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혈통으로 이어지는 서양의 용과는 다르게 동양의 용은 혈통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다.
인간과 미물에 관계없이 하나의 생명체가 계기를 얻어 영각을 각성하고, 이후 끝없는 수행을 행하여 업을 쌓고, 그 업을 바탕으로 등용문에 올라 용이 된다.
하지만 영각을 각성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드문 확률이고, 설사 영각을 얻어 수행에 돌입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살아남는 것은 한줌에 불과하니 실로 지난한 과정이다.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용이 되기 위해서는 여의주를 얻어야 하는데, 이 여의주라는 것의 형태가 명확히 전해지지 않고, 그 형태마저 제각각 다르다고 하니, 하나의 생물체가 용으로 화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어야 가능할 것이다.
다만 이 여의주에 관해서는 수행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 * *
쿠르르르릉!
어느덧 그 기세를 늘려 헤르메스를 다 덮을 정도로 크기가 불어난 먹구름에서는 빛이 번쩍이고 거대한 힘을 품은 불길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변화에 도시에 거주하는 영지민들이 난리가 난 것은 물론이고, 마법사와 신관들이 급히 뛰쳐나와 사태를 예의 주시했다.
“마법인가?!”
“……마법은 아니야. 마나의 움직임이 마법과는 전혀 달라. 거기에 이 정도의 기상 변화 마법을 일으키려면 최소한 대마법사가 관여해야 하는데 그런 정도의 마나 유동은 관측되지 않소이다.”
“신성 마법은 어떻소이까? 천공신의 권능일까요?”
“신성 마법도 아니요. 만신전의 권능이 느껴지지 않소!”
모두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드웨인이 가는 눈으로 한참을 먹구름을 직시하더니만 이내 표정을 굳혔다.
마스터에 이르러 영안이 트이기 시작한 드웨인의 눈에는 강렬하기 짝이 없는 한 줄기 의지가 먹구름에 닿아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인 것이다.
“……도련님인가.”
인간이 자연환경에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아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웨인의 머리를 스쳤고, 그 순간 드웨인이 몸을 날렸다.
“드웨인 경!”
“어디 가십니까!”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일체의 대답도 없이 드웨인은 영주성 뒤편에 있는 높다란 산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 나갔고, 그 순간 드웨인이 본 것을 바인드도 보고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잠시 그 의지를 느낀 것만으로도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강렬한 의지에 바인드는 비명을 질렀다.
아연한 눈으로 허공을 쳐다본 바인드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하늘을 완전히 가려 버려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검은 하늘과 그 검은 하늘을 뛰어놀고 있는 강렬하기 짝이 없는 전광의 모습뿐이다.
쩌렁!
“우웃!”
그 순간 먹구름 사이를 뛰어놀던 빛의 뱀이 대지로 내리꽂혔고, 그 강렬한 힘이 적중된 대지가 순식간에 탄화되어 버렸다.
바인드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얇디얇은 빛줄기 하나였지만, 그 빛이 만들어 낸 광경은 무시무시하기 그지없었고, 그 한 줄기를 시작으로 번개 줄기가 내려치기 시작한 것이다.
콰콰쾅!
무수히 내려치는 번개줄기가 공동을 감싸고 있는 산 전체를 뒤흔들었고, 커다란 진동이 견고하기 짝이 없는 마법진으로 도배된 공동 안까지 전달될 정도였다.
“젠장!”
방금 전까지 자폭을 결의했었던 생각은 저 멀리 사라져 버렸고, 황급히 움직이는 손들은 공동안의 방호 마법진을 발동시키고 있었다.
일순간 공동 안이 빛으로 도배되며 마법진이 일제히 떠올랐고, 그제야 조금은 안심한 표정을 지으려던 바인드가 황급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맙소사.”
뻥 뚫린 하늘 너머로 보이는 먹구름의 중심에 집채만 한 빛이 뭉치며 전하를 일으키고 있었고, 꿈틀거리는 빛의 조각들이 품고 있는 힘에 안색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그리고.
콰릉!
바인드의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강대한 힘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 * *
용이 되기를 원하는 아렌은 당연히 이 세계의 용에 대해서도 꽤나 심도 깊게 알아보았다.
드래곤.
아렌의 상식속의 용과는 전혀 다른 용의 모습에 일순 당황했지만, 그래도 지식을 계속해서 지식을 모았고, 아렌은 드래곤에 대해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신선과 같은 역할을 하며 때로는 자연의 일부분을 다루는 용과는 달리 드래곤은 그 객체가 생물의 궁극에 다다른 것 같은 느낌을 주었고, 아렌에게는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용이 세상에서 벗어나 있다면 드래곤은 세상에 걸쳐 있는 존재.
지향하는 것은 용이지만 드래곤의 성향은 아렌의 입맛에 맞는 것이었고, 아렌은 결론을 내린 그 순간부터 매 순간마다 연상을 끊지 않았다.
원하는 것은 용이지만, 드래곤 같은 독립성을 간직하는 것.
결국, 용으로 진화한다는 것은 심상이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법이다.
그렇게 수련을 계속하던 아렌의 손에 블랙박스의 핵이 들어온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제 아무리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세계의 씨앗이었고, 그것은 여의주의 근원이 되기에 충분했으며, 아렌의 부룡기공과 호응해 느리지만 끊임없이 여의주가 되기 위해 연단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번개를 부른다.’
섀도우월드의 닫힌 세계에서는 물리적인 힘을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의념을 외부로 전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여의주를 매개체로 아렌은 용의 권능을 발현한 것이다.
연상한 것은 흑룡.
북방과 물을 다스리고, 호풍환우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기우제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강력하고 사악한 용이다.
* * *
아렌의 눈에서 붉은 기운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본 윅이 심상치 않은 기색에 바짝 긴장했지만, 이미 늦은 감이 있었다.
이런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는 강렬한 에너지가 결계를 강타했고, 한순간에 결계를 녹여 버린 번개는 한줌의 낭비도 없이 섀도우월드를 직격했다.
– 크아아아아악!
윅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 질렀다.
암살자로서 혹독한 훈련을 받았고, 가혹한 인체실험을 거쳐서 어떠한 고통에도 반응하지 않는 몸이 되어 버린 윅이었지만, 신체를 넘어서 근원을 타격하는 힘에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연계의 원소 중 순수한 형태로서 파사의 권능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불과 번개뿐이다.
그중에서도 하늘에서 내려치는 뇌전의 순간출력은 온 자연계를 통틀어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고, 윅의 재생 능력을 뛰어넘어 버렸다.
파바바박!
사방에서 불통이 튕기고 공기가 타는 비릿한 금속 냄새가 공동에 가득 찼다.
윅의 만들어 낸 구체의 세계가 커다란 구멍이 이리저리 뚫린 처참한 모습이 되어 버렸고, 마기가 꿈틀거리며 어떻게든 다시금 세계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구체를 타고 흐르는 잔뢰는 그러한 움직임을 용납하지 않았다.
퍼벅! 퍽!
순백의 빛이 구체를 달리며 불똥을 튀겼고, 어느 순간 한 뭉치의 그림자가 떨어져 나오더니 공동의 한쪽에 내려섰다.
“크으으윽!”
꿈틀거리며 사람의 형태를 취한 윅의 몸에서 마기가 일렁이며 퍼져 나왔지만, 그와 동시에 막대한 열기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크아악!”
쩡!
괴로워하던 윅이 한 소리 기합과 함께 크게 몸을 펴니 동시에 그의 전신으로 막대한 힘이 뿜어져 나왔고, 그의 몸을 괴롭히던 힘이 외부로 빠져 나왔다.
“허억!”
그림자와 마기가 교차하듯 일렁이며 윅의 모습을 만들어 내는 그때, 허공에서 증발하는 구체의 사이로 아렌이 걸어 나왔다.
“큽!”
한쪽 구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바인드가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삼켰다.
감정 없는 얼굴에 느긋한 발걸음이었지만 위엄이 넘쳤고, 아렌의 뒤에 흐릿하게 보이는 거대한 괴수의 상체와 선명하게 보이는 두 팔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쿠르르르릉!
방금 전과 같은 막대한 힘이 꿈틀거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천둥과 번개를 내리치고 있는 먹구름 사이로 선 아렌의 모습은 살아 있는 재앙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결과는 정해졌다고 말했던가?”
슬픔은 온데간데없고, 일그러진 얼굴로 노려보는 윅을 잠시 쳐다본 아렌이 입을 열었다.
“망상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노옴!”
심드렁한 표정의 아렌의 말에 윅이 큰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지워진 것처럼 사라졌다.
* * *
그것은 기척도 소리도 없었다.
노호성과 함께 윅이 사라지고 아렌의 발치에 있는 그림자가 두꺼운 칼날이 되어서 솟아오른 것은 동시.
자신의 그림자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실체를 가지지 않는 그림자가 투과할 수 없는 것은 없었으니, 윅의 의지가 가득 실린 그림자가 아렌의 전신을 난도질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최소한 바인드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트드드득!
“뭣?!”
하지만 아렌의 발치에서 솟구쳐 오른 그림자는 아렌의 몸통을 한 치도 파고들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아득한 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아렌의 몸에 닿는 순간 그림자의 칼날은 처참하게 구겨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 형체를 잃고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믿을 수 없는 것에 바인드가 놀라는 것도 잠시, 아렌의 뒤쪽에 그려진 것처럼 윅의 모습이 나타나더니 바짝 세운 윅의 손끝이 아렌의 경추를 노리고 찔러들었다.
윅의 육체 정도라면 어지간한 보검을 훨씬 능가한다.
제아무리 의지를 가득 실었다고는 하지만 실체가 없는 그림자와는 비견할 수 없었고, 손끝에 일렁이는 검은 기운은 세상 그 무엇이라도 뚫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너무도 은밀하고 파괴적인 일격에 아렌의 경추가 너덜너덜해지는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떠오르려던 그 순간, 아렌이 아무렇지도 않게 목을 꺾었다.
카가가가각!
아렌의 목에 떠오른 육각형의 호신강기와 윅의 손이 스쳐 지나며 불똥이 튀겼고, 윅의 눈이 크게 떠지던 그때, 시의 적절하게 올라간 아렌의 손이 윅의 손목을 붙잡았다.
콰드득!
실체와 그림자가 공존하고 주변의 모든 것을 오염시키는 마기까지 두른 윅의 손을 아무렇지도 않게 붙잡은 아렌이 슬쩍 힘을 주니 단단하기 그지없는 윅의 팔이 으스러졌다.
“큭!”
윅이 몸을 회전해 팔을 빼내려 했지만, 아렌의 손목이 슬쩍 움직이더니만 거짓말처럼 중심을 잃은 윅의 몸이 허공으로 거꾸로 떠올랐다.
우지지직!
팔을 잡힌 채로 뒤에서 앞으로 던져진 윅의 팔과 어깨 관절이 엉망이 되어 버렸고, 동시에 거꾸로 들어올려진 몸이 포물선을 그리며 대지에 박혔다.
꽝!
“크악!”
그림자와 일체화되어서 물리적인 충격을 못 느껴야 함이 당연한 윅이었지만, 아렌이 잡은 손에서부터 일어난 기운이 윅의 육체를 현실에 고정시켰고, 윅은 느끼지 말아야할 고통을 전신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간단하다면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움직임 하나하나에는 고절하기 짝이 없는 이치가 녹아 있었고, 입자 하나까지 조정한 것 같은 기운의 조절이 윅에게 반항을 허용하지 않았다.
윅의 정신이 찰나뿐이지만 아득해졌고, 그 순간을 아렌은 놓치지 않았다.
콰드득!
“컥!”
송곳처럼 내려박힌 오른발이 윅의 명치를 파고들었고, 다이아몬드와 버금가는 강도를 가진 윅의 몸이 움푹 파이며 펄떡였다.
붙잡힌 팔과 온통 으스러진 흉곽이 빠르게 재생을 시작했지만, 아렌의 등 뒤에 떠올라 있는 괴수의 손이 윅의 전신을 으스러트릴 기세로 떨어져 내렸다.
콰과광!
힘이 유동치고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광경을 바인드는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