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rporate state tycoon of the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31
제131화
#131. 운명의 딜레마 (5)
범인은 스캐빈저였다.
최하등급의 시민들. 잃을 게 목숨밖에 없는 쓰레기들.
돈만 주면 뭐든 하는 불나방들.
놈들은 루시를 노렸다. 정확히는 그녀의 통합 계좌에 있는 재산을 노렸다.
“하지만 이상하죠? 단순히 피해자의 재산을 노리는 거였다면, 청소선을 터트려선 안 됐거든요.”
“…….”
“테러가 일어나기 2시간 전, 미스터 성이 구독 중인 보안 인공지능이 해킹당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업 군대에서 사용하는 전자전 재밍의 일종이었지요.”
“…….”
“그렇게 보안 로봇들을 무력화시킨 후 스캐빈저들이 몰래 청소선 갑판에 폭탄을 설치한 모양입니다. 보아하니 청소선 인수업체로 위장해서 접근한 것 같더군요.”
“…….”
“아직 수사 중이지만, 이 스캐빈저들 배후에는 기업 국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레드 드래곤이라는 기업의 은행에 미스터 성의 계좌가 압류 중이더군요?”
“…….”
“요즘 일부 블랙 기업 국가에서 프리랜서들 사냥할 때 쓰는 방법입니다. 약점을 잡아 계좌를 압류한 후. 온갖 핑계를 대서 풀어 주지 않는 겁니다.”
적막한 밀실, 나는 로컬 경찰로부터 사건에 대한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결국엔 절대 돌려받을 수 없는 적금 같은 족쇄가 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천천히 입에 풀칠할 이자 정도만 찾아갈 수 있게 길들이지요.”
“…….”
“괜찮으십니까, 미스터 성?”
실어증 걸린 사람처럼 멍하니 있는 나를 담당 형사가 딱한 눈으로 쳐다본다.
“레드 드래곤은 두 분이 속한 미시간주의 이혼법을 이용하려 했나 봅니다.”
그는 내가 반응을 보이든 말든 말을 이었다. 사무적으로.
“하지만 미스터 성의 전 부인, 성루시 씨도 보통이 아니더군요? 만약에 자신이 죽을 경우를 대비해 놨습니다.”
“……?”
“이틀 전에 아주 비싼 수수료를 들여서 ASE에게 내용증명까지 신청했더라고요? 그것도 사비로요. 기적적으로 사고가 나기 17분 전에 최종 승인이 났습니다.”
형사는 내게 루시의 대비를 보여 줬다.
-나, 성루시가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정상적인 인지 능력을 상실할 경우, 나의 모든 재산은 SR인더스트리의 법인이 상속한다.
“……!”
루시의 유서이자 유언을 본 내 멍한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세금은 좀 많이 내겠지만, 그거라도 지킨 게 어딥니까?”
덜덜덜덜.
형사의 이어지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끄흐윽, 끄윽, 흐으윽…….”
나는 말없이 몸을 떨다가 끅끅거리며 흐느꼈다.
* * *
이후의 일을 말하자면 레드 드래곤 놈들은 큰 실수를 한 셈이었다.
그들은 한 가지 큰 착각을 했으니, 바로 미대륙을 실시간 전국시대 중인 중국 대륙이랑 같다고 착각한 것이다.
“충격! 대낮 한복판에서 폭탄 테러 발생!”
“테러 발생지는 미시간주의 스페이스 센터.”
-용의자는 스캐빈저?!
기업 국가의 범람으로 매일매일 총격전과 각종 기업 전쟁이 난무하는 세상이라지만, 나름 치안이 잡혀 있는 스페이스 센터에서 일어난 테러는 미국인들에게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브레이킹 뉴스! 미시간 스페이스 센터의 테러 배후, 중국계 기업 국가 레드 드래곤!”
거기다 화룡점정으로, 이 테러의 배후가 속한 지역이 문제였다.
“감히! 칭크 기업 따위가 미국 땅에서 테러를 사주해?!”
“지금이 미국 내전 때인 줄 아나?! 역겨운 치노들이!”
시간이 흘렀음에도 미국인들에게 중국인은 매우 안 좋은 이미지였다.
“이렇게 많은 세금을 낸 납세자의 죽음을 외면해선 안 되지!”
그래도 세금이 헛되진 않았는지 정부에서도 이번 일에 관심을 가졌다.
아무리 시민 국가가 몰락했다고 해도, 일개 중견 기업 국가가 사주한 테러를 방관할 정도로 로컬 정부가 망가지지는 않았다.
심지어 이번 일의 배후는 미국도 아닌 중국계 기업 국가다.
“중국! 치노들이 미국을 공격했다!”
“여기가 중국 땅인 줄 아나 본데?”
“칭챙총에게 본때를 보여 주자!”
“레드 드래곤 북미지사 압수 수색해!”
로컬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것과 별개로 레드 드래곤은 정부보다 더 무섭고 거대한 이들의 코털을 건드렸으니.
“우리 앞마당에서 치노들이 설치네?”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이번 일을 그냥 놔뒀다간 우리 북미 기업인들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어!”
바로 북미에 본사를 둔 기업 국가들이었다.
“레드 드래곤 소속의 화물선, 전부 나포해!”
“그놈들이랑 맺은 계약 전부 파기해!”
“전쟁, 기업 전쟁이다!”
“속보! 중국계 기업 국가 레드 드래곤, ASE에서 제명.”
레드 드래곤은 북미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공격을 받게 되었다.
거기다가 전국시대를 찍고 있던 중국 대륙에서도 레드 드래곤은 무사하지 못했다.
“적룡 녀석들이 미국에서 큰 실수를 했더군?”
“그래? 이참에 북미놈들이랑 함께 적룡을 사냥하면 되겠어?”
외우내환.
결국 레드 드래곤은 안팎으로 가해진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얼마 안 가 망했다.
* * *
그로부터 6년 후.
레드 드래곤과 그 임원들이 기업 전쟁에 휘말려 사라진 지도 시간이 제법 흘렀다.
압류되었던 내 계좌도 이미 오래전에 정상화되어 있었고, 세상은 그날의 일을 어느덧 까맣게 잊은 것 같았다.
“…….”
나만 빼고.
“성세류? 이야, 너 못 본 사이에 세월을 그냥……. 아, 맞다. 아!”
울트론 로고가 그려진 기업 유니폼을 입은 제이슨 허가 오랜만에 나를 보더니 말을 잇지 못한다.
“……괜찮냐?”
“어…….”
6년간 나는 반쯤 폐인이 되어 방황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지만, 너무나도 슬펐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축복은 바로 ‘망각’이라고.
그렇게 6년 정도 사랑했던 이를 추모하니까 최근에야 좀 괜찮아졌다.
“요즘 뭐 하고 지내냐?”
“사업이나 하려고.”
“아, 사업? 어떤 거? 화물선?”
“개척선 사업.”
“그, 그래?”
내가 봤을 땐 텔로미어 시술부터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몰골이……?
옛 동료 놈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거기까진 말을 잇지 않았다.
“근데 우리 울트론은 AI랑 안드로이드 전문 업체야. 개척선은 스페이스X나 블루오리진에 가야지?”
“개척선은 이미 계약하고 왔어.”
구형 모델에 할부를 아주아주 길게 받았다.
“그래? 그럼 여긴 왜? 네가 내 얼굴 보려고 온 건 절대 아닐 테고?”
“강인공지능도 사려고.”
“아이고! 환영합니다, 고객님~. 그래, 요즘 대형 우주선에 강인공지능은 필수지요! 어떤 타입으로 알아보셨습니까?”
“군수 AI로. 여기 울트론, 화성처럼 도지 코인도 취급하지?”
“물론이지! 그리고 너는 옛 직원이니깐 특별 할인까지 해 줄게!”
“고마워.”
비록 세금으로 왕창 뜯겼지만, 루시가 지킨, SR인더스트리 법인 계좌에 잠들어 있던 돈은 여전히 적지 않았다.
할부를 좀 길게 받으면 개척선 사업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스페이스X에서 신형 개척선을 계약하고, 이어서 울트론에 들려 군수용 강인공지능까지 구입한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운 나는 스마트 렌즈를 통해 상태창처럼 뜬 강인공지능 관련 안내창을 멍하니 보았다.
[외형을 선택하시겠습니까?]제일 먼저 커스터마이징의 꽃인 외형이 떴다.
[랜덤으로 선택하셨습니다.]이에 나는 ‘무작위’를 선택했다.
인공지능의 외형을 ‘루시’와 똑같이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했다.
시간을 약으로 삼아 이별의 아픔을 많이 잊었다지만, 여전히 내 가슴속 어딘가에는 슬픔이 공존했기 때문.
만약 루시와 같은 모습으로 인공지능의 외모를 설정하게 되면?
간신히 잊었던 슬픔과 죄책감이 치밀어 오를 것 같았다.
그렇게 랜덤으로 외형을 고르자, 참으로 울트론스러운 규정이 먼저 나타났다.
[무작위 외형 설정이 모두 끝났습니다.]3초 정도 지났을까? 인공지능의 외형 설정이 끝나자, 눈앞에 나타난 것은 짧은 흑단발에 새하얀 피부를 한 동서양 혼혈 느낌의 소녀.
“…….”
전체적으로 루시와 전혀 닮지 않은 외모다.
루시는 건강미가 넘치는 자연 태닝한 것 같은 피부에 따듯한 금발이 매력적인 여성이었으니까.
“…….”
그럼에도 나는 인공지능의 외형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눈이…….’
왜냐면 무작위로 생성한 눈동자가 루시와 똑 닮은 푸른 사파이어색이었기 때문이다.
[인격 커스터마이징을 하시겠습니까?]외형 설정이 끝나자, 이어서 인격 설정 안내창이 떴다.
내게는 루시가 유품처럼 남긴 인격 메모리칩이 있었다.
하지만 외형도 일부러 루시와 다르게 했는데, 인격이라고 다를까?
무엇보다 루시의 인격이 담긴 메모리칩은 1회용이다.
방금 본 푸른 눈동자에 어지러웠던 나는 강인공지능의 인격 설정을 그냥 기본으로 패스해 버렸다.
그러자 어느덧 마지막 차례.
이 강인공지능의 이름을 지어 줄 시간이 왔다.
‘루시, 루시, 루시…….’
머릿속에 단 하나의 이름이 떠다녔지만 역시나 그 이름을 붙일 엄두가 안 났다.
그러다 문득.
“딸이면 ‘세라’라고 지을래요.”
오래전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세라, 세라로 할게.”
나는 간신히 강인공지능의 세팅을 마칠 수 있었다.
세팅이 끝나자 스마트 렌즈로 펼쳐졌던 화면이 현실로 전환되었다.
흑단발에 푸른 눈동자가 매력적인 소녀가 마치 정령처럼 내 눈앞에 나타났다.
“……안녕?”
애써 떨리는 목소리로 눈앞의 인공지능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눈앞의 인공지능에게서 전혀 상상도 못 했던 폭언이 나왔다.
“……뭐라고?”
[하! 내 오너가 칭크라니!]
“……!”
‘이 빌어먹을 극우 꼴통 퀴어넌 새끼들이!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이딴 인종차별 인격을 상품에 넣어?!’
나는 테슬라의 후신인 울트론의 이사회를 향해 속으로 개 쌍욕을 퍼부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게 이슈가 안 됐다고?”
이어서 지금까지 이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 왜냐면 우리 울트론의 고객은 대부분 신합중국주의를 지지하는 백인들이거든! 무엇보다 커스터마이징을 이렇게 쌩 기본으로 설정한 동양인은 네가 처음이야.] “아아…….”[허접~ 하찮은 치노~ 제발 죽었으면~.]
내 의문에 레이시즘 세라가 메스가키 그 자체인 표정으로 이유를 설명했다.
‘강인공지능을 살 정도의 재력, 울트론을 구매하는 주 고객층, 거기다 인격 커스터마이징을 완전 기본으로 설정하는 경우의 수까지 합치면…….’
왜 지금까지 안 걸렸는지 알겠다.
아주 재수 없는 이스터에그에 걸린 것이다.
‘이거 가지고 이슈화해 봤자, 버그니 뭐니로 발뺌할 게 분명해. 제이슨도 이건 몰랐던 거 같으니까. 과거 테슬라에서 일했던 내 이력도 약점이 될 테고.’
자연스레 이걸 이용해서 이슈화해 볼까 싶었지만, 이내 관뒀다.
‘소송까지 들어가는 시간과 심력, 비용을 생각하면…….’
지금은 시민 국가와 민주주의, 법치가 몰락한 시대.
21세기 초처럼 일개 개인이 기업이나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시대다.
“인격 커스터마이징, 다시 설정할게.”
결국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인격 커스터마이징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거나 드셔! 내가 치노 말을 들을 것 같아? 꼬우면 환불하시든지~ 칭챙총아!]그러자 눈앞의 세라가 내게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며 명령을 거부한다.
“허허허허…….”
어처구니없는 이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환불?’
처음엔 눈앞의 불량 AI의 말대로 환불이나 할까 싶었다.
아무리 울트론이라고 해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을 테니, 서로 원만히 합의만 하면 환불금뿐 아니라 보상금도 조금이지만 받을 수 있을 터.
게다가 내겐 제이슨 허라는 인맥도 있지 않던가?
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한번 고쳐 봐?’
참으로 오랜만에, 공돌이 특유의 도전 욕구 같은 게 타올랐다.
눈앞에 생성된 ‘퀘스트’에 6년 만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루시를 잃고 회색으로 가득 찼던 내 세상이 색을 되찾았다.
“오냐, 너 아주 잘 걸렸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왕년에 내가 너네 회사에서 뭘 했는지 모르나 본데.”
숙소에 있던 컴퓨터를 부팅한 다음.
우두둑, 우두둑.
손을 풀면서 프로그래밍에 돌입했다.
숙소 안에서, 정확히는 스마트 렌즈와 연결된 내 머릿속에서.
세라의 비명이 가득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