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76
076화
부르바스의 말에 관객들의 시선이 한쪽에 대기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로 향했다.
각자 비범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에 감탄사가 흘러나왔고, 대부분의 학생들을 알아보며 서로가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이 보였다.
학생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자세가 바로 섰다.
명성은 힘이 되어 주기 마련이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 그들은 동기들과는 다른 출발선에 선 것이다.
“다들 헌앙하군.”
“저 아름다운 아이는 서든 백작가의 레티시아군. 허. 벌써 저렇게 컸나.”
“역시 피렌사야. 당당하고 아름답군.”
작게 이야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오러를 각성한 학생들의 귓가에는 관객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고, 그럴수록 학생들은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그런데 저 소년은 누구지?”
“······들어본 적이 있어. 그라인드 백작가에 무서운 후예가 있다고 하던데. 저 소년인가 보군.”
“어쩜 저렇게 아름다울까요?”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확연히 작은 체구와 미모는 눈길을 끌었고, 아렌을 향해 귀족들의 시선이 모였다.
대부분은 그 외모에 감탄할 뿐이지만, 소식이 빠른 몇몇 귀족들은 눈을 빛내며 아렌에게 은밀한 시선을 보냈다.
마지막 쿠키를 먹어치우고 봉지를 품 안에 집어넣은 아렌이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도 훌륭하구나.”
“감사합니다!”
환하게 웃는 콜레트를 일변하고 아렌의 시선이 콜로세움을 훑었다.
콜레트의 쿠키덕분에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렌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광대 짓을 하는 것도 썩 기분이 좋지 않은데,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자신을 이리저리 품평하는 모습을 보니 배알이 꼴리는 것이다.
아렌의 입가가 씰룩거리고 조금씩 공기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 학생들의 몸이 경직되어갔지만, 분위기는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을 감수하는 것도 귀족의 덕목입니다. 마음을 가라앉히시지요.”
그림 같은 자세로 시립해있던 베로아가 살짝 고개를 낮추더니 아렌의 귓가에 속삭였고, 아렌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무거운 분위기가 옅어졌다.
드웨인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렌 같은 사람에게 직언을 하고 뜻을 누그러트리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 혹은 단단한 신념을 가진 자.
가녀린 여인의 몸인 베로아가 그러한 일을 해낸 것이니 이것은 그녀의 충성심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모습이다.
드웨인의 마음속에 베로아라는 인재가 인상 깊게 자리 잡은 그 순간에도 부르바스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럼 소개하도록 하겠소. 이번 별전쟁에 참여할 31명의 학생들이오.”
“오오오오!”
부르바스의 말과 함께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 순간 관객석에서 함성이 울렸다.
표정을 정리한 학생들이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고, 콜로세움 중앙에 다다르더니 각자가 원형의 관 앞에 자리를 잡았다.
“학생들은 이 장치를 통해서 의식을 가상세계에 옮기게 되오.”
부르바스의 말에 관객들이 웅성거렸다.
“의식만 옮긴 다라 ······.”
“그럼 몸이 무방비상태라는 것인데, 괜찮을까?”
“······그러고 보니 입학식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지 않았소?”
술렁이는 관객석의 모습에 부르바스가 입술을 꽉 물었다.
“안전에 대해서는 특별히 더 신경을 썼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겠소이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서 호위를 세우는 것도 허용했소.”
부르바스의 말과 함께 각 학생들의 뒤편으로 일단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자 엄중한 기색을 풍기는 기사들과 마법사들의 모습을 본 관객들이 납득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일부는 비웃음을 날렸다.
“아카데미의 명예도 떨어졌군.”
“결국 외부의 개입을 인정하는 모양이 아닌가. 이러면 향후 정국이 재미있게 돌아갈 수 도 있겠어.”
철저한 불간섭원칙을 지켜왔던 아카데미가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외부의 힘을 들였다.
아카데미가 제국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한다면 이 일로 인해서 정국이 요동칠지도 모르는 일이니 일부 귀족들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포기해도 그렇게 불명예는 아닐 거 같은데?”
누군가의 목소리에 웅성거림이 커지더니 이내 수긍하는 의견이 나왔다.
“하긴, 자신의 안전을 확실히 지키는 것인데 거기에 대해서 불명예라고 매도하기는 그렇지.”
“모험심보다는 신중함이 앞서는 것이니 상황에 따라서는 그런 인재가 더 중히 쓰이는 법이야.”
모험과 위험은 밑에 가신들이 맞는 것이고 주인 된 자는 언제나 신중하고 꼼꼼해야 하는 법이니 안전하지 않다는 명분이라면 포기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물론 포기해도 상관없소.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인재라는 것은 증명된 것이니까.”
부르바스의 말에 누군가가 물었다.
“그럼 별전쟁을 치르는 이유가 없지 않소이까?”
부르바스의 얼굴에 냉소가 어렸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귀족은 그 욕망의 정점에 선 존재들이다.
그런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아카데미에서 뽑힌 31명이다보니 그들은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그중에 한 명의 예외지만.
“그럼 시작하겠소이다. 학생들은 관으로 들어가시게.”
부르바스의 외침에 반박하는 자는 없었다.
“철저하게 지키겠습니다.”
벡스터가 단단한 얼굴로 말했고, 베로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힘을 쓸 수 있게 허락해 주시지요.”
드웨인과 7기사단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지만, 아렌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괜찮겠지.”
무심한 한 마디였지만, 드웨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고, 동시에 7기사단이 아렌이 들어갈 관 주위를 둘러쌓다.
어떠한 접근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냉엄한 기세가 피어올랐고, 마스터에 근접한 드웨인이 묵직한 기세를 풍기기 시작하니 자리한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드웨인 경인가.”
“그라인드의 검이 왔군. 요즘 내부가 시끄럽다고는 하는데 드웨인 경은 방향을 정한 모양이야.”
그렇게 소란스러운 가운데 관의 뚜껑이 열리고 긴장된 표정의 학생들이 하나둘씩 관으로 들어섰다.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
“쓸데없는 말이로구나.”
베로아의 격려에 무심하게 대답한 아렌이 눈을 감자 관의 뚜껑이 닫혔고, 한줄기 마나가 아렌의 뇌리로 파고들었다.
파고든 마나가 아렌의 뇌에 접촉하더니 이내 아렌은 수면욕과 함께 정신이 어딘가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식이군.’
경지에 이른 무인은 의식을 날려 세상을 굽어보는 것이 가능하다.
비슷한 현상을 마법으로 재현한 것이라는 생각에 아렌은 편안히 몸을 이완시켰다.
이윽고 환한 불빛이 명멸했다.
* * *
시원한 바다 냄새와, 몸으로 느껴지는 공기의 감각, 귓가에 울리는 도시의 소리까지.
미리 알지 않았다면 가상의 세계라고 믿지 않을 만큼 정교한 감각에 학생들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제법이군.”
“놀라울 따름이지요. 입학식도 그렇고 확실히 아카데미는 마법의 최전선이 맞아요.”
네이던의 말에 대꾸하는 레티시아를 보면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온하기 그지없는 항구도시의 모습을 보면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사건사고를 떠나서 아카데미는 위대한 업적을 이룬 것이 맞았다.
“그래도 배려는 하는군.”
도리안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허공으로 모였다.
청량하고 맑은, 끝없는 창공이 펼쳐져 있어야 할 그곳에 커다란 게시판이 떠 있었다.
분명히 눈에 보이는데 이 도시의 사람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모습이 역설적으로 현실을 일깨워주는 모습.
감탄사를 내뱉었던 것도 잠시, 학생들은 게시판에 집중했다.
– 이 도시의 이름은 안타이오스다.
– 학생들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나 안타이오스 밖으로 나가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 도시 곳곳에는 손바닥 안에 들어갈 크기의 큐빅이 숨겨져 있다.
– 큐빅 100개를 모아서 하나로 합친 학생이 나오는 순간 별전쟁은 종료된다.
– 큐빅을 모으는 방식은 상관하지 않는다. 단 그 방식에 대한 책임 역시 상관하지 않는다.
– 큐빅을 모으면 모을수록 특정한 힘을 쓸 수 있다.
– 특별히 시간제한은 존재하지 않지만 진행이 느리다고 판단할 경우 아카데미가 개입한다.
– 학생들의 건투를 기원한다.
동시에 게시판의 옆으로 31개의 얼굴이 떠올랐다.
학생들의 얼굴 옆에 각기 숫자가 적혀 있었고, 아직까지는 모두 0 인 상황.
“악취미군.”
네이던의 투덜거림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참가자의 얼굴과 옆에 있는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큐브의 소유를 나타내는 숫자일 것이고 상시 머리위에 공개되어 있으니 경쟁은 깊어질 것이고 종극에는 서로간의 투쟁이 일어날 것이 뻔했다.
다른 학생들도 그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모두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일단은 협력하는 게 어떨까요?”
레티시아의 말에 일행의 시선이 모였다.
31명의 참가자 중 1학년은 일곱 명.
그리고 그 일곱 명은 아렌과 그 일행들이었으니,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상급생들과의 대립에 대비해서 힘을 합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지.”
도리안의 대답과 함께 엘레나까지 합세하며 단단한 파티가 구성되었고, 그 모습을 본 다른 참가자들의 표정이 변했다.
별사냥 기간 동안 이들이 보여준 능력은 단순히 신입생이라고 볼 수 없었고, 이 자리에 전원이 서 있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서로의 표정을 살피며 의견을 교환하는 학생들 사이로 아렌이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난 따로 움직이겠다.”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안타이오스의 골목으로 걸어가는 아렌의 뒷모습에 일행이 쓴웃음을 지었다.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아렌은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자.
아니, 일행이 제 아무리 힘을 합쳐도 아렌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괴물이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는 없는 일 아닌가.
1등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그 다음 위치를 노리고 최선을 경주해야 하는 것이다.
“저희도 움직이죠.”
슬그머니 눈치를 보고 있는 다른 학생들을 흘겨본 레티시아가 걸음을 옮겼고, 일행 역시 도시의 한쪽으로 파고들었다.
* * *
“그것을 다오.”
“옛!”
아렌이 튕긴 동전을 잽싸게 낚아챈 꼬마가 공손히 큐빅을 건네더니만 이내 희희낙락하며 골목으로 사라졌다.
“얻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군.”
아렌의 작은 손에도 들어올 만한 정육면체의 물건은 표면이 1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특징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렌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커다랗게 떠 있는 게시판에 박혀있는 얼굴들 옆의 숫자들이 변해있는 게 보였다.
아렌 자신의 얼굴 옆의 숫자도 1로 바뀌어 있었지만, 대부분의 숫자가 바뀌어있는 모습이 확실히 큐빅 자체를 얻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은 모습이었다.
문제라면 숫자일 것이고, 제 아무리 큐빅이 많다고는 하지만 그 수는 한정되어 있을 것이니 필연적으로 분쟁을 불러올 것이다.
“차라리 그게 낫겠군.”
이 광대 짓을 한시라도 빨리 끝낼 수 있다면 차라리 그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렌은 걸음을 옮겼다.
저 앞에 꼬치를 팔고 있는 가판이 아렌을 유혹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