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자온은 꽤나 오래된 곳입니다.”
통로를 빠져나와서 자온으로 걸음을 옮기며 리콘은 쾌활한 음성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리콘은 제법 눈치가 빠르고, 항상 주변에 귀를 기울이며 사는 편이었다.
소매치기 실력은 좋지만 무력은 어중간한 리콘에게 정보를 모으는 것은 생존을 위한 노력이었고, 그렇기에 리콘은 아렌이 누구인지 알게 된 것이다.
‘설마 본인이 직접 나타날 줄은 몰랐지.’
그라인드의 괴물.
불미스럽게 쫓겨나듯 달아난 도련님이 한순간에 강대한 힘을 가지고 그라인드의 명예를 드높였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는 의외로 그라인드 백작가의 영지민들 사이에서는 제법 인기 있는 소재였다.
현실에 찌들어 사는 리콘은 당연히 그 소문을 웃고 넘겼지만, 지금에 와서 그 소문의 당사자를 만나게 되었으니 마냥 웃어넘길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도련님한테 붙어 보자.’
바람잡이 겸 경호원 역할을 하던 조직원이 다섯 명이나 불구가 된 지금, 두목이 리콘을 그냥 놔둔다는 보장이 없었다.
거기에 자온에까지 발을 디디게 만들었으니, 두목은 물론이고 자온의 인물들도 리콘을 노릴게 뻔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도련님한테 잘 보여서 슬럼을 빠져나가는 것이 만수무강에 훨씬 도움이 될 거라는 계산이 선 것이다.
마침 호위기사라는 양반도 리콘에게 호감이 있는 것 같으니 그 부분을 잘 공략해보자고 다짐했다.
최대한 친근한 눈빛을 벡스터에게 날린 리콘이 말을 이었다.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만, 꽤 오래전에 발견되었다고 합니다요. 인위적인 손길이 꽤 닿아 있어서 광물을 다 캐낸 탄광이었다는 소리도 있고, 이런저런 조각들도 많으니 옛 종교의 신전이었다는 소리도 있고……. 뭐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닙죠.”
어느덧 자온의 거리에 들어선 아렌의 일행에게 무수한 시선이 쏟아져 들었다.
아렌의 표정과 태도는 변함이 없었지만, 벡스터는 감각을 날카롭게 벼렸고, 리콘의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매력적인 장소라는 게 중요했습죠. 은밀한데다 넓고, 심지어는 쾌적합니다. 거기에 물까지 있으니 최고 아닙니까.”
주절대는 리콘을 향해 살기가 집중되었고, 전신이 따끔해졌지만 리콘은 입을 멈추지 않았다.
“처음 여기에 자리 잡은 게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요. 그 이후로 여럿이 자리를 잡았고, 어느덧 자온은 동남부 전체를 아우르는 암흑가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아렌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빽빽이 들어선 건물들은 각자 활발히 장사를 하고 있었고, 그중에는 만만치 않은 마나를 담은 물건들도 제법 보였다.
귀족도 함부로 거래하기 힘든 아티펙트가 아무렇지도 않게 거래가 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희귀한 몬스터의 부산물, 지식이 들어있는 것이 확실한 고서, 수상하기 짝이 없는 약물들, 거리 한쪽에서 빛나는 붉은 빛은 홍등가였다.
욕망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자온에 있었다.
“백작가에서는 알고 있느냐?”
아렌의 나직한 목소리에 리콘이 조금 망설이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렌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에드워드에게 암흑가에 접촉하는 법을 물었을 때, 자온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던 것이다.
“가끔 자온을 방문하는 백작가의 인물이 있다고는 들었습니다.”
리콘의 대답에 아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워드가 아렌을 속였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추궁해 보면 될 일이니 일단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나은 일일 것이다.
그렇게 길을 걷던 그때, 벡스터가 검을 뽑아들고 한 발자국 나섰다.
챙!
리콘의 앞을 가로막은 벡스터의 검이 허공을 갈랐고, 무엇인가가 검에 막혀 튕겨져 나갔다.
“으헙!”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 리콘의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이내 표독한 표정을 짓더니 품에서 단도를 뽑아들었다.
슬럼에서 얕잡아 보인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독기가 흐르기 넘실거리는 리콘의 눈빛이 아렌은 마음에 들었다.
“누구야!”
리콘이 단도를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소리 질렀고,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거. 살았으면 숨죽이고 엎드릴 것이지 왜 소리 질러?”
심드렁한 표정의 중년인은 얼굴에 길게 칼자국이 나있었고, 그 칼자국만큼이나 험악해 보이는 무기를 몸 이곳저곳에 걸치고 있었다.
얼핏 보면 무기만 덕지덕지 들고 다니는 풋내기 용병처럼 우스워 보였지만,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사내를 비웃지 않았다.
“골라스 ……!”
“애송이가 입이 가볍군.”
골라스가 이를 드러내자 거친 살기가 일어났고, 자기도 모르게 한발 물러선 리콘이 이를 악 물었다.
동시에 골라스와 비슷한 사내들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나더니 어느덧 아렌의 일행을 포위한 형태가 되었다.
리콘의 표정에 암담함이 떠오르고, 골라스와 패거리가 흉악한 웃음을 지을 때, 아렌의 입이 열렸다.
“저건 뭐냐?”
분위기와는 전혀 안 어울리는 차분한 목소리에 골라스가 얼굴을 찡그렸고, 창백한 표정의 리콘이 답했다.
“동부를 유랑하는 마적단의 두목입니다. 세력도 크고 워낙에 신출귀몰해서 막대한 현상금이 걸려 있습죠. 주로 소규모 상행이나 마을을 약탈합니다.”
“인신매매와 납치를 주업으로 하고 있지.”
리콘의 말에 골라스가 웃으며 말했다.
기본적으로 노예제도를 부정하고 있는 제국이지만, 모든 나라가 그런 것은 아니었고, 제국도 전쟁포로를 노역에 동원하고 있었으니, 노예거래를 적극적으로 단속하려 하지는 않았다.
단속은 하지만 느슨한 그 지점을 몇몇 단체가 파고들어 주업으로 삼고 있었고, 골라스의 마적단은 동부에서 꽤나 알아주는 노예상이었다.
“볼일이 있어서 자온에 왔더니만 이런 상품을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어.”
아렌을 끈적끈적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골라스가 벡스터를 쳐다보았다.
“저쪽도 괜찮은 상품 같고, 오늘은 운이 좋구만.”
벡스터가 묵묵히 검을 들었다.
자신과 도련님이 어떻게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지만, 주인으로 모시는 아렌이 모욕을 당했다고 인식한 기사는 이 순간 머리끝까지 분노가 차올랐다.
분노가 극에 달하면 거꾸로 차분해지는 법.
이 순간 더 없이 냉철한 정신을 가지게 된 벡스터의 머릿속을 골라스의 그 패거리들을 어떻게 난도질할 것인가에 대한 계산으로 가득했다.
“쉽게 가자고 도련님. 순순히 따라오면 거칠게는 안대하지.”
골라스의 말에 패거리들이 킬킬거렸지만, 눈들은 웃고 있지 않는 것이 숙련된 패거리가 분명했다.
리콘은 단도를 단단히 쥐었다.
소문이 반만 맞는다고 하더라도 도련님이 다칠 일은 없을 거 같지만, 자신은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결의로 이를 악무는 그때였다.
“길잡이. 하나만 묻자.”
너무나도 태연한 목소리에 골라스를 비롯한 모두가 멈칫했다.
“예. 예. 도련님.”
잔뜩 긴장한 리콘이 시선을 돌리지 않고 답했고, 아렌은 질문을 이었다.
“저자들은 그라인드의 백성인가?”
“……예?”
전혀 생각지 못한 질문에 리콘은 순간 말을 잊었고, 골라스가 입을 벌리고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하! 그라인드의 백성이라니! 도련님이 순진하시구먼! 왜 영지민이면 명령을 따를 것으로 생각하셨나? 이거 아쉬워서 어쩌나?”
골라스의 웃음에 패거리들도 대놓고 비웃기 시작했고, 리콘의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아렌은 신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너희들은 그라인드의 백성이 아니라는 말이구나.”
“헷! 우리는 자유인이다! 그 어느 영지에도 속해있지 않아!”
당당한 골라스의 선언에 패거리들의 얼굴에도 뿌듯한 감정이 깃들었다.
그들은 유랑민족의 피를 이은자들이다.
오직 말과 패거리에 의지하며 자유롭게 대지를 활보하는 것에 크나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영지에 연연하는 나약한 인간들과는 종자 자체가 다르다고 자부하고 있는 자들이니 그들의 자부심은 일견 타당한 것이었다.
“잘됐군.”
“크크크크……. 뭐?”
아렌의 손이 느릿하게 움직이더니 가슴쯤에 멈췄다.
“그라인드의 백성이 아니라면 백작님의 체면을 살필 필요가 없지 않느냐.”
아렌의 손이 움직였다.
* * *
찌이이익!
“카아아아악!”
입가를 지나 얼굴 전체로 번지는 통증에 골라스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입으로 가져다 대었다.
“히! 히이익!”
끔찍한 통증과 함께 손가락에 느껴지는 감각은 믿기 힘든 사실을 시사하고 있었다.
“이. 입이!”
리콘의 중얼거림이 아니더라도 모두의 눈에는 골라스의 몰골이 똑똑히 들어왔다.
언제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몰라도 골라스의 입이 귀 밑까지 갈라져서 핏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근육은 물론 뼈까지 드러나 보이는 끔찍한 몰골에 모두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지만, 아렌의 손속은 이제 시작이었다.
꽈지직!
“크아아악!”
“커어억!”
뼈가 분쇄되는 소리와 함께 골라스의 패거리들이 강제로 땅에 몸을 처박았다.
허벅지와 정강이에 관절이 하나씩 더 생긴 이들이 제 몸을 지탱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고, 그렇게 떨어진 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관절에서 부러진 뼈들이 살갗을 뚫고 튀어나왔다.
“키아아아!”
좌우로 커다랗게 찢어진 입 때문인지 기괴한 비명을 지른 골라스가 얼굴의 반을 벌리며 아렌에게 달려들었다.
어느새 양손에 빼어든 무기는 시퍼렇게 날이 서있었고, 줄기줄기 흐르는 오러와 찢어진 입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달려드는 모습은 야차를 연상케 할 정도였지만, 아렌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콰직!
“케헥!”
아렌의 손가락이 움직이자 골라스의 발목뼈가 돌아가 버렸다.
끔찍한 통증과 무너지는 균형에 쓰러지는 몸이었지만, 그 상황에서도 골라스는 한손을 바닥에 대고 자세를 잡으려는 투지를 보여 주었다.
와지직!
“카학!”
하지만 아렌의 손짓에 바닥을 짚으려던 손목이 거꾸로 접혀버렸고, 접힌 손목이 바닥에 그대로 부딪치며 팔꿈치와 어깨의 관절이 빠져 버렸다.
“크어어!”
피거품을 줄줄 흘리면서도 어떻게든 일어나려는 골라스의 앞에 어느덧 아렌이 서 있었다.
광기에 가득 찬 눈동자를 희번덕거린 골라스가 멀쩡한 팔을 휘둘러 아렌을 공격하려했지만, 동시에 골라스의 쇄골과 어깨가 무너져 내렸다.
우드득!
“……!”
몸 곳곳에서 전해지는 끔찍한 고통에 이제는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하는 골라스의 앞에 아렌이 쭈그려 앉았다.
광기와 고통이 소용돌이치는 골라스의 시선과 아렌의 시선이 만났다.
한없이 깊어 밤하늘마저 삼켜 버릴 것만 같은 눈동자를 직시한 골라스는 그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다는 사실을.
붉은 기가 떠오르는 눈빛의 변화에 공포가 뇌리를 좀먹고, 괄약근이 열리며 오물을 쏟아내었지만, 그것도 잠시뿐.
퍽!
두 수정체가 그대로 터져 나가며 골라스는 빛을 잃었다.
“눈빛이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구나.”
담담하기 그지없는 아렌의 목소리에 이곳에 있는 모두의 머리칼이 쭈뼛 섰다.
아렌의 양손이 골라스의 얼굴을 감쌌다.
“목소리는 천박하고 얼굴은 품위가 없다.”
양손으로 골라스의 얼굴을 잠시 토닥이던 아렌의 손이 이내 골라스의 입을 위 아래로 붙잡았다.
“으어어어!”
공포에 정신이 나가 버린 골라스였지만, 본능만은 살아있는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려 했지만, 아렌의 손은 거침이 없었다.
콰지직!
아렌의 양손이 위아래로 벌어지고, 골라스의 입에 있는 상처를 중심으로 상자가 열리듯 분리되었다.
구강 안쪽에서 말려있어야 할 혀가 축 늘어지고, 골라스의 이빨 전체가 공기 중에 노출되었으며, 하악골과 상악골이 벌어져서는 안 될 각도로 벌어져 목에 겨우겨우 걸쳐 있는 모습이 되었다.
“우웨엑!”
“으아아악!”
자온의 거리 여기저기서 구토음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제아무리 음지중의 음지의 주민이라는 자온의 사람들이지만 이런 끔찍한 광경은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영지민도 아닌데 봐줄 필요가 없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렌의 모습을 그 누구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