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142)
제142화
“헥사곤 중 하나를 참하는 것. 그게 내가 아버지께 부탁할 일이야. 그래서….”
“잠깐, 잠깐잠깐. 공자님, 얘기가 너무 급하게 흘러가서 따라가지를 못하겠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말한 대로야. 알다시피 아란달 경은 아버지를 따를 뿐 중립을 지키고 있고, 베스킨 경은 나와 함께 올리비아로 떠날 예정이지. 그러니 남아있는 네 명의 헥사곤 중 하나를 참하면 당연히 양측 진형의 균형이 무너질 수밖에.”
양측을 지지하는 핵심 인력 중 절반이 떨어져 나가는 셈이니, 후계자 자리를 다투는 이들의 힘이 한쪽으로 급격히 쏠릴 것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헥사곤을 왜 조지냐구요! 와이번 잡다가 뇌라도 쪼아 먹히셨어요? 그런 부탁을 영주님께서 들어주실 리가 없잖아요!”
드웨인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의 음성에서 혼란이 가득한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드웨인이 저렇게 반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헥사곤(hexagon).
카르비어트 백작가를 떠받드는 여섯 개의 방패.
신성제국의 침략을 막는 상징이자 든든한 기둥과도 같은 존재였다.
당연히 방패가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위상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런 헥사곤 중 하나를 참하겠다 말하였으니,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겠지.
“들어주실 거야. 그자가 신성제국과 내통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통이고 지랄이고 간에…엥?”
생각지도 못한 얘기를 연달아 들은 탓인지, 드웨인의 반응이 반 박자씩 늦었다.
“내통? 내통이요? 헥사곤 중 하나가? 다른 곳도 아니고, 신성제국이랑?”
드웨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그야 믿기 힘들겠지. 사실 나라도 반대 입장이었다면 헛소리로 치부했을 것이다.
헥사곤은 아주 오랜 세월 카르비어트 백작가와 함께 왕국을 지켜온 이들.
이들은 왕국이 아니라 백작가에 모든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다.
당장, 베스킨만 하더라도 과거 하탄과의 싸움 당시 왕국과 가문 중 무엇을 우선하겠느냐고 묻던 내 질문에 가문이라 말했었으니까.
왕국을 배신하면 배신했지, 카르비어트 백작가는 배신하지 않을 거라 불리는 이들이 다른 곳도 아니라 하필이면 신성제국과 내통을 했다니.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전생에 결정적인 순간 그자의 배신으로 인해 가문이 무너졌던 일을.
한스의 도박장에서 축적한 재물을 들고 제국으로 튀어 떵떵거리며 산 그 쓰레기를 벌할 때, 반성은커녕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던 그자의 표정을 말이다.
내 말투에서 장난이 아닌 것을 느꼈는지, 드웨인의 목울대에서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증거는, 증거는 있습니까?”
드웨인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게 물었다.
드웨인이 느끼기에, 그간 반텐에 있으면서 봐왔던 바쿠스의 성정은 공명정대했다.
아무리 헥사곤이라 하더라도, 내통했다는 증거만 명확하다면 가차 없이 벌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드웨인의 기대를 나는 또 다시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쉽게도 하나도 없어. 나 역시 도박장에서 우연히 알아낸 거라.”
“아니, 씹.”
드웨인의 입에서 기어코 된소리가 터져 나왔다.
“총체적 난국이잖아요, 이거. 증거가 있어도 그쪽 후보랑은 척질 각오를 해야 할 판인데, 증거도 없는데 이걸 들이민다고요? 어쩌시려는 겁니까?”
“그러니까 그걸 네게 물어보는 거지. 네가 내 책사잖아?”
“…후우.”
드웨인이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이거, 분명히 욕하려다 참은 거군.
“…일단 상황을 정리해보죠. 그러니까, 공자님께서는 올리비아로 떠나기 전에 그 내통한 자를 처단하고 싶고, 동시에 그 내통한 자가 따르는 분께도 원한을 사고 싶지 않다는 거잖아요?”
“뭐, 그렇지?”
깔끔한 드웨인의 정리에 나는 고개를 절로 끄덕였다.
“하지만 공자님께는 증거도 없는 상황이고요, 그렇죠?”
“그것도 맞아.”
“…후우.”
드웨인이 다시금 호흡을 고르더니, 이내 발작하며 달려들었다.
“에라이, 양심에 털 난 호로…!”
퍽!
“끄응, 방법이 없어요. 일단은 단계별로 풀어갈 수밖에요.”
달려들었다가 한 대 맞고 기절했던 드웨인이 눈가에 계란을 문지르며 말했다.
“우선은, 증거입니다. 증거부터 모아야 그다음을 생각할 수 있어요.”
“증거라….”
“증거만 있으면, 터뜨리는 시기왕 방법에 따라서 오히려 그 후보자를 논리적으로 납득시킬 수도 있겠죠. 따르는 이의 배신을 조금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점에서 감점 요소는 충분하니까.”
지극히 맞는 말이었다.
“우선은 영주님께서 내리시는 시험이 뭔지부터 한 번 두고 보시죠. 그 내통자도 생각이 있다면 자신이 따르는 후보자를 영주로 만들어야만 내통자로서 행동반경이 넓어질 테니, 분명히 무언가 일을 벌일 겁니다.”
그 말대로였다. 전생처럼 아버지가 타계한 후라면 모를까, 지금과 같이 건재한 상태에서 모반을 일으키진 않을 테니.
그렇다면, 드웨인 말대로 멀리 보고 후계자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할 확률이 높았다.
“고맙다, 드웨인. 네 말을 들으니 조금 머릿속이 정리되는 것 같네.”
“줘 패고 난 다음에 그런 말하셔 봐야, 하나도 안 기쁩니다. 아 참, 도박장주는 꼭 털어보십시오. 증거를 거기서 얻었다는 건, 도박장주도 분명 연관이 있다는 말일 테니까.”
드웨인의 말대로였다. 조만간 소집될 회의 시간 전에, 한스를 먼저 털어서 혹시 모를 증거가 없는지 확인해봐야겠다.
* * *
촤르르르르륵!
“으아아아아!! 됐다!!”
“아오, 썅! 도대체 왜 난 한 번이 안 터지냐!”
오늘도 여전히 대성황인 도박장이었지만, 장주인 한스는 최근 최악인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진짜로 다 가져가다니….”
며칠 전, 영주님의 ‘심복’은 자신이 그동안 모아왔던 모든 재물을 털어갔다.
두 배로 쳐서 되돌려준다고 했지만, 한스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바보가 아니었다.
이건 명백한 계약 위반이었다.
자신은 그에게 온갖 재물을 바쳐 자리를 보전받고, 그는 그 대가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리를 보전하는 대가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자신의 몫(?)으로 모았던 것까지 모조리 빼앗아갔다.
만약 그가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한스는 청춘을 다 바쳐 모아온 것들을 단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게 될 처지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에게 따질 수도 없었다.
검을 뽑을 필요도 없이 그가 손가락만 까딱여도, 아니 콧김만 힘차게 불어도 자신 정도는 언제든 처치할 수 있었으니까.
‘내가 어리석었어. 애초에 기울어진 연무장이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그가 신뢰를 지켜오며 거래를 해왔기에 별문제가 없으리라 여겼건만, 그것은 한스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그는 그저 키우는 돼지가 먹기 좋게 살이 오르기를 기다렸을 뿐이었다.
그 허탈감에 한스의 기분은 밑도 끝도 없이 가라앉기만 하고 있었다.
“어째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저기압인 한스와 정반대로 쾌활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썅! 어떤 새끼가…!”
한스가 신경질적으로 욕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유일하게 조심해야 할 상대는 심복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재물을 다 털어간 이후로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더 이상 한스에게 어떤 볼일도 없다는 듯이.
그러니, 더 이상 자신이 눈치를 볼 이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오랜만이야?”
목소리의 주인을 두 눈으로 바라보기 전까지는.
“사, 삼공자님….”
‘젠장, 하필이면… 큰일이군.’
욕을 한 대상이 삼공자라는 사실에 한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아니야, 차라리 잘되었어. 지금이 바로 갈아탈 마지막 찬스다.’
과거 자신을 호되게 두들겨 패고, 만드라고라와 보물을 갈취해갔다고는 하지만, 그 후 단 한 번도 도박장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그 말인즉, 자신이 생각했던 소기의 목적만 이루면 더 이상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털썩!
생각을 순식간에 정리한 한스가 결심한 표정으로 제롬에게 무릎을 꿇었다.
“삼공자님, 부디 거두어주십시오! 시키시는 건 뭐든지 하겠습니다!”
‘…이 자식 왜 이래?’
드웨인의 조언대로, 회의가 시작되기 전 한스를 흔들어 내통자 관련된 뭔가를 얻을 게 없을까 해서 온 것뿐이었다.
기분이 가라앉아 보이는 한스를 건드려 흔들려 했을 뿐인데, 갑자기 냅다 고개를 숙여오니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여기서 당황한 티를 내서는 안되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너는 ‘그’가 뒷배를 봐주고 있지 않나?”
뿌드드드득!
떠보기 위해 던진 질문에 한스의 이가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자는… 저를 단지, 도구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간의 제 충성을 저버리고, 제 모든 것을 빼앗아갔습니다.”
원독에 가득 찬 눈빛을 흘린 한스가 이내 벌떡 일어나더니 장주실로 향해 무언가를 들고 나왔다.
“이것을 봐주십시오. 가문을 거치지 않고 ‘그자’에게 바쳐왔던 목록입니다.”
한스가 내민 것은 다름 아닌 이중장부였다.
그 안에는 내통자에게 바쳤던 재물의 목록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일이… 너무 잘 풀리는데?’
너무 술술 풀리니, 오히려 내통자가 역으로 꾸민 함정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사실 일이 이렇게 수월히 풀리게 된 것은, 내통자가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제롬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점.
지금과 같이 중요한 시기에 굳이 도박장의 장주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후보자는 아무도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 마음 놓고 한스의 모든 것을 갈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한스가 생각보다 독하다는 점.
내통자를 따르며 그 긴 세월 동안 자기 주머니를 차는 것은, 보통의 간 크기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통자는 그런 사실을 간과했었다. 한스 따위가 자신의 뒤통수를 치리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지만, 그것을 알 리가 없는 제롬 입장에서는 의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장부를 어떻게 믿지?”
“믿어주십시오. 그 긴 세월 간 만들어온 장부입니다. 수색해보시면, 그자의 방에 장부의 품목 중 다수가 존재할 것입니다.”
장부에 적힌 보물들은 확실히 금방 소비할 만한 물건들은 아니었다.
그만큼 진귀한 것들이었으니, 뒤져본다면 분명 증거가 나오기야 하겠지.
“이 장부를 주는 것에 대한 대가는?”
한스같이 독한 인간이 이런 결정적인 물건을 냉큼 줄 리가 없었다.
분명 원하는 것이 있을 터였다.
“장주직을 유지해달라는 요구 따위 하지 않겠습니다. 저 역시 그 자에게 당했다고는 하나, 그동안 가문에 저지른 잘못이 있는데 어찌 그런 뻔뻔한 요구를 원하겠습니까. 그저, 제 안전과 약간의 재물만 보장해주십시오.”
‘장주직을 포기한다라….’
얼핏 들으면 반성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한스라는 인간은 그런 인간이 아니었다.
전생에 내통자가 제국으로 넘어갈 때, 혼란을 틈타 한스 역시 제국으로 넘어가 새로운 도박장을 차려 떵떵거리며 살았으니까.
지금 이야기도 분명 숨긴 속내가 있을 것이다.
‘어차피 그자가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는 한스를 가만둘 리가 없으니, 목숨이라도 건져보겠다는 생각인가 보군.’
조금도 다른 뜻이 없다는 듯이 머리를 숙이고 있는 한스를 보자, 나도 모르게 살의가 치솟았다.
…역겨웠다.
아무리 내통자라 해도, 자신이 오랜 기간 따르던 이였을 텐데. 협박거리를 만든 것도 모자라 순식간에 주인을 갈아타려는 모습이 말이다.
‘내통하는 놈이나, 뒤로 호박씨 까는 놈이나. 끼리끼리 놀고 앉았네.’
생각 같아서는 머리를 깨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참아야만 했다.
이 자리에서 한스가 죽어나가면, 내통자 놈이 이상한 기류를 느낄 지도 몰랐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결정적인 증거를 가져왔는데, 벌을 줄 수야 없지. 후계자 다툼이 끝나기 전까지는 얌전히 장주로서 임무를 다하고 있도록.”
한스에게서 장부를 받으며 애써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꺼냈다.
“카르비어트 백작가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후계자가 되는 자는 반드시 너와의 약속을 지킬 거다.”
굳건한 내 목소리에 한스가 비로소 안심이 되었는지 거듭 고개를 숙여왔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제가 도와드릴 것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간신배 같은 이 종자와 더 얽히고 싶지 않아, 굽신거리는 한스를 보며 손을 휘저었다.
“됐다, 이 장부면 충분하니까. 도박장이나 잘 관리하고 있도록.”
휙!
도박장 밖으로 몸을 빼낸 나는 곧장 드웨인에게 향했다.
기대도 없이 찾아갔던 도박장에서 핵심적인 정보를 빼갔으니, 아마도 녀석의 계획이 훨씬 더 정교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 상태로 흘러간다면, 다음 세대의 후계자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터뜨릴 일만 남았다.
‘기다려라. 곧, 그간 누려왔던 그 영광스런 자리에서 끌어내려 줄 테니.’
자신이 기르던 개에게 물린 채 말이다.
물론, 주인을 문 개 역시 계속 키울 수 없으니 나중에는 삶아야 하겠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길을 지나며, 나는 드웨인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후계자를 결정할 회의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