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182)
제182화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는 상황을 직면하면 할 말을 잃는다 하던가.
슈타트 역시 그 말을 들어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삶을 사는 범부(凡夫)들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렇기에 슈타트는 놀라긴 했어도 당황은 하지 않았다.
제롬이 기묘한 술수를 써서 성기사들의 발목을 잡았을 때도 주제에 숨겨둔 한 수 정도는 있었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여태껏 대륙의 많은 일들을 처리하며 쌓아온 명성이 있으니 그 무예 솜씨 또한 어느 정도는 갖추었으리라 예상했기에, 설사 자신들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몇몇 기사들을 피떡으로 만들었을 때도 상정했던 기준보다 조금 더 높다고만 판단했다.
요컨대, 분노가 일었던 것일 뿐이지 당황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소소한 변수는 있을지언정, 큰 줄기의 계획에는 약간의 흔들림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슈타트는 자신이 그동안 범부들의 사고라 폄하해온 그 감각이 뭔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제롬이 준비한 함정은, 자신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아니. 이건 카밀 공작 각하나, 황도 바티칸에 계신 제국의 미래이신 삼황녀님이라도 감히 예상하시지 못할 것이라는 불경스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크르르르르!
기슭의 높디높은 나무 사이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황소만 한 늑대들이 날카로운 이를 보이며 으르렁거렸다.
단지 늑대뿐만이 아니라, 늑대의 옆에는 거대한 도끼나 블레이드 와 같은 무지막지한 병기를 들고 있는 오크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산맥에 숨어 사는 몬스터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잘 정련된 무기를 들고서 말이다.
기슭 옆의 돌산에서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외눈박이 거인들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사람 몸통보다도 거대한 태도(太刀), 그리고 창을 어깨에 걸친 채.
대륙의 그 어떤 식자(識者)가 이런 조합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가장 어이가 없는 건, 그 두 종족의 대표로 보이는 이들이 이쪽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는 거다.
“크륵! 제롬, 고생이 많았군.”
“그놈들이 북벽(北壁)의 졸개들인가?”
점입가경이다. 몬스터가 인간의 말을 해?
그 미친 광경을, 마치 익숙하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반기는 유일한 인간이 있었으니.
바로 자신들이 목표로 삼은 방패가의 삼남, 제롬이었다.
* * *
‘다행이다. 늦지 않았어.’
신성제국으로의 여정. 애초에 이 여정을 시작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황도 바티칸으로 향해 베드로 황제, 그리고 황자들과의 거래를 통해 이바렐라의 권력을 다시금 강하게 제한하는 것.
둘째. 발리스타 요새로 향해 구금되어 있는 루나 대주교의 어머니를 구해내는 것.
이 중 첫 번째 목표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황제나 황자들이나 나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니, 그들에게 조금의 당근만 던져주면 뜻을 모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으니까.
문제는 두 번째 목표였다. 황도에서 자신을 모욕한 나를 이바렐라가 절대로 가만둘 리가 없었다.
카밀 공작은 자타가 공인하는 이바렐라의 지지자. 그런 그가, 수도에서 그녀를 모욕한 나를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지.
그렇기에, 드웨인과 계획을 짤 때 하탄과 아르게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을 견제하려 했다.
하나, 이내 그 계획을 바꾸었다. 굳이 견제만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 또한, ‘야인’이 되어 나를 추격해올 터. 그렇다면, 내가 추격자들을 모조리 섬멸시켜도 ‘제국의 기사’가 아닌, ‘야인’의 죽음으로 끝날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계획된 장소를 바꾸었다. 보다 드래곤 산맥에 가깝고 깊숙한 곳으로.
발리스타의 척후병도, 반텐의 척후병도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마(魔)의 대지로 말이다.
뭐, 그 덕분에 조금 위험할 뻔한 순간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7성기사단을 모조리 잡아먹을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도박이었다.
그 도박의 성공이 바로 코앞이었다. 목숨을 건 도박의 보상은, 저 창백해진 슈타트의 표정이었다.
“아주 보기 좋네, 그 표정.”
“어, 어떻게! 네놈, 몬스터들과도 손을 잡았단 말이냐! 단순한 이단(異端)이 아니라, 제국을 위협할 악마의 씨앗이었구나!”
슈타트가 반쯤 혼이 나갔는지 악다구니를 쓰기 시작했다.
하긴, 저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반텐을 통해 외부로 반출이 가능한 물건은 오로지 엘프들의 영역, 엘룬하임에서 나오는 물품들뿐이었다.
나머지 종족들과의 교류에서 나오는 물품은 가문 내성의 창고에 철통같은 보안을 유지하며 보관하고 있었다.
오크, 그리고 키클롭스나 라이칸스로프와 연수했다는 사실은 내가 꽁꽁 숨겨둔 비장의 카드 중 하나였으니까.
그러니, 슈타트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겠지.
아니, 슈타트가 아니라 설사 이바렐라라고 하더라도 이런 경우는 절대로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여유로운 제롬과 달리, 7성기사단의 단장 슈타트는 이를 악물었다.
‘이 사실을 반드시 각하께 알려야 한다!’
발리스타 요새는 드래곤 산맥과 남대륙의 연맹 중 많은 국가들과 국경을 마주하는 최중요 지역이다.
반텐과 드래곤 산맥의 몬스터들이 비밀리에 연수했다면 힘의 균형이 무너진다.
이들이 연합하여 제국으로 일거에 밀고 들어온다면, 제아무리 카밀 공작 각하께서 버티고 있는 발리스타라도 순식간에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니, 반드시 이곳을 탈출해야만 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라는 생각을 하고 있나 보지?”
“!”
제롬은 슈타트의 결의에 찬 눈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나도 이 녀석들을 그냥 드러낼 생각은 없었거든.”
딱!
건틀릿을 끼고 있는 제롬의 손가락이 튕기며 신호를 보내자, 숲과 산에 웅크리고 있던 오크와 키클롭스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온한 기운을 줄줄 흘리는 몬스터들을 보며 제롬을 포위한 7성기사단이 주춤거리자, 슈타트가 이를 악물며 외쳤다.
“7성기사단! 정신 차려라! 고작해야 몬스터일 뿐이다!”
촤아앙!
검을 뽑으며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내는 슈타트의 기세에 성기사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내가 길을 열 것이다! 두려워 말고, 나를 믿고 따르라!”
“!”
오크와 키클롭스에게 포위되어 주춤했던 성기사들의 눈빛이 돌아오고 있었다.
과연.
불리한 상황에서도 순식간에 상황을 수습하여 해결책을 꾀한다.
‘단순히 검술만 강한 멍청이는 아니었나 보네.’
차기 옥좌를 노리는 제국의 전도유망한 기재답다.
“괜찮겠나? 내 목을 가져간다며?”
“흥!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놈이군. 네놈의 목 따위, 이 정보에 비하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깃털이나 마찬가지다.”
건틀릿을 낀 손으로 목을 툭툭 치며 도발해 봤지만 슈타트는 이미 내게서 관심이 멀어진 상태였다.
훌륭하다.
10번대 이내의 모든 단장들이 옥좌에 오를 수는 없을 테지만, 이 녀석이 시간이 지나 성장한다면 최소한 4후작 정도의 위치까지는 무난하게 올라갈 것이 분명했다.
그런 인재이기에 더더욱.
‘살려 보낼 수 없지.’
성기사들의 포위망을 서서히 좁혀온 오크와 키클롭스들이 잠시의 대치 상황 후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쿠워어어어어!
촤아악!
가장 먼저 달려든 붉은 도끼 부족 오크의 목을 순식간에 베어버린 슈타트가 돌파를 시도하며 외쳤다.
“7성기사단! 뚫는다!”
“누구 마음대로.”
성기사들을 포위하고 있는 몬스터를 뚫기 위해서는 자연히 시선을 바깥으로 둘 수밖에 없었고, 그 말은 포위하고 있던 나에게는 대놓고 등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쿠우우우우!
황금빛 오러가 몸을 타고 일렁이며, 내 몸 안쪽부터 서서히 묵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금강역사(金剛力士).
난전에서 최고의 힘을 발휘하는 사람의 뒤에 등을 내보이다니, 그 대가는 꽤나 비쌀 거야.
“등짝 한번 보자고.”
콰아앙!
삼각꼴 모양으로 진형을 펼친 채 몬스터들의 포위망을 뚫는 기사단의 가장 후미에 있는 성기사의 등을 거세게 올려쳤다.
“커헉!”
척추부터 부러진 기사가 피화살을 뿜어내며 말에서 나동그라졌다.
동료가 쓰러졌음에도 슈타트는 물론, 몬스터와 싸우지 않고 있는 후방 인원 외에는 그 누구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탈출을 위해 다소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나.’
훌륭한 판단이다. 아무리 드래곤 산맥의 어지간한 오크와 키클롭스라고 하더라도 슈타트 정도의 경지라면, 희생을 각오하면 돌파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래.
‘어지간한’ 녀석들이라면 말이지.
촤아아아악!
전마들의 돌진에서 비롯되는 돌파력을 바탕으로 파죽지세로 오크와 키클롭스들을 베어가던 슈타트가 기세를 몰아 전면의 오크를 세로로 쪼개버릴 생각으로 강하게 검을 내리쳤다.
오크는 큼지막한 도끼를 들어 자신의 검격을 막으려 했으나, 막힐 리가 없었다.
두 동강이 날 오크에게서 시선을 뗀 슈타트가 왼쪽의 오크를 노리려 할 때.
카아앙!
“……?!”
전면의 오크에게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오러를 덧씌운 검격이었는데? 어째서 이런 무구와 무구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크륵, 인간. 제법이구나.”
키이이이이이이잉!
육안으로 볼 때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도끼가, 붙어 있는 슈타트의 검날에 끊임없이 불똥이 튀고 있었다.
부와아아악!
서걱!
“크윽!”
순식간에 전마의 머리를 날려버린 오크의 무지막지한 도끼에 기겁한 슈타트가 말에서 떨어져내렸다.
그 와중에도 왼손으로 땅을 짚으며 낙법을 펼쳐 자세를 잡은 슈타트의 기민한 몸놀림은 칭찬받아 마땅했지만.
전마를 잃은 슈타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선두에 서 있던 자신의 돌진이 멈춰 진형의 돌파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모처럼 재밌는 인간을 만났군. 어디….”
“하탄, 미안하지만 그놈은 내 거야.”
흥이 올랐는지 도끼를 들어올리는 하탄을 막아선 채 내가 말했다.
“크륵, 이런 법이 어디 있나.”
나는 눈살을 찌푸리는 하탄의 어깨를 두드리며 달랬다.
“미안, 미안. 이번 일은 내게 양보해 달라고.”
“취익! 그건 곤란….”
“막고라까지 불과 1년밖에 안 남았군.”
움찔!
하탄의 어깨가 눈에 보일 만큼 흔들렸다.
“내년에 더욱 짜릿한 승부를 원한다면, 이번에는 내게 양보해주지?”
“…취익! 안 본 사이 많이 음흉해졌군.”
하탄이 불만스런 콧소리를 내며 도끼를 어깨에 걸친 채 물러섰다. 역시. 약속 시간까지 1년밖에 남지 않은 지금, 이놈에게 막고라는 발작 버튼이나 다름없었다.
처억!
“…….”
하탄과 티격태격하는 사이, 전열을 가다듬은 7성기사단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말했지, 한 놈도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큭! 큭큭!”
말없이 나를 노려보던 슈타트가 갑자기 하늘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놀라서 갑자기 미치기라도 했나?
“인정하지. 네놈의 계략이 우리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는 걸. 그리고 방금에서야 확신이 섰다.”
슈타트가 고개를 내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네놈은, 장래에 반드시 제국에 해가 될 놈이다. 그것도 치명적일 만큼.”
“칭찬 고맙군.”
“큭! 그래서, 확실히 판단할 수 있었다. 우리의 비밀을 끝까지 지키는 것보다, 네놈의 이 비밀을 제국에 전달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뭐라고?”
알 수 없는 슈타트의 말이 무슨 뜻인가 싶어 되물으려던 찰나, 슈타트가 소리 높여 외쳤다.
“7성기사단!”
슈타트의 외침에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으나, 슈타트는 계속해서 외쳤다.
“숨겨두었던 힘을, 지금 이 자리에서! 사용한다! 설사 여기서 보안이 뚫린다고 해도 상관없다! 누구든 좋으니, 반드시 각하에게 이 사실을 알려라!”
우우웅!
그때, 슈타트의 몸에서 이질적인 기운이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슈타트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시작으로 7성기사단 전원의 몸에서 오러가 아닌 다른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운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익숙한 기운이었다.
“이종의… 힘.”
가지각색의 기운을 끌어 올린 성기사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주와 황녀님을 위하여!”
* * *
“저, 저저!”
언덕 위, 멀리서 조용히 상황을 바라보던 살라딘이 놀란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라, 람팡님. 저거, 분명 이종의 힘 맞죠?”
“…….”
뿌드득!
람팡은 살라딘의 질문에 답을 하는 대신 입술을 짓씹었다. 얼마나 세게 씹었는지,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녀가 실험실에서 보았던 목불인견의 참상이 떠오른다.
독혈사 마틴을 비롯하여 짐승처럼 처참하게 죽어가던 흑사자들.
어째서 저 가증스러운 신성제국의 기사들이 이종의 힘을 쓸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들이 이종의 힘을 다룰 수 있는 데에는, 분명 마틴을 비롯한 흑사자들의 무고한 희생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참거라.”
그녀의 생각을 읽었기 때문일까. 옆에서 앉아 숨을 고르고 있던 카르마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제롬이 말하지 않았더냐. 네가 지금 모습을 드러내면 수왕의 흔적이 남을지도 모른다고. 베라스의 추적이 계속해서 이어질지 모른다고 말이다. 방패가에서 우릴 받아준다 하여도, 지금 이곳에 흔적을 남겨 좋을 것이 없느니라.”
“…….”
스승님의 말에서 이치에 어긋나는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람팡은 정말로 참기 힘들었다. 동포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저 피의 결과물들을 모조리 찢어버리고 싶었다.
“…너무 화내지 마시죠, 람팡 님.”
“……?”
조용히 분노한 자신을 달래는 살라딘을 쳐다보자, 그가 언덕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놈, 저래 봬도 나름 괜찮은 놈입니다. 람팡님 대신 저놈이 단죄할 겁니다, 분명.”
쿠우우우우우!
살라딘의 말처럼, 아래에서는 제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