기적이었다.
우테콰이가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나는 용병들을 고용해 리쿠와 부족 민들의 유해를 수습했다.
뭐,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시 신들을 찾는 데만 이틀이 걸렸고, 들짐승들 때문에 그 상태도… 음, 하여튼 고생깨나 했다.
나만큼은 아니어도 탈인간레벨의 강골인 우테콰이는, 교회에서 치료 를 받고 사흘 만에 자리를 털고 일 어났다. 그러곤 직접 뗏목을 만들어 부족민들의 유해를 실었고, 동풍이 부는 날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로 띄워 보냈다.
문화적인 의식인지 뭔지, 놈은 멀 어지는 배를 보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하필이면 비까지 오는 바람 에, 홀로 몸부림치고 울음을 토해내 는 모습이 좀 안타까워 보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우테콰이는 내게 도전을 해오지 않았다.
“후웁, 후우.”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건, 결투가 아니라 대련이었다. 여관 뒷 마당에서 하는 나부크 수련을 빙자 한 개싸움은 어느새 하루를 여는 일 과가 되어 있었다.
턱을 당겨 두꺼운 팔을 밀어내고, 잽싸게 몸을 굴러 우테콰이의 등에 매달렸다. 정신없이 기술을 넣는 도 중, 멀리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 온다.
“오오, 오늘은 피투성이 검사가 이 기는 건가?”
“무슨 헛소리야, 붉은 곰이 벌써 다섯 판도 더 땄는데!”
뒷마당 구석에 쭈그려 앉은 여남은 명의 사내들이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었다.
“그 정돈 덩칫값으로 쳐야 된다니 까? 포이닉스에게 5판은 주고 시작 해야 맞아!”
“등신아, 싸움에 그딴 게 어딨어? 개소리 말고 돈이나 내놔!”
저 구경꾼 아저씨들, 딱히 해가 되 는 게 없어서 내버려 뒀더니 이젠 내기까지 하나 보네.
어느 아저씨의 말대로 난 아직 나 부크로는 우테콰이를 당해내지 못하 고 있다. 그나마 18레벨이 되며 꽤 강해진 덕에 비벼볼 만은 하지만, 아직 멀었다.
우테콰이도 레벨은 올랐지만 스탯 도, 스킬도 그대로였다. 보너스 점수 들을 전혀 찍어주지 않았거든.
뭐, 어쩌겠어. 아직 놈을 100 프로 믿을 수 없는걸. 확실한 믿음이 생 기면 그때 스탯도, 스킬도 찍어줄 생각이다.
젖은 땅을 구르며 엎치락뒤치락하 기를 한참, 우리의 대련은 다리아의 목소리와 함께 끝이 났다.
“그만, 둘 다 그만! 식사 준비됐어 요!”
우리가 진흙투성이가 된 채 일어서 자, 구경꾼들이 분분히 흩어진다. 그 모습에 다리아는 폭 한숨을 내쉬더 니 우물물을 길어 내게 끼얹어주었 다.
“멧돼지들도 아니고, 흙탕물에서 뒹구는 걸 왜 이리 좋아하나 몰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야무진 손길로 내게 묻은 흙을 닦아내어 주 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테콰이 는 숨을 몰아쉬며 씩 미소를 지었 다.
“포이닉스, *후욱* 뒹구는 것 좋 아한다. 다리아도 좋아한다. *후우* 그래서 둘, 밤마다 몰래…”
“이 미친놈아, 이상한 소리 좀 하 지 마!”
내가 괜히 성질을 내고, 다리아가 얼굴을 붉히자 우테콰이는 껄껄 웃 음을 터뜨렸다.
순 개저씨 같은 놈이라니까…….
“아, 맞다. 포이.”
“ 응?”
“나, 삼촌에게서 편지가 왔어.”
“삼촌? 아, 그, 롱빌에 있다던? 잘 지내신대?”
“응. 내 걱정을 많이 하셨대.”
다리아는 부모님을 따라 열두 살에 사우스하버로 왔다고 한다. 아버지 가 손재주가 좋은 장인이셔서 도시 에 정착할 계획이었다던가.
그러나 아버지는 강도에게 목숨을 잃고, 어머니와 하나뿐이던 동생은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렇게 다리 아는 열여섯에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후로는 아버지의 친구였던 주인 아저씨의 도움으로 뱃고동 여관에서 여급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흔한 불행일지도 모 르지만……. 내가 보기엔 참 기구한 인생이다.
그래서, 하나뿐인 친척과 연락이 닿았다는 다리아의 말에 나도 진심 으로 기뻤다.
“정말 잘됐다. 근데, 생각보다 편지 가 빨리 왔네?”
“편지를 쓰신 게 5월 초래. 편지를 맡은 상단이 주변을 돌다 도적들 때 문에 이제야 도착한 거야.” 일주일 후면 7월이니, 5월 초에 쓴 편지면 엄청 늦게 온 거구나.
“그런데, 삼촌이 편지에……
다리아가 무어라 말하려던 차, 여 관에서 린지가 걸어 나왔다. 그러곤 물이 가득 찬 대야를 비우는 것이었 다.
“린지, 엘렌은?”
“머리를 말리고 계세요. 아마 곧 나오실 거에요.”
“어떻게 매일 같이 머리를 감냐. 어지간히도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 야. 그치?”
수줍음이 많은 린지는 살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얼굴이 허옇게 질 려서 도망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나름 일이 익숙해졌나 보다.
그건 그렇고, 뱃가죽이 등에 달라 붙을 것 같다. 얼른 가서 밥이나 먹 자.
물기를 대충 털어낸 뒤 여관으로 돌아오니, 계단에서 엘렌이 내려오 고 있었다.
엘렌은 레벨이 두 단계 오르며 주 문을 하나 새로 익혔고, 마력도 3점 이나 올랐다. 거기에 3주간 일상적 으로 비행 연습을 한 덕에 녀석의 깃털장식 활용은 한층 더 능숙해져 있었다.
어느 정도냐면, 지면에서 10센티쯤 떠오른 채 천천히 걷는 속도로 이동 할 수 있게 되었다. 춤의 정령 보조 없이, 아주 안정적으로 말이다.
계단을 내려온 엘렌이 부드럽게 의 자에 안착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감격스러운 기분이, “뭘 봐?”
“……으휴. 아냐, 인마.”
포위가 끝난 영향으로, 여관의 식 사는 풍요롭기 그지없었다.
온갖 향신료를 뿌려 통으로 구운 오리고•기, 방울양배추와 양파를 곁 들여 직화로 구워낸 돼지고기, 걸쭉 한 생선죽, 신선한 맥주와 치즈, 삶 은 달걀, 따끈한 호밀빵, 복숭아를 닮은 과일 등…….
족히 7, 8인분은 되어 보이는 식사 였지만, 대식가가 둘이나 있으니 별 걱정이 없다. 엘렌의 미미하기 그지 없는 도움을 받아, 나와 우테콰이는 순식간에 식사를 끝내 버렸다.
달걀 하나와 호밀빵 한 덩이를 간 신히 끝내고 사과를 깨작거리던 엘 렌은 나와 우테콰이를 보고 질린 표 정을 지었다.
“황소나 곰도 그렇게는 안 먹겠 어.”
“새끼 돼지도, *꺼억* 계집보단 더 먹는다.”
코를 막은 엘렌은 작게 한숨을 내 쉬더니 우테콰이의 얼굴에 바람 주 먹을 날려 버렸다.
“커흙,”
놈이 맥주를 뿜으며 요란하게 뒤로 엎어지자 식사를 하던 사람들의 시 선이 모였다가, 흩어졌다. 어느새 일 상적인 풍경이 된 걸까.
나는 물에 희석한 맥주를 비우며 엘렌을 타박했다.
“야, 마법 좀 함부로 쓰지 말라니
까?”
“그럼 어떡해. 말로는 들어먹지도 않고, 주먹으로 패봤자 간지러워만 하는걸.”
“그럼 최소한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쓰던지. 사람들 놀라면 어쩌려 고.”
녀석은 주변을 쓱 돌아보더니 어깨 를 으쓱거렸다.
“아무도 안 놀란 것 같은데?”
“……그래. 참 잘했다, 이 녀석아.”
자빠졌던 우테콰이는 코를 쓱 닦으 며 일어나더니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사과를 집어 크게 한 입 깨 물더니, “왕국, 술 치즈 나쁘지만 과일 맛 좋다. 즙 아주 많다.”
이딴 소리나 지껄이고 앉았다.
엘렌에게 덤벼들지 않으니 다행이 라고 해야 하는지, 엘렌의 버릇이 나빠지니 불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이젠 헷갈릴 지경이다.
에휴, 모르겠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엘렌은 여관 을 나섰다.
우테콰이는 오늘도 도시 곳곳을 누 비며 음주가무를 즐기겠지. 뭐, 자기 돈 쓰겠다는데 말릴 생각은 없다.
보름 만에 금화를 거의 스무 장이 나 썼대서 좀 걱정스럽긴 해도, 그 놈 몫으로 받은 돈을 생각하면 아끼 라 말라 참견하는 것도 우습다.
엘렌은 자연스럽게 내 팔에 착 내 려앉더니 남쪽을 향해 슬쩍 턱짓을 했다.
“자, 가자.”
“……이제 귀걸이도 익숙해졌잖아. 슬슬 혼자 가지?”
“마나 아껴야 된다니까.”
“날아다니는 거 아니면 마나 쓸 일 이 어딨다고.”
“마법사는 언제나 위기에 대비해 마나를 아껴둬야 하는 법이거든?”
“누가 아껴두지 말랬냐? 필요할 땐 써야 될 거,”
“아잇,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걷기나 해!”
요즘 엘렌은 자신이 만든 실험실에 다니고 있었다.
뭐, 실험실이라고 해봐야 바람이 잘 통하는 건물을 빌려 간단한 도구 들을 구비해 둔 게 전부였지만, 녀 석은 썩 만족한 눈치였다.
노점상 거리에서 광장에서 접어들 즈음, 대여섯 명의 경비대원들이 어 디론가 우르르 달려간다.
일상적인 풍경. 도적들이 물러났음 에도 도시 곳곳에서는 자잘한 범죄 가 끊이질 않았다.
골목길 어귀로 사라지는 병사들을 눈으로 좇다가, 문득 엘렌에게 물었 다.
“그래서, 성과는 좀 있어?”
“당연하지. 내가 누구 제잔데.”
이 세상에서 연금술은 상당히 중요 한 학문으로 인식된다.
비누나 향수 따위를 만드는 것도 그러한 인식에 힘을 보태지만, 가장 중요한 건 다름 아닌 포션 제조였 다.
연금(鍊金)이랑 물약이랑 무슨 상 관이 있나 싶지만, 연금술 자체가 상당히 폭넓은 학문이었다. 마법적 인 물건을 가공하는 모든 행위를 연 금술로 뭉뚱그려놨더라고.
엘렌이 요즘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것도 물약과 관련된 것이었다. 지하의 유물방에서 얻은 물약들을 감정(鑑定)하고 있거든.
“일단 두 병의 정체는 확인했어.”
“오, 그래? 뭔데?”
“마력회복의 물약. 제국 시절의 물 건답게 질이 엄청나게 좋아.”
마력회복의 물약? 마나포션?
“그거 겁나 비싼 거 아니냐?”
“당연하지. 상처치료의 물약 따위 보다 몇 배는 만들기 어려우니까.”
“와, 대박인데? 그럼 그동안 쓴 돈 도 메꿀 수 있겠네?”
엘렌은 무슨 그딴 소리를 하냐는 눈빛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내 방대한 마력량도 단숨에 채워 줄 수 있는 보물이야.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데, 설마 팔자는 건 아니겠지?”
“그거 팔아서 치료물약이나 몇 병 사면,”
“이 보물을, 그깟 트를 피에 약초 잎 몇 장 섞은 물건이랑 바꾸자고? 절대 안 돼.”
‘그깟’ 치료물약이라니, 그거 한 병 없어서 죽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텐 데…….
“끄응. 뭐, 알겠어.”
사실, 상처치료의 물약도 만만찮은 귀물이었다. 왕도를 포함한 몇몇 대 도시가 아니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구할 수가 없으니까.
사지도 못할 물건 때문에 아쉬워할 필요 없겠지.
“아, 그럼 지하, 아니, ‘기는 용’은? 쓸모가 있을 것 같아?”
“음, 그건 잘 모르겠어. 듣도 보도 못한 괴물이기도 하고, 사체 활용이 라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 서.”
‘기는 용’이란 지하군주의 새로운 이름이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괴물이라 이상한 이름이 붙었 더라고.
놈의 사체가 뭔가 쓸모가 있을까 했는데, 연금술 쪽으로는 기대해 볼 수 없을 것 같다.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루게 거리에 접어들 무렵, 엘렌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맞아. 나 재료 살 돈 다 떨어 졌어.”
“그래서 어쩌라고?”
“뭘 어쩌라고야. 돈 줘.”
그렇게 말하더니, 녀석은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다.
“……다시 말하는데, 공금은 네 개 인 돈이 아니야.”
“내가 야만인 놈처럼 노느라 돈 낭 비하는 것도 아니잖아. 빨리 내놔.”
“끙, 얼마나 필요한데?”
“넉넉히 열 장만 줘.”
“열 장? 아니, 대체 뭘 사길래?”
“말하면 뭐가 뭔지는 알아?”
“이 자식이,”
“붉은 엉겅퀴, 곱게 간 은가루, 데 벨레쉬의 뿔, 푸른 산호, 늪지 드레 이크의 지느러미……
“야, 됐어. 가져가, 가져가.”
앓는 소리를 내며 금화를 내어주 자, 엘렌은 빙긋 미소를 짓더니 천 천히 날아올랐다.
“그럼 저녁에 봐.”
“그래.”
어느 상인에게서 빌린 간이 실험실 로 녀석이 사라질 즈음, 뒤에서 익 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포이닉스.”
나타난 것은 그라니아 패거리의 궁 수인 아르날이었다. 그녀는 동료 둘 과 함께였는데, 다들 꽤 든든하게 무장을 한 채였다.
나는 아르날이 데려온 두 용병을 홅어보다 턱을 긁었다. 한쪽은 그나 마 익숙한 얼굴이지만, 나머지 한쪽 은 처음 보는 얼굴이다.
“……이쪽은?”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르머스라 고 합니다. ‘핏빛 봉화’라고 불리우 는 포이닉스 님을 만나게 되어 무척 이나 영광……
갓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청 년이 무어라 계속 떠들어대자, 아르 날이 인상을 쓰며 끼어들었다.
“야, 닥쳐.”
“••••••넵.”
“새로 들어온 신입이야. 멍청하게 생기긴 했어도 나름 착해.”
착한 용병이라. 칭찬인가?
“신입을 대체 얼마나 받은 거야?”
“그라니아가 좀 욕심이 많거든. 이 번 기회에 사람을 좀 모으고 싶어 해.”
그라니아네 패거리는 이번 포위전에 서 꽤 활약을 한 덕분에 나름대로 명 성을 얻게 되었다. 거기에 전투수당 도 넉넉히 받아서, 그 돈을 바탕으로 덩치를 불리는 중이다. 쪽수가 많으 면 용병 일을 하기에도 유리하니까.
“그거야 뭐, 너희 사정인데. 호위 일을 맡기는 입장에선 매번 새로운 얼굴이 오니까 썩 달갑진 않네.”
“에이, 뭘 그렇게 빡빡하게 구냐?”
“요즘 도시 분위기 흉흉한 거 알잖 아.”
“분위기? 아, 그거야 뒷골목 이야 기고. 어차피 엘렌 님 정도의 마법 사면 누가 건드리지도 않을 텐데.”
그렇게 지껄이던 아르날은, 내 조용 한 시선에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아니, 그, 내 말은, 네가 유난 떤다 는 소리가 아니라……. 야, 르머스.”
“에, 예?”
“가서 안톤이랑 파렐더러 오라고 해.”
“넵,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아니, 넌 가서 쉬고.”
“예? 쉬다뇨?”
“안 와도 된다고. 그라니아한텐 내 가 따로 말할 테니까, 빨리 꺼져!”
신입을 쫓아낸 아르날이 날 돌아보 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금화 한 장을 건네며 조용히 당부했다.
“잘 부탁해. 실수하지 말고.”
“……음, 무, 물론이지.”
얼굴이 창백해진 두 용병을 뒤로하 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길모퉁이를 돌 즈음, 누군가 숨을 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괜찮냐?”
“예, 예에. 어후, 오줌 지릴 뻔했습 니다.”
“나쁜 놈은 아닌데, 가끔 저렇게 회 까닥하거든. 오늘은 좀 덜한 편이야.”
“그, 그렇습니까? 소문대로 눈깔이 겁에 질린 목소리는 도시의 소음에 파묻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