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21
제121화
라울의 머리가 그 어느 때보다 핑핑 돌아갔다.
‘뭐가 걸린 거지? 본가 요원들을 너무 많이 땡겨 왔나? 아니면 던전 전리품 쌓아둔 거? 설마 제국 아지트 털어먹고 입 싹 닦은 거? 아니면 새로 얻은 영지들 문제?’
마음에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쉽게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덥썩.
멜빈 백작이 라울의 두 어깨를 커다란 손으로 붙잡자, 라울의 심장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쿵쾅거렸다.
“라울 이 녀석! 분명히 나와 약속하지 않았더냐!”
번쩍 들어 올려진 라울의 몸이 종이 인형처럼 허공에서 대롱대롱 흔들거렸다.
‘아, 데자뷔인가? 어디서 이런 일이 또 있었던 거 같은데.’
이제 라울도 충분히 성장하여 키도 190이 넘고 체중도 80kg이 넘는데 백작은 풍선이라도 들어 올린 것처럼 아주 가뿐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약속이라니. 뭐였지?’
하지만 허공에서 흔들리다 보니 뇌까지 흔들리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럴 때는….
“잘못했어요, 아버지!”
일단 빌고 봐야 했다.
잠시 후.
“…그렇게 연락도 없이 바깥을 싸돌아다니는 건 로렌스로도 충분하다! 특히 라울 너는…”
허공에서 털린 다음에 이어진 것은 잔소리 폭격이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화가 난 건 라울이 생각하던 것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문제였다.
‘그래. 저번에 원정을 가면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본가에 돌아오기로 했었지.’
6개월 전, 수도에서 벌어진 사태가 진정된 후 본가에 들른 적이 있었다.
라울의 영지로 주어진 ‘칼립스’영지의 인수인계도 받아야 했고, 추가로 확보할 영지들에 필요한 인력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마음 같아선 모든 일을 혼자 힘으로 진행하고 싶었지만, 6개월의 준비로 새로운 영지의 행정 체계, 군사 체계, 보급 체계를 갖추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했던 약속이 한 달에 한 번은 본가에 들러 진행 상황도 보고하고 대련도 하기로 했던 것이다.
백작으로선 아무리 라울이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한들, 이제 갓 성인이 된 어린애로 보였으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하지만 결국 한 번도 오지 않았지.’
라울에게도 변명거리는 있었다.
영지를 세 개나 확보하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고, 포탈을 무사히 설치했다고 해도 사용하는 데는 마나석이 소모된다.
가뜩이나 돈 들어갈 곳도 많은데 포탈을 탄다고 한 번에 수백만 원씩 쓸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걸 그대로 입 밖에 냈다가는 이 설교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앞으로는 꼭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흥, 입만 살아서는. 못 오면 못 온다고 연락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 만약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한 달간 영지에 가둬두고 특훈시킬 테니까 그렇게 알아!”
‘한 달을 갇혀 있으면 진짜 망하는데….’
농담이 아니라 진짜 실행에 옮길 것 같아서 무서웠다. 당분간은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본가에 자주 들러야 할 것 같았다.
똑똑.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때맞춰 집사 이반이 찾아왔다. 백작은 그제야 표정을 풀고는 라울의 등을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밥 먹으러 가자.”
* * *
식사시간은 화기애애하게 지나갔다.
큰형 딜런은 여전히 건장한 육체를 과시했고, 형수님은 남탕인 백작가의 홍일점으로서 대화 분위기를 주도했다.
조카인 리비는 이제 4살이 되어 어엿한 공주님 태가 났다.
‘할부지’, ‘삼촌’을 외치며 종종걸음으로 식당을 돌아다니는데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둘째 형인 로렌스는 이번에도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라울로 깨어난 이후로 단 한 번도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다 보니, 만약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걱정될 지경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멜빈 백작의 집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는 큰형 딜런도 함께였다.
‘그러고 보니 왜 부르신 거지?’
라울을 꾸짖거나 단순히 식사를 같이하려고 부르신 건 아닐 텐데 말이다.
“크흠. 로렌스 녀석도 있는 자리에서 말하는 게 좋았을 테지만, 불러도 안 오는 녀석은 어쩔 수 없지.”
잠시 가볍게 담소를 나누던 백작이 본격적으로 말을 꺼냈다.
“요즘 영지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가 혼란스런 상황이란 것은 다들 알 거다. 그래서 가급적 상황이 정리된 후에 진행하려 했는데, 더는 미룰 수가 없을 것 같구나.”
뚜벅뚜벅.
백작이 집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작은 상자를 가져와 딜런에게 넘겨주었다.
“이건?”
“가문의 인장이다. 딜런. 오늘부터 너는 이 애쉬튼 백작가의 공식적인 후계자이자 가주의 업무 대행자다. 내가 없더라도 흔들림 없이 백작가를 잘 이끌어 나가리라 믿는다.”
“……!”
딜런은 여태까지 암묵적으로 후계자 대우를 받아오긴 했지만, 공식적인 후계자가 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지금까지는 백작이 마음만 먹는다면 딜런이 아닌 로렌스나 라울을 후계자로 정한다고 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번 백작가의 후계자가 공식적으로 정해지고 나면 아무리 백작이라 하더라도 마음대로 후계를 바꿀 수 없었다.
백작에게 충성을 맹세한 부하들은 공식적인 후계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충성을 맹세할 것이고, 혈족들은 그들 나름대로 권력 이양 이후의 일을 준비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마무리되면 아주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딜런이 차기 애쉬튼 백작가의 주인이 될 것이다.
“책임지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축하드려요, 딜런 형님.”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음에도 편안한 분위기였다. 그저 시기의 문제였을 뿐, 이미 정해져 있던 결과였으니까.
딜런은 담담한 표정 속에서 무언가 결의를 다지는 듯했고, 백작은 조금은 어깨가 가벼워진 듯 편안해 보였다.
그리고 라울은 정말 속으로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정말 한시름 놓았네.’
전생의 애쉬튼 백작가에서 일이 터졌을 때, 큰형 딜런은 공식적인 후계자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갑작스런 백작의 부고에 백작가 전체가 흔들렸고, 혼란스런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여태까지는 백작가의 후계자가 될 만한 이는 딜런 밖에 없었다.
둘째인 로렌스는 영지 일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는 듯 외지를 나돌고 있으니 패스.
막내인 라울은 백작가를 맡을 역량 자체가 없는 천덕꾸러기.
하지만 근 1년간의 활약을 통해 라울의 능력과 명성이 급부상하고 말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백작의 마음이 쉽게 바뀌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부하들이나 혈족들은 달랐다.
어느 집단이든 기존 세력에 대해 불만을 가진 이들은 존재하기 마련. 그리고 백작가를 노리고 있는 세력들도 숨어 있는 가운데 새로운 후계자 후보가 나타난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후계구도를 흔들고자 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좋은 상황이란 말이지.’
실제로 얼마 전, 백작가 내부에 그런 조짐이 보인다는 보고를 케인이 올리기도 했었다.
멜빈 백작도 그런 사실을 알았기에 전생과는 달리 조금 서둘러 딜런의 입지를 굳혀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라울의 입장에선 만족스런 상황이었다. 애쉬튼 백작가 가주의 자리는 그에겐 독이 든 성배나 다름없었으니까.
‘전에 생각했던 대로 본가는 그저 든든한 보험 역할을 해주면 충분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사이, 딜런이 백작에게 물었다.
“그런데 굳이 이런 시기에 결정을 내리신 이유가 뭡니까? 이렇게 서두르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후계자 선정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었다. 지금처럼 영지 곳곳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진행하는 건 조금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보통은 친족 회의, 영지 대회의를 거쳐 의견을 수렴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음. 실은 내가 한동안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다.”
“네? 갑자기 무슨 일로…”
딜런과 라울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백작이 슬쩍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경지’에 대한 단서를 잡은 것 같아서 말이다.”
“축하드립니다!”
“정말 축하드려요!”
딜런과 라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흥분된 표정으로 축하를 건넸다.
경지.
소드 마스터에 오르는 것은 모든 검사와 기사들의 꿈이었다.
그리고 이미 3대째 소드 마스터를 배출하지 못한 애쉬튼 백작가의 염원이기도 했다.
“저희가 뭘 도와드려야 할까요?”
“필요하신 것은 없습니까?”
아들들의 격한 반응에 흐뭇한 미소를 지은 멜빈 백작이 둘을 진정시키고는 말했다.
“확실한 건 아니니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일단 두 달 정도는 조용한 곳에서 그간의 깨달음을 정리했으면 싶구나. 그러니 딜런. 내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영지를 잘 관리할 수 있겠지?”
“믿고 맡겨주십시오. 아버지께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백작이 딜런의 어깨를 탁 두드려 주었다.
“그래, 믿겠다. 어려운 시기에 무거운 책임을 지게 해서 미안하구나. 그리고 라울!”
“네, 아버지.”
백작이 마찬가지로 라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말했다.
“네가 이런저런 일들로 많이 바쁘다는 건 잘 안다. 하지만 너의 뿌리는 바로 이 애쉬튼 백작가다. 항상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형과 함께 영지를 잘 이끌어 가 줬으면 좋겠구나.”
“명심하겠습니다.”
“자, 그럼 얘기 끝났으니 몸 좀 풀러 가볼까?”
멜빈 백작이 깍지를 끼고 스트레칭을 하자 꾸드득 소리가 나며 상의가 찢어질 것처럼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안 그래도 기다렸습니다. 라울이 왔으니 오늘은 좀 색다르겠군요.”
딜런이 웃으며 팔뚝에 힘을 주자, 찌지직 소리가 나며 소매가 찢겨 나갔다.
‘이 미친 육체 괴물들!’
부담스런 근육들에게서 애써 눈을 돌린 라울이었지만, 그도 몸이 근질근질하긴 했다.
바로 오늘 오전. 쟁투 32강 토너먼트 경기를 치르고 본가로 넘어왔다.
물론 경기는 아주 가뿐하게 압도적인 배도현의 승리로 마무리되었고, 뒷일은 케인에게 맡긴 채 포탈에 올랐지만….
‘솔직히 몸풀기 상대도 안 됐으니까.’
배도현 행세를 하느라 기사들과 제대로 대련을 하지 못한지도 며칠이 지났기에 아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인 멜빈 백작과 제대로 검을 섞은 건 아카데미행 전의 일이었으니 이미 1년도 더 지났다.
‘과연 이번에는 어떨까?’
내심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라울은 두 육체 괴물과 함께 지하 훈련장으로 향했다.
* * *
콰앙!
“큿.”
라울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으며 훈련장 벽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몸 앞으로 족히 5m는 되는 두 줄기 패인 자국이 바닥에 새겨져 있었다.
라울이 밀려나며 생긴 족적이었다.
“으라차!”
“어림없다!”
쿵. 콰앙!
두 육체 괴물들이 훈련장 중간에서 격돌 중이었다.
샛노란 검기들이 난무하며 훈련장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딜런이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었다.
“딜런! 육체에 의존하는 버릇은 여전하구나!”
“아버지야말로 그 짱짱한 검기가 아니었으면 벌써 제 앞에 뻗어 계실 겁니다!”
쾅, 쾅!
양손 대검이 충돌하는 여파로 훈련장 전체가 진동했다.
하지만 라울의 눈에는 둘 다 거기서 거기로 보였다.
‘형이나 아버지나 육체로 밀어붙이기는 매한가지면서…’
말 그대로 검기는 거들 뿐. 저게 사람인지 오우거인지 알 수가 없었다.
라울은 마나로 육체를 보조하고 염동력 강화술까지 동원했음에도 백작과 정면으로 충돌한 순간, 맥없이 튕겨 나가 버렸던 것이다.
라울이 침을 퉷 뱉고는 다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이번에는 만용을 부리지 말아야겠어.’
괜히 정면으로 부딪쳤다가는 또다시 낭패를 볼 게 뻔했다.
“크하하. 라울, 이 녀석! 잔재주 부리지 말고 팍팍 덤비거라!”
“그러니까 형이랑 같이 단련하자고 했잖냐. 일단 근육을 키워야 힘을 쓰지!”
‘이런 근육 바보들이!’
라울은 울컥했지만, 그렇다고 도발에 놀아날 순 없었다. 라울은 라울만의 방식이 있었으니까.
‘광휘의 아우라 발동!’
라울의 몸이 황금빛 광휘에 휩싸였고, 어느새 나타난 20여 개의 단검이 금빛 검기를 머금은 채 라울의 등 뒤쪽에 둥둥 떠 있었다.
“진짜는 이제부텁니다!”
라울이 날렵한 몸놀림으로 멜빈 백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