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188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188화
188 문화재 태워서 난방할 겁니까?/당신도 사인하시죠
러시아의 마지막 요구에 니콜라이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정상들.
이건 EU에게 요구한 거지만 실상은 영국과 프랑스를 겨냥한 거였다.
이 때문에 두 나라 정상들은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특히, 지금껏 평정심을 유지했던 블레어 영국 총리가 끝내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요? 이건 너무 심하잖아요? 20개 조항으로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지금 와서 이러면 어쩌자는 거요? 러시아는 국가 간의 약속도 안 지키는 그런 나라였습니까?”
“….”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요.”
블레어 총리에 이어 프랑스 대통령도 불만을 강하게 표했다.
“문화재 반환이 대체 러시아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러는 겁니까? 지금 이 자리는 그걸 협상하는 자리가 아니잖아요. 약속했으면 약속을 지키세요.”
그가 옆으로 시선을 돌리며 따지듯이 물었다.
“니콜라이 경제 고문의 말이 대통령의 생각과도 같은 겁니까?”
“설마 경제 고문이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 마음대로 말을 하겠습니까?”
자신들과는 달리 자하르 대통령은 너무 담담하게 말했기에 프랑스 대통령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까지 해서 러시아가 얻으려는 게 뭡니까? 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 겁니까? EU와 완전히 관계를 끊으려는 거요?”
문화재를 모두 반환한다고 해서 러시아가 얻게 되는 이득은 크게 없다.
국제 사회에서의 평판이야 더 올라가겠지만 그것을 보고 러시아가 이런 요구를 하진 않았을 터.
프랑스 대통령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정상들의 생각도 같았다.
그러나 자하르 대통령을 대신한 니콜라이의 대답에 프랑스 대통령은 어이가 없었다.
“우리가 얻으려는 건 국제 사회에서의 신뢰입니다.”
“…!”
“여느 나라들처럼 약속해놓고 뒤로 가서는 나 몰라라 하는 짓을 하지 않으려는 겁니다. 전에 문화재 문제가 불거졌을 때 마무리 짓지 못했던 걸 끝내려는 것뿐인데 너무 확대해석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거짓말을 믿으라는 거요?”
“믿지 못하겠다고 하시니 그럼 제가 여쭙겠습니다. 협의가 끝난 내용을 바로 마무리 지으면 되는데, 협의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내용을 일부러 끄집어내서 우리가 얻는 게 앞서 협의한 것보다 더 크겠습니까?”
“….”
“지금처럼 반발이 심할 거란 건 뻔히 알면서도 이러는 건 말씀드린 대로 러시아는 국제 사회에서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나라로 보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문화재 반환 문제가 협의한 것과 비중이 같다는 거요?”
“러시아만 보자면 비중이 작겠으나 국제 사회 전체로 보자면 훨씬 큽니다.”
“그럴듯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아요.”
프랑스 대통령이 물러서지 않고 계속 물고 늘어지자 블레어 영국 총리가 다시 끼어들려고 했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 슈뢰더 독일 총리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먼저 나섰다.
“왜들 이러는 겁니까? 문화재 반환하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이렇게 야단을 떠는 거요? 사실 따지고 보면 영국과 프랑스 것도 아니잖아요. 문화재 태워서 난방할 겁니까?”
“뭐, 뭐요?”
“그깟 남의 나라 문화재들이 국가의 안녕과 국민들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냔 말입니다.”
“총리 말씀이 맞습니다. 아무리 러시아와 맞교환을 한 거라지만 독일도 이미 반환했잖아요. 약속을 운운한 분들이 남의 나라 것을 훔쳐 와서 자기 것이라고 내놓지 않으면 누가 영국과 프랑스의 말을 신뢰하겠습니까? 러시아가 다른 마음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문화재는 반환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폴란드와 독일은 지금 남의 나라 걱정할 때가 아니고 자국 문제 해결이 먼저였기에 강하게 나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두 이치에 맞는 말이다.
영국과 프랑스 대통령도 앞서 러시아에 약속을 지키라고 해 놓고 남의 나라 문화재를 내놓지 않겠다는 것이 민망하긴 했다.
회의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블레어 총리가 한숨을 깊이 내쉬며 자하르 대통령에게 말했다.
“우리끼리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군요. 자리를 좀 비켜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시지요. 끝나면 다시 오겠습니다.”
자하르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세르게이 후보와 니콜라이도 뒤를 따랐다.
대통령 일행이 나가고 정상들의 보좌진들이 회의실로 들어오면서 회의가 시작되었다.
슈뢰더 독일 총리가 좀 전에 했던 말에 더 보탰다.
“우리가 여기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왔는지만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문화재 같은 것에 시간을 빼앗겨선 안 됩니다.”
“맞아요. 비록 러시아가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꺼냈지만, 어차피 해결해야 할 일인 만큼 회원국들의 정상들에게 연락하고,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는 쪽으로 해야합니다.”
두 정상은 발등에 떨어지다 못해 불에 탈 위기까지 왔기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회원국들의 정상들께 먼저 연락해 보도록 하지요.”
블레어 영국 총리의 말이 끝나자 보좌진들이 빠르게 전화를 돌렸다.
지금은 각국의 시차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회의는 장장 5시간이 흘러서야 끝이 났다.
“의견이 모인 것 같군요. 자, 그럼 자하르 대통령을 부르겠습니다.”
블레어 영국 총리의 말에 세 사람은 대답할 힘도 없었다.
대통령 일행이 회의실로 다시 들어갔을 때 네 사람의 얼굴은 그새 몇 년은 늙어버린 것처럼 초췌해 보였다.
블레어 영국 총리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결정한다고 해도 각 나라에 문화재를 모두 반환하자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된 국내 단체들을 설득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시간을 달란 거지요?”
“그렇습니다.”
자하르 대통령이 니콜라이에게 시선을 보냈다.
니콜라이는 이들이 이렇게 나올 줄 알았기에 앞서 가스프롬의 가스관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던 거였다.
이번 문제는 최대한 빨리 끝내버려야 한다.
끌면 끌수록 흐지부지될 것이기에 그는 마침 잘 됐다는 식으로 말했다.
“불행 중 다행입니다. 가스프롬 가스관을 복구하자면 우리도 시간이 좀 걸릴 텐데 그때까지 기다려드리면 되겠습니까?”
“그 말은, 우리의 결정이 있기 전까지는 EU 전체에 가스를 수출하지 않겠다는 거요?”
“수출을 하고 싶지만 말씀드렸듯이 가스프롬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저 거짓말을 누가 믿겠나?
거짓말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4개국 정상들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가스프롬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은 빼고 국내 관계자들에게 내용을 전하면 된다.
문화재를 반환하기로 하기 전까지는 러시아가 가스 수출을 안 해 줄 거라고.
이 말을 들으면 국내 관계자들도 더는 버틸 수 없을 것이니 니콜라이의 말에 모른 척 넘어갔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곧 독일과 나머지 EU 회원국들의 상황도 폴란드처럼 된다는 거였다.
‘최대한 빨리 결정을 봐야 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국민들의 고통은 배가 되고 자신들을 향한 원망의 목소리는 높아질 것이다.
“가스프롬의 가스관이 하루빨리 복구되길 바랍니다. 그럼, 우리는 돌아가서 국내 관계자들을 최대한 빨리 설득하지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니콜라이의 대답에 블레어 총리가 물었다.
“훗날, 또다시 가스로 협박하는 일은 없겠지요?”
“우린 협박에 그쳤지만 EU 회원국들은 명백히 우리 러시아 땅을 뺏으려 했습니다.”
슈뢰더 총리와 폴란드 대통령이 눈살을 찌푸렸다.
“EU가 도발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같은 행동을 취할 일은 없을 겁니다.”
“그 말을… 믿도록 하지요.”
“국제 사회는 신뢰와 믿음이 가장 중요하죠. 러시아가 먼저 약속을 저버리는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이건 회의하실 때 준비한 겁니다.”
니콜라이는 저번에 20개 조항을 내밀었을 때처럼 4개국 정상들 앞으로 서류를 들이밀었다.
슈뢰더 총리는 이미 한 번 겪어 본 터라 바짝 긴장하며 서류를 보지 못했다.
‘저자가 또 무슨 일을 꾸미려고…?’
옆을 보니 폴란드 대통령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서류를 건드리지 않았다.
서류를 다 읽은 블레어 영국 총리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고든 브라운, 데이비드 캐머런, 테레사 메이… 이게 뭡니까?”
해외 특파원 생활을 10년 넘게 한 니콜라이가 중요 국가의 역대 대통령과 총리를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질 않았다.
특히 EU의 주축 국이랄 수 있는 영국, 독일, 프랑스 같은 나라의 역대 정상들의 이름은 잘 알고 있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수아 올랑드…?”
서류를 본 프랑스 대통령이 머리를 갸웃했다.
슈뢰더 총리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서류를 펼치더니 눈을 껌벅거렸다.
“앙겔라 메르켈…? 올라프 숄츠? 이 사람들 이름이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우린 정치인의 말은 믿지 않습니다. 믿는다면 이보다 더 웃긴 코미디는 없을 겁니다. 정상들께서도 우리와 같지 않습니까?”
“크흠, 뭐 그거야….”
슈뢰더 총리가 말을 얼버무렸다.
이런 일은 원 역사에서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한 일이었다.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때, 미국의 꼭두각시가 된 IMF 협상단은 현 대통령 외에 여/야당의 후보들에게까지 사인을 받아 냈다.
미국은 수십 년간 동맹국이자 혈맹국이라던 한국의 도움 요청을 뿌리친 것도 모자라, 한국에 빚을 지게 하고 헐값이 된 기업들을 사들였다.
그리고 혈맹국을 믿지 못해 이 같은 짓을 했었다.
니콜라이도 미국처럼 말뿐인 EU를 믿지 못하기에 확실한 방법을 취한 것이다.
“우리는 돌아오는 대선에서 여기 계신 분들 외에, 그 명단 중 누군가가 승리할 확률이 가장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각국의 국내 의견이 모이게 되면 그분들의 사인까지 받아 주셔야겠습니다. 말보다는 서류가 확실한 거니까요.”
니콜라이가 아무리 기자 생활을 오래 했다지만 각국 정상들의 모든 이름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폴란드나 중요도가 떨어지는 EU 국가들은 여/야당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들의 이름으로 채워 넣었다.
“허어, 참. 정말 일 처리가 깔끔하기 그지없군요.”
블레어 영국 총리도 니콜라이의 일 처리에 다시 한번 놀랐다.
‘역시 알던 대로 무서운 인물이야.’
정상들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피할 수 없음을 알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자신들도 받아내야 할 것이 있었다.
슈뢰더 독일 총리가 세르게이 후보에게 말했다.
“서류에 세르게이 후보의 사인이 빠졌군요. 지금 바로 사인해 주시지요.”
세르게이 후보의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아무 말 없이 EU 회원국들의 모든 서류에 사인했다.
“우리도 확실히 해야죠.”
이제 돌아가서 국내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일만 남았기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블레어 영국 총리가 다시 서류를 내밀었다.
“니콜라이 경제 고문의 사인도 넣어 주시지요.”
자하르 대통령과 세르게이 후보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니콜라이를 바라보았다.
“제 사인이 왜 필요합니까?”
“러시아가 요구한 20개 조항과 문화재 반환에 동의하자면 러시아가 다시는 가스와 같은 것으로 협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확실히 받아야지요. 세르게이 후보가 당선되면 다음에 니콜라이 경제 고문 말고 또 누가 있던가요?”
자하르 대통령이 머리를 끄덕였다.
니콜라이는 블레어 영국 총리가 사람 보는 안목이 있음을 느끼고 일사천리로 사인을 했다.
하지만 4개국 정상들은 모르고 있었다.
가스와 같은 에너지로 두 번을 협박하진 못해도 그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다른 것이 러시아에 있다는 걸.
‘앞으로 반도체가 에너지만큼 중요하게 될 거란 걸 아직은 모를 테지.’
블랙홀의 반도체 관련 기업들은 이미 세계를 씹어 먹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니콜라이는 두 번째 협박을 상상하며 일사천리로 사인을 마쳤다.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고생들 하셨습니다.”
니콜라이와 자하르 대통령의 작별 인사에 정상들은 악수만 하고는 빠르게 나가 버렸다.
각국 정상들이 국내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사이 독일의 가스까지 끊겨버렸다.
예고된 일에는 예고된 결과가 따르는 법.
독일에서도 폴란드 같은 상황이 일어났다.
“슈뢰더 총리는 물러나라!”
“물러나라! 물러나라!”
“이 추위에 국민을 죽음으로 모는 슈뢰더는 물러나라!”
이번 사태는 러시아 때문에 일어났음을 밝혔음에도 국민들의 퇴진 운동은 계속 되었다.
이때 슈뢰더 총리는 명단에 적힌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고 있었다.
“러시아가 저에게도 사인을 받으라고 했단 말이죠?”
“그렇습니다. 메르켈 대표의 사인을 꼭 받아야 가스 공급이 재개됩니다.”
“그렇다면 해 드리죠.”
“네?”
슈뢰더 총리는 메르켈 대표가 너무 쉽게 사인하자 무척 놀랐다.
앙겔라 메르켈은 이미 니콜라이로부터 후원금을 받으면서 러시아가 하는 일에 딴지를 걸지 않겠다고 했기에 사인을 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러시아가 자신을 다음 대선에서 유력한 당선자로 봤다는 것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사인을 마친 메르켈 대표가 펜을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니콜라이 대표에게 단단히 걸린 모양이네요?”
“크흠. 자세한 내용은 서류에 있으니 궁금한 점은 따로 전화를 주십시오.”
“그럴게요.”
“그럼.”
슈뢰더 총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도 일어나며 아픈 곳을 찔렀다.
“총리께서 속도를 더 내셔야 할 거예요. 국민들이 총리와 사회 민주당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잖아요.”
슈뢰더가 잠깐 그녀를 응시하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밖으로 나갔다.
메르켈은 자신의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이러면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와 손을 잡아야 하는 건가?”
앞으로 16년간 독일을 이끌 그녀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