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23
제123화
백작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퍼스트 길드의 초창기 멤버 대부분은 애쉬튼 백작가 출신.
백작이 길드에 가입하는 순간, 그가 어떤 직책을 맡든 그들은 누구의 명령을 우선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칫 퍼스트 길드 자체가 라울의 것이 아닌 백작가에 속한 조직으로 변질될 위험도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시스템’이라는 것의 힘을 빌리고 싶지 않구나. 나는 여태까지 내가 수련해온 길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고 있고, 온전히 나만의 힘으로 경지에 오를 생각이다. 그게 나를 이 자리까지 이끌어준 선조들과 스승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 라울, 네 제안은 마음만 받도록 하겠다. 아버지를 챙기고자 하는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맙구나.”
백작의 말에 라울은 더 이상 길드 가입을 부탁할 수 없었다.
큰형도 마찬가지였다. 동생이 만든 조직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거절했으니.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그들이 우려하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로 퍼스트 길드는 완벽하게 라울의 통제 하에 들어와 있었다.
백작가 출신뿐만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로 길드를 충원했고, 게이트 사태 이후 각종 전투와 영지 재건 작업을 거치며 그들의 마스터와 소속이 어디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상태였다.
이제는 그 누가 길드에 추가로 들어온다 한들 라울의 위상을 흔들 수 없는 탄탄한 조직이 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라울 네 개인적인 조직에 내가 가입하는 것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형님이 백작가를 책임지게 된 이상, 저와 연락할 일도 많잖아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무 때나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통신 수단 정도로 생각하시면 안 될까요?”
“그렇기는 하다만….”
그래도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라울은 회심의 카드를 사용하기로 했다.
“가입하셔서 신의 축복을 받으면 형님의 멋지고 훌륭한 육체가 훨씬 퍼펙트하고 고져스하게 발전할 수 있다구요!”
“……! 그, 그럴까?”
딜런의 상완근이 움찔거렸다. 분명 마음이 넘어온 눈치였다.
‘그렇다면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던지자!’
“형님! 시스템을 이용하면 24시간 언제든지 원한다면 형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요! 거기다가 위치 추적도 가능하니까 만약의 경우엔 정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라울은 확신했다. 형수님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형님이라면 이런 완벽한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라고.
“저, 저기 라울아?”
그런데 형의 표정이 영 이상했다. 설마 지금 동공이 흔들리고 있는 건가?
“네 말은, 이게 서로 간에, 그러니까 예를 들면 네 형수도 그 기능을 쓸 수 있다는…?”
설명이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라울은 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요! 형수님도 원하시면 언제든 형님에게 연락할 수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너무 좋지 않아요? 안 그래도 형님께 말씀드린 뒤에 형수님도 길드에 가입시키려….”
“잠까아안!!”
딜런이 황급히 라울의 양쪽 어깨를 꽉 붙잡고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표정으로 물었다.
“너 설마, 혹시, 형수에게 이 얘기 벌써 한 거 아니겠지?”
형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형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기운은 설마 살기는 아니겠지?
라울은 왠지 모를 압박감에 침을 꿀꺽 삼키고는 조심스레 말했다.
“아, 아직 형수님께는 말씀 안 드렸는데요?”
“후아.”
형의 입에서 커다란 한숨 소리가 흘러나오며 답답했던 공기가 편안해졌다.
‘뭐, 뭐지? 내가 뭘 잘못했나?’
라울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주름이 하나 늘어난 것 같은 피곤한 얼굴로 딜런이 말했다.
“막내야.”
“네, 형님.”
“형이 너 원하는 대로 고문역이든 뭐든 맡아줄 테니까, 하나만 약속하자.”
‘역시 통했구나!’
라울이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뭐든 말씀하세요!”
“형수한테는 비밀로 해다오. 아니 아예 이 건에 관해서는 아예 말하지 않아줬으면 좋겠구나.”
“네?”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라울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딜런이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이런 일은 아무래도 내가 직접 얘기하는 게 낫지 않겠냐.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형수는 거절이라는 걸 잘 모르는 사람이잖아. 네가 말하면 실제론 불편하면서도 억지로 가입할지도 모르잖냐? 너도 그런 걸 원하지는 않겠지? 게다가….”
형이 원래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나 싶으면서도 라울은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걸 깨달았다.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역시 형수님께는 형님이 직접 말씀드리는 게 더 로맨틱하겠죠? 저는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그러면서 라울이 씨익 웃고는 윙크를 날렸다.
“그, 그래. 고맙다.”
딜런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막냇동생을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거야. 그럴 거야.’
사랑하는 사이에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걸 알기엔 전후생 50살이 넘은 모태 솔로 라울은 너무 순수했다.
어쨌든 라울은 원하던 대로 딜런을 퍼스트 길드의 고문역으로 받아들였다.
조만간 형의 피지컬에 걸맞은 격투 계열 스킬을 구할 수 있다면, 애쉬튼 백작가에 또 하나의 괴물이 탄생할지도 몰랐다.
여담이지만, 한 달 정도 뒤. 라울은 퍼스트 길드의 명부에 형수님의 이름이 올라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이네. 이번에 본가에 들어가면 무리를 해서라도 가입시키려고 했는데.’
백작가를 노리는 어두운 손길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이때, 형수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길드 가입은 필수였으니까.
덕분에 라울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고, 타이밍이 조금만 늦었다면 날벼락 맞을 뻔한 누군가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 *
아카데미 입학시험 ‘쟁투’는 어느새 6일 차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간 예선전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64명의 플레이어는 2번의 토너먼트를 치렀고, 드디어 오늘 16강 경기가 열리게 되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쟁투 16강 중계를 맡은 캐스터 박진환입니다. 오늘은 이재현, 강상수 두 분 해설자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커넥트는 앞으로 커넥트의 각종 이벤트를 중계하기 위해 자체 인터넷 방송국을 오픈했다.
중계권을 판매한 만큼 다양한 채널에서 생중계가 이뤄지고 있지만, 커넥트 자체 방송인 만큼 더 상세하고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기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는 채널이었다.
이들은 그중 한국 채널을 담당하고 있었다.
“어제 자로 16강 진출자가 모두 확정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기대했을 텐데요, 국가별 16강 진출자 현황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16강 진출자]중국 4명 – 리진청, 진무양, 왕천명, 조가성
한국 3명 – 배도현, 김일우, 한서현
미국 2명 – 브렌트, 블레이크
일본 – 모리카와 시게루
영국 – 바이런
프랑스 – 피어슨
……
“역시나 가장 많은 64강 진출자를 배출했던 중국이 4명의 선수를…”
중계진은 각국의 선수들을 간략히 소개하고 한국 선수들로 넘어갔다.
“한국은 3명의 16강 진출자를 확보했습니다. 이로써 추후 3개월간 매번 90개의 추첨권을 보장받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희소식이 아닐 수 없는데요, 이제 남은 것은 누가 우승자의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두 해설자 분들은 누가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하십니까?”
“배도현이지요.”
“아무래도 배도현 플레이어 아니겠습니까?”
역시나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예선전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보인 배도현은 64강, 32강에서도 자비 없는 강력함으로 상대방을 찍어 눌렀기 때문이다.
“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다른 선수들 얘기를 해보도록 하죠. 김일우, 한서현 두 선수는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김일우 선수 같은 경우, 기본기가 탄탄하고 스킬과 특성 연계에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8강은 무난히 올라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대진에 따라선 준결승 진출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하지만 한서현 선수 같은 경우엔 아마 이번 16강이 고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환수와 활의 조합이라는 장점을 살렸지만, 둘 모두 어정쩡한 수준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16강 진출자를 상대로는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해설자들은 이런저런 자료를 통해 조심스럽게 한국 선수들의 가능성을 점쳤다.
‘생각보단 날카로운 분석인데?’
16강 경기를 앞두고 잠시 방송을 지켜보던 배도현은 김일우와 한서현을 떠올리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이 토너먼트 대진표를 짠 것은 배도현이었다.
예선의 결과에 따라 공정하게 대진을 편성했다고 하지만, 사심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김일우야 어디에 배치해도 16강은 통과할 실력이었지만, 한서현은 솔직히 16강에 올라올 실력이 아니었다.
하지만 환수 소환사의 특성상 스타가 될 소질이 충분했고, 배도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약간 대진을 유리하게 편성해준 것이다.
‘여기부터는 이제 각자 실력에 맡겨야지.’
어차피 우승은 배도현의 차지이니 나머지 결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손봐주고 싶던 몇 명은 64강과 32강에서 먼지 나도록 털어줬으니 앞으로 경기에선 적당히 상대방을 띄워주면서 진행할 생각이었다.
‘이들은 나중에 퍼스트 길드에 영입할 만한 인재들이니까.’
압도적인 실력은 사람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켜 주었으니, 이제 플레이어들의 호의를 좀 얻어야겠지.
그렇게 시작된 16강전.
배도현의 상대는 미국의 플레이어 블레이크였다.
“오오, 블레이크 선수! 각종 격투기와 무술의 유단자답게 굉장한 연계기와 화려한 몸동작으로 배도현 선수를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와! 2m 넘게 뛰어올라 공중회전 돌려차기를 선보이네요. 역시 커넥트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장면이겠죠?”
“그리고 배도현 선수가 받아주지 않았다면 이런 시합에선 보여주기 힘든 퍼포먼스이기도 합니다. 배도현 선수, 16강에 올라오더니 한결 여유 있는 모습으로 상대의 기술을 차분하게 받아주고 있네요.”
중계진이 감탄사를 연발할 정도로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대련이 이어졌다.
블레이크는 배도현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거리낌 없이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스킬과 기술들을 마음껏 방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배도현은 격투가인 블레이크에 맞춰 무기 없이 대결에 임했다.
그는 블레이크가 받아낼 수 있을 정도로 힘을 조절해 큼직큼직한 동작들로 합을 맞춰갔다.
쿵.
결국, 화려한 공중 3단 뒤돌아 차기가 블레이크의 턱을 후려 찼고, 떨어져 내린 그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패배를 인정했다.
“배도현 승!”
심판의 판결이 내려지고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흘러나오는 사이, 배도현은 손을 내밀어 블레이크를 일으켜 세워줬다.
“좋은 경기였습니다.”
“저야말로 많이 배웠습니다. 역시 배도현 씨에겐 당할 수가 없네요.”
악수를 나눈 블레이크의 표정은 굉장히 밝아 보였다.
솔직히 배도현이 대결 상대로 정해졌을 때 블레이크는 자포자기 상태였다.
도무지 자신의 실력으론 감당할 수 없는 고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토너먼트에서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말 그대로 박살을 내버리는 모습에 두려움까지 느꼈다.
그런데 실제 경기에 들어가자 굉장히 매너 있게 경기를 이끌어갔고, 배려해준 덕분에 자신의 기량을 모두 발휘할 수 있었다.
‘내 실력을 인정하고 존중해준 건가?’
배도현의 속을 알 수는 없었지만, 고마운 건 사실이었다.
“오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다음에 다시 대련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블레이크가 공손하게 묻자 배도현도 쿨하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실력자와의 대결은 언제라도 환영이지요. 같은 아카데미에 다니게 된 만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기, 연락처 좀…?”
그렇게 플레이어들과의 친분을 다지며 토너먼트를 진행한 배도현은 마침내 결승전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