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58)
제58화
“드웨인 공자, 나와 함께하지 않겠어요?”
“예?”
내 뜬금없는 제안에 드웨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드웨인 공자의 의견, 굉장히 잘 들었습니다. 나는 공자가 이야기한 추측에 지극히 깊게 공감해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나는 드웨인 공자, 당신이 내 책사가 되어주길 원합니다.”
“…….”
드웨인은 나의 직설적인 요청에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잠시 후 난감하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롬 공자. 저는 켈튼 영지의 후계자. 즉, 왕가에 충성을 다하는 귀족입니다. 그런 제가, 방패가의 그늘로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지요.”
흠, 역시 그런가.
‘하긴, 그러니까 과거에도 세이라 공주의 골든 크로스로 들어갔겠지.’
왕가에 대한 깊은 충성심. 평소라면 존중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제 의견을 비웃지 않고 귀 기울여 들어주신 분은 제롬 공자가 처음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만, 가문의 뜻과 어긋나게 제 맘대로 다른 주군을 모실 수는… 켁.”
털썩!
거절의 말을 채 다 뱉기도 전에 드웨인이 짧은 소리와 함께 침대로 철퍼덕 쓰러졌다.
“…뭐냐, 방금? 때린 거야?”
살라딘의 당황한 목소리와.
“고, 공자님…. 해서웨이 가문이 비록 작은 가문이라고 하나, 이런 방식은….”
약간의 패닉이 섞인 것 같은 베스킨의 반응이 들렸지만.
“별수 없잖아.”
난 담담히 되뇌었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이 친구를 데려갈 수 없을 테니까.”
아무리 세이라 공주가 천재 마법사였다고는 하나, 그 ‘골든 크로스’를 키워낸 데에는 역시 칸다르, 아니 드웨인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슬슬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똑똑한 두뇌(?)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런 찬스를 내버릴 수는 없잖아?’
* * *
드웨인의 급작스러운 발언으로 토론의 장은 흐지부지 끝났었다.
다음 날 오후, 비록 물의가 있었지만 신선한(?) 의견을 제시한 드웨인에게 작은 상을 내리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드웨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왕가의 행사에 말도 없이 사라진 드웨인을 성토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정작 율리우스 왕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왕자의 폐회 선언으로, 크고 작은 사건이 가득했던 봄의 축제는 마침내 대막을 내렸다.
다른 귀족들도 고향에 돌아가듯, 나 역시 살라딘, 그리고 블리자드 기사단과 함께 반텐으로 향했다.
‘흉년 이후로 바뀐 역사가 너무 많아. 이번 축제는 오길 잘했어.’
전생에 없던 일이라 대처하지 못한 상황도 많았다.
빅토르가 벌써부터 왕가에 대놓고 반목을 한 일이라든가.
아니면 율리우스 왕자가 내게 영지를 하사한다고 한 일이라든가.
그도 아니면, 빅토르가 사냥 경합에서 나를 죽이려 들었던 일이라든지 말이다.
‘사실상 이제 과거의 역사는 참고만 해야 할 수준이네.’
누가 누군지, 누구의 성향이 어떤지 정도를 제외하면 사건 자체는 사실상 이미 과거와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검가가 해결하였어야 할 흉년을 내가 해결한 것만으로 역사가 바뀌었다.
겨우 하나의 사건만으로도 연쇄적으로 다른 일들이 터지는데, 그렇다면 올리비아 영지에 부임한 후 남부 영지에 기반을 다진다면 또 얼마나 많은 역사가 바뀌겠는가.
게다가 과거에는 범죄자 집단에 지나지 않았던 군도를 계획대로 끌어들인다면?
아니면 당초의 계획대로 엘프들과 연계하여 반텐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한다면?
‘변수가 너무 많아. 이제 슬슬 급변하는 상황에 대응할 머리가 필요해.’
그런 의미에서.
“제롬 공자!!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이런 일을 왕자님께서 좌시하리라 보십니까! 아무리 방패가라 해도 이런 무도한 짓은…!”
저 마차 뒤에 존재하는 수확물(?)은, 봄의 축제에서 거둔 최고의 전리품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미 얘기했잖아요, 드웨인. 율리우스 왕자님께 허락을 받았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하십쇼! 왕자님께서 이런 무도한 일을 허락하실 리가 없잖습니까!”
드웨인은 현실을 부정했지만, 어쩌겠나. 그게 사실인 것을.
“해서웨이 앤 드웨인. 똑똑한 사람이 왜 이러세요. 지금 나와 같이 움직이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거, 진짜로 모르지는 않을 텐데?”
“……!”
드웨인이 내 말에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넓은 식견을 가지고 있는 드웨인 공자인 만큼, 빅토르 대공자의 성향을 모르지 않을 터. 아무리 연회장에서 분위기가 고조돼서 있었던 일이라 한들, 그 빅토르가 자신이 받은 모욕을 그냥 잊어 주리라고 생각해요? 정말로?”
물론 그냥 잊어줄 것이다. 나와 율리우스 왕자에게 잡힌 약점이 있으니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겠지. 하지만 그 사실을 드웨인이 알 리가 없었다.
그리고 율리우스 왕자에게 허락을 받은 것도 거짓은 아니었다.
드웨인을 기절시킨 후 율리우스 왕자에게 찾아가 드웨인을 데려가게 해달라고 하니.
-마음껏 데려다 쓰시게! 해서웨이 남작에게는 내가 이야기해 두지!
라며, 흔쾌히 승낙해 주었으니 문제 될 것은 전혀 없었다.
“…아니, 그래도 전 동부 귀족입니다. 왕가에 충성할 거라니까요? 절 데려가서 뭘 어쩌시려고 이러시는 겁니까, 정말!”
“이미 여러 번 얘기했잖아요, 내 책사가 되어달라고.”
“아, 진짜 돌겠네. 그거 다 제 망상일 뿐이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척.
아직도 마차에 묶인 채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드웨인의 어깨에 살라딘이 살포시 손을 올렸다.
“드웨인 공자. 거, 포기하면 편합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즐기십쇼.”
“아니, 살라딘 공자. 내 목표는 이게 아니란 말입니다. 난 토론의 장에서 왕자님의 눈에 들어 고위 관리가 되는 게 꿈이었단 말… 켁.”
드웨인이 이제야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았다는 듯이 살라딘에게 하소연을 시작하자, 드웨인의 어깨 위에 있던 살라딘의 손이 드웨인의 목을 내려쳤다.
“안타깝지만, 저도 말이 많은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살라딘 저놈도 가만 보면, 은근히 무지막지하단 말이지.
잡음이 많았던 봄의 축제가 끝이 나고, 갖가지 꽃들이 피어나던 산과 거리는 점차 여름을 맞이하려는 듯 푸르디푸른 녹음으로 그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고생했다.”
몇 달 만에 조우한 아들에게 하는 말치고는 지극히 짤막한 아버지의 치하.
그 말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이번에도 제법 재밌는 일들이 있었던 모양이더구나.”
“그렇죠, 뭐.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고.”
나는 아버지의 집무실 중앙에 있는 소파로 향했다.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내 말에 반응을 보인 것은 아란달이었다. 의외라는 눈빛.
하지만 무언가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짓궂은 표정이었다.
내가 보았으니, 아버지께서 그런 아란달의 기색을 읽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아란달, 자네는 좀 나가 있지.”
“쳇.”
속셈이 들통난 아란달이 짧은 혓소리를 내자.
“흠, 자네. 요즘 들어서 조금 많이 개기는 것 같다만.”
“기분 탓이십니다. 끝나면 불러주십시오.”
순식간에 태도를 바꾼 아란달은 누가 잡을세라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쯧. 버릇을 잘못 들였어.”
아버지는 그런 아란달의 모습이 못마땅한지 혀를 차셨다.
“저게 아란달 경의 매력이니까요.”
“흠, 그래. 뭐 그건 그렇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게냐?”
후룹!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
간만에 반텐의 홍차를 맛본 나는 아버지의 물음에 반문으로 대답했다.
“아버지, 제가 반텐을 포기하기를 원하십니까?”
“…….”
후룹!
아버지는 내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홍차를 마실 뿐, 즉각적인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대신 창밖에 보이는 반텐의 경관을 바라볼 뿐이었다.
“참으로 아름답지 않느냐.”
“…뭐, 경치가 좋기는 하죠.”
물론 가까이 가면 온갖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리는 드래곤 산맥이었지만.
그렇기에 멀리서 볼 때는 대자연의 장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 경관이 도박장 못지않은 반텐의 주요 관광사업의 기틀이었으니까.
아버지는 내 맞장구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말한 건 산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가까운 곳을 보거라.”
“……?”
나는 아버지의 말에 산맥의 아래쪽 경관을 바라보았다.
수도는 봄이 끝나가고 있었지만, 이곳 반텐은 보다 북쪽이었기에 아직도 들판에는 농민들의 봄 감자 파종이 한창이었다.
“너도 알겠지만, 반텐은 지극히 거친 땅이다. 여러 가지로 말이지.”
아버지의 말은 사실이었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위쪽으로 마수의 숲, 드래곤 산맥, 신성제국을 끼고 있질 않나.
그렇다고 왕국 중부나 남부처럼 사람이 살기 좋은 기후이기를 하나.
지금이야 카르비어트 백작가가 자리를 잡아 번성했다고 하지만, 과거에는 저주받은 땅이라는 평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많은 이들이 반텐 하면 우리 가문을 떠올리지만, 사실 이 대지는 우리 가문의 힘만으로 쌓아올린 것이 아니다.”
그윽한 눈길로 농민들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바로 저처럼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다하는 영지민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 가문이 이토록 융성해질 수 있던 것이다.”
“…….”
아버지가 왜 저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았기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저들을, 더 나아가 이 왕국을 지킬 의무가 있는 것이다.”
달칵!
홍차를 내려놓으며 아버지, 바쿠스 폰 카르비어트가 말했다.
“나는 그 의무를 수행하는 데 내 자식들이 힘쓰길 바란다. 제 살을 깎아먹지 말고 말이지.”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나를 봄의 축제에 보냈던 그 순간부터 가슴 한편으로 고민하던 문제였다.
아버지는, 왜 하필 엘프들과 교역을 시작할 이 중요한 타이밍에 나를 보내는 것일까.
아버지만 한 분이 형과 누나의 계획을 간파하지 못하셨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알면서도 당해줄 만한 이유가 분명히 존재했을 테니까.
아무리 고민해봐도 답은 하나였다.
‘내가 가문을 물려받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거지.’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풀리지 않던 하나의 의문.
나는 그 하나를 아버지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데, 왜 하필 접니까?”
“…….”
대답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재차 되물었다.
“물론 제가 벌레같이 살아왔던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훌륭히….”
“바로 그거다.”
“……?”
“제롬, 넌 충분히 정신을 차렸다. 굳이 이 반텐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 만큼.”
아버지, 바쿠스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기를 조금 거슬러, 제롬이 필라도르 왕국의 나일로 밀을 구하기 위해 떠났을 무렵.
바쿠스는 제롬의 성과에 따라 반텐의 후계자 후보를 세 명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분명 제롬은 그 후로 후계자 후보가 아니라, 당장 후계자로 올려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눈부신 성과를 내왔다.
나일에서 밀을 구해오고, 오크를 처치하고.
왕가와 자꾸 부딪히는 검가에 엿을 먹이고, 곤경에 빠진 율리우스 왕자를 돕고.
누가 보아도 훌륭히 정신을 차렸다고 볼 수 있었다.
하나, 그 과정에서.
아버지가 아닌 이케니아 왕국의 귀족, 바쿠스 폰 카르비어트로서.
묘한 위화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봄의 축제에 율리우스 왕자의 부름을 보며.
마침내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네 성과는 분명 눈부셨다. 그 누구도 책잡지 못할 만큼. 하나, 그 모든 행동들이 나의 눈에는.”
아버지가 내 눈을 응시했다. 마치, 감춰놓은 나의 속을 모조리 확인하고 말겠다는 듯이.
“‘왕국’을 위해 행동하는 것 같더구나. 우리 ‘가문’이 아니라.”
“……!!”
잊고 있었다.
아버지, 바쿠스 폰 카르비어트가 어떤 인물인지.
강대한 무력에 더불어 지혜까지 겸비한 영주.
그 신성제국조차 경계하여, 전쟁 초기 3공작 중 두 명이 이케니아 전선에 투입되지 않았던가.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묻지 않으마. 하나, 내 생각에 네 뜻을 펼치기에는 반텐은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게 무슨 뜻이십니까?”
“방패가는 강하다. 하지만 사고가 멈춰 있지.”
아버지가 아란달이 나갔던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아란달을 제외하고는 다들 생각이 굳었다는 뜻이다. 네가 데리고 다니는 살라딘이란 친구 외에, 꼬마 녀석도 이종의 힘을 쓰고 있지? 이름이 분명 미르온이었던가.”
그것까지 파악하고 계셨나.
“그런 녀석들을 끌어들이는 것만 보아도, 네가 그리는 그림은 반텐이 아니라 왕국에 있다. 그렇다면 굳이 네가 반텐을 이어받을 필요는 없겠지. 내 말이 틀렸더냐?”
“…정말이지, 아버지는 못 당하겠네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