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89)
제89화
북대륙의 신성제국은 추운 기후와 척박한 토지로 인하여 국력에 비해 식량이 넉넉지 못했다.
그렇기에 제국은, 혹독한 환경으로 인해 불안정한 제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방안을 모색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국교인 ‘황금사자교’였다.
제국의 자랑인 십이대주교(十二大主敎)를 필두로, 황금사자교의 교리를 설파하여 제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었고.
두 번째 방안으로는, 제국민들에게 제국 외부에 나라의 숙원(宿願)을 안겨 줌으로써 그들의 칼날이 내부의 황실을 향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남대륙.
척박한 북쪽과 달리, 풍요롭고 기름진 남쪽의 대지는 신성제국의 오랜 꿈이자 목표였다.
그리고 필라도르 왕국은 그런 제국의 꿈을 가장 잘 충족시킬 수 있는 국가였다.
“겨우 국경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아예 공기 자체가 다른 것 같습니다, 공자님.”
프란 왕국의 국경을 통과한 후, 필라도르 왕국으로 입국 절차를 밟고 들어온 미르온의 첫 소감이었다.
“그렇지. 왕국 연맹은 국가 하나하나가 그 색이 다 다르니까.”
그 점을 잘 활용했으면, 신성제국에 결코 밀리지 않는 시너지가 일어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게 되지 않아 쫄딱 말아먹었으니, 장점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는 것이 함정이었다.
“신기합니다. 어떻게 바로 붙어 있는 땅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풍경이 다를 수 있는 걸까요?”
미르온이 저렇게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프란 왕국과 달리, 카르비어트 백작가라는 이름에 국경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왕국의 성벽을 넘어 가장 가까운 영지로 향하는 들판에는, 지평선이라 해도 좋을 만큼 넓은 밀밭이 그 모습을 뽐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라도르 왕국은 그 영토 전체가 거의 대부분 평야로 이루어져 있어. 프란 왕국의 국경은 그에 반해 산지가 시작되는 지점이고. 그러니 당연히 풍경이 다를 수밖에.”
‘나일에 가면 기절하겠군.’
필라도르 왕국에서도 가장 노른자 땅인 나일까지 다녀온 나로서는 신기할 것도 없었지만, 미르온의 입장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넓은 밀밭은 처음 봅니다…. 이 왕국의 백성들은 굶주림을 모를 것 같네요.”
“그렇지. 필라도르 왕국만큼은 대흉년 때도 기근에 시달린 이들이 없었다고 하니까.”
미르온만큼은 아니지만, 아리아의 수행 마법사들 역시 소문으로만 들어오던 필라도르 왕국 밀밭의 위용(?)을 보고 제법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때, 밀밭에 현혹되지 않은 아리아가 내게 물어왔다.
“제롬 공자, 그런데 이쪽은 서쪽으로 가는 거죠? 수도 베르티는 북쪽 국경에서 동쪽으로 가야 하지 않나요?”
아리아는 내 계획을 알지 못하니,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의문이었다.
“좋은 질문입니다, 아리아 영애. 여기서 저희는 찢어지는 것으로 하죠.”
“네? 왜 갑자기….”
“이제 필라도르 왕국의 국경을 넘은 이상, 신성제국의 마수로부터 안전할 겁니다. 여기서 수도 베르티까지는 이틀 거리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블라디미르 덕분에 신성제국이 보낸 성기사단도 다 쓸려 나갔으니. 별문제 없겠지.’
물론 그 사실을 아리아가 알 턱은 없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지금부터 내가 갈 곳은 다름 아닌 이번 필라도르행의 목적인 미다스 후작이 있는 대지, 나일이었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될 경우, 아리아 영애까지 불필요한 오해를 사게 하는 건 사양이었다.
‘아버지한테 무슨 욕을 들어먹으려고. 안 될 말이지, 아암.’
결정적으로 아리아의 마음에 마법이 전부라는 확신을 깨준 이상, 더 이상 함께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영애. 며칠 후에 수도에서 뵙도록 하죠.”
잠자코 듣고 있던 아리아가 잠시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래요. 대신.”
“음?”
“늦지 않게 꼭 와주시길 바라요. 제롬 공자에게는, 아직 물어보고 싶은 게 많으니까요.”
아직도 블라디미르와 부딪쳤던 충격이 남아 있나.
‘생각이 많은 모양이네.’
나야 원하던 바였다. 제국의 대마법 갑옷을 꿰뚫으려면 그녀의 힘이 꼭 필요했으니까. 생각이 바뀐다면 얼마든지 환영할 일이었다.
“당연한 말입니다. 그럼, 이만. 이랴!”
나는 아리아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 후, 말 머리를 돌렸다.
수도 베르티가 있는 동쪽이 아닌.
미다스 후작이 있는 서쪽의 땅, 나일을 향해서 말이다.
“…….”
아리아는 멀어지는 제롬과 미르온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가시지요, 영애님. 정말이지 무례한 이들이었습니다.”
함께 온 수행 마법사들이 아리아를 재촉하자, 그제야 아리아의 시선이 수행 마법사들을 향했다.
“무례라고요? 설리번, 지금 그렇게 이야기한 건가요?”
“…예? 존귀하신 영애를 끝까지 에스코트하지 않고 떠나갔으니, 그 자체로 매너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하.”
아리아는 설리번의 영문 모를 반응에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인가.
불과 며칠 전, 제롬 공자는 왕족, 귀족들이 불길하다 여기는 이종의 힘을 익힌 것을 당당히 드러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신성제국의 야욕을 막기 위해서.
그렇다면 지금 제롬이 떠난 이유도, 당연히 그 목표와 관련하여 무언가 생각이 있기에 행한 것이리라.
그렇기에 자신 또한 이들과 더 대화를 나누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순순히 작별했건만.
이들은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투박한 그들의 말투와 행동을 책잡고 있었다.
‘정말,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닐까.’
가문을 나와 보니, 가문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애?”
아리아가 말을 멈추고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자, 눈치를 보던 설리번이 조심스럽게 아리아에게 재차 말을 걸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설리번. 다들 가시죠. 베르티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듯하니.”
아리아는 수행 마법사들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말 머리를 동쪽으로 돌렸다.
어째서인지, 수행 마법사들이 보인 태도에 아리아는 가슴이 조금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 * *
아리아 일행과 헤어진 후 이틀. 말 머리를 돌려 나일에 도착한 후 미르온이 가장 먼저 내뱉은 소감은 간단했다.
“와….”
그럴 수밖에 없겠지. 광산 도시 출신인 미르온이 언제 이런 광경을 보았겠는가.
끝도 없이 이어진 밀밭, 그리고 농노들조차 집집마다 키우고 있는 가축들.
대륙 전체를 둘러보아도 이만큼 풍요로운 영토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공자님, 미다스 후작가가 정말 반란을 일으킬까요? 이런 땅이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 누군가는 이 땅에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야심을 키울 수 있는 최고의 요충지일 수도 있는 거니까.”
나는 미르온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자칫 선입견이 생기면 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사실 내가 보았던 후작이라면, 반란을 일으킬 만한 인물이 아닐 거 같긴 하지만.’
자세한 것은 만나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나일의 성문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미르온과 얘기를 나누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차례가 되었다.
“정지! 이곳은 필라도르 왕국 미다스 후작님의 영토, 나일입니다. 소속과 신분을… 응?”
경비병은 으레 하던 안내 절차를 밟던 중, 나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호, 혹시… 카르비어트 백작가의 제롬 공자님 아니십니까?”
“나를 아나?”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내 질문에 답한 병사가 허겁지겁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대흉년 때, 제가 공자님의 안내를 도왔었습니다! 이렇게 재차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일 것까지야 있나?
“아이고, 이런. 반갑군요. 혹시, 후작님께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까?”
“당연합니다!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가시죠!”
병사는 그사이 진급이라도 한 것인지, 옆에 있던 후임에게 업무를 넘기고는 나와 미르온을 극진히 안내했다.
음, 어째.
‘…뭔가 이상한데.’
이 병사뿐만이 아니라, 아까 업무를 인수받던 후임 병사도.
그리고 병사와 우리의 대화를 들었던 주변의 백성들까지도.
어째서인지, 내게 호감이 가득 담긴 시선을 보내왔다.
왜지?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채 도착한 미다스 후작의 저택.
이런 이상한 호의는 저택에 가자 한층 더 심해졌다.
“응? 자네는 외성의 톰 아닌가. 업무는 어쩌고 여길 왔어?”
저택을 지키던 기사가 톰이라 불린 병사를 타박하려 했으나.
“카르비어트 백작가의 제롬 공자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뭐라! 그걸 먼저 말했어야지!”
톰의 말을 들은 기사는,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저택 내로 뛰어 들어갔다.
음.
…진짜로 반응이 뭔가 이상하다.
기사가 저택으로 달려간 지 얼마나 지났을까.
“허허허! 이게 누구인가, 제롬 공자 아닌가! 온다면 온다고 미리 연락이라도 줬으면 마중을 나갔을 것을!”
점입가경으로, 미다스 후작이 직접 저택의 입구로 마중을 나왔다.
후룹!
“허허, 자네도 보고만 있지 말고 한잔 들지. 우리 나일 영지에서 직접 공수한 과일들을 블랜딩 해서 우린 차네. 다른 곳에서는 맛보지 못한 독특한 맛이 날 거야.”
한참 시끄러운(?) 소동을 뒤로한 채 응접실에서 태연하게 차를 마시는 미다스 후작.
“후작님, 무슨 꿍꿍이십니까?”
밖에서 보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태도에 후작이 왜 이러는지 대충 감은 왔다. 하지만 확실히 해야겠지.
“허허허, 꿍꿍이라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인가. ‘우리’ 사이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우리라는 단어에 묘한 강조를 하는 미다스 후작. 그 모습을 보니 추측은 확신이 되었다. 여우 같은 아저씨 같으니.
‘우리 가문이 미다스 후작가와 우호적이라는 걸 외부에 과시하기 위해서야.’
누구에게 과시하기 위함이겠는가. 그야 뻔했다. 필라도르 왕가 말고 더 있겠는가.
“…후작님. 이미 전부 알고 계시는군요.”
나는 굳이 돌려 말하지 않았다.
“흘흘, 무슨 말인지 이 사람은 잘 모르겠구만. 나는 그저 우리에게 귀하디귀한 ‘마나 연공법’을 알려준 백작가의 직계를 반긴 것뿐이네.”
이미 눈치를 챘음에도, 미다스 후작은 어째서인지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
후룹!
차를 마시는 미다스 후작의 손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
나는 탁자 위에 놓인 펜과 종이를 들고 오며, 동시에 후작에게 툴툴댔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작년 겨울, 제가 밀을 한 번 더 요청드렸는데 무시하지 않으셨습니까. 남의 가문 마나 연공법을 홀랑 가져가시고는 겨우 밀을 한 번 주신 걸로 퉁치시려 하다니. 이거 완전 저희가 손해인 장사라니까요?”
후작의 과한 환대. 그리고 환대와 달리 내미는 오리발.
이 상황에서 유추할 수 있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내 입과 달리, 손은 조용하게 움직이며 후작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도청이 있습니까?
내가 내민 종이를 보며 후작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 만한 사람이 왜 이러나. 이미 끝난 거래건만, 추가로 조건을 더 걸다니. 아버님께서 그런 것도 알려주지 않으셨나?”
-왕가에서 사람을 심었다네. 내 방에 마법 아티팩트가 설치되어 있어.
“말씀이 너무 심하지 않으십니까!”
쾅!
왼손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오른손으로 후작의 말에 답장을 보낸다.
-후작께서 저를 환대하신 이유. 저희 가문에 도움을 청하시는 게 맞으십니까?
“하나도 심하지 않네만. 난 또 뭔가 다른 좋은 건수라도 들고 온 줄 알았더니. 괜히 환대했군. 이런 강짜나 부리려 온 거면 썩 돌아가게나.”
미다스 후작의 눈이 잘게 떨렸다.
-맞네. 이 사람 좀 도와주게.
미다스 후작의 짧은 문장. 하지만 그 문장에 대한 답은 결코 가볍지 않았기에, 신중하게 그에게 되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돌아가려 했습니다. 왕가의 초대에도 불구하고 미다스 후작님을 뵙는 것이 예의라 생각했건만. 이렇게 도의를 모르는 분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정말로 실망입니다.”
-…반란. 정말로 계획하셨습니까?
미다스 후작이 내 질문에 입술을 짓씹으며 울분을 담은 채 말했다.
“…어이가 없군, 어이가 없어. 더 할 말이 없군. 늦었으니 오늘 하루 쉴 곳은 제공하지. 동이 트면 썩 물러가게나.”
-반란, 이라.
미다스 후작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난 그저.
“기껏 물에 빠진 사람 구해놨더니, 왜 보따리를 안 주냐고 화를 내는 것 같군. 실망일세.”
-살고 싶을 뿐이라네.
미다스 후작은, 내게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평생을 충성해온 왕가에 하는 일침인지 모를 말들과 함께.
내게 일국의 후작에 어울리지 않는, 참으로 소박한 필담을 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