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114)
제114화
아르게스는 도끼를 뻗으며 대결을 청하는 하탄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오크치고는 제법 컸지만, 그래봐야 오크 수준의 이야기.
자신의 자식인 슈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일까.
하지만 아르게스는 알고 있었다. 저 오크가 휘두르는 도끼의 날이 얼마나 매섭고 위험한 것인지 말이다.
“진정, 오늘 끝장을 보자는 말인가?”
“취이익! 물론이다, 아르게스! 너 역시, 몸에 점차 충격이 쌓여가고 있지 않은가, 취익!”
역시.
이 오크들의 왕 역시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산맥 너머 인간들의 대장이 이 사실을 눈치챌지도 몰랐다.
그곳의 대장은 언제나 괴물이었으니까.
‘차라리 잘되었을지도.’
어차피 하탄과 승부를 내야 한다면, 더 이상 충격이 쌓이기 전에 빨리 끝장을 보는 것인 나을지도 몰랐다.
“…좋다. 그렇다면 너와 나, 둘이서 승부를 보도록 하지. 하나 그 전에. 내 자식은 데려가도 되겠지?”
“취이익! 물론이다, 취익!”
하탄이 기껍다는 듯이 흔쾌히 수레를 넘겼고, 아르게스는 그 수레를 받아들고 키클롭스들의 대열로 걸어갔다.
상황을 지켜보던 살라딘이 말했다.
“야, 어째 분위기가 하탄이랑 저 키클롭스들 대장의 대결로 끝날 것 같은데? 왜 우리한테 준비하라고 한 거야?”
살라딘을 바라보니, 뒤에 있던 베스킨이나 아리아, 세트 역시 동감이었는지 내 입에서 나올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아르게스라는 자가 순수한 전사였다면 당연히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로드(lord)의 자리는 그렇게 가볍지 않아.’
저 아르게스라는 키클롭스가, 자식을 납치해오는 것을 용인했던 하탄처럼 왕으로서의 선택을 한다면.
그저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도,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아르게스가 슈가 실려 있는 수레를 넘기자 키클롭스들이 슈를 묶고 있는 밧줄을 뜯다시피 하며 풀어냈다.
“왕이시여, 도련님을 찾았으니….”
처음 아르게스에게 슈의 실종을 알려왔던 호위, 브론테스가 의미심장한 말을 흘렸다.
아르게스는 잠시, 아주 잠시 고민하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하도록. 내가 하탄과 싸움을 시작하면, 그 후에 오크들을 섬멸해라.”
아르게스는 실로 이런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
그래야만 이 산맥을 인간들로부터 지킬 수 있고.
그래야만 가이아를, 키클롭스라는 종족을 지킬 수 있었다.
지금은, 전사로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보다 왕으로서 종족의 안녕을 추구해야 할 때였다.
‘미안하군, 하탄. 너 역시 왕 된 자로서 이해해주길 바란다.’
호위에게 은밀히 명을 내린 아르게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신의 애병, 묠니르를 받아 들고 하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쿵, 쿵, 쿵!
아르게스와 묠니르의 무게 때문인지, 그저 걸을 뿐임에도 지면이 흔들렸다.
“오래 기다렸다, 하탄.”
처억!
묠니르를 양손으로 잡으며 아르게스가 말했다.
“길었던 우리의 싸움, 오늘 끝장을 보도록 하지!”
아르게스의 말에 도끼를 들어 올린 하탄의 눈빛에 작은 열기가 맺힌다.
“취이이이익! 간다!!”
하탄의 아름드리나무와 같은 허벅지가 터질 듯이 부풀었다.
콰아아아앙!
포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하탄은 가타부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도끼를 든 채 냅다 아르게스에게 달려들었다.
그 난폭한 기세와 달리, 하탄의 도끼는 정밀하기 그지없는 움직임으로 아르게스의 몸 곳곳을 노렸다.
하지만 기세와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르게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흠!”
묠니르라는 무식한 이름과 다르게, 젓가락 돌리듯 망치를 회전시켜 하탄의 도끼를 차단한 아르게스의 왼손이 하탄의 얼굴을 부수러 나아갔다.
쿵!
아르게스의 주먹이 하탄을 내려치자, 그 충격파로 지면이 동심원을 그리며 깨져 나갔다.
“…취이익!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
지면이 부서질 정도의 위력이었지만, 하탄은 전혀 대미지를 받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르게스의 주먹은 하탄의 반대 손에 잡혀 있었으니까.
손에 닿는 순간, 몸을 틀어 충격을 지면으로 흘려보낸 것이다.
“취이익!”
하탄이 그대로 무릎을 치켜들어 아르게스의 하나뿐인 눈을 노렸다. 멍하니 맞으면 그대로 터져 버릴지도 몰랐다.
“흥!”
아르게스 또한 예상했다는 듯이 묠니르를 들고 있는 어깨로 하탄의 무릎 공격을 상쇄했다.
보통 어깨가 무릎을 이길 수는 없지만, 둘의 체격 차이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
“취이이이익!”
“하아아아앗!”
쾅! 쾅! 쾅!
하탄의 배틀 액스와 아르게스의 묠니르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둘 모두 타고난 힘을 기반으로 한 중병기를 다루기 때문일까.
인간 검사들의 싸움에서는 볼 수 없는 묵직함과 호쾌함이 있었다.
이변은, 하탄과 아르게스의 전투가 점차 고조되고 있을 때 시작되었다.
“…가자. 지금이야말로 왕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명을 수행할 때이니.”
호위, 브론테스가 명을 내리자, 신호를 기다리던 키클롭스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어 올렸다.
“로드께서 오크들의 왕을 붙잡고 있는 사이, 적들을 섬멸하라!”
-우오오오오오오!
브론테스는 하탄과 아르게스의 집중이 최고조가 되어 있는 시점에서, 이 불시의 기습은 하탄에게 치명타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촤라라라라락!
하탄은 키클롭스들의 움직임에는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은 채, 도끼를 회전시켜 아르게스의 팔뚝 피부를 사과 껍질처럼 벗겨내고 있었다.
“크으윽!”
오히려, 조금도 동요치 않는 하탄의 모습에 아르게스가 당황하여 하탄의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하탄이여. 그대는 동포들이 걱정도 되지 않는 것인가? 그것이 진정 그대가 원하는 왕의 길인가?”
아르게스가 피가 뚝뚝 흐르는 팔뚝을 잡으며 하탄에게 물었다.
그가 생각했던 하탄의 패도(霸道)는, 어디까지나 종족의 앞날을 생각하는 왕도(王道)가 기저에 깔려 있다 여겼다.
하나 지금 하탄이 저토록 흔들림이 없다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오크들의 목숨보다, 아르게스 자신을 꺾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긴다는 뜻이었다.
‘좋지 않다.’
비록 오크임에도 아르게스가 하탄을 인정했던 이유는, 그가 인의(人義)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건만.
지금 하탄이 보이는 태도는 그 길을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징조일지 몰랐다.
하지만 아르게스의 우려가 무색하게 하탄은 코웃음을 치며 그의 질문을 부정했다.
“취익! 신성한 전투에 잡스러운 수작을 부린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취익!”
하탄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마치 전황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듯이.
“나는 단지, 취익! 혹시 모를 수작을 대비하여 벗에게 등을 맡겼을 뿐이다. 취익!”
“벗…?”
아르게스가 하탄의 말에 무심코 키클롭스와 오크들의 전장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전황은 아르게스가 예상했던 것과 아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우워어어어어어!!”
산맥의 몬스터들이 숨죽일 함성을 지른 키클롭스가 오크 진형 중심을 향해 돌격하며 대검을 휘둘렀다.
어지간한 통나무보다 굵은 대검은 베는 것이 아니라 뭉갠다는 표현이 걸맞을 것 같았다.
덜컥!
뭉쳐 있던 오크 전사들을 피떡으로 만들기 위해 가차 없이 내리쳐지던 대검은, 그 목적을 다하지 못한 채 허공에서 뚝 멈췄다.
“이, 이게 무슨?”
당황한 키클롭스의 무릎을 타고 두 인형이 크게 뛰어올랐다.
키클롭스의 전면으로 뛰어오른 인형의 턱이 덜컥 내려가며 녹빛의 진한 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푸화아악!
“으, 으아아악!”
눈에 뿌려진 가스에 하나뿐인 시야가 잡힌 키클롭스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고.
이어, 뒤쪽으로 뛰어든 인형이 척추에서 생선뼈처럼 생긴 검을 뽑아 키클롭스의 목에 칼을 씌우듯이 목 양편에 걸어 바닥에 내리찍었다.
쿠우웅!
“크윽!”
키클롭스가 일어나려 했지만.
“어지간하면 움직이지 말지? 일어나면 네 목, 길로틴에 걸린 죄수 가지마냥 떨어져 나갈 테니까.”
목이 떨어질 상황에서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살라딘은 ‘실’을 꺼내 키클롭스의 목을 감아 제압한 뒤.
미미와 네네를 움직여 주변의 오크들을 도왔다.
“아, 진짜! 힘들어 죽겠네! 저 인간이 오자마자 매번 이게 뭐야!”
절규하는 살라딘과 반대 방향. 키클롭스들이 무리 지어 오크들의 좌측 진형을 무너뜨리려 몰려갔다.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키클롭스들답게 하나같이 그 덩치에 맞는 중병기를 들고 있었으니, 오크 진형이 철거되는 쪽에 가깝다고 봐야 했다.
“서둘러 좌측을 무너뜨린 후 중앙으로 힘을 합친다!”
“우워어어어어!”
키클롭스들이 들고 있는 워해머와 배틀 액스, 모닝 스타 등을 휘두르려 했지만.
화르르르륵!
“앗, 뜨거워!”
키클롭스들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들고 있던 중병기의 온도가 급속도로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사실, 몬스터들 가운데 대장장이라 불리는 키클롭스들이 겨우 무기의 온도가 좀 올라갔다고 만지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지만.
하지만 아무리 불에 친숙한 그들이라도, 뜨겁다 못해 녹아내리고 있는 무기를 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제가 한다니까요?! 세트 공자는 저리로 가세요, 좀!”
“이상한 말을 하는군. 내가 먼저 이쪽을 담당하겠다 했으니, 영애가 자리를 옮기는 것이 맞지 않은가?”
“그러니까, 나는 당신 말에 동의한 적이 없다니까요!”
불꽃이 장기인 세트와 아리아. 이 둘의 화염이 함께 하모니를 이루며 키클롭스들의 무기를 노리니, 아무리 키클롭스들의 무기라도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거기다, 묘한(?) 경쟁심 때문인지 이들은 더욱 열성적으로 키클롭스들의 무기를 녹여댔다.
“제길! 그냥 밟아버려!”
무기를 놓쳤다고는 하나, 키클롭스의 덩치는 오우거보다도 크다.
그냥 싸워도 오크들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취이익, 우릴 아주 쓰레기로 보는군. 취익!”
무기 하나 없이 맨손으로 달려드는 키클롭스들을 보며 카심과 바돌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검은 낫 부족의 족장, 카심.
그리고 푸른 검 부족의 족장, 바돌.
그들의 부족 이름처럼, 거대한 대겸(大鎌)과 대검(大劍)을 꺼내든 두 족장이 키클롭스 무리를 막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빛나는 공적을 세우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 발이…?!”
오크 족장들에 가로막힌 키클롭스들 외에 나머지 이들은 옆으로 빠져 나아가려 했지만,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점차 느려지는 발걸음에 절로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쩌저적!
점차 느려지던 다리는, 종래에는 결국 바닥과 통째로 얼어붙어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이상은 그 누구도 지나갈 수 없다.”
얼음의 기사, 베스킨.
그가 내뿜는 냉기는, 화산지대에 사는 키클롭스들에게 쥐약이나 다름없었다.
아르게스의 최측근, 브론테스는 오크 진형 우측으로 향했다.
다른 곳들이 예상치 못한 방해에 막히는 것을 본 이상, 우측이라도 확실히 부숴버려야 오크들의 진형 안에서 난전으로 이끌어낼 수 있었으니까.
“여기라도 확실히 부숴야만 한다!”
“우워어어어어!!”
좌측이나 정면과 다르게 우측은 단 한 명의 인간과 오크들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오크 부족장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
그렇다면 좌측과 정면의 전황으로 볼 때, 우측 역시 주의할 것은 저 인간뿐일 것이다.
“저놈은 내가 맡는다! 너희는 오크들을 서둘러 처리해라!”
“예!”
브론테스는 아르게스의 보호를 담당할 정도로 강인한 무력을 자랑했다.
고작 인간 하나에 많은 동족들을 투입하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시간이 없다, 어서 이쪽을 무너뜨리고 다른 곳을 지원해야 해!’
스르릉!
브론테스가 다른 키클롭스들과 다르게 얇고 긴 쌍검을 꺼냈다.
체격에 비해 작다 못해 초라하다 생각될 정도로 작은 무기였지만.
그의 손에 쥐어지자 섬뜩하리만큼 날카로운 예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각오해라, 인간!”
촤라라라라락!
브론테스의 검격이 빛과 같이 빠른 속도로 목표인 인간이 있는 지점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흡사 팔이 여섯 개로 보일 정도로 빠른 검격.
보지 않아도 뻔했다.
인간의 작은 몸은 단숨에 어육처럼 다져졌겠지.
‘고통은 주지 않았다.’
브론테스가 인간이 있던 장소를 뒤로하고 다른 키클롭스들과 함께 오크를 잡기 위해 시선을 돌리자.
“어…?”
그는 바보 같은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돌아본 오크들의 진형에는, 함께 움직였던 키클롭스들이 어느새 쓰러져 있었으니까.
“너희, 들이 왜…?”
“이야, 이거 참.”
쓰러진 부하의 머리 옆에서 한 남자가 볼을 긁으며 나타났다.
분명, 방금 전 어육처럼 다져졌을 거라고 생각한 인간 남자였다.
“네놈이 어떻게?!”
“이것 참, 미안하게도 말이지.”
남자, 제롬이 볼을 긁던 손을 떼며 말했다.
“너처럼, 베는 무기를 쓰는 녀석들이 제일 상대하기가 쉬워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