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재미있구나.”
아렌의 중얼거림에 벡스터는 반응하지 않았다.
아렌에게는 재미있는 상황이겠지만, 벡스터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골목 몇 개를 지났을 뿐인데, 같은 도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거리의 풍경이 그러했고, 노골적으로 벡스터와 아렌을 노리는 시선들이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들었다.
마치 거리 전체가 적의를 드러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여어.”
그리고 적의가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험악한 인생을 살아온 것이 분명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몇몇이 아렌과 벡스터의 앞길을 막아섰고, 뒤쪽에서도 몇몇이 어슬렁거리며 길을 막아섰다.
앞뒤로 포위된 형국에 벡스터가 잠시 인상을 구겼지만 그것도 잠시, 빠른 속도로 길을 가로막은 패거리를 훑은 벡스터가 표정을 풀었다.
기사가 분명해 보이는 자신을 가로막은 것 치고는 별다른 실력들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양아치로군. 경험도 생각도 없는 고기방패.’
결론이 내려지자 이제는 측은해 보이기까지 한 패거리를 보면서 벡스터가 혀를 찼다.
그런 벡스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각자 날붙이를 꺼내든 패거리가 건들거리며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귀한 집 도련님 같으신데, 이쪽에는 어쩐 일이신가?”
“뭐. 호기심에 올 수도 있지. 하지만 거 뭐시냐. 뭐든지 간에 보시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아시려나?”
“여차하면 우리가 친절하게 안내해 줄 수도 있는데.”
전혀 친절해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사소한 문제쯤은 무시하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에 한숨을 내쉰 벡스터가 아렌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까요?”
“흥미롭군.”
아렌은 지금의 상황이 꽤나 흥미 있다고 느꼈다.
단지 서 있는 장소가 바뀐 것뿐인데, 시민들을 자연스럽게 억누르던 아렌의 위엄이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경의가 없어서인지, 일반 시민들과 사고가 다른 것인지, 탐욕이 본능을 억누른 것인지는 몰라도 감정을 느끼고 영향을 끼치는 아렌에게 있어서 이 패거리의 반응은 꽤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몇 놈을 데리고 돌아가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렌은 고개를 저었다.
암흑가에 볼일이 있어서 찾아온 것이고, 이런 경우에는 본보기를 보여서 힘의 우위를 확실히 해야 한다.
아렌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고, 동시에 묵직한 공기가 감돌았다.
“어. 어라?”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몇몇이 멈칫거렸지만, 이미 늦었다.
콰직!
“아악!”
우득!
“뭐. 컥!”
뼈가 부러지고, 살점이 찢겨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건들거리던 모습은 간데없고, 모두가 주저앉은 그들은 하나같이 성한 곳이 없었다.
“으아아악!”
“아. 아파아!”
숨이 끊어진 자들은 없었지만, 하나같이 출혈을 일으키는 모습이 이대로 둔다면 머지않은 시간에 사망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바닥을 적시기 시작한 선혈과 공기 중에 퍼지기 시작한 피 냄새, 비명과 신음소리가 거리를 장악했고, 흥미진진한 눈으로 장내를 주시하던 모든 시선들이 사라졌다.
“앞장서라.”
“예. 도련님.”
순식간에 벌어진 참극의 현장에 눈을 돌릴 만도 하건만 벡스터의 담력은 아렌을 만난 이후로 최대치까지 올라간 상황이다.
담담한 눈으로 앞장서서 걸어가는 벡스터의 모습에 땅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지르던 와중에도 분분히 길을 비켰다.
그렇게 골목을 지나니 확 넓어진 거리가 나왔다.
음습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나름대로의 활력이 있는 거리.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은 헤르메스의 건축법을 전혀 지키고 있지 않았고, 수상해 보이는 고기를 굽고 있는 노점상부터 결코 몸에 좋아 보이지 않는 약물을 취급하는 상인까지 보였다.
특별한 허가가 없다면 판매하지 못하는 무기까지 버젓이 내놓고 장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들은 애초부터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슬럼.
헤르메스의 그림자인 슬럼의 입구에 발을 들인 것이다.
* * *
아렌은 어디서나 눈에 띄는 사람이다.
가지고 있는 미모도 그렇지만, 자연스럽게 흘리는 위엄과 독특한 분위기는 홀로 빛나는 듯 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 아렌이 슬럼에 있으니 그것은 더욱 심했다.
거칠기 짝이 없고, 남루하고 추레한 슬럼의 사람들 속에서 홀로 고귀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아렌을 모두가 곁눈질로 쳐다보았고, 일부는 무기에 손을 가져다대며 눈을 번들거렸지만 함부로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저렇게 눈에 띄는 아렌이 아무런 제지도 없지 슬럼에 들어선 사실 자체가 아렌의 비범함을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묘한 분위기속에 아렌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흥미로운 눈길로 이곳저곳을 살피는 아렌의 모습은 철없는 귀족가의 도련님으로 보였고, 몇몇이 눈을 빛내며 아렌을 관찰했다.
하지만 어디서나 행동적인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은 슬럼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주변에 점점 사람이 늘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누군가가 아렌의 곁을 스쳐가려는 듯 다가섰다.
“어이쿠. 실례합니다!”
얄상한 인상의 청년이 아렌의 어깨에 몸을 스쳤고, 그 순간 청년의 손이 재빠르게 아렌의 몸을 훑었다.
어지간한 기사의 손놀림보다도 빠른 그 모습에 이미 알고 있었던 슬럼의 사람들도 감탄할 정도였고, 당하는 당사자인 아렌도 조금 놀라며 입을 열었다.
“어쭙잖은 기사보다는 낫구나.”
“아. 칭찬 감사……. 엥?”
즐거운 기운이 섞여 있는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답한 청년의 몸이 멈췄다.
말 그대로 아렌의 몸에 손을 가져다대려는 자세로 멈춰 버린 청년의 모습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일이 잘못됐음을 안 주변의 패거리들이 제각기 날붙이를 들고 달려들었다.
아차 하는 사이에 주변에 살기가 가득했지만, 아렌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고, 잔뜩 벼르고 있던 벡스터가 칼을 꺼내들었다.
스가가가가각!
“아악!”
“컥!”
“내 손!”
벡스터의 검이 믿기지 않는 속도로 허공을 갈랐고, 그 순간 다섯 개의 손목이 하늘로 떠올랐다.
한 순간에 다섯 명의 손목을 잘라 버린 벡스터의 놀라운 솜씨에 지켜보던 모두의 눈이 크게 떠졌고, 웅성거림이 일어났지만 벡스터는 고요한 눈으로 아렌의 앞에 버티고 섰다.
첨예한 살기가 일어나며 주변에 쏘아지자 눈을 빛내던 슬럼의 주민들도 움찔거리며 거리를 벌렸다.
“솜씨가 늘었구나.”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입으로는 겸손의 말을 내뱉었지만, 경계를 풀지 않는 모습에 아렌은 만족했다.
벡스터는 이 세계에서 아렌이 처음으로 가르침을 내린 인물이다.
내제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외제자쯤은 되는 인물인 것이다.
아렌이 제법 신경을 써서 짜깁기한 무학을 전해주었고, 벡스터가 성실하게 정진하여 실력이 늘어가고 있으니 아렌의 입장에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이다.
어느덧 손목을 움켜쥔 패거리가 화급히 자리를 피했고, 이제 아렌의 곁에는 여전히 멈춰 있는 얄상한 인상의 청년만이 남게 되었다.
“하. 하하. 도, 도련님?”
나름대로 슬럼에서 온갖 경험을 다해 왔다고 자부하는 리콘이었지만, 어색한 웃음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씨발. 잘못 걸렸다.’
제법 실력은 있어 보이는 호위기사를 대동하고 있지만 세상 물정 몰라 보이는 도련님의 모습에 성급히 다가선 것이 실수였다.
가볍게 한탕하고 빠지려는 생각이었는데 리콘의 행동을 보조하는 인원들까지도 모두 장애인이 되었으니 이 자리에서 빠져나간다 한들, 두목이 그를 가만히 둔다는 보장이 없었다.
이래저래 큰 일 났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리콘의 눈에 아렌의 시선이 닿았다.
“흡!”
한없이 깊어서 마치 밤하늘을 보는 것 같은 눈동자에 리콘은 한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정신을 부여잡기 위해서 고개를 돌리려고 하는 리콘의 모습에 아렌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까운 녀석이구나.”
“그렇습니까?”
아렌의 말에 벡스터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여전히 굳어져 있는 리콘을 살폈다.
적당히 긴 팔다리와 호리호리한 육체는 탄력이 있어 보였고, 거기에 방금 전 보여 준 빠른 손놀림을 생각하면 좋은 기사가 될 수 있는 재능이었다.
“길잡이로 쓰시는 게 어떻습니까?”
불현 듯 옛 생각이 난 벡스터가 슬그머니 아렌의 의중을 물었다.
어차피 이 슬럼에서 아렌의 볼일을 보기 위해서는 이곳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는 했으니, 굴복만 받아낼 수 있다면 제법 괜찮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괜찮은 생각이군.”
고개를 끄덕인 아렌이 리콘과 다시 눈을 맞추며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지?”
“어떤 장소를 원하시든지 최대한 간결하고 빠르게 안내하겠습니다!”
둘의 대화를 들은 리콘이 빠르게 대답했고, 그 순간 리콘은 거짓말처럼 몸이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반적인 슬럼의 사람이라면 이 순간 뒤도 안돌아보고 도주를 하겠지만, 다행히 리콘은 눈치가 있었다.
‘아서라. 도망치면 죽는다!’
반사적으로 움직이려는 다리를 필사적으로 제어한 리콘이 비굴한 웃음을 지었고, 아렌과 벡스터는 만족했다.
“어디로 안내할깝쇼?”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혹시라도 모를 이상을 점검한 리콘이 물었고, 벡스터의 시선이 아렌에게로 향했다.
“정보를 취급하는 곳이 있겠지?”
“물론입니다요.”
리콘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 암흑가에서 주력으로 취급하는 상품이다.
정보라는 상품의 특성상 빠른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했고, 각종 이권에는 칼을 들이미는 것을 서슴지 않는 암흑가들이지만 정보에 한해서만큼은 유기적으로 협조를 하는 것이 이쪽 바닥의 룰이다.
“어지간한 정보는 다 취급합니다. 대가만 충분하다면 고위 귀족 영애의 잠자리 취향까지도 가능합죠.”
자신 있게 대답하는 리콘의 태도에 만족한 아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장서거라.”
“옛! 도련님. 그런데 어떤 종류의 정보를 원하시는지요?”
정보의 질에 따라서 취급하는 조직이 다르니 헛걸음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대략적으로라도 알아야 했다.
‘뭐, 아무리 심해봐야 다른 귀족들의 소문정도겠지.’
기묘한 분위기와 위엄이 있기는 하지만 아렌의 모습은 귀족가의 도련님 그 자체다.
그런 도련님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리콘의 생각이었고 일반적인 경우라면 리콘의 생각이 맞았을 것이다.
하루 장사를 공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최대한 비위를 맞춰주고 빠져나가려는 생각에 리콘이 최대한 웃으며 손을 비볐다.
“마룡봉인체의 행방을 알고 싶구나.”
귓가에 또렷이 박히는 아렌의 목소리에 리콘의 표정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 * *
“제법 운치가 있군.”
아렌의 말대로 그들의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슬럼에서도 제법 커다란 건물의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통로는 지하로 이어져 있는 것 같았고, 통로의 이곳저곳에 장식된 조각과 문양은 연륜이 느껴지는 것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군데군데 걸려있는 횃불 덕에 시야가 가려지지는 않았지만 일렁거리는 불빛에 따라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음산한 분위기를 주었다.
마치 오래된 던전에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에 벡스터가 절로 긴장을 할 정도였다.
슬럼의 주민인 리콘마저도 긴장한 표정을 지었으니 이 통로가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통로에 발을 내민 일행이 걸음을 옮기길 얼마나 되었을까.
지하로 제법 내려왔다는 생각이 들 때쯤, 통로의 끝에 환히 펼쳐진 무엇인가가 보였다.
지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공동이 눈 안에 들어왔고, 그 공동 안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은 대략 봐도 수백 명 이상.
군데군데 세워진 건물은 투박하기는 하지만 집으로서 기능하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것이 어지간한 크기의 마을을 연상케 했다.
“지하도시 자온입니다.”
리콘이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고, 아렌이 써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