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아렌의 악명이 높아질 때마다 알게 모르게 아렌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아렌의 명성을 이용하려는 자, 단순히 아렌과 친분을 맺으려는 자, 아렌을 수하로 섭외하려는 자, 등등.
아렌의 잔혹한 성정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상황이니 나름대로 꽤나 강한 강단을 가진 사람들이겠지만, 대부분의 방문객들이 아렌의 모습을 보지도 못했다.
몇몇이 그라인드의 문턱을 넘어서서 아렌과 마주할 수 있었지만, 자기발로 몸 성히 걸어 나간 사람이 몇 없었다.
물론 육체의 상처는 그라인드가 말끔하게 해결해 주었지만 정신적인 상처는 어떻게 건드릴 수 없는 것 아닌가.
아렌의 악명은 더욱 커져 나갔고, 최소한 남동부에서는 함부로 아렌에게 면회를 신청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아렌 자신이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경향도 있다 보니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에드워드를 비롯한 가신들의 일이 되었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저택의 사람들은 아렌이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움직인 것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히히히.”
아렌의 볼을 마구 잡아당기며 불만을 표하던 것도 잠시.
기분 좋은 흔들림과 함께 평소와는 다른 눈높이에서 보이는 광경에 엘렌은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좋아아.”
아렌의 머리를 두 손을 꼭 잡고 머리를 비비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가 나오게 하는 광경이었으니, 항상 아렌을 두려운 얼굴로 바라보던 사용인들도 이때만큼은 표정을 온화하게 풀었다.
아렌이 귀가하고 백작가의 정치 지형도는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다.
거칠지만 강력한 친정의 도움으로 승승장구하던 잉그리드는 자신의 방에 유폐되었고, 자랑하던 친정은 몰락이 확정되었다.
당연히 차기 백작은 아렌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병석에 누운 로렌을 일으켜 세우더니만 후계자로 천명했다.
잉그리드의 소생인 다렌을 홀대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제도에 사신으로 가는 중요한 업무를 맡겼다.
아렌과 몇 번 이야기해 보고 그 내심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않은 자들이라면 이 들쑥날쑥한 행보에 공포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거기에 지나치게 잔인한 손속과 냉정하기 그지없는 일처리가 결합하니, 아렌은 백작가 내부에서 살아있는 재앙으로 화해 버린 것이다.
아렌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바다가 갈라지듯이 길이 열렸고, 경외와 공포만이 감돌았으니 겉도는 느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엘렌이 특별했다.
알코르와 다렌, 심지어 로렌마저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아렌에게 다가가 얼굴을 만지고 떼를 쓸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인 것이다.
아렌도 엘렌을 각별하게 여기는지, 엘렌과의 시간을 빼먹지 않았고, 엘렌과 함께 있을 때면 그래도 사람 같아 보이니 엘렌의 중요도는 더 이상 이전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아렌이라는 괴물의 목줄을 조금이나마 잡아주고 있는 존재로서 엘렌의 가치는 수직상승했고, 백작가의 가신들은 그것을 모를 정도로 무능한 자들이 아니었다.
엘렌을 지키는 기사들의 숫자가 두 배 이상 증원되었고, 이제는 정령을 능숙하게 사역하는 유나가 전담시녀로 붙었다.
정보길드의 그림자들이 알게 모르게 주변에 포진해 있었고, 오직 엘렌만을 위한 마법사와 신관이 항상 저택에 상주하게 되었다.
차기 시녀장으로 인수인계를 시작한 베로아가 엄선한 시녀들을 엘렌의 곁에 배치하니 엘렌은 가주인 알코르보다 더욱 엄중한 보호속에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알코르를 비롯한 모두는 이러한 조치가 결코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호오오.”
엘렌의 눈동자가 커지고 입에서 귀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직 어린 엘렌에게 허락된 구역은 별채를 비롯한 저택의 극히 일부분뿐.
평소에 가직 못했던 구역으로 진입하니 그 생경한 모습에 절로 호기심이 일어난 것이다.
“저거 뭐야아?”
“기사들이 대기하는 숙소다.”
“숙소오?”
“잠을 자는 곳이구나.”
“아아아. 저건 뭐야아?”
“가신들이 일을 보는 건물이다.”
“일이 뭐야아?”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했던지 조막만한 손으로 사방의 모든 것을 가리키며 아렌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고, 아렌은 대답을 멈추지 않았다.
아이에게 하는 말 치고는 딱딱하기 그지없었지만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아이나 그런 것을 상관하지 않았으니 뒤따르는 기사들과 시녀들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그러한 모습은 목표로 한 건물에 도착한 다음에도 계속 이어졌으니, 나름대로 아렌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방문자는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유피테르에 있었던 모두에게 말해도 믿지 않을 거야. 자네가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군.”
허탈한 도리안의 목소리에 엘레나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동의했다.
* * *
황제의 사심이 듬뿍 들어간 제도는 철저하게 황제의 취향에 따라서 만들어졌다.
그중에 하나가 제도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성벽과 도시로 진입하는 문이다.
교통의 요지에 자리 잡은 만큼 많은 수의 성문이 있었고, 평소에는 원활한 이동을 위해 항상 열어 두고 있었지만, 그 중에는 일 년에 몇 번 열리지 않는 문도 있었다.
황제는 일개 문에도 차별성을 두었다.
일반적인 평민과 방문자들이 다니는 평범한 문이 제일 흔했고, 군대만이 이용 가능한 관문이 곳곳에 존재했다.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손님을 맞는 문.
세 개의 크기로 나위어진 문은 제도를 방문하는 손님의 격을 증명한다.
가장 작은 문은 초라하기 그지없어서 적의 항복을 받을 때나 사용되었고, 중간 크기의 문은 귀족들이나 외국의 사신들이 전용으로 사용한다.
가장 큰 문은 황제나 황자, 8대 귀족에 버금가는 고위 귀족들을 위해서 가끔 열리는데, 이마저도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
제국의 위엄을 크게 드러내는 대문이 열린다는 것은 공적으로 제도를 방문한 손님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니 그 격에 맞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이고, 이것은 황제와 제국의 자존심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제국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거대한 성문이 커다란 소리와 함께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장관이군요.”
근위기사들이 양 옆으로 사열한 와중에 좌우로 열리는 거대한 성문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전해주었다.
호심공으로 정신을 보호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지만 다렌은 아직 어린 나이.
눈앞에 보이는 화려하고 장중하기 그지없는 사열에 마음을 쉬이 뺏겨 버렸다.
거대한 성문이 열리고 그 뒤로 보이는 것은 순백의 대로였다.
근위병들이 양 옆으로 절도 있게 포진한 가운데 먼지하나 묻어 있지 않은 대로의 모습은 사람을 질리게 할 정도.
잔뜩 굳어진 얼굴로 무시무시한 눈빛을 쏘아내고 있는 근위병들의 모습은 절로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고, 대로의 끝에 보이는 화려한 황궁의 모습은 감탄을 넘어 경이로워 보였다.
“황제가 신경을 많이 썼군요. 저희가 부담스러운 모양입니다.”
지고한 경지에 이른 알렉세이와 디어뮈드도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에 드웨인의 목소리가 다렌의 정신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못난 모습을 보였네요.”
“괜찮습니다. 다렌 도련님의 나이라면 당연한 겁니다.”
드웨인은 전대 가주와 현 가주를 모신 그라인드의 원로다.
그만큼 경험이 많았고, 언제 어디서나 정신을 차리고 적절한 조언을 할 줄 알았으니 아렌의 인선은 틀림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이거 추태를 보였군. 마스터씩이나 돼서 뭔 일인지.”
“……그것만은 아니야. 마법의 기운이 느껴진다. 단순한 길이 아니군.”
드웨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알렉세이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디어뮈드의 목소리에는 한기가 실렸다.
망국의 기사인 디어뮈드와 붉은가지 용병단에게 황제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인물.
그런 상대의 본거지에서 한순간이나마 정신을 뺏겼다는 것이 디어뮈드 자신에게 수치로 다가온 것이고, 날카롭기 그지없는 감각은 이 화려한 의전에 숨겨진 황제의 음험한 술수를 꿰뚫어 본 것이다.
“어제 오늘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상상이상이네요.”
드웨인의 심드렁한 목소리에 다렌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황제를 숭상하던 어린 귀족의 마음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황제를 경계하는 귀족의 마음가짐이었지만, 들은 것과 겪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위대하기 짝이 없는 황제의 음험한 실체를 실제로 접하게 되었으니 아렌의 경고가 실제로 다가오는 것 같았고, 다렌은 심장의 마나를 더욱 가열 차게 끌어올렸다.
“재밌는 기술을 가지고 있군.”
“……형이 엄해서요.”
알렉세이의 말을 가볍게 넘기 다렌이 숨을 크게 들이쉬고 발을 내딛었다.
일행의 선두에 선 어린 주인이 당당하게 나서니, 장엄한 분위기에 잔뜩 주눅이 들었던 하인들도 어깨를 펴고 자세를 바로 했다.
첨예한 기세가 일어나 주변의 기운과 맞섰고, 근위병들의 표정에 금이 가는 것이 보였다.
곳곳에 숨어서 그 광경을 훔쳐보던 시종들과 시녀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고, 신하들의 얼굴에는 경계심이 떠올랐다.
8대 귀족, 황금의 그라인드.
남동부에서 조용히 지내던 백작가의 위엄이 제국을 경영하는 자들에게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 * *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당당하게 걸어간 일행이 어느덧 황궁의 문 앞에 섰다.
쿵!
하나하나가 최정예가 분명한 근위기사들이 발을 굴렀고, 그 순간 화려하기 짝이 없는 황궁의 문이 열렸다.
백색의 대리석과 곳곳에 박혀있는 보석과 금장식의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질리게 만들었다.
너무 화려해서 감탄보다는 괴로움을 줄 정도의 황궁 내부의 모습에도 다렌은 멈추지 않았다.
근위기사들이 지키는 복도를 지나서 거대한 대전으로 들어서니 높디높은 곳에 자리한 옥좌와 함께 양 옆으로 도열한 신하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라인드 백작가의 다렌 공자. 수행하는 세 명의 기사가 입실했습니다.”
낭랑한 시종의 목소리가 온 대전 안을 쩌렁하게 울렸고,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다렌에게 모여들었다.
‘흡!’
아찔한 감각에 다렌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전력으로 마나를 돌렸다.
단지 시선일 뿐이지만 그 주인들은 제국을 경영하는 자들이었고,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연륜은 아직 어린 다렌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온갖 감정이 실린 시선에 이를 악문 다렌이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자 몸에 크게 힘을 줬고, 드웨인이 대견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 알코르는 복도 많군.”
나직한 목소리가 옥좌 너머에서 울렸고, 다렌에게로 향하는 시선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황제 폐하 만세!”
동시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신하들이 그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옥좌를 향해 외쳤다.
그 장엄하기까지 한 광경과 분위기에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이려 했지만, 다렌은 필사적으로 참았다.
심장에서 뽑아져 나온 마나가 혈관을 뜨겁게 달궜고, 그 열기만큼이나 차가운 이성을 다렌에게 부여하고 있었다.
“호오.”
황제의 입에서 작은 감탄사가 나왔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한 타이밍 늦게 다렌이 무릎을 꿇었고, 그 절도 있는 모습에 신하들이 나직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제도에 온 것을 환영한다.”
황제의 목소리가 정신을 자극하는 것을 느끼면서 다렌이 이를 악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