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35
035화
타린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보았지만, 아렌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아침은 뭐가 좋을까.”
가벼운 운동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조금은 기분이 좋아진 아렌이 먼저 말을 거는 경악할 만한 일이 벌어졌지만, 트리안과 네이던은 이미 입맛이 싹 사라진 지 오래였다.
“으으으으.”
그야 아침부터 저런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된다면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말이다.
타린 역시 그랬다.
흑마법과 저주를 전공으로 하는 마법사로서 꽤나 못 볼꼴을 많이 봐 왔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러면서도 처음 보는 처참한 광경에 진저리를 치며 아렌을 향해 말했다.
“자네 짓인가?”
정확히 자신을 향해 기세를 쏘아내며 물어보는 타린에게 아렌은 그제야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그래.”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나오는 반말에 타린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건방지군.”
타린의 반응에 주변의 학생들이 술렁거렸다.
아직 입교한지 며칠 안 되는 그들에게 있어서 아직 교수는 멀고 어려운 존재인데, 그런 교수가 정색하는 모습에 긴장한 것이다.
“그런가?”
하지만 아렌은 전혀 아무렇지도 안 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으니, 그 모습이 가증스럽다고 생각하며 타린은 이를 갈았다.
“······저, 저기, 딸꾹! 괘, 괜찮으 ······세요?”
그때 트리안과 네이던의 뒤에 숨어 있던 콜레트가 달달 떨면서 아렌에게 말을 걸었다.
눈가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과 누가 봐도 겁을 집어먹은 토끼 같은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는 모습이 꽤나 장하다고 트리안은 생각했다.
그제야 아렌은 아차 싶었다.
“아. 야. 아. 파. 라.”
이미 완전히 아물어 버려 전혀 티가 나지 않는 볼을 쓰다듬으며 손에 피가 묻은 부분을 슬쩍 밖으로 내비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얼굴에 못 볼 것을 봤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정당방위다.”
그런 주변 반응이 어떻든 간에 아렌은 당당하게 주장했고, 결국 타린이 고함을 지르게 만들어 버렸다.
“사람을 저렇게 만들어 놓고도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단 말이냐!”
외도에 빠져 버린 흑마법사 실험실에서 본 키메라도 저것보다는 끔찍하지 않았었다는 생각을 하며 타린이 분노를 키웠다.
“죽은 자는 없지 않느냐.”
하지만 아렌은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반문했다.
아무도 죽지 않았으니 뭐가 문제냐고 묻는 아렌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그 무엇인가를 보는 표정으로 변해 버렸다.
말 그대로 괴물.
가공할 무력도 무력이지만 일반인과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그 시야를 이들은 똑똑히 느낀 것이다.
“숨만 쉰다고 살아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저 상태를 봐라! 저들이 과연 재기할 수 있을 거 같으냐!”
타린의 절절한 외침에 기숙사 앞에 모여 있는 모두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으로 장애인 판정은 물론이고, 잘라내는 것이 더 나을 정도의 사지의 완치를 위해서는 막대한 금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문제가 될 것이 확실한 것은 정신적인 부분이다.
제 아무리 소드마스터라도 적에게 돌격하지 못한다면 빛이 바래는 법인데, 저런 항거할 수 없는 공포를 몸으로 겪었으니, 저 중 대다수는 다시 검을 쥘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럼 죽은 건가? 확실히 죽이길 원하는 것이냐?”
마치 오늘의 식단은 뭐가 좋을까 하고 물어보는 것 같은 평이한 말투.
하지만 그 말투에 타린의 숨이 턱하니 막혀 버렸다.
이래서야 왜 죽이지 않았냐고 아렌에게 타박하는 모양이 되지 않았는가.
“생명을 하찮게 여기면 안 된다.”
드물게 진지한 어투로 훈계하듯 말하는 아렌의 모습에 타린은 그만 얼굴이 시뻘게져 버렸다.
“······저렇게 말을 잘 했나? 평소에 말이 없으니 전혀 몰랐군.”
“······도발 솜씨가 수준급이다. 멀쩡한 사람을 순식간에 살인마로 만들어 버리는군.”
트리안과 네이던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고, 어느새 딸꾹질이 멈춘 콜레트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를 표했다.
“······너희 그라인드 놈들은 만사 그런 식이지.”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던 타린이 이를 갈면서 말했지만 아렌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라인드?”
“네 가문!”
타린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아. 그랬지.”
아렌이 타린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라인드와 문제가 있나? 잘은 모르겠지만 모욕하는 거라면 참지 않겠다.”
베로아와 벡스터의 교육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밉상도 이런 밉상이 없었다.
“이이! ······후우.”
이제는 고혈압이 걱정될 정도로 얼굴이 붉어진 타린이었지만, 필사적으로 마나를 끌어올려 감정을 억누르는 모습을 보였다.
타린의 손이 복잡하게 움직이며 마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하더니 뭉쳐있는 빈델의 일행에게로 향했다.
“크으으윽!”
“아아악!”
꽤나 조심스러운 움직임을 보이기는 하지만, 자극은 피할 수가 없었는지 다시금 비명이 울려퍼졌다.
“참아라.”
하지만 타린은 냉정한 얼굴로 한마디 할 뿐, 손을 놀려 검은 기운을 제어하는데 집중했고, 얼마 후 빈델의 일행은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우웁!”
“젠장!”
자유를 찾은 열다섯 학생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각자 사지가 멀쩡한 곳이 없었고, 피와 오물 냄새가 섞여서 뭐라 말하기 힘들 정도의 악취를 풍겨냈지만, 그런 부분에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공통되게 얼굴에 떠오른 공포와 고통의 표정이 보는 사람에게 너무나도 압도적으로 박혀 버린 탓이다.
그때, 저 멀리서 수십의 인원이 허겁지겁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도착했습니다!”
“늦었군. 급하다. 응급처치부터 해라. 함부로 환부를 건드리지 마!”
포션을 부으려는 경비를 제지하고 타린이 상황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도착한 신관들이 참혹한 상황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잠시, 능숙한 솜씨로 현장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고 있던 그 순간.
“······어디 가는 거지?”
느릿한 걸음으로 현장을 벗어나는 아렌의 모습을 본 타린이 얼굴을 굳히며 앞을 막아섰다.
“식당.”
혹시 이번에는 교수를 들이받지 않을까하고 조마조마하던 학생들의 모습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비위도 좋군.”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아예 우리하고는 다른 종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아렌을 제법 겪은 트리안과 네이던이 탄식할 정도였으니 다른 학생들의 놀람은 상상이상이었고 타린은 겨우 가라앉혀 놓았던 분노가 다시금 치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일단 이 상황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타린이 엄숙한 얼굴로 말했지만, 아렌에게는 식사 시간이 더 중요했다.
“정당방위다.”
다시 한 번 당당하게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타린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정말 정당방위라고 해도 너무 과하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어.”
아카데미에서 학생이 다치는 일은 다반사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참혹한 현장은 처음, 알게 모르게 이쪽을 주시하던 경비들과 신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다수가 먼저 기습을 가했다.”
다수와 기습 이라는 민감한 단어에 타린의 이마가 좁혀졌다.
“증거는 있나?”
말이 길어지려는 기미에 아렌의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으려는 찰나, 네이던이 앞으로 나섰다.
“여기에 있는 모두가 증인입니다.”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며 네이던이 동의를 구하자 모여 있던 학생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동의를 표시했다.
“······다수의 기습이라. 틀린 말은 아니지.”
“확실히 선공을 가한 건 저쪽이야.”
그 와중에 모여 있던 학생들 중 한명이 앞으로 나섰다.
“저기. 제가 영상을 저장했습니다만.”
마법사로 보이는 학생이 크리스탈을 손에 들고 내밀었다.
“······복사해서 나에게 보내도록 하게.”
가만히 학생을 노려보던 타린이 신형을 돌리자, 트리안과 네이턴, 콜레트가 자그맣게 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사라지는 타린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렌이 이내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래. 젠장! 일단 먹어야지.”
“대책을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다. 높은 확률로 위원회가 열릴 거야.”
“······저, 저기, 저 때문에!”
걱정하는 트리안과 네이던, 울먹거리기 시작하는 콜레트가 아렌의 뒤를 따랐지만, 아렌은 대답 없이 그저 걸어갈 뿐이다.
그런 아렌의 시선에 저 멀리서 가볍게 손을 흔드는 도리안의 모습이 들어왔지만, 아렌은 반응하지 않았다.
* * *
며칠이 지나고 이제 아카데미의 사람들 중 아렌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을 무렵, 아렌은 아카데미 최고회의의 호출을 받게 되었다.
“······아카데미에서 수학하는 기간 동안은 최고회의 판결이 제국의 판결과 동일하게 취급됩니다. 언행에 각별히 신경을 쓰시길 바랍니다.”
아카데미의 중앙에 있는 본관으로 안내하는 경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넸지만, 아렌은 평소처럼 느릿하게 걸으며 대꾸하지 않았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본관 앞, 본관을 지키는 경비병에게 아렌을 인계한 병사가 사라지자 육중해 보이는 문이 열렸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좌우로 수많은 문이 보였고, 가운데로 뻗은 복도의 끝에 화려하게 장식된 문이 보였다.
들어서는 이로 하여금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게 하는 분위기였지만, 아렌은 여전히 느릿하게 걸을 뿐이었다.
“조금 서두르는 게 좋겠군.”
회의실로 보이는 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지만, 아렌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조금은 기분이 나빠졌는지 거칠게 회의실의 문을 연 마법사가 아렌에게 말했다.
“중앙으로.”
회의실은 넓었다.
회의실이라고 하기 보다는 강당이라고 불러야 할 규모의 방에는 정중앙의 단상을 중심으로 수많은 좌석들이 둘러싼 것처럼 배치되어 있었다.
한 층이 아닌 여러 개의 층으로 구성된 좌석들의 모습은 마치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다.
중앙의 단상으로 걸어가는 아렌의 모습을 드문드문 앉아있는 인물들이 제각각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흥미, 불안, 분노, 불쾌, 걱정 등등.
방안에 있는 사람은 수십 명 뿐이지만, 인세에서 볼 수 있는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아렌은 중앙의 단상에 도달했다.
모두가 가면을 쓰고 로브를 머리까지 덮어서 누가누구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유일하게 맨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노인이 푸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름을 말하게.”
“아렌 드 그라인드.”
소년에게 맞지 않는 분위기를 풍기는 아렌을 보면서 노인의 웃음이 짙어졌다.
“왜 호출했는지 짐작 가는 바가 있는가?”
“모르겠다.”
척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노인에게도 공평하게 하대하는 아렌의 모습에 회의실의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이냐!”
한쪽 구석에 있던 사람이 거칠게 일어나며 외쳤지만, 아렌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당연히 대꾸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