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38
038화
객관적으로 봤을 때 타린은 꽤나 똑똑한 사람이다.
아카데미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흑마법과 저주에 관해서는 제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전문가인 그는 로번과 아렌의 차이를 냉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타린은 로번이 아렌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현장을 직접 보기도 했었고, 아렌이 만들어놓은 결과물에 손을 대 해체를 한 것도 그였으며, 정령사가 불러낸 대지의 기억을 그 누구보다 샅샅이 분석한 것도 그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타린은 꽤나 많은 연구와 고민을 했었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로번이 아렌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조건이 갖춰진다면 아렌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그렇다면 남은 것은 그 조건을 갖추는 일이고, 타린은 굉장히 꼼꼼한 사람이다.
* * *
“번쩍번쩍 하구만.”
트리안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학생들의 환호를 받으며 결투장으로 입장하는 모습은 그만큼 화려했다.
은은한 기운이 서려 있는 갑옷부터 시작해서 들고 있는 무기, 호화로워 보이는 목걸이, 기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귀걸이와 반지까지.
“죄다 마법물품이네요.”
레티시아가 미간을 좁혔다.
전투마법사인 네이던보다는 순수 마법사 쪽에 가까운 레티시아는 그만큼 안목이 높았다.
그녀에 눈에 찰 만큼 로번의 장비들이 범상치 않아 보였으니, 돈으로 온몸을 두른 셈이다.
“······다른 가문에서 협조했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게 진짜인 모양이군.”
제 아무리 인재이고, 혈육을 위한 복수를 한다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나선다고 하지만 루앙가는 남작가다.
알짜배기 가문이라고 해도 남작가라는 체급의 한계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예산의 한계를 의미한다.
레티시아의 눈에 들 정도로 수준이 높은 장비를 온 몸에 두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다른 가문이 보충한 모양이었다.
“······제가 너무 순진했네요.”
콜레트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모습에 레티시아가 손을 잡아 주었다.
밝고 여리기만 한 소녀는 이제야 귀족들의 음험한 현실을 알게 되었다.
“이게 끝이 아니겠지.”
네이던이 싸늘한 눈으로 타린을 노려보았다.
제국 마도 기술의 집합체인 결투장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마법기.
심판으로 나온 사람은 한시적이지만 이 거대한 마법기의 통솔 권한을 가진다.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대마법사나 소드마스터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이 마법기를 이용해서 타린이 아렌에게 어떤 제약을 가할지 모르는 것이다.
네이던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타린이 아렌을 견제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이번의 한 수는 괴물로밖에 안 보이는 아렌이라도 쉽게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서있는 아렌을 바라보는 일행의 표정이 복잡해졌고,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지금 눈으로 확인한 것만 해도 이 정도인데, 또 어떤 수가 숨겨져 있을지 알 수가 없으니, 패배감에 휩싸인 것이다.
“쿠키를 준비해라.”
“예. 예?”
갑작스런 아렌의 말에 콜레트가 화들짝 놀라며 아렌을 쳐다보았다.
“내가 내려 준 대가에 비해서 공물이 부족하구나.”
“예! 예! 알겠어요. 공자님.”
놀란 것도 잠시, 콜레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그 순간 패배감에 휩싸인 일행의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하찮은 짓이다.”
이 중에서 가장 작은 체구의 아렌이 하는 말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렌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다녀오지.”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아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행의 얼굴에 기대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작군.”
“······소문보다 더 작은데? 정말 저 녀석이 맞아?”
“어머. 예뻐라.”
“······정말 미소년이네.”
“뚱한 표정도 귀여워!”
느릿한 걸음으로 아렌이 걸어 나오는 그 순간, 환호성이 멈추고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다.
신입생들이야 아렌의 용모를 알고 있지만, 상급생들은 아렌의 모습을 처음 보는 경우가 많았고, 흉흉한 소문에 반비례하는 화려한 외모가 시선을 끈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따가울 만도 하건만 아렌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느릿하게 걸어가니 어느덧 로번과 타린이 대기하고 있던 결투장의 중앙에 도달해 있었다.
서늘한 눈으로 아렌을 노려보던 것도 잠시, 타린이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로번 드 루앙과 아렌 드 그라인드의 결투를 시작하겠다.”
환호성이 결투장을 울렸다.
“시작하는구나!”
“어느 정도일까?”
“어이! 로번! 신입생한테 지지 마라!”
혈기왕성한 학생들의 외침이 콜로세움을 울리는 와중에 결투장에 의해서 확산 된 타린의 목소리가 울렸다.
“무기와 방어구는 현재 입고 있는 것으로 제한한다.”
“이의 없습니다.”
로번이 재빠르게 동의를 표했고, 아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의 사용을 금한다. 오러를 이용한 전투만이 가능할 것이다.”
타린의 외침과 함께 결투장이 호응했고, 그 순간 기묘한 압력이 결투장 내부를 눌렀다.
결투장 내에서 직접적인 마법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오러 사용자들 간의 대결인 바, 공명정대한 기술만을 사용해야 할 것이며 비열한 기술을 사용할 시 패널티가 부여될 것이다.”
타린의 외침과 함께 결투장 곳곳이 희미하게 빛나며 마법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둘은 다섯 발자국씩 물러서라.”
타린을 중심으로 뒤돌아 물러선 둘이 자리를 잡았다.
입가에 비열한 웃음을 떠올린 로번이 투구의 앞가리개를 내렸고, 무심한 표정의 아렌의 모습에 학생들의 환호성이 잦아들었다.
결투장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런 결투장의 모습에 타린이 만족한 모습을 짓더니만 이내 손을 높이 들어서 앞으로 내렸다.
“시작!”
“죽어라!”
소리와 동시에 로번이 기이한 섬광이 번뜩이는 롱소드와 번쩍거리는 커다란 방패를 앞세우며 달려들었고, 앞으로 내밀어진 아렌의 손이 흔들렸다.
콰쾅!
“크억!”
굉음과 함께 방패가 조각나며 마나의 빛이 터져나갔고, 달려온 것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로번의 신형이 뒤로 튕겨나갔다.
“우와!”
“뭐야 저게!”
“······고차원적인 오러의 운용 같은데?”
순간적으로 일어난 공방에 결투장이 달아오르며 학생들의 입에서 경악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흠.”
아렌은 산산 조각난 로번의 방패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렌의 이번 일격은 로번의 팔을 산산조각내기에 충분했지만, 방패가 강제로 움직이더니 아렌의 일격을 막아내고 대신 파괴된 것이다.
아렌은 모르겠지만, 어떠한 공격이든 한번은 무조건적으로 막아 주는 마법방패다.
신기한 기물에 감탄한 것도 잠시뿐, 한 번이 안 되면 두 번 공격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아렌이 재차 손을 쓰려는 순간.
“반칙이다!”
타린의 외침과 함께 아렌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지며 아렌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 * *
“어리석은 짓을 하는군.”
총장 부르바스의 중얼거림에 곁에 앉아 결투장을 내려다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부르바스에게로 향했다.
콜로세움의 높은 곳,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게 처리된 귀빈석에 앉은 사람들은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부르바스는 아카데미의 절대자.
그런 그가 심기가 불편한 듯한 인상이니 함부로 대꾸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부분이 말이죠?”
하지만 어디나 몇몇의 예외는 있는 법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바스에게 대꾸한 사람이 그랬다.
목소리의 주인을 잠시 쳐다본 부르바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타린과 저 학생이 어떤 대가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대결은 이겨도 손해고 지면 감당 못할 정도의 손해다.”
사내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환한 미소를 지었다.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의뭉 떨기는 ······.”
잠시 투덜거린 부르바스가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명분은 좋지. 불명예를 감수하고 혈육의 복수를 하겠다는 것. 하지만 봐라. 일단 겉모습부터 문제가 되지 않느냐. 전신을 마법기로 완전무장한 기사와 맨손의 소년의 대결이지.”
부르바스의 말에 주변의 사람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확실히 아렌은 그 흔한 검 한 자루 들고 있지 않은 상태이니, 이래서야 모양이 살지 않았다.
“열다섯 개의 가문이 쉬쉬하는 것을 끄집어내었으니, 당장은 동조할지 몰라도 앞으로 이 가문들은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다.”
단언하는 부르바스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린도 글러먹었어. 도대체 어떤 대가를 약속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한쪽으로 편을 들고 있지 않으냐. 우리 학생들은 어리석지 않다. 지금이야 결투의 열기에 취해 있겠지만, 열기가 식으면 이상한 점을 발견해 낼 것이고, 타린은 존경을 잃을 것이다.”
제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교수라고 할지라도 학생들의 존경을 잃는다면 설 자리를 잃는다.
하물며 개개인의 학생이 범상치 않은 배경을 가진 아카데미에서 그런 일을 당한다는 것은 타린의 커리어가 끝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이 결투를 이겨도 저 학생과 타린 교수의 경력은 끝이군요.”
“그렇지.”
주변의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이끌어가는 자들이니 만큼, 이 일의 여파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총장님이 어리석다고 한 말이 실감이 되는군요. 그런 상황에서 지기까지 한다면?”
부르바스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해 무엇 하겠느냐. 저렇게까지 해 놓고도 진다면 접시 물에 코 박아야지.”
아카데미의 총장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거친 말투였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 감히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 * *
공기가 무거워지면서 실제적인 압력이 아렌을 짓눌렀다.
마치 세상 전체가 아렌 자신을 배척하려는 것 같은 움직임에 아렌의 몸이 잠시 멈춘 사이에 타린이 앞으로 나섰다.
“공명정대한 기술만을 허용한다고 하였다. 이를 어겼으니 아렌 드 그라인드에게 패널티를 부여하겠다.”
“······크흐흐.”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하는 사이, 로번이 비웃음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시에 로번의 몸 이곳저곳에서 빛의 반짝였고, 마법기에 내장 된 마법이 발동하며 로번의 신체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듦과 동시에 각종 버프를 부여했다.
그 시간은 극히 짧아서 타린에게 시선을 빼앗긴 학생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
“······저런 거였군.”
하지만 집중하고 있던 아렌의 일행들이 놓칠 정도는 아니었고, 이를 갈며 중얼거린 트리안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마법기를 통한 간접적인 버프이니 통한다고 쳐도 대놓고 쓰기에는 눈치가 보이니까 타린이 시선을 돌렸고.”
“어지간한 마법은 아렌 공자의 마법 저항력을 뚫지도 못할 거 같으니까, 국소 범위 중력 마법을 걸었군요. 연구를 많이 했네요.”
네이던에 이어 레티시아가 상황을 분석하며 미간을 찡그렸다.
높은 경지에 오를수록 각종 저항력이 상승한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그런 아렌에게 패널티를 주기 위해서 간접적인 방식의 마법을 사용했고, 그것이 중력 마법.
모르긴 몰라도 지금 아렌은 평소의 다섯 배 이상의 압력을 느끼고 있을 것이며, 그렇게 무너진 신체의 균형은 정상적인 생활도 힘들게 만드니, 전투 상황인 지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떠한 외압에도 끄떡하지 않았던 아렌이 잠시 멈칫거린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었다.
강력한 절삭마법이 걸린 것이 분명한 로번의 검이 오러와 호응하며 그 예기를 더욱 날카롭게 번뜩였고, 잔뜩 힘이 들어간 로번이 큰 걸음으로 멈춰 버린 아렌에게 다가서는 절체절명의 상황.
목숨을 빼앗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결투장이지만 지금 로번에게는 살기가 철철 넘쳐흘렀다.
이대로라면 사고가 나도 크게 날 상황이었지만, 일행은 표정만 조금 찡그릴 뿐,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재밌군.”
아렌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이 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