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결계를 조율하던 바인드의 안색이 굳었다.
‘……선대가 미쳤구나. 제국을 날려버리겠다는 소리잖아!’
흔히들 소드마스터를 사단급 병력에 비견하고는 한다.
개개인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으니 사단급 병력, 적어도 만 명 이상이 달려들어야만 소드마스터와 공멸이 가능하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소드마스터도 사람이니 그 정도의 인원을 상대하다보면 지키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바인드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기사와는 다르지만 본인이 마스터인 만큼 어느 정도 근사치에 가깝게 유추를 할 수 있었고, 그렇게 내린 결론은 사단 병력 정도로는 소드마스터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소드마스터가 쉬지 않고 만 명 이상의 병력을 상대한다면 위의 속설이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소드마스터 정도 되는 사람이 왜 그렇게 싸우겠는가?
개인의 능력에서 절대적인 차이가 있으니 치고 빠지며 휴식을 병행하면 시간을 걸리겠지만 사단 병력 하나쯤 녹여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소드마스터 개인이 할 수 있는 것과 사단급 병력이 할 수 있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 그렇게 비교하는 것일 뿐, 실질적인 전투력만을 따진다면 일반인들을 절대로 소드마스터를 막지 못한다.
그렇다면 소드마스터를 능가한다는 초인들은 어떨까?
‘……재앙이지.’
살아 숨 쉬는 재앙 그 자체가 될 것이고, 움직임에 따라서 진짜로 제국을 붕괴시켜버릴지도 몰랐다.
황제가 괜히 초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구금시설을 만든 것이 아니다.
본인의 권력욕이 강한 것도 있지만, 이러한 초인들이 통제 없이 돌아다니는 것에 강한 불안감을 느껴서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초인들이 세상사에 관심이 없어서 조용히 자신의 거처에서 은거하는 편이다.
초인이 확실한 거라고 추측되는 황제가 유별난 유형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런 초인들 중 위험도면에서는 상위에 위치에 있는 것이 확실한 마룡봉인체가 제국을 파괴하겠다고 선언했으니 당연히 바인드는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건 곤란하군.”
그런 바인드의 귀에 아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 * *
암살자는 감정을 절제하고 인내심을 기르는 훈련을 받는다.
암살자의 특성상 상황에 따라서는 몇날 며칠을 같은 자리에서 대기해야 하는 일도 생길 수 있으니, 인내심은 암살자의 필수요소이다.
감정을 절제하는 것도 마찬가지.
의뢰인을 암살하러 갔다가 의뢰인에게 동화되어 버린 멍청한 암살자의 이야기는 드물지도 않았고, 그런 부분을 배제하기 위해서 암살자는 감정을 절제하고 말살하는 훈련을 받는다.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윅은 타고난 암살자였다.
인내심은 말할 것도 없고, 적절한 순간에 목표를 살해하는 것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다만 살행이 끝나고 목표를 애도하며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는데, 윅의 상관들은 그러한 부분을 오히려 반겼다.
제 아무리 감정을 마모시킨다고 해도 암살자 역시 사람이고, 사람인 이상 감정의 분출구가 하나쯤은 있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는 암살자’ 윅은 착실히 성장해 나갔다.
대부분의 초인들은 경지에 이르러서 정신 수양을 중요시 한다지만, 윅은 초기부터 정신에 대한 훈련을 한 상황.
그렇기 때문에 봉인체가 되었을 때, 들리는 내면의 유혹을 그 누구보다 잘 버텨낼 수 있었다.
다른 동료들이 점차 타락해가는 자신에 대해서 괴로워하고 있을 때도 윅은 묵묵히 자신을 억누르며 타락을 유도하는 내면의 유혹을 하나의 감정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슬픔.
슬픔이라는 감정에 유혹을 집중시키는데 성공한 윅은 항상 우울한 느낌이 드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가끔 울어주는 것으로 우울함마저 분출할 수 있었으니, 윅은 봉인체의 유혹을 극복해낸 최초의 영웅일지도 몰랐다.
자신의 성과에 기뻐하며 윅이 괴로워하는 동료들과 성과를 공유하려던 그때.
황제가 12영웅을 잡아들이기 위해 쳐들어왔고, 윅의 노력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처음 몇 년간의 황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 했었다.
음지의 인물이었기에 거꾸로 대국을 보는 시야가 넓었던 윅은 황제의 처사를 어느 정도 이해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처음에는 주저했던 연구진들도 한없이 재생하는 봉인체의 신체에 열광하며 과격한 실험을 연속해나갔고, 그것은 제 아무리 강철 같은 정신력을 지니고 있는 초인이라도 버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봉인체가 끊임없이 속삭이는 유혹의 목소리까지.
12영웅 중 가장 먼저 유혹을 극복했고, 어쩌면 봉인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었던 가능성을 품었던 윅이 미쳐 버리는 것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곤란하다고?”
윅의 얼굴이 그대로 멈추더니만 천천히 입 꼬리가 내려가고 예의 우울한 표정이 되었다.
방금 전에 웃었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다시금 우울한 감정이 주변을 가득 메웠고, 마기가 안개처럼 일렁거렸다.
“그래. 곤란하다.”
“자네는 나하고 볼일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어쭙잖은 정의감은 아닐 테고.”
“설마.”
“그럼 왜지?”
미쳐버린 윅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황제를 향한 증오가 원인이다.
그 외의 부분에서는 냉정한 암살자답게 유불리를 명확히 판단하고 있었고, 윅의 감각은 눈앞의 아렌을 적으로 두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기사나 무인이라면 호승심에 한번쯤은 손을 섞어 볼만도 하겠지만 윅은 암살자.
임무에 지장이 가는 일이 있다면 최대한 피해야하는 것이 그의 미덕이다.
물론 아렌과 싸우게 된다면 이길 자신은 있었지만, 자신도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될 것이고 그것은 임무의 지연을 의미했으니 윅으로서는 바라는 바가 아니다.
때문에 윅은 무기를 꺼내드는 대신 아렌과 대화를 택했고, 이렇게 서로 마주앉아 있는 것이다.
아렌의 전신에서 붉은 기운이 아른거리기 시작했고, 눈빛에 뭐라 말할 수 없는 위엄이 깃들었다.
“간단한 이야기다.”
마기에 오염되어버린 찻잔을 바라보던 아렌이 혀를 차더니 이야기를 이었다.
“제국에는 그라인드도 포함되어 있겠지?”
파삭.
테이블에 내려놓은 찻잔이 산산이 부셔저 가루가 되었다.
“그러니 곤란하다는 거다.”
“……그렇군.”
아렌의 눈을 마주한 윅의 눈빛이 깊어졌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여기서 아렌과 타협을 했을 것이다.
자신의 목표에 그라인드는 들어있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든지 해서 아렌의 간섭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켰을 것이고, 원래의 윅이라면 당연히 이런 선택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윅은 하나의 목표에 미쳐있는 상태다.
그라인드도 제국의 일부.
이미 머릿속에 박혀버린 전제를 도저히 바꿀 수 없었고, 그렇기에 아렌과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유감이군.”
“그래.”
윅의 말에 대답한 아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투둑.
밀도 깊은 마기는 생명의 유무를 가리지 않고 영향을 끼친다.
아렌이 일어섬과 동시에 테이블과 의자가 무너져 내렸고, 둘은 마주서게 되었다.
팔만 뻗어도 서로 닿을 거리에 서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길거리에서 마주친 아는 사람을 본 것처럼 일상적인 것이었지만, 바인드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붉은 기운과 마기.
어느새 아렌의 전신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붉은 기운이 마기를 밀어내며 자신의 영역을 갖추기 시작했고, 그와 반대로 결계 내분에 지속적인 영역을 가진 마기가 일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유감이야.”
윅의 나직한 한마디가 바인드의 귀에 똑똑히 박혔고, 그 순간 결계 내부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 * *
콰릉!
“큭!”
결계 내부를 가득 메워버린 마기가 크게 일렁이더니 이내 흉포한 기세로 요동치기 시작했고, 바인드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촘촘하게 짜여 있는 안전장치를 넘어서 결계를 조율하고 있는 바인드에게까지 충격이 도달할 정도였으니, 결계 내부가 어떤 상태일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흠.”
가볍게 숨을 내쉰 아렌이 눈을 빛냈다.
결계를 가득채운 마기가 전 방위로 압박해 들어오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 미쳐 버릴 정도로 근원적인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지만, 아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렌의 전신에서 타오르던 붉은 기운이 크게 일렁이더니 이내 폭발적인 기세로 뻗어나가 마기와 접촉했다.
파지지직!
스파크가 튀기고 집중된 전하가 불똥을 일으키기까지 했지만, 아렌의 기운은 마기를 막아세우는데 성공했고, 그 순간 아렌의 오른손이 허공을 크게 갈랐다.
콰아아악!
그 어느 때보다 붉고 선명한 괴수의 손이 떨어져 내렸고, 세상 그 무엇도 그 앞에서는 버틸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보였다.
쩌렁!
그것은 마기도 마찬가지였다.
공간이 진동하는 울림과 함께 괴수의 손이 지나간 자리가 타오르는 붉은 기운으로 가득했고, 걷어낸 마기 너머로 윅의 몸을 갈랐다.
쾅!
어지간한 인간의 몸통보다 큰 손이 윅을 가로질러 땅으로 떨어졌고, 그 순간 땅바닥이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거대하게 패였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강력한 일격에 바인드는 눈을 부릅떴지만 아렌은 인상을 찌푸리며 윅이 있는 자리를 노려보았다.
손맛이 이상했던 것이다.
“인상적이군.”
그런 아렌의 생각이 맞았는지, 천참만륙 되었어야 할 윅의 몸이 환영처럼 솟아올랐다.
“피했나? 아니. 그것도 아니군.”
마치 물을 손으로 가르는 느낌이 들었던 것을 기억한 아렌이 심유한 눈빛으로 윅을 쏘아보았다.
최고조로 힘을 발휘하는 용의 눈이 무수히 많은 정보를 아렌의 두뇌로 전달했고, 가열되기 시작한 두뇌는 순식간에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
“그림자인가.”
“정답이야.”
희미하게 웃는 윅의 모습에 아렌이 눈가를 좁혔다.
믿기지는 않지만, 지금의 윅은 현실과 허상에 반쯤 걸쳐져 있는 상태라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세상의 그림자와 거의 동화되어서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할 수 있었다.
“재주는 좋다만.”
아렌의 눈이 불타오르며 허공에 괴수의 손이 떠올랐다.
“부셔버리면 그만이다.”
실체가 없는 것을 타격하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아렌이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럴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순간 윅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마기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바인드가 쳐 놓은 결계 안에는 이미 마기로 가득 차 있었고, 유사 마계화 되어 있었다.
환경 자체가 아렌을 적대하는 것 같은 상황이었고, 그런 곳에 초인에 다다른 암살자가 숨어들었으니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렌이 표정을 굳힌 것은 그런 하찮은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 나는 항상 그림자가 되고 싶었지.
아렌을 둘러싼 모든 공간에서 윅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것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폭력이 되어서 아렌의 전신을 두드렸고, 어지간한 마스터라도 치명상을 입을 정도의 위력을 보였다.
–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더군. 자네는 알거야.
마스터가 자신의 심상을 밖으로 표출하는 경지라면 마스터를 넘어선 초인은 자신의 심상을 세계에 강요하기 시작한다.
아렌이 만들어내는 괴수의 손도 그러한 심상의 일종이고, 이러한 심상은 어지간한 법칙을 무시하기 마련이니 초인이라는 것은 자신의 흔적을 세계에 새기는 자들이다.
– 그래도 어찌어찌 성공해서 이렇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네.
온통 어둠으로 가득 찬 결계 내부는 빛 한 점 세어들어오지 않았다.
– 이곳은 나의 세계.
완벽한 어둠으로 들어찬 세계는 시간과 공간감각마저 빼앗아갔다.
– 섀도우월드에 온 것을 환영하네.
완전한 구형으로 굳어진 세계가 아렌을 적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