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 농담은 아닌 거 같군.”
아렌의 비릿한 미소를 본 마르틴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말을 농담으로 하지는 않지.”
“…… 그래.”
오만하기 그지없는 메카니의 사람들은 항상 오만해지기 위해서 자신을 갈고닦는 것을 쉬지 않는다.
당대의 공작인 마르틴 역시 그러했고, 대귀족 다운 향락을 즐기는 와중에도 하루도 수련을 거른 적이 없었다.
제왕학을 비롯한 견문을 넓히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고, 그중에는 초인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아렌 정도의 초인이라면 자신의 말에 힘이 실리는 자들이고, 그런 자들은 함부로 말을 내뱉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는 것이다.
“이유가 뭐지?”
의문을 가득 담은 마르틴의 목소리가 울렸다.
애초에 마르틴이 그라인드와 혼인을 추진한 것은 황실의 권위가 떨어진 지금이야말로 귀족들의 권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타의 귀족과는 다르게 그라인드는 꽤나 느긋하고 조용히 지내는 성품이었고, 그런 그라인드와 동맹을 맺는다면 주도권을 쥔 채로 빵빵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부분을 크게 생각했었다.
헌데 그런 그라인드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니 내용의 무서움은 둘째 치고, 이렇게 나오는 이유가 마르틴은 궁금했다.
“숙조부의 사인을 밝혀냈다.”
“…… 로티컬공의 사인을?”
아렌의 말에 마르틴이 흠칫거렸다.
로티컬의 불가사의한 죽음은 큰 화젯거리였고, 그 열기는 지금도 식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사인을 정확히 특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온갖 억측이 난무하는 상황이었는데, 황제를 비롯한 제도의 능력자들이 밝혀내지 못한 로티컬의 사인을 그라인드에서 밝혀냈다는 것에 놀란 것이다.
“한 번에 목이 잘리셨더군. 그 솜씨와 사인을 은폐하는 능력을 봤을 때, 황제가 직접 손을 썼을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담담하기 그지없는 말투였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의 무거움에 마르틴의 얼굴이 굳었다.
아렌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내용만으로도 그라인드가 몸을 일으킬 수 있는 명분은 충분했고, 수많은 귀족들이 동조할 것이 분명했다.
“…… 증거는?”
심각한 얼굴로 되묻는 마르틴의 모습에 아렌은 피식 웃었다.
“그런 게 필요한가?”
“…… 그렇기는 하지. 중요한 건 그라인드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점이니까.”
정황상의 증거뿐이지만 그렇게 판단했다면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귀족의 행사에서 그 정도면 차고도 넘쳤다.
“그라인드는 복수를 천명했다. 이미 움직이고 있는 중이지. 사안의 중요성도 있고 혼인관계로 묶일 예정이니 내가 직접 오게 되었어.”
마르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 준비를 조율해야 하는 알코르는 영지에서 움직일 수 없을 것이고, 후계자인 로렌은 아직 몸이 약하다.
그 둘을 제외하면 그라인드에서 가장 무게가 있는 인사가 아렌이니 그라인드는 메카니에게 동맹으로서 최고의 예우를 한 것이다.
“아직 혼인식은 치르지 않았지.”
아렌의 말에 마르틴이 시선을 맞췄다.
“여차하면 파혼까지 생각하고 있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니까.”
반란을 기본으로 깔고 있는 계획이다.
온건하게 나간다면 황제의 폐위와 개인에게로의 복수가 되겠지만, 여차하면 제국군과 내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고, 그라인드는 전쟁을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있었다.
제 아무리 명분이 좋다고 하더라도 반란을 일으키자는 것이니 혼인을 맺을 상대이지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식은 치르지 않았지만 전 제국이 다 아는 사실이 되었고, 그것을 빌미로 참여를 강요할 수도 있겠지만, 알코르를 비롯한 그라인드의 모두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합류한다면 천군만마를 얻게 되겠지만, 강제로 행한 일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는 법이고 신뢰가 없는 아군은 무능한 적보다도 무섭다.
때문에 그라인드는 메카니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한 것이다.
“쉽게 결정할 내용은 아니지. 숙고하고 통보해주기를 바란다.”
“…… 피렌사는 어떻게 하기로 했나?”
마르틴의 말에 도리안이 싱긋 웃었다.
“피렌사는 그라인드와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저희도 황제에게 제법 불만이 많아서요.”
메카니로 오기 전 마법 통신으로 피렌사 공작과 도리안은 이야기를 마쳤고, 아마 지금쯤이면 피렌사의 주요 혈족들이 그라인드로 모여들고 있을 것이다.
영지를 비워놓는 모양새가 되었으니, 그 틈을 노린 누군가가 영지를 강탈할지도 모르지만 피렌사는 그런 것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피렌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
혈족들만 무사하다면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는 가문이 피렌사였기에 그들은 그라인드로 몸을 옮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마르틴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떠오르고 뇌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무진장의 황금과 잠재력 있는 영지, 축적된 역량이 그득한 그라인드에 피렌사라는 비대칭 전력이 합류했다.
고위 기사나 대마법사가 전장에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부분에서 그라인드에게 손색이 있었는데, 피렌사의 합류로 멋지게 보완이 된 것이다.
화간 난 것은 이해하지만 무모하지 않을까 했던 생각이 슬며시 가라앉고 새로운 가능성이 떠올랐다.
‘…… 여기에 우리가 가세하고, 몇몇만 끌어들인다면 정말로 가능하겠는데?’
오만하기에 냉철하기 그지없는 마르틴의 두뇌가 쌩쌩 돌아갔고, 희망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
무엇보다.
“…… 그럴 필요 없다. 메카니는 기쁜 마음을 합류하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황제를 고꾸라트린다는 점이 마르틴의 성격에 딱 맞았다.
오만의 메카니.
자신들의 위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참지 못하는 속 좁은 가문의 가주가 기쁜 마음으로 합류를 결정했고, 한번 결정한 이상 이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 시원시원하군. 과연 메카니 공작가. 감탄했다.”
“하하하하하! 자네에게 그런 말을 들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군!”
아렌의 말에 마르틴이 크게 웃었다.
어떻게 보면 메카니보다 더욱 오만한 자가 아렌인데, 그런 아렌에게서 감탄을 이끌어내었으니 마르틴의 자존심을 크게 세워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현명하신 결정이십니다.”
“메카니의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소문이 축소된 바가 있군요. 안계를 넓혔습니다.”
도리안의 칭찬과 디어뮈드의 말이 마르틴의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셋 중에 허투루 볼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그 셋 모두가 마르틴을 추켜세우니 마르틴의 입가가 저절로 씰룩거렸다.
“좋아. 그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 …….”
“잠깐.”
흥이 오른 마르틴이 양손을 비비며 입을 여는 순간, 아렌이 손을 들었다.
“…… 왜 그러지?”
자신의 말을 자른 것에 울컥하는 마음이 솟았지만, 아렌의 얼굴을 본 마르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섭게 굳어져 있는 아렌의 표정에 도리안과 디어뮈드도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아렌을 바라보았지만 아렌의 시선은 창밖의 어딘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 영지에 비상령을 선포해라.”
“…… 뭐?!”
창밖을 노려보던 아렌의 말에 마르틴이 경악했지만 이어지는 아렌의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마기다. 그것도 강렬해.”
“…… 어느 정도지?”
도리안의 조심스런 물음에 아렌이 답했다.
“마룡봉인체 이상이다.”
모두가 창백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주거니 받거니 한 드라고와 루드비히는 이내 자리를 파하고 상황실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상황은?”
건성으로 인사를 받은 드라고가 입을 열었고, 보고가 이어졌다.
“2단계 안정화 단계로 들어섰습니다. 공간 고정 직전입니다.”
“그렇군.”
화면 너머로 보이는 검은 구체는 마치 사람의 심장처럼 맥동하며 허공에 떠 있었다.
주변을 이중삼중의 결계로 둘러싸고 있었고,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마법진은 검은 구체를 공안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어느덧 어둠이 지고 아침이 몰려와 해가 높이 떠올랐지만, 세상을 비추는 태양빛도 결계 내부의 어둠을 어떻게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던 태양이 서서히 고도를 낮추는 그때, 불길하게 맥동하던 검은 구체가 그 움직임을 멈췄다.
“3단계 들어갑니다!”
관측을 담당하는 공안의 손놀림이 바빠졌고, 드라고와 루드비히도 신중한 눈빛을 띄웠다.
프로젝트 시그마.
실존 실험도 통과했고,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어서 비밀리에 제국 각지에 설치를 완료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실전 투입은 이번이 처음이다.
언제나 실험과 실전 운용은 예기치 못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으니 이들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했다.
맥동을 멈춘 검은 구체가 부르르 떨더니 순식간에 그 크기를 키웠다.
마치 사방에서 잡아당긴 것처럼 불규칙한 모양으로 커진 검은 구체는 이제는 구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중구난방인 모습에 어지간한 트롤 정도는 가볍게 드나들 수 있는 크기로 변했다.
그리고.
마치 마법의 문처럼 생긴 검은 형태 사이로 무엇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 나왔습니다. 분류 확인!”
온통 울퉁불퉁한 피부에 새파랗게 날이 서 있는 손톱에서는 불길한 기운이 뚝뚝 흘러나오고 있었고, 손부터 시작해서 몸 전체를 드러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치이익.
닿는 걸음걸음마다 검은 안개가 솟아오르고 오염이 진행되었으며, 입에는 불길을 머금고 머리에는 무수히 많은 뿔들이 솟아나 있었다.
박쥐의 피막 같은 날개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 같았고, 별개의 생명체인 양 움직이는 꼬리는 마치 뱀처럼 그 끝을 빳빳하게 세우고 있었다.
흰자 없이 온통 검은 눈동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아득하게 만들었으며, 제멋대로인 이목구비는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불길함을 불러일으키고 사람의 마음속에 공포를 전해주는 것.
이 땅의 생명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의 모습에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 악마.”
끊임없이 차원방벽을 두드리며 이 땅을 침범하려는 군단의 첨병이 지금 대륙에 온전한 모습으로 강림했다.
“…… 기록 확인했습니다. 3급 악마. 고문전문가입니다.”
“3급?!”
“…… 상정한 것보다 너무 높아!”
숫자가 적을수록 고위로 올라가는 악마의 체계에서 3급 악마라는 것은 최소한 남작급을 의미한다.
나타나는 순간 나라 하나쯤은 쉽게 말아먹을 수 있는 존재가 3급 악마이고, 그렇기에 만신전을 비롯한 세상의 수호자들은 필사적으로 악마와 외신의 현신을 막아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흔들고 유혹하며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디면 주변 모든 것을 오염시켜버리는 악마는 이 땅의 생명체를 살려두려는 시도 따위를 하지 않는다.
“…… 결계를 좁혀라. 3급이면 너무 거물이야. 다시 몰아내라!”
드라고의 외침에 공안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일단 현신한 이상 주변을 오염시켜서 빠르게 세력을 늘리는 악마의 권능은 너무나 위험한 것이었고, 이번 실험에서 공안이 예측한 악마는 5급 정도였으니 너무 거물이 나타난 것이다.
3급 악마를 토해냈으니 그 의무를 다한 듯 게이트가 빛을 잃어 사라지려 하고 있었고, 몇 겹으로 구성된 결계가 마법의 빛과 함께 좁혀지면서 고문전문가를 조여 들어왔다.
……!
인간의 귀로는 인지하기 어려운 소리가 울렸고, 뜻은 모르지만 악마가 분노하고 있는 것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때를 대비한 안전장치의 역할도 하고 있는 결계는 견고했고, 착실히 악마를 몰아붙이고 있었으니 그 모습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다시금 악마를 마계 너머로 쫓아버리려는 그때.
파직!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결계 한쪽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한번 시작된 균열은 급격히 그 세력을 불렸다.
“뭐야!”
“외부간섭입니다!”
드라고와 루드비히의 얼굴에 당혹이 떠올랐고, 어쩔 줄 몰라 분주하게 공안들이 손을 놀렸지만, 수천 킬로미터 너머에 있는 균열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콰창!
……!
결계가 깨어지고 악마가 환희에 찬 포효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