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39
039화
적이 강하다면 약하게 만들고, 내가 약하다면 강화한다.
기본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교리이고, 타린은 이것을 충실히 지키는 것으로 아렌을 함락시킬 수 있다고 자신했다.
현재 아렌이 받고 있는 압력은 일반적인 인간이었다면 그 압력으로 터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고, 온갖 버프로 강화 된 로번의 신체능력은 바디체인지를 겪은 소드마스터 수준으로 격상한 상황이다.
제 아무리 아렌이 괴물 같은 능력을 가졌다고 하지만 이 격차를 극복하지는 못할 거라고 타린은 확신했다.
* * *
쾌액!
살벌하게 공간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가공할 속도로 떨어져오는 롱소드의 비하면 아렌의 몸은 한없이 느려 보였다.
“이런!”
“죽일 셈인가!”
마치 물속에서 유영하는 것 같은 아렌의 움직임에 관중석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끔찍한 광경이 펼쳐질 거라는 상상에 심약한 학생은 눈을 돌려 버린 그 순간.
툭.
느릿하게 올라간 아렌의 손이 로번의 롱소드에 닿는가 싶더니 이내 미끄러지며 가볍게 밀어냈다.
오러로 손을 보호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정확한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면 손이 잘려나갔을지도 몰랐을 묘기에 오러를 수련하는 학생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큭!”
갑작스런 힘의 전환에 로번의 신형이 휘청거렸고, 동시에 아렌이 로번의 몸에 바짝 붙었다.
쿵!
“어헉!”
아렌을 중심으로 발휘되고 있는 중력장의 영향에 들어간 로번의 롱소드가 무게를 못 이기고 바닥에 박혀 버렸다.
로번이 장비하고 있던 마도기가 빛을 내며 중력장을 해소하려 했고, 검을 놓쳐 버린 로번이 아렌의 몸을 다져 버리기 위해 건틀렛을 낀 손을 휘둘렀지만, 아렌이 한 발 빨랐다.
콰직!
“으아악!”
고권의 형상을 한 아렌의 주먹이 로번의 왼쪽 무릎으로 파고들었고, 방호 마법이 저항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갑옷과 함께 휘말려 들어간 권격이 로번의 슬개골을 부숴 버렸다.
“꺄아악!”
그 처참한 형상에 관람하던 여학생들이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타린이 뭐라고 소리 지르려는 그 순간, 아렌의 손가락에서 은밀하게 뻗어나간 지풍이 타린의 아혈을 막아 버렸다.
“······ !”
갑작스레 벙어리가 된 타린이 당황한 그때, 아렌의 손이 빠르게, 외부에서 보기에는 그 궤적이 분명하게 보일 정도의 속도로 움직였다.
콰직!
“커어억!”
반대쪽 슬개골이 박살나면서 두 무릎이 반대로 접혀 버린 로번의 몸이 가중된 중력에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자작!
“으아아아악!”
발끝과 고관절이 만나 버린 형세가 되어버린 로번이 고통에 비명을 질렀지만, 슬쩍 흔들린 아렌의 손이 로번의 목젖을 강타했고, 비명이 잦아들었다.
“커, 커······.”
“이제 조금 조용하군.”
아렌의 중얼거림과 함께 양손이 바쁘게 움직이면서 로번의 전신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히익!”
“뭐야 저게!”
일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는 잔인한 광경에 관람하던 학생들의 얼굴에 공포가 서리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정!
“······!”
팔꿈치 관절이 박살나고, 쇄골과 갈비뼈가 분쇄되었다.
늘어진 양손 바닥이 바닥에 닿았고, 아렌의 발이 한 번씩 밟고 지나가니 으스러진 손가락뼈가 구겨진 건틀렛과 섞여서 이리저리 튀어나왔다.
끔찍한 고통에 거품을 물고 눈이 뒤집어진 로번이 기절하려 했지만, 아렌은 순순히 기절하게 두지 않았다.
아무런 기교도 없이 묵직하게 들어간 주먹이 로번의 턱을 가격했고, 강제로 기절에서 깨어난 로번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빠각!
아렌은 묵묵히 작업을 이어 나갔다.
즉사할 위험이 있는 척추와 두개골을 제외한 모든 뼈를 부러뜨리겠다는 듯이 차분하게 손을 놀렸다.
희미하게 반짝이며 로번의 몸을 치료하던 마법기도 그 힘을 잃었고, 어느새 고요해진 결투장 안에는 뼈가 부러지고 갑옷이 우그러지는 소리만이 쉴 새 없이 울리고 있었다.
모두가 말을 잃고 홀린 듯이 한 사람이 분쇄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그만!”
짧은 것 같기도 하고, 영원 같기도 한 시간이 지나고 점혈을 푼 타린의 다급한 외침이 울리자 거짓말처럼 아렌의 손이 멈췄다.
아렌의 시선이 타린에게로 향했다.
“히익!”
아무런 감정이 떠올라 있지 않은 표정과 무저갱같은 눈동자, 피투성이가 된 양손의 모습에 타린이 새된 비명과 함께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카데미의 교수답지 않은 추태에 비웃음이 나올 만도 하건만 그 누구도 타린을 비웃는 이는 없었다.
쿵!
아렌의 발이 결투장 바닥을 파고들었다.
딱히 힘을 준 것은 아니지만 중력 마법이 적용되고 있어서 다섯 배 이상 늘어난 체중 때문이다.
쿵. 쿵. 쿵.
그나마 갑옷이 받쳐 주어서 아직 상체를 세우고 있는 로번을 뒤로하고 아렌이 타린에게 다가갔다.
창백한 안색과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는 타린의 앞에 선 아렌이 우묵한 눈동자로 타린을 바라보자 타린의 가랑이 사이로 노란 물이 새어나왔다.
분위기만 봐서는 아렌이 타린을 쳐 죽여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
모두가 침을 꼴깍 삼키며 불길한 상상을 하는 사이 아렌이 조용히 말했다.
“결과는?”
타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이 맞는 건지에 대한 생각이 어지럽게 얽혀서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쯧.”
가볍게 혀를 찬 아렌이 시선을 귀빈석으로 돌렸다.
방금 전까지 점잖게 앉아 있던 귀빈석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아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굳은 얼굴을 한 부르바스 총장이 앞으로 나섰다.
복잡한 눈으로 아렌을 바라보다가 한 차례 심호흡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렌 드 그라인드의 승리를 선언한다.”
아렌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쿵. 쿵. 쿵. 쿵.
느릿한 걸음으로 대기실로 사라지는 아렌의 모습에 승자에 대한 예의도 환호도 없었다.
그저 끝없는 공포와 정적만이 결투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아렌이 대기실 너머로 사라져도 그 여운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 * *
본래대로라면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가야 할 아카데미였지만, 부르바스는 학생 전원에게 한 주간 휴식을 명령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기도 했지만, 그 중에 결정적인 것은 아렌과 로번의 결투에 따른 여파.
대부분의 학생이 관람한 결투 이후에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학생이 다수 발생했기 때문에 아예 전체 휴식을 명했고, 신관들은 학생들과의 상담에 여념이 없었다.
개인이 아카데미를 정지시켜 버린 초유의 사태를 일으켜 버렸지만, 아렌의 위상이 수직 상승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하튼 뜻하지 않게 시간을 번 부르바스는 전체 교수들을 소집했고, 그 자리에는 교수들만 온 것이 아니었다.
* * *
아렌도 방문했었던 본관 회의실에 교수들이 모여들었다.
각자 개성 있는 옷차림의 교수들이 모여들어 자리에 앉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잠시, 부르바스가 회의실로 들어서자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존경을 표했다.
“모이기가 쉽지 않군요.”
다짜고짜 말하는 부르바스의 말에 교수들이 쓴 웃음을 지었다.
“올해는 마가 꼈나 봅니다.”
부르바스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지만, 교수들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입학식에서 터져 나온 사고와 그 이후에 터진 사건까지 생각하면 아카데미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지려는 상황이니 더욱 그랬다.
“······타린 교수는 어떻게 지냅니까?”
누군가의 말에 그렇지 않아도 표정이 안 좋았던 교수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석연치 않은 타린 교수의 행동도 그렇지만, 그가 당한 망신을 생각하면 교수진 전체의 불명예인 것이다.
“······개인 연구소에서 칩거 중이라고 합니다. 일단 타린 교수의 교과목은 미뤄 뒀습니다만······.”
행정을 담당하는 교수의 말에 교수들이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다.
“거참. 학생 하나 때문에 말썽이 많군요.”
“······그 학생이 잘못이 없다는 것이 문제죠. 조금, 아니 많이 잔인하기는 하지만.”
콜로세움에서의 아렌의 손속이 생각났는지 몸을 움찔 떠는 교수의 모습에 다들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짝.
부르바스가 손뼉을 치며 주의를 모았다.
“자. 우리의 문제 학생에 대한 것은 뒤로 미룹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 있으니까.”
예년 같았으면 이 자리에서 각자의 수업과 연구에 대한 토론과 방향성을 정하기 위해서 목에 핏대를 세웠겠지만, 금년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 있었다.
“베네프트 교수.”
“예. 총장님.”
멀끔한 모습이지만 마음고생이 심한 듯, 안색이 어두운 베네프트가 앞으로 나섰다.
“조사에 진척은 있습니까?”
입학식에서의 사고 이후,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놀지 않았다.
특히 금년 시험의 책임자인 베네프트를 필두로 경험이 많은 교수들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서 만사 제쳐 놓고 투입되어 있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침중한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이는 베네프트의 모습에 회의실에 모인 교수들이 웅성거렸다.
“···단서를 잡지 못했다는 말이군요.”
“예. 총장님.”
입술을 질끈 씹으며 대답하는 베네프트의 모습에 부르바스가 한숨을 쉬었다.
교수들도 침묵했다.
기이한 언행의 소유자이지만 베네프트의 능력은 이곳에 있는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바, 그가 단서를 잡는데 실패했다면 일반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잠시의 침묵 끝에 부르바스가 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에게 말했고, 다급히 문을 연 경비병의 뒤로 일단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나같이 검은색 정복을 입은 사내들의 등장에 교수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총장님!”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내 입장이라면 이해할 겁니다.”
격한 반응도 잠시, 부르바스의 서늘한 눈동자에 교수들도 입을 다물었다.
열 명 남짓한 사내들이 부르바스의 뒤에 섰고, 하나같이 서늘한 눈빛으로 교수들을 바라보는데, 그 시선을 피하거나 노려보며 눈싸움을 하는 등, 꺼림칙한 분위기가 교수들을 감싸 안았다.
이들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고, 활동도 드러나지 않는다.
오직 이들이 지나간 자리에 나타나는 흔적만으로 그들이 ‘일’을 처리하고 갔음을 짐작할 뿐이다.
제국 공안 6과.
통칭 황제의 사냥개라 불리는 감찰과 방첩 전문 부대가 아카데미에 등장했으니, 교수들이 얼굴이 굳어진 것이다.
“어쩔 수 없었소. 베네프트의 능력으로도 파악이 안 된다면 아카데미의 역량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지. 그렇다면 내가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겠소?”
마냥 편하지 만은 않아 보이는 부르바스의 표정에 교수들도 인상을 구겼다.
공안 6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황제뿐이다.
아카데미의 총장으로서 자신의 무능을 황제에게 제 입으로 고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부르바스의 심기도 편치 않았던 것이다.
“아카데미 감찰기사단은요?”
구석에 자리한 교수가 부르바스에게 급히 물었지만, 부르바스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교수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사이 6과의 사내들 중 가운데 있는 사내가 앞으로 한 발 나섰다.
평범한 체구에 평범한 얼굴을 가진 중년인이었지만, 눈빛만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황제폐하께서 심려가 깊으십니다.”
낮고 평범한 목소리지만 교수들은 소름이 돋았다.
“전폭적으로 협조하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중년인의 시선에 교수들이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고, 부르바스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