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이빨기사단의 마지막 한 명이었던 야코가 쓰러지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생하셨습니다.”
“뭐 고생까지야. 우리야 힘쓴 거 밖에 더 있나. 자리를 마련한 자네하고 노아가 고생했지.”
전신에 크고 작은 검상을 가득 달아서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드웨인은 환하게 웃었다.
마스터와의 대결에서 승리하였으니, 이 경험은 차후 그의 경지를 높이는 데 크나큰 양분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도련님은 목만 모으라고 하셨지요?”
락쇼를 완전히 제압하고 실험실로 끌고 갈 준비를 하고 있던 노아가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그렇습니다만.”
에드워드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하자 락쇼가 환하게 웃었다.
“그럼 몸은 저희가 조금 써도 되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마스터의 신체가 어떤지 궁금했는데. 아. 이럴게 아니라 일단 머리 구조만이라도 확인해야겠네요.”
천진난만하기까지 한 표정으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내뱉는 노아의 모습에 소름이 올라왔지만, 에드워드는 베테랑 집사답게 변함없는 표정을 유지했다.
“정리하는 게 일이네요.”
“그래도 이 정도면 싸게 먹힌 거지. 도련님이 손을 써 주신 게 컸어.”
“그렇죠.”
반파된 연병장을 바라본 에드워드가 가볍게 한숨을 내쉴 때, 드웨인이 아렌의 이야기를 꺼냈고, 그 순간 셋의 얼굴에 긴장이 떠올랐다.
초월적인 무력.
일순간 마스터를 능가했을 것이 분명했던 구스타프를 말 그대로 가지고 놀았으니, 아렌이 가지고 있는 무력은 같은 편이라고 하더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힘이었다.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결국 아렌 도련님이 작위를 이으실까요?”
잠시간의 침묵 끝에 노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유피테르에서 헤르메스까지 동행하며 얼굴을 익힌 드웨인, 아렌의 곁에 붙어서 이런저런 대소사를 처리한 에드워드와는 다르게 노아는 아렌과 큰 접점이 없었다.
진리를 쫓는 마법사이기는 하지만, 그라인드의 가신이기도 한 노아에게 차기 백작은 꽤나 중요한 문제였다.
그 하나만이 아니라 백작가에 속해 있는 마법사들 전체를 대표하는 입장이다 보니 노아는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큰 이변이 없다면 그렇게 되겠죠.”
함부로 후계를 재단하려는 노아의 물음에 발끈하려던 에드워드도 이내 노아의 입장을 떠올렸는지 조그마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군요.”
노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긴 그때, 드웨인이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과연 그럴까? 난 생각이 조금 다르네만.”
“……아니라고요? 다렌 도련님은 후계자 경쟁에서 탈락한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강인한 무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게하르의 장점이었는데, 그 한 축이 오늘 이곳에서 전멸해 버렸다.
거기에 아렌의 명령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게하르 자작가가 말라죽는 것은 시간문제나 다름없는 일.
실제로 격전의 모습을 보며 기절했던 잉그리드는 정신을 차린 후 대부분의 기사들의 목이 잘려있는 것을 목격하더니만 눈이 풀려 버리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잉그리드의 정치력이 큰 무기였던 다렌에게는 사실 상 사형선고였고, 다렌이 백작위를 잇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아무리 후계자를 결정짓는 것은 알코르의 권리라지만, 가신들의 입김을 무시하지는 못한다.
오늘의 일이 퍼지는 것은 이미 시간문제나 다름없고, 가신들은 다렌에게 백작위를 주는 것을 결사반대할 것이 분명했다.
이런 제반 사항을 살폈을 때, 에드워드의 대답은 정론이었으니 노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로렌 도련님이 있지 않나.”
“아!”
“……그렇죠. 로렌 도련님이 있지요.”
드웨인의 말에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둘의 얼굴에 미묘한 빛이 떠올랐다.
워낙에 아렌의 존재감이 커서 잠시 잊었지만, 엄연히 로렌은 장남.
순서상으로 생각한다면 로렌이 백작위를 잊는 것이 옳았다.
“아렌 도련님이 로렌 도련님을 치료하겠다고 했으니 이루어지겠지. 백작위에 욕심이 있었다면 그럴 수 있을까?”
지금껏 그 누구도 손을 쓰지 못한 로렌의 병이었지만, 아렌이 치료하겠다고 말한 이상 그것은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하긴 아렌 도련님이 과격하고 막무가내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사리가 분명하신 분이지요.”
에드워드의 중얼거림에 노아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만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도련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백작님께서 호출하셨습니다.”
에드워드의 대답에 둘의 표정이 굳어졌다.
* * *
“제도에는 너 혼자 가야겠구나. 드웨인이 잘 보필할거다.”
“…….”
아렌의 말에 다렌은 입을 열지 않았다.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걷는 두 형제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찬탄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헌앙했지만, 두 형제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감탄을 반감시키기에 충분했다.
감정 없는 얼굴의 아렌과 고뇌에 찬 다렌의 얼굴은 뭐라 말하기 힘든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숙조부의 시신을 확보하는 즉시 영지로 돌아와라. 요즘 제국 내부의 분위기가 좋지 않아.”
하지만 아렌은 그런 다렌의 고뇌를 못 본 척 하며 말을 이었다.
제 아무리 무던한 아렌이지만 오늘의 일이 다렌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탓이다.
눈앞에 두 갈래로 갈라진 복도가 보였다.
“잉그리드에게로 가 봐라. 네 위로가 필요할거다.”
잉그리드가 아렌과 로렌에게 한 일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지만, 잉그리드와 게하르는 대가를 치렀다.
거기에 앞으로 이뤄질 일들까지 생각하면 더 이상 잉그리드에게 흥미를 가질 일은 없을 것이니 다렌과 엘렌을 위해서라도 잉그리드가 정신을 추스르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아렌을 보면서 다렌이 아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형은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할 수 있지?”
“이제야 형이라고 부르는구나.”
아렌의 얼굴에 자그마한 미소가 떠올랐다.
작은 변화이지만 그만큼 극적이어서 지나가던 시종들이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힐 정도였지만, 다렌의 눈에는 그런 것이 들어오지 않았다.
“대답해줘.”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얕보이면 살아갈 수 없지. 그것이 특히나 귀족이라면.”
냉정하다 못해 사무적이기까지 한 대답에 다렌이 진저리를 쳤다.
“너도 오늘의 일을 잊지 마라.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고는 하지만 너와 나는 혈연으로 묶인 가족이다. 이 거대한 백작가의 중심이고 그런 우리가 사소한 일에 흔들린다면 이 거대한 집단이 같이 흔들린다는 이야기니까.”
아직은 어리지만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온 다렌은 아렌의 말을 이해했다.
“……어머니 대신 미안하다는 말은 안할 거야.”
“이미 지난 일이다. 대가도 치렀으니 더 이상 거론할 가치는 없지.”
무심하게 대답하고 돌아서는 아렌의 뒷모습을 보던 다렌이 입을 열었다.
“……백작이 될 거야?”
“글쎄.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말과 함께 멀어져 가는 아렌의 뒷모습을 보면서 다렌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 * *
아렌의 모습을 보고 바짝 긴장한 기사가 정중하게 문을 열자, 커다란 알코르의 집무실이 보였다.
여전히 커다란 책상에 고개를 숙이고는 서류를 살피는 알코르였지만, 아렌은 알코르가 동요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초인의 경지에 이르러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끼치는 단계에 이른 아렌에게 알코르의 동요는 너무나도 쉽게 보였기 때문이다.
“왔느냐.”
“예.”
피고한 표정의 알코르가 고개를 들었고, 짧게 대답한 아렌이 집무실 한편에 위치한 소파에 몸을 묻었다.
“차를 다오.”
“예. 도련님.”
알코르를 전담하는 집사가 긴장을 숨기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고, 그런 모습을 본 아렌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다. 충실한 하인들에게 손을 쓸 정도로 폭군은 아니니까.”
“……물론입니다. 도련님.”
하지만 아렌의 말에 더욱 더 몸을 경직시키는 집사의 모습에 아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는 화법을 다시 배워야 할 필요가 있겠다.”
집사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피곤한 얼굴을 굳히며 알코르가 아렌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렇습니까.”
아렌의 말을 끝으로 집무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집무실 곳곳에 대기하던 시종들과 기사들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분쟁을 겪고 있는 타인이라도 이런 어색한 분위기는 아닐 거라는 생각에 모두가 힘든 표정을 지을 무렵, 집사가 차를 내왔다.
“좋은 차군요.”
“그래.”
태연하게 차를 음미한 아렌의 말에 짧게 대답한 알코르의 모습은 이 부자가 얼마나 경직된 관계인 것인가를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또 다시 시종들과 기사들이 괴로워하는 것도 잠시, 머뭇거리던 알코르가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들었다. 굳이 그렇게 다 죽일 필요가 있었느냐.”
듣기에 따라서는 일처리를 힐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렌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가문을 향해 수작을 걸어왔으니 얕보였다는 뜻이고, 한번 얕보이면 같은 일이 계속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단호한 대답에 알코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문에 정이 없고, 자식들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였지만, 백작으로서의 알코르는 상당히 유능해서 흠 잡을 구석이 없었다.
그런 알코르였으니 아렌의 손속이 지나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렌의 처리가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다렌과 잉그리드를 제도로 보낸다고 들었다.”
“잉그리드는 못 갈 거 같습니다. 드웨인을 같이 보낼 예정이니 명예를 떨어트리지는 않을 겁니다.”
반쯤 정신이 나가 버린 잉그리드를 함부로 밖으로 보냈다가는 웃음거리가 되기 쉽다.
부인과 양어머니를 아무렇지도 않게 함부로 부르는 부자의 모습에 시종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지만, 정작 두 부자의 대화에 어색함은 없었다.
“잉그리드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기계적으로 자기 할 일만 수행한다고 해도 알코르는 당대의 그라인드 백작이다.
당연히 영지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 그가 모르는 일은 없었고, 이번 일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것도 아렌에게 타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냥 놔둘 겁니다. 다렌은 모르겠지만 엘렌에게는 잉그리드가 필요하니까요.”
“……그래. 엘렌이 있었지.”
알코르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로렌과 아렌에게 정을 주지 않았고, 그것은 다렌과 엘렌 역시 마찬가지였다.
로렌과 아렌에게 정을 주지 않은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개선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고, 그렇기에 다렌과 엘렌에게도 정을 주지 않은 것이다.
그 복잡하고 괴로운 마음을 억누르고 영지의 일에만 집중했으니, 아이러니하게도 당대의 그라인드는 전대의 그라인드보다도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저와 형, 다렌은 그렇다 치더라도 엘렌과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알겠다.”
괴로웠을 것이 분명한 자신의 일을 말함에도 마치 타인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아렌의 태도에 새삼 그라인드의 혈통에 대한 혐오가 치솟아 올랐다.
속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것 같았고, 괴로운 감정이 가슴을 쳐 댔지만, 알코르는 표정을 정돈했다.
결국 모든 것은 가문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라는 것을 이제야 인정한 것이다.
‘……결국 내가 약했던 거다.’
냉엄한 판사 같은 아렌의 모습과 행보가 역설적이게도 알코르가 바라 왔던 강인한 귀족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힘.
결국 귀족은 힘이 있어야 하고, 강해야 했다.
조용히 찻잔을 들어 차를 음미하는 아렌의 모습을 보면서 알코르는 마음을 정했다.
그는 너무 지쳐 있었다.
“백작이 되고 싶으냐.”
어쩐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알코르의 물음에 아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