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327)
제327화
투둑! 투두둑!
응축된 제롬의 기운들이 아지랑이처럼 일어나 하나의 모양을 이루어간다.
“…쯧. 나이도 어린 놈이, 생각은 완전히 벽창호가 따로 없군. 도무지 말이 통하지를 않아. 저런 사고방식으로 어찌 그리도 파격적으로 움직였는지.”
“마음대로 생각하시오. 나는 단지, 나의 뜻을 관철할 뿐.”
제롬이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그 의지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그의 뒤로 결코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철탑거인의 형상이 갖추어져갔다.
쩌저적!
그 응축된 힘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광산의 바닥이 천천히 금이 가며 깨져갔다.
실로 단단하며, 굳건한 의지가 아닐 수 없었다.
누구도 비웃을 수 없을 만큼 강건한 기세를 내뿜는 제롬이었지만, 브라움은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하, 심상기인가? 그게 바로 바다 위의 천박한 해적, 발락의 우로보로스를 쓰러뜨렸다던 기술인 모양이군.”
코웃음을 치는 표정과 달리, 브라움 역시도 천천히 자세를 잡아갔다.
비록 천박한 해적이라 매도했지만, 발락의 강함은 진짜였다.
명가의 가르침조차 없이 오롯이 스스로의 힘으로 도달한 경지였기에, 어떤 의미에서 발락은 다른 옥좌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이를 쓰러뜨린 자가 바로 제롬이다.
그가 준비한 일격을 가벼이 여겼다가는, 큰코다치는 건 오히려 자신이 될 터.
‘나도 진지하게 임해야겠군.’
파지지지지지지지직!
브라움의 검 위로, 번개의 형상을 한 거대한 일검이 덧씌워졌다.
말 그대로 한 줄기의 번개나 다름없는 기운.
제롬의 국사무쌍이나, 발락의 우로보로스와는 달랐다.
람팡이나 베라스처럼, 응축된 형태의 심상기처럼 보였지만.
그와도 달랐다.
브라움의 심상기는, 한 발 더 나아가 응축되고 응축되어 오롯이 검에 집중되어 있었다.
거인의 검처럼 거대하던 기운은 점점 작아져, 이윽고 브라움이 들고 있던 검과 거의 유사한 크기가 되었다.
그가 들고 있던 검에 한 겹의 가죽을 덧씌운 것처럼 말이다.
하나, 그 안에서 느껴지는 힘은.
가히, 하늘 위의 뇌전(雷電)을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파괴적이었다.
처어어어억!
브라움이 검을 든 손을 내밀며 자세를 잡았다.
“보여주마. 명가의 심상기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기회이니, 똑똑히 보고 배우도록.”
번개 그 자체가 된 검을 제롬의 미간에 겨누며 브라움이 말했다.
그저 미간을 겨눴을 뿐인데, 머리통이 이미 뚫린 것 같은 격통이 밀려온다.
극도로 응축된 뇌기는, 이미 그 자체로 대륙에 다시없을 흉기였다.
“수업료는… 흠, 그리 싸게 알려줄 수는 없는 일이니.”
파아앗!
순식간에 제롬의 앞에까지 이동한 브라움.
콰아아앙!
“…네 목숨으로 대신하도록 하지.”
움직임의 뒤를 따라 들려오는 브라움의 목소리.
음속을 초월한 그의 움직임에 제롬이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조금만 방심하면, 곧장 머리가 날아갈 거다.’
그러나.
지지 않는다. 절대로.
꽈아악!
주먹을 강하게 움켜쥔 제롬이, 허공을 격하며 재차 브라움과 격돌을 시작했다.
* * *
촤아아아악!
은빛의 선 하나가 움직이자, 그 뒤를 따라 붉은색의 액체가 허공을 올올이 수놓으며 흩뿌려졌다.
-크르르르르륵….
쿠우우우우우웅!
푸른 비늘로 뒤덮인 아이스 드레이크가 피거품을 쏟아내며 천천히 그 거체를 땅에 뉘었다.
옅은 움직임을 보이던 드레이크가 숨을 거두자, 광산에는 더 이상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방금 전의 드레이크가,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쿠욱!
바닥에 검을 역수로 꽂으며, 메르시가 긴 호흡을 내뱉었다.
“후우우우우우….”
호흡을 다스리며 천천히 자신의 검을 품 안에 갈무리했다.
간신히 쓰러뜨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큰 피해를 면할 수는 없었다.
모두가 지쳤던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추가적인 습격이었기에, 그사이 많은 이들이 쓰러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피해로 그칠 수 있었던 건.
스윽! 스윽!
무심하게 드레이크의 피로 붉게 물든 대검을 닦고 있는, 저 거구 덕분이었다.
“덕분에 살았네, 고마워. 분명 미르온…이라고 했지?”
“예. 맞습니다, 영애.”
담담하게 화답하는 미르온을 메르시는 신기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저 녀석이, 그때 그 꼬마라고?’
미르온. 분명히 예전에 제롬이 데리고 있던 어린아이였다.
반텐에서 아무런 존재감도 없던 꼬마를 끼고도는 걸 보고, 주제에 대장 놀이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라며 비웃었던 시절도 있었다.
한데, 그렇게 영지에서 밥을 축낼 뿐이라고 생각했던 어린아이가.
헥사곤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으로 보이는 무력을 손에 넣었을 줄이야.
‘도대체, 무슨 짓을 해야 사람이 저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는 거지?’
재능 있는 이들은 사흘만 보지 않아도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고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다.
저건 숫제 다른 사람이지 않은가.
‘제롬, 이 자식. 진짜 정체가 뭐야?’
그 아무것도 없던 꼬마의 대체 어디를 보고, 저런 폭발적인 가능성을 예상했단 말인가.
스스로의 성장도 말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지만, 거기까지는 미친 재능으로 달성했다 치더라도.
살라딘이나 드웨인도 그렇고, 미르온도 그렇고.
주변에 포진한 이들 중 누구 하나 인재가 아닌 이들이 없었다.
그만한 재능에 인재를 알아보는 통찰력까지 보통이 아니었다.
이건 뭐, 비범한 인재란 인재만 쏙쏙 골라서 포크로 찍어먹는 수준이지 않은가.
재능도, 통찰력도. 무엇 하나 따라갈 수가 없었다.
‘하여튼 빌어먹을 자식. 동생이라지만, 좋은 건 지 혼자 다 가지고 있다니까.’
툴툴대며 쉬고 있던 메르시가 문득 미르온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미르온.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아, 조금 더 전진하면 이 앞에 세 갈래 길이 나옵니다. 계속 가는데 아무래도 흔적들이 특별히 없어서… 아마 베스킨 경과 블리자드 기사단도 마찬가지였으니 회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는….”
힐끔!
미르온의 눈동자가 조심스럽게 검가를 향했다.
누이의 말에 따르면, 람팡 님께서 위험하신 상황이라 하였다.
상황이 급하다 판단하여 자신은 그 뒤의 자세한 사정을 듣지 못한 채 후방으로 향하긴 했다만, 미르온 역시 바보가 아니었다.
적어도, 람팡의 위기에 검가가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적일지도 모르는 이들 앞에서, 팔자 좋게 모든 속사정을 설명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모든 드레이크들이 쓰러진 지금.
미르온은 알게 모르게 경계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었다.
만약, 저들이 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다면. 자신들이 전진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과연 저들은 이 모든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적’일까.
아니면, 그저 이용당한 것에 지나지 않는 이들일까.
명색이 검가의 후계자인 빅토르가, 정말 지금의 상황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 맞을까.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면, 빅토르가 드레이크들과 이 정도로 목숨을 걸고 싸운 것도 설명이 된다.
‘우선은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자.’
자신의 대검이 저들을 향하는 것은, 조금 더 확실한 증거가 나올 때의 일이었다.
침묵을 유지하는 미르온을 보며, 메르시 옆으로 엘레나가 다가와 화제를 전환했다.
“뭐, 어떻게 찾아왔든 무슨 상관이니. 덕분에 살았는데. 와줘서 고맙구나, 미르온.”
“과찬이십니다, 부인. 저는 단지 남작님의 가족들을 지키고자 했을 뿐입니다.”
“호호호, 믿음직하구나. 제롬이 아주 충직한 기사를 뒀어.”
다시 한번 미르온을 치하한 엘레나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메르시, 카미트 경. 부상자들을 치료할 이들을 두고 계속해서 가자.”
“음, 조금 빠르지 않을까요?”
방금 전에 막 전투가 끝난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체력이 약한 마법사들이 두 번이나 연달아 전투를 치렀다.
그뿐인가. 베스킨과 블리자드 기사단, 미르온 역시 말이 회군이지 엄청나게 긴 거리를 주파하자마자 참전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곧바로 움직이는 건 지나친 강행군이라 볼 수 있었다.
“메르시, 생각해보렴. 베스킨 경과 미르온이 회군했지 않니. 그렇다면, 제롬 그 아이는 과연 이쪽에서 일어난 일들을 느끼지 못했을까?”
“……!!”
엘레나의 말에 방패가와 올리비아 인원 전원의 눈빛이 변했다.
그 말대로였다.
막 긴장이 풀어진 찰나여서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못했을 뿐.
그들이 알고 있는 제롬이라면, 누구보다 빠르게 이 자리에 돌아와 지원했을 사람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한데 그런 그가, 지금까지 오지 않고 있다는 건.
‘올 수 없는’ 상황이라는 반증이나 마찬가지였다.
“…블리자드 기사단. 휴식을 종료하고, 전원 무장을 검토하라. 남작님을 따른다.”
“명을 받듭니다.”
베스킨의 명을 받은 블리자드 기사단이나 미르온, 그리고 반텐의 병력들이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넌이 빅토르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대공자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이대로 저들이 뒤쫓는다면, 저들이 공작 각하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뿌득!
빅토르가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도대체가…!’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반텐의 병력은 드레이크들의 기습에 치명타를 입어야만 했다.
앞서 광산 내부로 향한 올리비아의 병력들은 광산 내의 다른 굴로 향해 지금쯤 광산 내부를 정처 없이 떠돌고 있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다.
한데, 지금 이 상황이 대체 뭐란 말인가.
상명하복. 그것이 원칙인 검가에서 자란 빅토르는 임의로 회군을 선택한 제롬의 수하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사전에 얘기도 없었던 드레이크들까지 나타나 졸지에 자신들까지 휘말리지 않았나.
만약 지금 반텐과 올리비아 병력의 전진을 강제로 틀어막는다면, 검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리라.
이들 또한 내심 검가를 의심하고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
확실한 물증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하지만 그게 두려워 이들을 이대로 보낸다면.
‘…또다시,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브라움은 사적으로는 자신의 아버지이지만, 공적으로는 검가의 주인인 남자다.
수십 년 전부터 이케니아의 무력을 담당하던 두 기둥 중 하나인 남자.
아무리 제롬 그 애송이의 무력이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감히 아버지를 상대로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건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만약 다른 이가 대상이었다면, 이들이 뒤를 쫓는다며 움직일 때 함께 조용히 뒤따를 것이다.
결코 대세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을 테니, 여차하면 후방을 막고 몰살시키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제롬이 그 대상이었기에.
스윽!
“…전부, 행동을 멈추시오.”
빅토르가 검을 들며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우리의 목적은 광산 내에 있는 드레이크의 퇴치이지, 제롬의 뒤를 쫓는 것이 아니오. 개인행동은 용납할 수 없소.”
“…지금 이게, 무슨 개소리에 개짓거리죠, 빅토르 오라버니?”
메르시가 날카롭게 물어온다.
안다.
지금 자신의 주장이, 말도 되지 않는 억지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럼에도.
“말 그대로다. 전부, 그 자리에 멈추라는 말이다.”
이들을 저지해야만 했다.
빅토르의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이들을, 아버지와 제롬이 있는 길로 보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검가의 인물들 가운데 제롬이 브라움에게 승리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제롬을 눈엣가시라고 생각하는 빅토르였기에 역설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제롬은 지금까지,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행보를 보여 왔다.
이들을 보낸다면, 그 당연한 결과에 변수로서 충분히 작용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둘 수 없지.’
“빅토르. 지금, 이 행동. 검가가, 우리를 적대하는 걸로 간주해도 되는 거겠지?”
메르시와 달리 침착함을 유지한 엘레나가 담담히 물어왔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왕국과 역사를 함께하며 굳건히 이어져온 두 가문이 적대한다.
그 시작의 방아쇠를, 빅토르 자신이 당기는 일이었으니까.
“적대… 적대라.”
그래.
어쩌면, 자신의 판단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혹여나 광산에서 빠져나가는 이가 생겨, 유일하게 아버지가 인정하는 맞수인 바쿠스 폰 카르비어트 백작마저 적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만약 아버지께서 자신이 이 모든 일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아무리 빅토르가 검가의 대공자라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엘레나의 물음은 무거움을 담고 있었다.
대공자의 지위를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 어쩌면 사형에 처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의 선택을 믿는다.’
엘레나의 물음을 조용히 되뇌던 빅토르가 검가의 병력에게 명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