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22
제122화
‘하아. 진짜 다르구나.’
라울은 패배를 인정했다.
멜빈 백작은 딜런과 라울을 동시에 상대했음에도 시종일관 여유 있게 그들의 공격을 받아냈고, 결국에는 둘을 항복시켰다.
엑스퍼트 상급에 이른 검술.
중급 8레벨에 달한 염동력.
각종 버프 스킬과 플리커 같은 초능력.
현재 라울이 동원할 수 있는 기술을 대부분 동원했음에도 멜빈 백작에겐 통하지 않았다.
‘겨우 한 단계 차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너무 쉽게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소드 엑스퍼트의 각 단계는 마나 블레이드(검기)를 다루는 숙련도에 따라 나눠진다.
단순히 마나 블레이드를 만들어내는 초급.
형태를 변환할 수 있는 중급.
외부로 방출할 수 있는 상급.
그리고 오러블레이드(검강)를 일시적으로나마 만들어낼 수 있는 최상급.
하지만 이런 분류체계는 대략적인 지표에 불과할 뿐, 진정한 실력을 평가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실제로 라울은 초급 단계에서 중급, 상급 기사들과의 대련에서 종종 승리하기도 했다.
같은 단계의 검사라 해도 실력은 천차만별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멜빈 백작의 실력은 압도적이었다.
‘전생에 싸웠던 소드 마스터에 필적해. 아니, 어떤 측면에선 우월하다고 할 수 있겠어.’
전생의 배도현은 상급 염동술사로서 소드 마스터와 전투를 벌인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플레이어 출신 소드 마스터에겐 쉽게 승리를 거뒀지만, NPC 소드 마스터를 상대론 몸을 빼기 급급했다.
파워아머라는 플레이어 씹어 먹는 장비 탓이기도 했으나, NPC 마스터들의 검술 실력은 도저히 비벼볼 만한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실력을 어느 정도 되찾은 라울이 판단하기에 멜빈 백작의 실제 실력은 그런 NPC 마스터들에 비견될 만했다. 아직 소드 마스터에 들어서지 못했다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도대체 문제가 뭘까?’
분석안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정보만으론 백작의 상태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99LV. 99.99999…%]처음 백작을 봤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레벨과 경험치 바.
1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상태창 상 스탯은 고정이라도 된 듯 변화가 없었다.
6개월 전 엑스퍼트 최상급에 도달한 필립의 레벨도 마찬가지로 99LV.
하지만 미세하게나마 경험치 바가 상승하고 있었고, 어느덧 10%를 넘어서고 있었다.
‘사실 짐작 가는 바가 없지는 않지만…’
그게 정말이라면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검술 훈련에 매진해온 멜빈 백작에겐 너무나도 잔인한 진실이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소드 마스터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라울의 어깨를 백작의 커다란 손바닥이 탁탁 두드렸다.
“왜 그리 울상이냐? 이 아버지한테 깨진 게 그렇게 억울하더냐?”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백작이 씨익 웃으며 라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많이 컸구나. 네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건 보고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내가 조금 더 빨리 네 잠재력을 눈치챘다면 그런 고생을 시키지 않았을 것을….”
백작은 아직도 성인이 되기 전 라울의 힘겨웠던 모습이 눈에 밟히는 모양이었다.
“아니에요, 아버지. 그런 과정이 있었으니 지금의 제가 있는 거겠죠.”
그러자 옆에서 물구나무를 서서 푸쉬업을 하던 딜런이 고개만 살짝 돌려 라울에게 말했다.
“나도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 네가 아무리 힘들어하더라도 어릴 적부터 형의 퍼펙트한 육체 단련술을 전수했어야 했는데.”
‘헛…! 정말 그랬으면 라울은 아마 애저녁에 하늘나라로 갔을 겁니다.’
라울은 왠지 모를 한기에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형님. 대련 끝나자마자 그렇게 몸을 굴리는 건 훈련이 아니라 혹사 아닙니까?”
거의 30분 넘게 실전에 가까운 대련을 펼친 후였다. 솔직히 라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기진맥진해 있었다.
“쯧. 그건 라울 네가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몸은 굴리면 굴릴수록 발전하는 법이야. 이렇게 힘들 때 조져놔야 근육이 더 성장하는 거거든. 그리고 라울 너와 함께 하고도 아버지에게 진 건, 아직 내 근육이 미숙하기 때문이다. 쉴 시간이 어딨단 말이냐.”
라울은 질린 눈으로 딜런의 울퉁불퉁한 근육을 쳐다봤다. 저 이상 어떻게 더 근육을 키운단 말인가?
“그래 딜런. 네 부족함을 깨닫고 정진하는 건 정말 좋은 자세로구나. 하지만 내가 누누이 말했듯이 육체에 신경 쓰는 것의 반만 검술에 더 투자해 보거라. 그러면 이 아버지의 발끝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지, 하하하.”
“그렇게 웃으시는 것도 지금뿐입니다. 제가 조만간 완벽한 육체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지요. 그러면 아버지도 그 ‘연약한 근육’을 조금은 더 단련하실 생각이 들 겁니다.”
“뭣이라! 연약? 너는 이 완벽하게 균형 잡힌 육체를 보고 그런 말이 나온단 말이냐? 근육에 집착하더니 뇌까지 근육으로 바뀌어버린 모양이구나. 덤벼라. 맨손으로 꺾어 주마!”
“이거 참. 라울 앞이라고 자존심 세우시는 겁니까? 좋습니다. 오랜만에 진하게 육체의 대화를 나눠보도록 합시다!”
쾅! 드드드득.
두 사람이 서로 이마를 부딪치고 깍지를 낀 채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훈련장 바닥이 두 사람의 힘을 못 버티는 듯 꽈드득 패여 나갔다.
라울은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라울이 보기엔 이미 완벽한 육체를 완성 시킨 두 사람이 근육이 어떻고 육체가 어떻다고 떠들고 있으니 소외감이 느껴졌다.
‘카르데나스 님에게 검술을 다시 배우기로 하길 잘한 거 같아.’
다시금 확신이 들었다. 인간의 육체로 가문의 검술을 배우려 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그리고 두 사람의 힘 대결은 결국 무승부로 마무리되었다.
마법으로 강화된 훈련장이 반쯤 박살나자, 집사 이반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예산’이란 단어가 이반의 입에서 나온 순간, 두 사람은 순한 양이 되어 직접 훈련장을 청소해야만 했다.
* * *
대련이 끝난 늦은 밤.
라울은 큰형 딜런과 따로 자리를 마련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로렌스 형은 연락이 되고 있는 건가요?”
“그래. 아무리 집 나간 놈이지만, 신경을 안 쓸 수는 없지. 로렌스 옆에 붙어 있는 기사들이 가끔씩 소식을 보내주고 있어.”
“다행이네요. 근데 지금 어디 있길래 오늘 같은 날 본가에도 돌아오지 않은 걸까요?”
“녀석은 게이트 사태가 터진 이후로 계속 ‘장벽’에 머물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설마 그 ‘장벽’이요?”
“그래.”
장벽.
인류가 축조한 가장 거대한 성벽을 말했다.
수십 년 전 제국과의 전쟁 당시, 왕국 연합은 제국을 대륙 북서쪽으로 밀어 넣고 나서야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그 경계가 되는 지점은 ‘절망의 대협곡’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지형이었다.
하늘을 꿰뚫을 것 같은 가파른 산맥과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협곡은 인간의 힘으로 통과할 수 없는 천혜의 장벽이었다.
하지만 절망의 대협곡을 관통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으니, 전쟁 당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시체의 길’, 일명 콥스 로드(Corpse road)였다.
폭 1km, 길이 수백km의 통로는 금역을 제외하고 제국과 왕국들을 이어주는 유일한 길이었다.
제국의 저력에 두려움을 느낀 왕국 연합은 제국을 패퇴시킨 이후 거대한 성벽을 쌓아 ‘콥스 로드’를 완전히 봉쇄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장벽’.
절망의 대협곡을 경계로 1천km가 넘는 기다란 성벽을 쌓아 올렸다.
솔직히 콥스 로드의 입구만 막았다면 5km도 되지 않았을 테지만, 제국인들이 대협곡을 건너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협곡에도 성벽을 쌓아버린 것이다.
그레이를 비롯한 대현자들이 그 광기 어린 행보를 막지 않았다면 왕국들은 만km가 넘는 협곡 전체에 성벽을 올렸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현재 ‘장벽’이라 불리고 관리되는 곳은 콥스 로드 입구를 막고 있는 5km 구간을 말했다.
평균 높이가 100m에 달하는 장벽에는 현재 각 왕국에서 파견한 연합군이 상주하고 있었으며, 수많은 용병과 기사들이 장벽 너머의 콥스 로드에서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설마 우리 가문에 할당된 쿼터 때문에 머무는 건 아니겠죠?”
장벽에 연합군을 파견하기 위해 루벤왕국에선 백작가 이상 고위 귀족 가문에 병력 할당량을 정해 두었다.
애쉬튼 백작가도 매년 장벽에 기사와 병력을 파견하고 있었고, 라울은 혹시나 둘째 형이 그런 이유로 장벽에 머무는 것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아니. 시킨다고 해서 들어먹을 녀석도 아니지. 아마도 몬스터들을 상대로 쓸데없이 칼질이나 하고 있을 거다. 이번 게이트 사태 이후로 장벽 너머에 몬스터가 폭증했다는 보고가 들어왔거든.”
“흠. 상황이 많이 심각한가 보죠?”
“글쎄, 기사들 말로는 상황이 묘하다고 하더군.”
“묘하다니요?”
전생을 경험한 라울에게도 이 시기의 장벽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애초에 플레이어가 자유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그곳은 제국의 미치광이들이 장난질을 쳐놔서 끊임없이 ‘언데드(Undead)’가 출몰하는 지역이잖느냐? 그런데 게이트가 열리고 일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니 놈들끼리 싸움을 벌이고 있단 얘기지. 그러니 연합군 사령부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라고 하더구나.”
“흠. 듣고 보니 정말 애매한 상황이긴 하네요.”
“로렌스 녀석도 쓸데없는 짓은 그만하고 본가로 돌아오면 좋을 것을…. 그놈 검술 실력에 육체 훈련만 조금 더 했다면 아마 지금쯤 아버지와도 대등하게 겨룰 수 있었을 것을. 쯧쯧.”
‘그건 좀 아닌 듯….’
라울의 기억 속 로렌스는 백작에게는 살짝 못 미치지만, 충분히 육체적으로 완성된 상태였다.
백작과 딜런이 뼈가 굵고 근육이 빵빵한 몸짱이라면, 로렌스는 손발이 길고 근육이 압축된 스프린터형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지.’
전생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머지않은 시기에 ‘장벽’에 커다란 사건이 터지게 된다.
제국 침공의 전초전이나 다름없는 그 사건 때문에 연합군이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될 텐데, 둘째 형이 거기에 엮이면 큰일 아니겠는가.
라울은 전생에 로렌스가 실종된 이유가 그 사건과 관련되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있었다.
‘너무 늦지 않게 장벽에도 가봐야겠군.’
전생에 방문했을 때는 이미 흔적만 남아 있는 상태였으나 이번에는 그 유명한 장벽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애쉬튼 가문의 진짜 천재라 불리는 둘째 형의 실력도 기대가 되긴 했다.
‘그나저나 어떻게 운을 띄우지?’
사실 늦은 시간에 딜런과 따로 자리를 마련한 것은 특별한 용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형 로렌스의 이야기는 그저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고, 진짜는 지금부터였다.
“형님, 혹시 제가 전에 했던 제안 기억나세요?”
“음? 무슨 제안?”
“그, 제가 만든 길드 말이에요. 퍼스트 길드.”
“아, 그거. 그때 분명히 거절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딜런이 탐탁잖은 표정으로 말하자 라울이 자세를 바로 하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시 한번 제안, 아니 부탁드리려구요. 형님, 퍼스트 길드의 고문역을 맡아주시면 안 되겠어요?”
“흠.”
라울은 6개월 전에도 큰형인 딜런과 아버지 멜빈 백작에게 퍼스트 길드에 들어올 것을 부탁했었다.
퍼스트 길드가 단순한 길드가 아니라 ‘신의 축복’을 공유할 수 있는 수단이며,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버지와 큰형은 둘 다 단호하게 거절했다.
자존심이나 감정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라울아. 무릇 어떤 조직이든 명령과 지휘계통은 명확해야 하는 법이다. 아무리 네가 만든 조직이고 마스터라고 하지만, 내가 들어가는 순간 위계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 그건 특히나 신생 조직에는 치명적인 일이지.”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라울은 역시 백작가의 가주 자리는 아무나 맡을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