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전 대륙의 사람들이 마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마기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보이는 즉시 배제하고 정화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근원이 다른 세계의 기운인 마기는 주변의 모든 것을 원료로 증식하며 자신의 기운을 넓히려는 성질이 있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환경을 마계에 맞춰서 변질시킨다.
즉 마기에 오염된 땅은 이 세계의 법칙이 아닌 마계의 법칙을 따르는 땅이 된다는 것이고, 이 세계의 생명체가 서식하기에 굉장히 불리한 형태가 된다는 뜻이다.
객체 하나하나가 막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데 환경까지 적대적인 공간으로 변해 버리니 마계의 존재와 싸운다는 것은 굉장한 불리를 동반하는 것이고, 실제로 마룡이 현실에 소환되었을 때, 백팔 명의 영웅이 제일 고전했던 것은 마계화되어 버린 환경 그 자체였다.
공기 중의 산소는 희박하기 그지없어서 당장 호흡이 곤란해지고, 마나의 회복이 더뎌지며 주변의 흙 한줌마저도 적대적인 기운을 내뿜는다.
그렇기에 전 대륙의 사람들은 마기의 기운이 한 줌이라도 발견되는 순간 전력을 다하여 박멸하려 하는 것이다.
* * *
“흠.”
아렌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주변을 뒤덮고 있는 어둠은 확고하기 그지없는 악의를 가지고 아렌의 몸과 정신을 침범하려하고 있었고, 실제로 아렌의 힘은 실시간으로 깎여나가고 있었다.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제 아무리 무진장의 힘이라고 할지라도 명확한 의지가 없다면 그것을 배제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문제라면 이 힘을 정교하게 사역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 방심하지 말게나.
스아아아아.
공간을 울리는 목소리가 파동이 되어서 아렌의 몸을 두들겼고, 그 사이에 은밀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날카로운 첨단을 형성하더니 아렌의 온 몸을 향해 파고들었다.
온 몸을 덮을 기세로 빽빽하게 형성된 가시가 쏘아오는 모습은 섬뜩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지만, 아렌은 그저 표정을 한번 찡그릴 뿐이었다.
동시에 아렌의 전신을 휘감고 있던 붉은 기운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이내 육각형의 패널이 촘촘히 겹쳐진 형태가 되어서 아렌의 피부 주위로 떠올랐다.
카가가가가각!
패널과 송곳이 격렬하게 부딪치고 불똥이 튀겼다.
용의 비늘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단단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한 용의 비늘에 한없이 가까운 호신강기는 세상 그 어떠한 기운에도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있었고, 육각형으로 겹쳐진 호신강기는 구조적인 효율도 좋았다.
검은 송곳들이 붉은 패널 앞에 힘을 잃고 어둠속으로 녹아들었다.
그 순간 아렌의 눈이 빛나더니 어깨 위 허공에 한 쌍의 거대한 그림자가 떠올랐다.
선명한 붉은 색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괴수의 손이 크게 기지개를 켜더니만 이내 한없이 검은 공간을 사선으로 가로질렀다.
뻐버버버벙!
아렌의 심상이 가득 담긴 괴수의 손이 지나간 자리마다 붉은 기운이 가득 남아 마기와 격렬하게 불타올랐고, 사선으로 그어진 일격은 한순간에 마기로 가득 찬 공간을 소멸시켰다.
– 크음!
윅의 신음 소리가 공간을 울렸고, 아렌의 정면에 보이는 공간의 마기가 사라져서 바깥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것도 잠시뿐.
– 그리 쉽게 보내줄 수는 없지.
폭발적인 기세로 증식을 시작한 마기가 아렌이 허공에 남긴 붉은 기운을 감쌌고, 소멸된 공간을 꾸역꾸역 메꿨다.
카가강!
동시에 아렌의 전신을 뒤덮을 기세로 송곳이 쏘아졌고, 다시금 아렌의 호신강기에 막히며 불똥을 튕겼다.
윅의 공격은 아렌에게 닿지 않고 아렌의 공격은 윅의 공간을 가를 수 있으니 아렌이 유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아렌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성가시군.”
키기기깅!
굴하지 않고 끝도 없이 생성을 반복하며 전신을 찔러오는 가시를 보며 아렌이 중얼거렸다.
– 성가시다는 표현만으로 넘어가는 건가. 과연 대단하네.
공간을 울리는 윅의 목소리에는 슬픔과 함께 희열이 묻어있었다.
상반된 감정이 공간을 타고 증폭되어서 아렌의 정신을 두드렸지만, 아렌이 성가시다고 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 하지만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 무의미한 일로 힘을 빼는 것도 낭비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고통은 없을 거라고 약속하지.
자신의 유리함을 믿고 항복을 종용하는 윅의 은근한 말에 아렌은 코웃음을 쳤다.
“망상이 심하구나.”
– 망상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아쉽게 됐군. 자네 덕분에 예상치 않은 시간을 버리게 됐어.
혀를 차는 윅의 말을 끝으로 아렌을 찔러오는 가시가 굵어지더니만 충격량이 늘어났다.
그래도 아렌의 호신강기를 뚫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공격하는 모습은 언젠가는 뚫릴 것이 분명하다는 믿음이 있어 보였다.
“확실히 성가셔.”
초인의 경지에 올라 자신의 심상을 세계에 새기는 것은 각자의 경지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권능의 형태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작디작은 힘밖에 새기겠지만 경지가 올라가고 심상이 확고해질수록 세상에 투사할 수 있는 힘은 늘어난다.
지금 윅이 보여 주고 있는 섀도우월드같은 경우의 심상을 세상에 새기기 위해서는 아득하기 짝이 없는 경지를 개척하고 무진장의 힘을 사역할 수 있어야 겨우겨우 가능한 것.
하지만 아렌이 본 윅은 그 정도의 경지는 아니었고, 용안에 비친 윅의 상태는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면 윅은 어떻게 이러한 강대한 심상을 구현해 낼 수 있었을까?
“봉인되었어도 용은 용이라는 건가.”
영혼에 봉인된 마룡의 힘을 이끌어내어 그 출력을 바탕으로 심상을 구현해낸 것이다.
* * *
윅의 심상 섀도우월드는 매우 불안정하다.
애초에 윅의 경지로 구현해 낼 수 있는 심상은 전신을 그림자로 화하거나 주변의 그림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 정도만 해도 굉장한 경지이기는 하지만, 오랜 고문으로 미쳐버린 윅은 봉인해야 할 마룡의 조각을 자신의 힘으로 소화시키려 했다.
제 아무리 미쳐 버렸다고는 하지만 윅은 12영웅 중 정신력에 있어서 가장 앞서 나가던 자다.
심상을 다루는 일은 정신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판가름이 나기 마련이고, 거기에 광기가 더해지니 결국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기이한 심상이 완성되었다.
윅의 심상인 그림자에 봉인에서 나오는 마기를 뒤섞었다.
마기와 그림자는 궁합이 좋았고, 그림자에 녹아드는 윅은 이내 마기자체에도 녹아들 수 있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섀도우월드의 불안정함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것을 원료로 증식하는 마기에 윅의 의지가 서리니 방향성을 가지게 된 힘은 더욱 치명적이 되었다.
바인드의 결계가 아니었으면 아마도 공동 전체가 윅의 심상 안에 포함되었을지도 몰랐다.
거기에 봉인체 특유의 재생 능력은 마기와의 시너지를 일으켜 선순환을 시작하니 지금의 윅은 섀도우월드라는 심상을 언제까지라도 유지할 수 있었다.
다만 제아무리 초인이라도 정신력에는 한계가 있으니 영원히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규모에 비해서 정신 소모가 그렇게 크지 않은 윅의 심상이니만큼 윅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다.
윅의 소모는 없는데 마기로 둘러싸인 아렌은 실시간으로 힘의 소모를 일으키고 있다.
산소가 없으니 호흡이 달리고, 둘러싼 마기는 마나를 배제했으니 힘을 보충할 방법도 없었다.
제아무리 아렌의 힘이 끝을 알 수 없는 무진장의 것이지만 엄연히 한계는 있었고, 그렇다고 공간 자체를 날려 버릴 초월적인 일격을 준비하자니 윅의 끝없는 방해가 거슬렸다.
아렌의 말대로 확실히 성가신 상황인 것이다.
카가가가강!
육각형의 패널에 둘러싸인 채 허공에 떠 있는 아렌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 포기한 건가?
뭔가를 준비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저 버티는 모습에 윅의 목소리가 슬며시 유혹을 해 왔지만, 아렌은 대꾸하지 않고 그저 사고를 계속했다.
키기기기깅!
굳건하기 짝이 없는 아렌의 호신강기를 끝없이 갉아대는 윅의 공격은 느리지만 착실하게 아렌의 힘을 깎아내고 있었다.
이대로 가둬놓고 시간을 보낸다면 윅 자신의 승리가 확실할 터.
그 다음에는 소모된 정신력을 복구하는데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고, 거기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모될 것이니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이었다.
– 할 수 없지. 변수를 사전에 제어할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르고 넘어갔다면 치명적이었을 게 뻔한 아렌이라는 변수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것에 윅은 만족했다.
암살자의 미덕은 마무리를 확실히 하는 것이다.
승리를 자신했지만 방심하지 않고 꾸준히 아렌에게 소모를 강요하던 그 순간.
훅.
아렌의 눈이 떠지면서 붉은 빛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 * *
“……젠장.”
바인드는 초조한 표정으로 구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집 크기로 압축된 검은 구체를 둘러싼 결계에 힘을 더했고, 길드에서 보관하고 있던 각종 아티펙트들을 꺼내서 보강했지만, 그래도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다.
“……손을 써야 하나.”
바인드의 품 안에는 몇 개의 아티펙트가 남아 있었고, 그것은 마기를 상대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정보길드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모아놓은 보물도 많았고, 바인드의 품에 있는 것은 그 중에서도 능히 성물이라고 불릴 만한 것들이었으니 어지간한 마기쯤은 단번에 정화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문제라면 윅이 심상으로 일으킨 마기가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라는 것.
원숙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바인드는 심상에 대한 가닥을 잡고 있는 상태였고, 그런 그의 본능은 함부로 손을 쓰면 안 된다는 강력한 예감을 주고 있었다.
마스터에 이른 자의 예감은 예지에 가깝다.
세상의 이치를 본능적으로 알아가는 단계에 이른 바인드의 예감은 빗나간 적이 거의 없었고, 그것이 바인드를 주저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도 해야겠지.”
불길하기 짝이 없는 예감에 주저하던 바인드였지만, 이내 마음을 굳혔다.
윅은 어찌 보면 정보길드의 원죄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현재 정보길드의 수장인 자신이 어떠한 형태로든 손을 써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고, 바인드는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최종 시퀀스를 적용하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비밀조직의 본부답게 정보길드의 본거지에는 만약을 대비한 조치가 취해져 있었고, 공동 안에 빽빽이 들어찬 마법진에는 마지막 순간을 대비한 자폭마법도 있었다.
적에게 단 한줌의 정보도 건네지 않게 하기 위해 촘촘히 짜인 자폭마법은 공동 전체를 날려 보내기에 충분했고, 정보를 소각하기 위한 마법적인 조치는 괴멸적인 피해를 일으킬 수 있었다.
거기에 성물에 가까운 아티펙트까지 동원한다면, 일말의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바인드는 마음을 먹었다.
‘도련님께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확실히 아렌은 대단한 사람이고 따르고 싶어지는 마음이 절로 일어나는 위엄을 가지고 있었지만, 바인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 검은 구체안에서 붉은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아 대항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지만, 정보길드의 수장으로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바인드는 아렌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유사 마계화한 공간은 그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는 환경.
그렇다면 아렌이 대항하고 있는 지금 승부를 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바인드가 표정을 굳히던 그때였다.
쿠르릉.
“어?”
은은히 들리는 천둥소리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태양이 환히 비추던 공동이 어두워졌다는 것에 화들짝 놀란 바인드가 고개를 들었다.
쿠르르르릉.
뻥 뚫린 공동 너머로 환히 내려쬐고 있던 태양을 어느새 시꺼먼 먹구름이 가로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