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151)
제151화
“어떻게 말이냐?”
“드래곤 산맥에서 제가 포로로 사로잡은, 십이대주교 처녀궁(處女宮) 루나를 이용하는 겁니다.”
처녀궁, 루나. 그녀는 크랭크 후작, 그리고 보병궁(寶甁宮) 딩고와 함께 드래곤 산맥에서 우리와 부딪혔던 제국의 대주교다.
그녀는 우리에게 투항했고, 나는 황금사자교에 구류되어 있는 그녀의 어머니를 구해줄 테니 그녀에게 진심으로 나를 따르라 제안했었다.
‘아직 그 제안에 대한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그 전까지의 약속은 이행할 수 있겠지.’
후계자 건 때문에 정신이 없어 아직 계획을 실행하지 못했지만, 원래 준비했던 계획은 그녀가 대외적으로 ‘이바렐라의 음모로 인해 본인만 살아남았다.’라는 내용을 공표하는 것이었다.
“다르칸이 내통자로 제국에 넘어갔다고만 발표한다면 저희 가문을 가신 하나도 똑바로 간수하지 못하는 칠푼이로 보는 이들이 생겨나겠지만, 루나의 이야기를 함께 공표한다면 그 평가는 완전히 바뀔 겁니다.”
세상사가 그렇다. ‘가문 내부에 첩자가 있다.’는 내용만 발표하게 되면 자연히 어느 가문인지에 관심사이 모이게 되지만.
‘명문가인 방패가에 첩자를 심었다.’ ‘제국 일황자와 이황자 측의 4후작과 십이대주교가 대거 사망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단 한 명의 어린 황녀가 계획했다.’라고 발표하게 되면.
‘그런 대담한 행동을 한 황녀가 대체 누구인지가 관심사가 되지.’
게다가 이바렐라는 과거 필라도르 왕국의 반란에 개입했던 전적이 있는 상황이었다.
이번 건과 잘 엮는다면, 그때의 사건까지도 함께 부각될 것이다.
“자연히 제국 내 황자들은 이바렐라를 본격적으로 견제할 것이고, 연맹의 국가들 역시 그녀에 대한 인식을 바꿀 겁니다.”
“…음해 공작은 별로 취향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눈길이 바닥에 뒹구는 다르칸의 머리로 향했다.
“당한 것은 갚아 주어야겠지. 왕국의 방패, 카르비어트 백작가는 적을 앞에 두고 결코 꼬리를 말지 않는 법이니까.”
마침내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졌다.
‘드웨인과 함께 계획을 좀 더 구체화해 봐야겠네.’
이바렐라에게 줄 엿을 조금 더 예쁘고, 보기 좋게 다듬어야 했으니까.
* * *
폭풍 같은 사흘이 지나갔다.
형과 누나는 여전히 시련의 관에서 개고생 중인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누군가는 시련의 관에서 이뤄지는 시험이 가혹한 것 아닌가 걱정하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차라리 나도 그냥 시험이나 쳤으면 좋겠다.’
생각지도 못했던 후계자 안건으로 인해 뒤로 밀렸지만, 사실 해야 하는 일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첫째, 기존 엘프들 외에 키클롭스, 라이칸스로프와의 새로운 교역로를 개척해야 했다.
둘째, 웬디널 가문에 가공된 와이번 날개 비늘을 전해 대마법 갑옷을 분쇄할 디스펠 병기를 개발해야 했다.
셋째, 와이번 사냥을 도와준 대가로 오시리스 왕국의 대삼현 이슈바르를 구할 약초, 패오니아를 구해주기로 세트와 약조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이바렐라의 입지를 좁혀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루나의 설득이 필수였다.
무엇 하나 뒤로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일들이었지만.
‘교역로야 어차피 관리직인 게이블 남작이 고생해줄 거고, 디스펠 병기는 아리아가 맡아주겠지. 그리고 이슈바르의 치료는 군도에서 패오니아를 구할 때까지 시간이 더 필요해.’
마수의 숲을 나온 후 헤어진 세트와 아리아로부터 각각 답변을 받았다.
디스펠 병기의 연구는 시간이 필요하고, 오시리스 왕국에 있는 이슈바르의 건강은 당장 걱정할 상황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루나의 투항 조건으로 내걸었던 사안. 황금사자교에 붙잡혀 있는 처녀궁, 루나의 어머니를 구해내야만 했다.
사흘 전, 아버지와 이야기를 끝낸 후 나는 루나를 찾았다.
“…정말 구해줄 수 있나요?”
루나는 내가 말을 꺼내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할지 예상했는지, 딱 한 문장만 물어왔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 또한 루나의 질문에 한 문장으로만 대답했다.
“…하아. 차라리 처음처럼 반드시 구해 내겠다고 말했으면 마음 편히 거절하려 했는데.”
“솔직히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으니까요. 산맥에서 뭣도 모르고 떠들었던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루나가 나를 흘겨보았다.
“그럼 제 입으로 황자를 배신하는 말은 안 꺼내도 되는 거죠?”
“물론입니다. 그렇게 발언하면 당신의 제국에서의 입지가 엉망이 될 테니. 대신 어머니를 구할 때까지는 가련한 비운의 대주교를 연기해 주시죠.”
그렇게 루나와의 은밀한 뒷거래(?)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각, 사각.
드웨인과 상세한 계획을 만들어내기 위해 전략 초안을 작성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
사각, 사각!
한층 더 초안을 작성하는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
사각사각! 사각사각!
“…….”
‘아, 진짜 신경 쓰이네.’
사실, 일이 많은 거야 상관없었다.
비록 뒈지게 고생하고 있었지만,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으며 가문의 오랜 배신자도 뿌리 뽑을 수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시련의 관에 들어간 형과 누나를 부러워한 이유는.
문서를 작성하는 내 앞에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는 한 사람 때문이었다.
…사각.
아무리 눈길을 의도적으로 서류에 고정하려 해도, 미간이 뚫어질 것 같은 시선에 결국 펜대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
어머니, 엘레나 폰 카르비어트는 사흘째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계속해서 나만 빤히 쳐다보았다.
휴.
‘더는 안 되겠네.’
언젠가 말씀을 하시겠지, 하시겠지 하고 기다린 것이 벌써 사흘째였다.
“어머니, 보시다시피 제가 해야 하는 일이 좀 많습니다.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면….”
“정말로 변했구나.”
사흘간, 나를 빤히 바라만 보던 어머니께서 한 첫마디였다.
게이트에서 그 난리를 쳤으니 분명 나에 대한 소문을 접하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 봐, 어머니는 직접 자신의 눈으로 나를 관찰하고 비로소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무려 사흘 동안이나 말이다.
“아니지. 단순히 사람이 변했다, 라는 말로는 지금 네 극적인 변화를 모두 설명할 수가 없지.”
날 구석구석 살피던 어머니의 시선이 내 눈으로 향했다.
별빛처럼 맑게 빛나는 그 눈은 속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었다.
“지난 사흘간 혹시나 네 영혼이 누군가와 바뀐 것은 아닌지, 네가 내 아들인 척하는 마족은 아닌지 확인하고 있었단다.”
‘…그게 확인할 수 있는 거였어?’
아무렇지 않게 엄청난 말을 한 어머니는 내 반응이 어떻든 간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니더구나. 네 영혼의 파장, 그리고 습관, 눈빛… 그 모든 것이, 네가 진짜 제롬이라고 말하고 있어. 아니, 오히려… 영혼의 격이 올라갔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구나.”
어머니는 사흘간 나를 확인하며 거의 진실에 가까운 대답을 도출하고 있었다.
과연 ‘이데아에 다다른 자’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았다.
“네가 왜 후계자 시험을 보던 그날 도전했을까 고민해 봤단다. 아마도 명분을 쌓기 위해서겠지?”
제롬의 행적은 이미 반텐에 널리 알려진 상황. 누가 보아도 유력한 후보로 제롬을 꼽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명분도 없이 후계 지위를 사임한다면, 납득하지 못하는 이들이 분명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당장 아레스나 메르시부터가 인정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제롬은 시련의 관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그것은 이미 발생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후계자 자리를 사임한다 하여도 아쉬워하는 이들은 있을지언정, 대부분 납득은 하리라 여긴 것이다.
반텐의 후계라는 자리는 그런 자리니까.
“하필이면 그날 터뜨린 이유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야. 다르칸은 메르시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 중 하나지. 그런 그가 쓰러졌으니, 시련의 관 결과와 상관없이 후계자는 이미 결정된 거나 다름없어. 아마 네가 원하는 후계자는 아레스겠지? 고지식한 그 아이라면 반텐을 누구보다 견고하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너무 정확해서 더 할 말이 없었다.
“부정하지 않을게요. 제가 남부로 가서 맘껏 분탕질을 치기 위해서는 반텐이 든든하게 받쳐줘야 하니까요. 아무래도 그런 면에서는 누나보다 형이 낫죠.”
“도대체 어째서니?”
함축적인 한마디.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겨우 한마디가 아니었다.
“네가 어떻게 아버지나 이 어미를 속이며 그간 능력을 숨겨 왔는지는 묻지 않으마. 쟁쟁한 형이나 누나를 보며 네 나름의 이유로 발톱을 감추었던 것일 수도 있겠지.”
“…….”
“하지만 어째서 후계자를 포기했는지, 이 어미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지금 네 능력이라면 충분히 직접 반텐의 후계를 노려볼 수 있을 텐데.”
‘노려볼 수 있다라.’
말과 달리 어머니도, 나도,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다.
노려보는 것이 아니라, 후계자에 가장 가까운 자가 나라는 것을 말이다.
“어머니. 아버지께 들으셨겠지만 전 올리비아로 떠나기로 율리우스 왕자님과 약조했습니다.”
“네가 원한다면 그 약속, 내가 없던 일로 물려주마. 내가 지금껏 에디르네에서 이케니아 왕가를 위해 해준 것이 얼마인데.”
그간 어머니의 행적을 생각하면 파격적이다 못해 사람이 낯설 정도의 제안이었다.
‘아쉬우신 거겠지.’
아마 틀림없이 아버지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나와 얘기를 끝낸 상태니 당연히 씨알도 안 먹혔을 거고, 그러니 내게 직접 오셨겠지. 안 봐도 훤하다.
“과거에 네가 벌레로 불리든 아니든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아. 지금의 네가 반텐의 후계자가 된다면, 카르비어트 백작가는 검가를 뛰어넘어 왕국 최고의 가문으로 자리를 확고히 할 수 있을 거야.”
역시 그 이유 때문이었구나.
어머니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내가 반텐에 남고, 형과 누나가 나를 보좌한다면 반텐은 왕국의 압도적인 최고의 영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국에 연맹이 무너진다면, 그런 허명이 전부 무슨 소용이겠는가. 파도 앞에 놓인 소금 기둥처럼 허망한 명예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일.
“어머니, 저를 품기에 이 반텐은 너무 작아요.”
“반텐이 작다고?”
어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5국 연합 하나하나의 국가 크기와 비슷한 이 거대한 대지가 작다고 하니, 어이가 없으시겠지.
“반텐은 위로는 드래곤 산맥과 신성제국이, 옆으로는 마수의 숲이, 밑으로는 왕국 영지들로 가득 차 있어요. 영향력을 넓히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그건 다른 영지들도 마찬가지다. 왕국은 영지전을 허용하지 않고 있으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올리비아를 선택한 거다.
“영지전이나 연맹과의 싸움은 허용하지 않지만, 그 외의 세력이라면 어떨까요?”
“그 외의 세력…? 너, 설마?”
아버지가 이건 얘기하지 않은 모양이군.
“맞아요, 어머니.”
내 계획의 가장 핵심.
“전, 군도를 삼킬 거예요.”
* * *
제국의 새하얀 대전(大殿).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의 모든 왕궁 중 가장 존귀하다고 평해지는 이곳, 비잔티움은 바로 제국의 황제가 기거하는 궁이었다.
궁의 중심인 옥좌에는 한 노인이 턱을 괸 채 나른한 표정으로 성기사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리하여, 폐하를 위해 와이번 기사단을 만들겠다는 신성한 뜻을 품은 채 위대한 원정에 오른 폐하의 창들과, 그리고 주신의 거룩한 종들이 신의 곁으로 떠난 것이 아닌가….”
성기사의 온갖 미사여구에 끝도 없이 말이 늘어지자, 노인이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아아. 그만, 그만. 그러니까 무려, 황자들을 따르던 4후작 중 두 명과 십이대주교 중 네 명이 뒈졌단 말이잖나?”
너무도 원색적인 표현에 보고를 올리던 성기사는 잠시 표현을 가다듬은 후 황제의 질문에 대답했다.
“예. 감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아마, 주신의 부름을 받고 떠나신 것이 아닌지 추측하고 있습니다.”
“주신의 부름은 무슨. 이바렐라한테 밀릴 거 같으니 과욕을 부리다가 있는 것까지 병신같이 싹 털린 걸 가지고 잘도 포장하는군.”
“…황공하옵니다.”
더 이상 표현을 가다듬는 게 불가능했던 성기사는 그저 의례적인 문구로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병신 같은 놈들. 제국의 귀하디귀한 전력을 그렇게 허무하게 소비하다니. 당장에 목을 쳐도 이상하지 않음이야.”
노인은 제국의 귀하디귀한 전력을 대거 소실하였음에도 태연하기만 했다.
이내 기지개를 쭉 켠 노인은 옥좌 뒤에 태산같이 서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자네도 그리 생각하지 않나, 카이저 공작?”
남자의 이름은 카이저.
제국의 수도 내성을 지키는 3공작 중 하나였다.
“…폐하. 쇼프 후작은 수도 외성을 사수하던 유능한 인재였으며, 크랭크 후작 또한 제국 중부 전선에서 간악한 연맹국 놈들이 얼씬도 하지 못하게 막던 맹장이었습니다. 그리 가벼이 생각하실 사안이 아닙니다.”
노인, 아니 황제 베드로 폰 헤카론 3세는 카이저의 대답에 입을 가린 채 웃었다.
“쿡쿡쿡, 그런가. 제국의 신하가 아니라 개인의 신하들이라 그런지 헛말이 나왔구만. 내 주의하지.”
“…황공하옵니다.”
가시가 가득한 말을 내뱉으며 베드로 황제가 웃고 있을 때.
쾅!
성기사 하나가 어전의 문을 열고 황급히 뛰어왔다.
“무슨 일인가! 감히 폐하가 계신 곳에서 이 무슨 무례란 말이냐!”
“죄, 죄송합니다! 너무나 급박한 사안이라 그만!”
성기사가 머리를 숙인 채 외쳤다.
“카, 카르비어트 백작가에서 대륙 전체에 성명서를 내며 제국에 공식적인 항의문을 보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