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3
013화
거칠게 일어나는 기세를 감지한 아렌이 느긋한 걸음으로 공터에 도착했을 때에는 트리안과 네이던이 부딪치기 직전이었다.
“흐합!”
트리안의 기합과 함께 공방이 시작되었다.
덩치만큼이나 호쾌한 검격이 쏟아져 내렸고 이어지는 선이 굵은 공격에 공터에 모인 입교생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북부를 지키는 고른 자작가는 끊임없이 밀려드는 몬스터들과의 사투가 일상이 된 곳이다.
자연히 같은 인간을 상대하는 기술보다는 대 몬스터용 기술이 발전했고, 결국에는 자잘한 상처를 입히기 보다는 한 번의 파괴력에 치중한 중검술重劍術이 주류가 되었다.
대인전을 상정한 기술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트리안의 적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아닌 몬스터였고 평생을 몸에 새긴 기술은 인간을 상대로도 충분한 위력을 발휘해주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인들은 제국에서도 거르고 거른 인재들.
호쾌하고도 강렬한 트리안의 검술의 본질을 알아본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빛내며 트리안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아렌의 시선이 장내를 훑었다.
대결을 주시하는 입교생들을 가볍게 스쳐본 아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트리안의 범상치 않은 체구와 힘을 보니 재질이 뛰어남을 알겠고, 입교생들 또한 골격이나 재질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아렌의 시선에서 나쁘지 않다는 것은 꽤나 준수한 칭찬이니 제국의 인재들만이 모였다는 것은 빈말이 아닌 셈.
아렌의 시선이 네이던에게로 향하면서 눈가에 은은한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발동되는 용안이 눈에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해 주었고, 네이던이 그리고 있는 마나의 움직임이 아렌의 눈에 들어섰다.
‘어디 볼까.’
아렌은 처음 접하는 마법사의 전투.
의외로 마법사를 접하기가 어려웠다.
마법에 관심이 부쩍 많아진 아렌은 별장을 손에 넣은 이후로도 간간이 유피테르의 거리를 거닐기는 했지만 수련 마법사 몇몇을 본 것을 제외하고는 마법사가 본격적으로 마법을 발휘하는 것을 본적이 없었던 것.
거리에 심심찮게 보이는 것이 마법을 사용하는 기물인데 정작 마법사를 볼 수 없는 현실에 아렌은 조금 당황했지만 어차피 아카데미에서 마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묵묵히 오늘을 기다려왔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서 마법사가 전투를 펼치는 상황을 보게 되었으니, 무던한 아렌이라도 기대감에 조금은 들뜬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네이던은 아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 * *
흔히들 마법사가 전투에 나서는 것을 연상할 때는 전열에서 시간을 버는 사이 후열에서 큰 거 한 방을 쏘아 보낸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철저히 개인전에 치중된 기사들과는 달리 원거리에서 강력한 공격이 가능한 마법사이기에 이 생각은 타당한 것이었고 아렌의 생각 역시 다르지 않았지만 네이던의 전투를 보면서 아렌은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스GREASE.”
네이던이 맨 처음 캐스팅한 마법은 공격 마법이 아니었다.
트리안이 발을 내 딛는 지점을 목표로 한 그리스가 캐스팅 되었고 마찰계수가 0에 수렴한 덕에 트리안의 발이 미끄러지며 넘어지나 싶었지만.
“흡!”
큰 호흡과 함께 무너지는 자세를 바로 잡은 트리안이 거세게 횡베기를 날렸다.
하지만 전투에서 한 호흡의 차이는 큰 법이고 트리안이 몸을 추스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네이던은 몸을 뒤로 빼며 다른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블링크BLINK.”
순간적으로 사라진 네이던이 10미터 정도 떨어진 후방에 나타나자 아렌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마나의 움직임과 마법의 연성을 볼 수 있는 아렌의 용안으로도 방금 전의 마법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예전에 봤었던 파이어 에로우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 마법의 문양이 동시에 두 곳에서 나타나면서 아렌이 미처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깊이가 있구나.’
마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용안 덕에 조금은 만만하게 바라봤던 마법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타핫!”
한 소리 외침과 함께 네이던의 위치를 확인한 트리안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냥 뛰어가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쏘아져 나가는 듯 한 움직임에 주변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고, 벡스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보탰다.
“제법 괜찮은 차지CHARGE군요.”
무림에서 보던 전질보癲疾步와 비슷한 움직임을 연상시키며 순식간에 네이던의 앞으로 다가선 트리안의 검이 거세게 내려쳐졌고, 필살의 의지가 담긴 검격이 네이던을 두 조각으로 만들 것만 같았다.
“헛!”
“이런!”
단순한 대련을 넘어서 생사를 가르려는 의지를 가진 공격과 이어서 펼쳐질 참혹한 현장에 비명이 터져 나오는 그 순간.
후울.
미묘한 소리와 함께 네이던의 모습이 일렁거리는가 싶더니 트리안의 검격에 베이고서는 사라져 버렸다.
“미러이미지MIRROR IMAGE!”
누군가의 탄성이 흘러나왔고 동시에 공터의 구석구석에 네이던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는 구분하기 힘든 높은 수준의 환영들의 등장에 마법을 주력으로 하는 입교생들의 표정이 굳어졌고, 아렌도 나직하게 탄성을 흘렸다.
“대단하군.”
단순한 파괴와 자기 단련에 치중한 무공과는 궤를 달리하는 마법의 다양성에 감탄한 것이다.
네이던의 환영들이 동시에 양 손을 가슴으로 모으고 영창에 들어갔다.
꽤나 큰 마법을 준비하는 것인지 공터 안의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고.
“거기냐!”
마나의 유동으로 본체를 알아차린 트리안이 한쪽 구석에 있는 네이던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이미 네이던은 캐스팅을 마치고 트리안에게 마법을 격발하고 있었다.
“플라즈마 볼PLASMA BALL!”
초고열로 압축되어진 구체가 트리안에게 쏘아져 나갔고, 트리안은 걸음을 멈추고 황급하게 피할 수밖에 없었다.
플라즈마 볼은 국소범위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는 대인 전용 마법.
지금의 트리안으로서는 막거나 받아치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의 마법이니 방법은 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앗!”
“저런!”
“피해라!”
목표를 잃은 플라즈마 볼이 자신의 위세를 자랑하며 전진해 나갔고, 경로 상에 있던 입교생들이 분분히 자리를 피했다.
동시에 공터에 있던 입교생들을 수행하던 기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문의 미래가 될지도 모르는 인재들을 수행하는 기사들이니 그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자들.
베네프트와 리암이 둘의 결투에도 심드렁하게 지켜보던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도련님!”
플라즈마 볼의 경로상에 있던 아렌의 모습에 벡스터가 놀라며 외쳤지만, 아렌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플라즈마 볼을 보고서 비동도 하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벡스터가 몸으로 아렌을 가리려 오러를 일으키려는 그 순간.
퉁.
슬쩍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선 아렌이 태연히 손을 들더니 플라즈마 볼을 가볍게 쳐내는 것이 아닌가.
쾌액!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플라즈마 볼은 공터의 옆에 서 있는 건물에 직격해 버렸고.
콰콰광!
자신의 몸을 폭사시키며 그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 * *
하늘거리는 백금발과 외소한 몸.
일견하기로는 대충 13세에서 15세 정도의 어린아이.
화려하지 않지만 은근한 기품이 서려있는 복장이 꽤나 잘 어울렸다.
아니 이 소년에게는 그 어떤 복장을 입혀놓더라도 잘 어울린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백금발과 잘 어울리는 선명한 이목구비는 마치 요정을 보는 것만 같았으니 한순간 집중 된 시선의 소유자들은 그 현실 같지 않은 외모에 감탄을 터트렸다.
“으음.”
“허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무런 표정이 떠올라있지 않아서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질감에 모두의 표정이 묘해졌지만 정작 아렌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으니, 그런 모습이 더욱 아렌의 분위기를 기괴하게 만들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도련님?”
그러거나 말거나 놀란 표정으로 아렌에게 다가온 베로아와 벡스터가 호들갑을 떨면서 아렌을 살폈다.
손수건과 포션을 꺼낸 베로아가 급하게 아렌의 손을 살피고 벡스터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트리안과 네이던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사람이 아니라 도자기 인형을 살피는 것 같은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더욱 기묘해졌고, 그 순간 공터에 아카데미를 지키는 경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 오실 분은 다 오신 것 같으니까 이동하겠습니다.”
상급자로 보이는 경비의 외침에 아렌에게로 집중 된 시선이 돌아섰고, 의외의 사건에 대결이 멈춰버린 트리안과 네이던도 한발자국 물러났다.
“······ 모욕에 대한 대가는 후일 받는 것으로 하겠다.”
“기다리지.”
으르렁거리는 트리안의 목소리에 네이던이 짧게 대답하는 것을 끝으로 그들은 몸을 돌렸다.
대결이 멈춰버린 이상 결국 흐지부지하게 넘어갈 것이 뻔 하지만 귀족의 언사는 그런 것이 아닌 법.
서로 만만치 않은 녀석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둘은 공터안의 사람들을 인솔하고 있는 경비들을 따라나섰다.
‘그나저나.’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느긋하게 걷기 시작하는 아렌을 슬쩍 바라보면서 네이던은 얼굴을 굳혔다.
‘플라즈마 볼을 맨손으로 쳐냈다고? 그것도 별다른 피해도 없이?’
그것뿐만이 날아가는 속도를 더 높이기까지 했으니 네이던으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기사奇事다.
겉모습만으로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죽일 것 같이 유약하게 생겼지만, 방금 전의 일은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강자强者!’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저 기괴한 소년은 네이던보다 몇 수 위의 강자라는 것을.
마법사는 이성으로 움직이는 존재.
제 아무리 믿기 힘들어도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누군지 알아봐야겠어.’
어쩌면 차후 거물로 성장할지도 모르는 인물의 등장에 네이던은 결심을 굳혔고, 비단 그것은 네이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 * *
유피테르 아카데미는 기사와 마법사를 구분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기사와 마법사, 한쪽의 재능이 발현하는 것만으로도 세간에서는 대단한 인재라고 평가받지만 이곳은 제국에서 고르고 고른 인재들이 모이는 유피테르 아카데미.
기사와 마법사는 물론 정령사나 신관의 재능을 가진 자들이 넘쳐나는 곳이고, 그렇기에 아카데미는 굳이 기사와 마법사로 구분지어서 학생들을 나누지 않았다.
다만 다섯 개의 동으로 나눠진 기숙사는 최소한의 선별을 해서 학생들을 나누어 놓기는 하는데 그것은 각자의 성향.
서로 비슷한 성격을 가진 자들을 모아놓아서 그 속에서 서로를 자극하게 만들려는 생각이 숨어있었다.
강당은 컸다.
2백 명의 입교생들과 그 수행원들을 모두 들이고도 넉넉해 보였으니 그 강당의 그 크기를 짐작할 만 했고, 중원에서는 상상하지 못하는 규모의 건축물을 본 아렌도 문화충격을 받았다.
유피테르 아카데미를 상징하는 화려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강당 이곳저곳에서 입교생들을 이리저리 배치하는 사이 어느덧 강당의 한쪽에 자리한 무대에 베네프트와 리암이 나타났다.
“자리에 앉으세요!”
웅성거리던 입교생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화려한 금실이 수놓아진 로브와 금태 안경을 끼고 머리를 멋들어지게 넘긴 베네프트와 상대적으로 평범해 보이기는 하지만 지적인 리암의 등장에 입교생들이 더욱 웅성거렸고, 베네프트의 입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번 입교생들은 엘레강스하지 않군요!”
그와 동시에 베네프트의 전신에서 묵직한 압박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강당 안을 짓누르기 시작했으며 그제야 입교생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흥!”
가볍게 콧방귀를 끼며 입교생들을 내려다보는 베네프트의 모습을 아렌이 무심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