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aebol's Youngest son RAW - Chapter (13)
14화. 위기를 대비한 계획.
선영전기 주식을 매입하는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미 유상증자를 한다고 공시되어서 주가는 횡보하거나 살짝 내림세를 타고 있었다.
덕분에 한도영은 많은 매물을 적절한 가격에 매입할 수 있었다.
거실.
한도영은 백은지와 함께 소파에 앉았다.
“선영전기를 매수하고 있어요.”
“이번에 유상증자하는 회사?”
“알고 계시네요?”
“그럼. 내가 주식은 잘 몰라서 지난번에 네가 말한 내용을 듣고 나름 공부를 했지. 특히 매연 저감 장치를 개발할 만한 전기 관련 회사들을 유심히 알아봤고. 선영전기면 괜찮아. 우리 도영이 영특하네.”
“다 엄마를 닮아서 그렇죠. 고마워요.”
한도영은 백은지를 살짝 안았다.
백은지는 싫지 않은 듯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싫지는 않네.”
“아들 마음에 상처받으면 어쩌려고.”
“요 녀석아. 겨우 그걸로 상처를 받아? 난 지난 몇 개월 동안 얼마나 속을 졸였는지 알아. 정말 내 아들을 도둑맞은 줄 알았단 말이야.”
“잘할게요.”
그녀는 푸근하게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커피도 우아하게 마시네. 외모로만 보면 분명히 서재은이 약간 낫지만, 품격에서는 도저히 엄마 상대가 안 돼.’
“왜 그런 눈으로 봐?”
“참 우아하다고 생각했어요.”
“적당히 띄워라. 이제 돈 없다.”
“진짜에요. 그 할망구······.”
실수다.
서재은보다 우아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할망구가 튀어나와 버렸다.
“그 할망구가 할머니를 말하는 거니?”
백은지의 눈치가 빤하다.
“예. 죄송해요.”
“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마.”
“예.”
조금 전까지 화기애애했던 거실이 썰렁함을 넘어 적막해졌다.
적막을 먼저 깨뜨린 사람은 백은지였다.
“휴, 너도 잘 알겠지만, 난 네 할머니가 싫어.”
“저도 싫어요. 아마 엄마보다 더 싫어할걸요.”
“왜?”
그녀의 눈에 흥미가 감돌았다.
“풍삼건설 사장님과 비슷해요. 경박하고, 안하무인이고. 제 눈에도 그게 보이는데 엄마 눈에는 어떻겠어요. 그리고.”
“그리고?”
“엄마는 품격이 있고 행동 하나를 봐도 우아한데, 할머니는 뭐랄까? 저렴하다?”
호호호호.
그녀의 기분이 풀어졌다.
“도영아. 아빠한테는 절대 말하면 안 된다.”
“예. 당연하죠.”
“참, 선영전기 주식은 얼마나 매집했어?”
“5억 원 정도 매수했어요.”
“더 할 거야?”
“다 쏟아 부으려고요.”
그녀는 깜짝 놀란 듯 입을 딱 벌렸다.
“괜찮겠어?”
“유상증자를 계획하는 것을 보고 확신했어요. 이건 선영전기의 자신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아마 올겨울이나 내년 초에 연료 저감 장치에 대해서 공시가 있을 거예요. 그때 팔아도 이익을 볼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확신이 서면 내년에 팔아. 배당금 챙겨야지.”
“그러네요.”
그 말을 끝으로 둘은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배용준을 스타덤에 올려준 젊은이의 양지였다.
무려 시청율 62%까지 찍었던 드라마였는데 어두운 드라마였다.
‘1월에 회귀했다면 모래시계도 봤을 텐데.’
아쉬움이 들 찰나, 백은지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물었다.
“도영아.”
“예.”
“너 할머니에 대해 알고 있지?”
“뭘요?”
백은지는 고개를 돌려 한도영을 빤히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정말 몰라?”
“예.”
도대체 무슨 말일까?
엄마와 할망구 사이에 큰 비밀이 있는 것 같은데.
그녀는 한 30초 동안 그의 왼쪽 오른쪽 눈을 번갈아 보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엄마. 고민이 있으면 속으로만 삭이지 말고 말씀하세요. 그러다가 병나요.”
“네가 뭘 안다고.”
그녀가 어두운 얼굴로 일어서자 한도영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엄마. 제가 도와드릴게요.”
한도영의 단호한 말에 백은지는 짧은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이가 너 반만큼이라도 단호했더라면.”
한도영은 그녀의 입이 열릴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렸다.
“아냐. 쉬어.”
그녀는 끝내 말하지 않고 어두운 안색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홀로 거실에 남은 한도영은 고민에 빠졌다.
백은지와 대화를 좀 더 나눌까 생각하다가 접고 이 층 방으로 올라갔다.
그는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어떡해야 하나? 대략적으로 알지만, 아직 증거가 하나도 없는데. 또 돈도 없고.’
한도영은 주먹으로 침대를 내리치며 분을 풀었다.
생각할수록 상황이 답답하게 꼬여가자 맥주 한잔 생각이 간절해졌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아 답답함을 누르며 경제지를 읽고 또 읽으며 다짐했다.
‘반드시 할망구의 반란을 막을 것이다. 백산그룹의 회장 자리는 내가 앉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막는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
1995년 10월 초.
선영전기 주식을 30억 원어치 매입했다.
나오는 대로 매입했기에 5,000대에 머무르던 주식은 7,200원까지 올라갔다.
조금 더 비싸게 주고 샀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날 이후로 백은지와의 관계는 약간 어색해졌다.
한도영은 최대한 친밀하게 그녀를 위로하며 스스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점차 가을이 깊어가며 제법 밤이 추워졌다.
오늘도 한도영은 평상시처럼 미래를 구상하며 책상에 앉아 있었다.
똑똑.
노크 소리에 문을 열었다.
“엄마.”
“잠을 안 자는 거 같아서 간식 가져왔는데. 먹을래?”
“좋아요. 들어오세요.”
백은지를 의자에 앉히고는 한도영은 탁자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녀가 내려놓은 쟁반 위에는 떡과 꿀이 놓여 있었다.
“맛있어요.”
포크로 냉큼 떡을 꿀에 찍어 먹었다.
겉모습은 비슷해 보이는데 만드는 방법이 다른가?
정말 맛있었다.
하긴 이 집에서 먹는 음식치고 맛없는 음식은 없었다.
백은지는 책상을 힐끔 보더니 타박 아닌 타박을 했다.
“또 경제 신문 보고 있었어?”
“재밌어요.”
“많이 올랐더라. 오늘 종가가 8,320원이던데.”
“더 오를 거예요. 다 엄마 덕분이에요.”
떡을 입에 물고 말했는데 그 모습이 웃겼는지 백은지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한도영도 따라 웃었다.
“도영아.”
“예.”
“너, 할머니에 대해 알고 있지?”
지난번과 같은 질문.
이번에는 대답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까?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한도영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며 대답했다.
백은지는 그것을 간파하자 차가운 얼굴이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단순히 할머니가 경박하다고 할망구라고 부르진 않아. 넌 풍삼건설 사장도 아저씨 또는 사장님이라 호칭했잖아. 난 네 입에서 나온 할망구라는 말에서 경멸을 느꼈거든. 맞니?”
“네. 아마 엄마와 같은 생각일걸요. 그때 엄마도 아빠가 저 반만큼만 단호했더라면 하셨잖아요. 우리는 할머니의 치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얼굴과 목소리로 말하지 마. 꼭 40넘은 어른 같아.”
“아, 엄마 미소가 지워지면 차가워 보이잖아요. 그래서 저도 그렇게 되었나 봐요.”
한도영은 얼굴에 미소를 짓고는 떡을 하나 입에 넣으며 말했다.
“엄마. 이거 맛있어요.”
그제야 백은지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렸다.
물론 그래도 그녀의 표정은 차가웠지만.
“도영아.”
“예.”
“말해봐.”
“자세히는 몰라요. 다만 할머니가 욕심이 많으셔서 백산건설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백산건설을 장악하면 백산그룹을 얻는데, 그건 아버지 몫이잖아요.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이건 정말 괘씸한 일이죠.”
백은지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할머니를 내쫓고 싶으시죠?”
“당연하지. 아버님이 백산백화점 인천점을 주셨어. 그런데 감히 백산건설을 노려?”
백은지의 분노가 충분히 이해되었다.
“증거 있어요?”
“휴우, 있다면 내가 이렇게 속앓이를 하겠니? 2년 전에 할머니가 술에 크게 취한 적이 있었거든. 그때 그녀가 말하는 걸 몰래 들었는데, 야망이 보통이 아니더라고. 나참, 기가 막혀서.”
“아빠에게 말했어요?”
“에휴. 그 이는 신경도 안 쓰더라. 주식을 형제들이 골고루 나눠 갖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뭐, 아빠 말이 맞긴 해. 지금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백산건설 주식을 한 주도 넘겨주지 않았으니, 그녀의 욕심은 헛된 야망일지도 모르지. 그런데 괘씸하고 기분이 나빠.”
한도영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충식은 가정에 분란을 일으키기 싫어 가만히 있을 것이다.
뭐, 그의 생각이 틀린 것도 아니다.
그나마 서재은을 어머니로 대접해주는 사람은 한충식뿐이었고, 그의 동생들도 대놓고 서재은을 경멸하고 싫어했다.
그러니 서재은이 용을 써도 백산건설을 어쩌지는 못하리라 생각한 것이 당연한 판단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돈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전생에서 그들은 백산그룹 경영권에 눈이 멀어 손을 잡고 한충식을 몰아냈으니까.
“제 생각에는···.”
“말해봐.”
“만약 저들이 손을 잡고 그룹경영권을 차지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수면아래서 얌전하게 있다가 때가 되면 부상하여 일제히 아버지를 공격할 겁니다. 숙부와 고모의 지분이 20%니까 할머니와 손을 잡으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죠.”
“그들이 연합할 수 있을까?”
백은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 역시 서재은의 행동이 괘씸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서재은이 한충식의 동생과 연합한다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은 앙숙관계였다.
“큰 숙부(한강식)가 욕심 많잖아요. 대룡그룹을 보세요.”
그제야 백은지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룡그룹은 장남을 회장 자리에서 쫓아내려고 둘째, 셋째와 딸들, 사위들이 똘똘 뭉쳤다.
그들은 추악한 싸움을 벌였고 결국 장남이 승리했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그룹은 갈기갈기 찢겼고 재계서열 15위였던 대룡그룹은 30위 밖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당했다.
“그래도 그렇지···.”
백은지는 한동안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은행과 기관을 맹신하면 안 됩니다. 내부싸움이 벌어지면 그들은 관망하는 자세를 취할 거예요. 가만히 있다가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쪽으로 붙으면 이익이니까요. 만약 은행과 기관까지 손을 잡았다고 치면 48%입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지분을 얻었다 쳐도 21%이고요.”
“역전이네. 하지만 할아버지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야. 은행과 기관이 감히 할아버지에게 등을 돌리고 서재은과 손을 잡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한도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엄마. 좀 잔인하게 말해도 될까요?”
백은지는 순간적으로 한도영에게서 느껴지는 냉혹함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절대 중학생에게서 느낄 수 없는 위압감이었다.
“말해봐.”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쓰러지신다 거나 위중한 상태에 빠져 의사표현을 못하실 수 있습니다. 저들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알 테니 조용할 테지만, 만약 할아버지께서 그런 상태에 빠진다면 저들이 들고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때는 승부를 장담하기 힘듭니다.”
“으음.”
백은지는 큰 충격을 받은 듯 신음성을 흘렸다.
서재은이 마음에 들지 않아 미워했을 뿐, 그녀가 백산그룹을 어찌하지 못하리라 판단하고 있었는데 한도영의 분석을 듣자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 어쩌지?”
백은지는 한도영에게 의지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이렇게 해요. 저들이 수면아래서 움직이듯 우리도 수면아래서 움직여야 해요. 저들이 승리를 자신하고 수면 위로 올라와 아버지를 공격할 때, 우리도 수면 위로 올라가 단번에 그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어서 끝장을 내야 합니다. 다시는 그런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단번에 끝내야 해요.”
“그러니까 어떻게?”
실체가 없는 한도영의 제안에 백은지는 답답한 듯 재차 되물었다.
“외국에 법인을 만들 생각입니다. 물론 엄마와 저는 전면으로 나서지 말고, 다른 사람이 나서야겠죠. 주식투자를 통해 자금을 마련해야죠. 법인의 힘이 커지면 충분히 그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휴우, 도영아. 백산건설 주식을 모으면 곧바로 해외법인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견제가 들어갈 거야. 백산그룹의 지주회사인데 가만히 있겠니?”
“평상시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대위기가 온다면요?”
“대위기?”
“지금 엄마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할아버지가 위중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출발했잖아요. 엄마도 한국경제가 몹시 불안하다는 걸 인정하시죠. 그럼 몇 년 후에 큰 문제가 터질 수 있어요. 그걸 노린다면 충분히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길 겁니다.”
“예를 들면?”
“작년에 멕시코가 외환위기를 겪었고, IMF에 구제금융신청을 하면서 나라가 크게 혼란스러워졌어요. 한국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요.”
“에이, 설마. 한국과 멕시코는 달라. 그렇지만 도영이 네 말대로 미래는 모르니까 우리도 저들에게 맞서서 차분하게 준비하자. 기특하네. 내 아들. 언제 이렇게 컸지?”
백은지는 환하게 웃으며 한도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도영은 더는 그녀를 설득하기 어려웠기에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았다.
백은지가 그의 확실한 우군이 되었다는 것으로 오늘 대화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그녀는 한도영의 말대로 순조롭게 모든 일이 이뤄지리라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부터 대비한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서재은이 모르게 비밀병기를 갈고 닦았다가 뒤통수를 쳐서 이긴다고 생각하자, 짜릿함마저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