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187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187화
187 아포칼립스 세상/전에 안 됐던 그거, 반환해 주시죠
-안타깝지만 EU의 이번 결정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부시 대통령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네, 보내 주신 자료를 모두 검토해서 내린 결론입니다.
“….”
-그 요구를 들어주게 되면 러시아의 영향력이 유럽에까지 미치게 되기에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러시아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게 되면 가스 공급이 완전히 끊어지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요?
-당연히 알고 계십니다.
그렇게 미국의 입장을 대변한 부시의 비서실장은 마지막으로 미안함을 표했다.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러시아와 원만히 잘 해결하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말씀드린 내용 그대로 전해 드리죠.”
미국은 아니, 부시는 EU를 버렸다.
러시아가 이번 일을 전쟁과 같다고 밝혔음에도 미국은 EU의 도움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런데 이 통화는 부시가 내용을 전달받은 그날 이뤄지지 않고, 폴란드의 최후통첩일 당일에 이뤄졌다.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명분으로 하루를 미룬 거였다.
이 때문에 4개국 정상들, 특히 폴란드 대통령은 폭탄을 떠안은 듯한 불안감에 떨었다.
그리고 미국의 입장을 전달받은 4개국 정상들은 분개했다.
미국을 온전히 믿은 건 아니었으나 이런 상황에 설마 반대할 줄이야.
“우리가 러시아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단 걸 알았을 텐데도, 부시 대통령이 굳이 이런 결단을 내린 이유가 뭐라 생각하십니까?”
블레어 영국 총리의 물음에 폴란드 대통령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야 뻔하죠. 둘 중 하나일 겁니다. 러시아와 EU의 관계를 더 틀어지게 하려는 것이거나, 우리의 힘을 억제하려는 거겠지요. 반대함으로써 미국이 얻게 될 이득이 이것 말고 또 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프랑스 대통령의 말도 이어졌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전쟁에 발목이 묶여 있을 때, EU와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걸 막으려는 것 같습니다.”
“선거를 앞둔 부시 대통령이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긴 하군요.”
블레어 영국 총리와 세 나라의 정상들은 이제야 부시의 의도를 조금은 알아차리게 되었다.
하지만 니콜라이의 생각까지는 아직도 몰랐다.
“우리는 오늘 오후 3시부터 가스가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벽시계의 시침은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앞으로 1시간 후, 폴란드의 산업 시설과 가정까지 가스 공급이 완전히 중단된다.
국내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가스 공급을 재개한다는 정부 발표가 없었던 터라 수도에서 시작된 폭동은 전국으로 번졌다.
여름이면 어찌 조금은 버틸 수 있겠지만 지금은 30년 만에 처음 있는 강추위.
생사의 순간에 직면한 폴란드 국민들은 성난 폭도가 되었다.
“하루 늦게 답변한 것도 러시아와 EU의 관계를 더욱 틀어지게 하려는 속셈이었을 겁니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데 무슨 하루나 필요해요? 안 그렇습니까?”
얼굴색이 유난히 붉어진 폴란드 대통령은 맞은 편에 있는 벽시계를 계속 힐끔거렸다.
그 모습을 본 블레어 영국 총리가 마무리를 지었다.
“미국의 입장은 안 것 같으니 우리의 결정을 러시아에 전해야겠군요. 더 늦어졌다간 독일까지 피해를 입겠습니다.”
“러시아에 바로 전합시다. 우리 독일 상황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요.”
“그러면 여기 계신 분들이 모두 러시아로 간다고 전하면 되겠습니까? 오늘 바로 말입니다.”
“당연하지요.”
슈뢰더 독일 총리의 말에 프랑스와 폴란드 대통령도 찬성했다.
“그럼 제가 자하르 대통령께 연락하겠습니다.”
최종적으로 마음을 모았음에도 그들의 마음은 찝찝했다.
미국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졌기에.
그날 오후 6시.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합니까?
‘나의 목숨’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내 목숨의 소중함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나.
일해서 돈 버는 건, ‘먹고 살려고’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걸 보면 일부 맞는 듯하다.
그런데 목숨을 연명하자면 꼭 필요한 요소들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에도 너무 흔해 잊고 살았던 것.
공기와 물.
신은 동식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을 가장 많이 만드셨고 아닌 경우는 가장 적게 만드셨을진데, 인간은 여기에 가치를 반대로 매겨 놓았다.
흔하디흔하기에 가격이 거의 없는 공기와 물.
이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실상에서 흔하게 썼던 에너지 자원의 소중함도 모르고 살았다.
원유와 가스가 사라진 나라.
영화에서 많이 보던 판타지 세상이 2004년 3월에 현실이 되었다.
4개국 정상들이 모스크바로 향하고 있을 때, 폴란드에는 가스가 완전히 사라졌다.
가스는 휘발유와는 달리 개인이 사재기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 휘발유도 가격이 세 배가 올랐고 그것마저도 이틀 후면 모두 사라진다.
언론 발표가 나간 후로 기업들이 대거 사들였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조금 여유가 있는 석탄으로 몰렸지만, 사재기가 시작되면서 그것마저도 시장에서 사라져 버렸다.
결국,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땔감으로 쓰는 사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아포칼립스 세상이 폴란드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이때, 사하공화국의 가스프롬에 들렀다가 한보 그룹과 인연이 깊었던 ‘이르쿠츠크’ 가스전에 도착했다.
“여긴 이제 거의 도시가 됐군요.”
니콜라이가 도착했다는 가스프롬 사장의 연락을 받고 현장에 온 건설 사장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가스전이 들어오면서 관련 업종들까지 들어왔고, 정부와 대표님의 전폭적인 투자로 우수리스크 못지않은 도시가 됐습니다.”
니콜라이의 지역 투자 방식에는 독특한 점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지역 발전에 편성된 예산을 전국에 골고루 분포시키기 마련이다.
지역의 고른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런데 이건 겉으로 보인 것이고 숨은 뜻은 따로 있었다.
대통령이 민심을 얻기 위한 것.
해당 지역의 국회의원과 주민들이 외면하지 않게 하려고 일부 금액을 나눠 주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예산이 전국에 골고루 퍼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명백한 단점도 있었다.
‘발전 속도가 너무 늦어지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된다는 단점이 있지.’
니콜라이는 이런 단점을 잘 알기에 한곳에 집중하는 방법을 택했다.
일명 몰빵.
일반적인 예산은 편성해 주되, 지역 발전을 위한 예산은 한곳에 몰았다.
“저는 사실 처음에는 대표님의 투자 방식을 많이 걱정했습니다. 그 많은 금액을 한 지역에 쏟아붓는 걸 도박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었거든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이제는 대표님의 판단이 정확했다는 걸 확신합니다. 한곳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많은 도시가 몰라보게 바뀌었으니 말입니다.”
“여태껏 힘들었을 텐데 잘 따라 줘서 감사합니다. 사장님이 없었다면 저도 힘이 꽤 들었을 겁니다.
“아닙니다. 저는 지시만 잘 따른 것뿐인데요.”
“그게 어렵다는 겁니다.”
니콜라이가 지시를 내린다고 해서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걸 실행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건설 사장은 그런 점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발전된 모습을 보니까 뿌듯하군요. 그럼 저쪽으로 가 봅시다.”
니콜라이가 막 U마트 앞에 도착하자 익숙한 사람들이 다가왔다.
“어?”
노인의 놀란 목소리에 경호팀장이 니콜라이를 바라보았다.
그도 노인과 일행들이 누구인지 알기에 뒤를 바라본 거였다.
“괜찮아요.”
노인은 2001년에 니콜라이에게 화성 운석을 판 그 족장이었다.
“대표님!”
경호원들이 길을 터 주자 족장이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니콜라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10여 명의 가족은 거의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족장님, 오랜만입니다. 가족분들도 잘 계셨죠?”
“대표님 덕분에 매일매일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언제 오실까 싶어서 매일 U마트 앞을 산책했었는데 이렇게 만나서 너무 기쁩니다.”
“참, 집은 마음에 드십니까?”
“그게 마음에 안 들면 어떤 집이 마음에 들겠습니까. 제집을 짓고 100명이 넘는 부족원들도 주변으로 집을 짓고 삽니다.”
옆에 있던 건설 사장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전에 운석이 발견됐던 곳에서 몸에 좋은 온천수가 발견됐지 않습니까?”
“그곳도 개발했나요?”
“네. 그곳에 5층이나 되는 큰 건물을 지었는데 러시아와 공화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합니다.”
그 덕에 족장은 정말 떼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어쩐지 얼굴이 훨씬 젊어진 것 같더라니.’
니콜라이는 족장과 가족들이 꼭 방문해 달라고 부탁해서 헬기를 타고 가 보았다.
“허어….”
여기가 정말 순록이 풀을 뜯던 그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
먼 곳에서 순록 무리가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제가 이곳 주변에 마을을 만들고 있습니다. 건설 사장님이 도로까지 만들어 주셔서 사람들이 방문하기가 편해졌거든요.”
“족장님, 제가 한 게 아니라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겁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두 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신 김에 몸 한번 푹 담그고 가시지요.”
“그러죠.”
니콜라이는 족장과 가족들과도 기념사진을 찍고 함께 온 사람들과 온천수에 몸을 푹 담갔다.
“으으, 좋네요.”
온천수에 몸을 많이 담가 봤지만 여긴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잠들기 전에 엄마 품속에서 자장가를 듣는 느낌이랄까.
그만큼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니콜라이는 온천수로 삶은 달걀과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가스프롬 사장에게 말했다.
“가스와 원유 가격이 계속 오를 겁니다. 생산되는 대로 비축해 두면 되니까 생산량은 그대로 유지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특별 보너스를 지급하세요. 회사만 이득을 봐서는 안 되죠.”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가스프롬 사장이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대표님. 우리야 지금 상황이 좋지만, 폴란드에는 폭동이 일어났고 독일에서는 시위를 벌인다는 뉴스가 나오던데 괜찮겠습니까?”
“우리만 돈 버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시다시피 국제 유가가 벌써 80달러에 육박한 상태라 EU의 충격이 엄청날 겁니다. 정부에서는 언제까지 수출을 막는다고 합니까?”
“지금 4개국 정상들이 모스크바로 오는 중입니다. 그들을 만나 보고 판단할 겁니다.”
“네? 정상들이 오고 있는데 여기에 계셔도 되는 겁니까?”
“목욕 끝나면 가 봐야죠.”
니콜라이는 목욕을 끝냈음에도 몇 군데를 더 들른 뒤 비행기에 올랐다.
한편, 모스크바에 도착해 크렘린궁에서 자하르 대통령을 만난 4개국 정상들은 어이가 없었다.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습니까? 니콜라이 경제 고문이 와야지 논의할 수 있다니요?”
폴란드 대통령이 발끈했으나 자하르 대통령은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이번 일은 니콜라이 경제 고문이 꼭 있어야 합니다. 지금 사하공화국에서 막 출발했으니 몇 시간만 기다려 주시지요.”
“이거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지금 폴란드는 몇 시간이 아니라 몇 분이 아쉬울 판입니다. 폭동이 일어난 걸 뉴스에서 보셨을 거 아닙니까?”
“일을 벌인 건 EU지 러시아가 아닙니다.”
폴란드 대통령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막 뭐라고 하려는데, 블레어 영국 총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씀드렸듯이 우린 러시아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이런 마당에 왜 굳이 니콜라이 경제 고문을 기다려야 하는 건가요?”
“최종 협상을 하기 전에 꼭 전할 말이 있다더군요.”
“무슨 말을 말입니까?”
“그건 직접 말한다고 했습니다.”
자하르 대통령은 이유를 알고 있었음에도 모른 척 발뺌했다.
폴란드 대통령이 화를 참지 못하고 다시 나섰다.
“그랬으면 여기에 와 있어야지 왜 사하공화국까지 간 겁니까? 우린 분명히 몇 시간 전에 출발했다고 말했는데, 이거 일부러 이런 거 아닙니까?”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일부러 그랬다.
니콜라이는 푸틴이 정상회담 약속 장소에 몇 시간씩 늦게 도착하던 걸 한번 써먹어 보았다.
어떤 기분일까 싶어서.
자하르 대통령이 더는 말이 없었기에 4개국 정상들은 귀빈실에서 기다렸다.
세르게이 후보가 숙소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으나 마음이 급한 터라 모두 그대로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니콜라이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당당히 나타났다.
그 모습에 정상들이 이를 갈았다.
“미안합니다. 가스프롬에 큰 문제가 생겨서요.”
“그 문제가 4개국 정상들과의 회의보다 더 중요했던 거요?”
슈뢰더 총리의 물음에 니콜라이는 머리를 끄덕였다.
“가스관이 동파되어서 몇 군데가 터져 버렸습니다.”
“가스관이 터지다뇨?”
슈뢰더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가스관이 터지다니. 이건 EU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다.
“언제 복구됩니까?”
“피해 구간이 좀 길어서 복구하려면 시간이 꽤 필요할 것 같더군요.”
“허어, 이런. 이게 무슨….”
니콜라이는 일단 그들에게 긴장감을 더 심어 주려고 살짝 거짓말을 보태면서 화제를 돌렸다.
“의견을 모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요. 러시아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관이 터졌다는 말에 멍해 있던 슈뢰더 총리를 대신해 블레어 영국 총리가 대답했다.
“관이 복구되는 대로 가스 공급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
사실, 니콜라이로서는 뜻밖이었다.
그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를 했던 건데 모두 받아들이기로 했기에.
그 덕분에 러시아로서는 큰 이득을 보게 됐지만 여기서 끝낼 니콜라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직접 만나서 할 말이 있다던데…?”
니콜라이는 이번 기회를 확실히 잡기로 했기에 마무리 짓지 못했던 얘길 꺼냈다.
“20개 요구안 외에 하나를 더 들어주시면 가스 공급을 재개하겠습니다.”
“뭐, 뭐요? 다시 한번 말해 보세요.”
여태껏 중심을 지켰던 블레어 영국 총리마저도 화를 참지 못하고 목소리가 커졌다.
“하나를 더 들어주셔야겠다고 했습니다.”
총리가 자하르 대통령을 보았으나 그는 가만히 있었다.
블레어 총리는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며 물었다.
“좋습니다. 그 마지막 요구가 뭐요?”
“모두 반환해 주십시오. EU 회원국들이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들을요.”
순간, 블레어 영국 총리와 프랑스 대통령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