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46
제146화
루시아노의 갑옷 사이로 스멀스멀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온은 살벌하게 날아오는 대검에 굳이 맞서려 하지 않고 피하는 데 신경을 집중했다.
‘라울 자작님의 말이 정말이란 말인가?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로 금기에 손을 대다니!’
젊은 기사들은 잘 모를지 몰라도 그처럼 제국이 일으킨 대전쟁의 끝자락에 태어난 이들은 알고 있었다.
황제의 낙인.
몸에 새겨진 문신을 활성화함으로써 순간적으로 본래의 실력을 뛰어넘는 사기적인 기술.
제국 기사들이 숫자에서 밀렸음에도 대륙을 질타한 것은 바로 그 불길한 문신의 힘 때문이란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단점이 너무나도 명확한 기술이기도 하지.’
본인의 생명력과 마나를 불태워 잠력을 폭발시키는 자폭기나 다름없기에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전후에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열화판 문신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결국 암묵적인 금기가 되어버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마나의 순도가 혼탁해지고, 거칠어진 마나는 사용자를 폭력적이고 잔혹한 성격으로 바꿔버린다.
게다가 장기적으론 성장 한계를 가져와 일정 경지 이상에 도달하기 힘들어진다는 치명적인 문제도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단기전에선 확실히 파괴적이구나. 정말 사기적인 기술이야!’
조금 전까지의 우위가 무색하게, 지온은 연신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한결 강화된 신체 능력과 폭발적인 마나량을 바탕으로 검술의 격차를 찍어 누른 것이다.
만약 움직임이 단순해지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지온이라 하더라도 큰 낭패를 봤을 것이다.
쾅! 퍼벙! 콰지직!
사정없는 공격이 대결장을 아주 박살 내고 있었다.
약간 거무스름해진 마나 블레이드까지 쉴새 없이 사방으로 날려대니 누가 봐도 루시아노가 승기를 잡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온은 하나둘 갑옷에 상처가 새겨지는 와중에도 눈을 빛내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라울 자작님을 믿는다! 반드시 기회가 올 거야.’
이미 이런 상황을 완벽하게 예측하고 있던 라울이었으니, 그의 조언에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온의 눈이 번뜩였다.
* * *
기사 대전이 펼쳐지는 평원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
양측의 기사 20여 명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대결 장소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라울 또한 그들 사이에서 차분한 눈으로 대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략 30m 정도 떨어져 있음에도 마나의 파동과 파편이 계속해서 날아들고 있었다.
물론 그것들이 라울에게 도달할 일은 없었다.
바로 옆에 있는 필립과 제이크가 빈틈없이 그를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편안하게 팔짱을 낀 채 전투를 바라보는 라울은 말 그대로 구경꾼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후우, 이제야 좀 감이 잡히는군.’
라울은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수많은 감각과 정보들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해 넣으며 입체도를 그려나갔다.
제이낙의 던전에서 얻은 성취를 체화한 라울의 염동력은 어느새 중급 9LV에 도달했다.
그의 염동력이 힘을 발휘하는 영역은 어느새 70m로 늘어났고, 파워와 컨트롤의 폭발적인 성장은 이전에는 시도하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했다.
‘좋아. 이제 파악이 끝났어.’
어느새 대결은 문신을 발동시킨 루시아노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위태한 지온의 모습을 보면서도 라울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애초에 이렇게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으니.
‘그럼 이제 시험해볼까?’
라울이 눈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다시금 분석안을 발동했다.
컨트롤이 성장하며 한결 정밀해진 감각과 분석안이 결합되니, 루시아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실시간으로 라울의 머릿속에 입체영상이 되어 박혀 들었다.
라울은 정신을 가다듬고 루시아노의 오른팔에 영력을 집중했다.
후웅, 쾅!
‘오호.’
분명 미세하지만 팔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검의 경로가 바뀌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라울이 발목 쪽에 영력을 집중하자, 발을 내딛던 루시아노가 살짝 움찔하며 검로가 흔들렸다.
라울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어렸다.
염동력의 장점은 원거리에서 보이지 않게 힘을 투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사기 같은 이 염동력에도 한계는 있었으니, 대상에 따라 필요한 영력의 양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라울이 주로 사용하는 ‘염동력 강화술’의 경우 본인의 몸에 힘을 보태는 것이기에 영력이 크게 소모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생명이 없는 물체의 경우에도 무게에 해당하는 영력량만 필요로 할 뿐이다.
하지만 타인이나 타 생명체에게 염동력을 투사하는 경우는 완전히 달랐다.
영력(靈力), 즉 영혼의 힘을 바탕으로 발현하는 초능력인 만큼 영혼을 가진 상대에 대해서는 더 큰 힘을 필요로 하는 게 당연했다.
특히 마나를 다루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직접적인 투사가 어려웠기에 여태까지는 굳이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르단 말이지.’
보상으로 받은 염동력 파워의 성장으로 기사를 상대로도 어느 정도는 먹힌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거기에 컨트롤의 성장까지 더해진다면.
후우웅.
‘…음?’
지온의 눈이 번뜩였다.
방금 일순간이지만 루시아노의 대검이 느려졌다.
그리고 그게 착각이 아니었다는 듯 점차 루시아노의 몸놀림이 느려지고 있었다.
마치 물먹은 옷이라고 걸친 것처럼 그의 움직임에서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졌다.
‘뭐지? 왜 갑자기? 아직 가동시간은 한참 남았을 텐데?’
루시아노 본인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와는 반대로 지온의 몸놀림은 더 가벼워지고 빨라졌다.
오히려 대결을 시작하기 전보다 날렵해 보이는 것은 착각이었을까?
‘마치 바람이 뒤에서 밀어주는 것 같구나.’
검의 무게도 한결 가벼워진 것 같고 움직임에 힘이 실렸다.
그리고 두 기사에게 생긴 변화가 승부를 갈랐다.
“하압!”
투쾅! 서컹.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처럼 보이던 지온의 대검이 살짝 꿈틀거리며 루시아노의 검을 사선으로 흘려냈고, 한 박자 빠르게 손목을 비튼 지온의 대검이 경로를 바꿔 루시아노의 팔뚝을 잘라버렸던 것이다.
“흐아아!”
오른팔에서 피분수를 내뿜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루시아노가 왼손만으로 대검을 휘둘러 왔지만.
텅.
가볍게 쳐내버린 지온의 검이 루시아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푸슉.
“나, 나는… 쿨럭.”
루시아노가 자신의 가슴을 꿰뚫은 대검을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다 이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후우.”
휘릭.
대검을 뽑아낸 지온이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하늘을 향해 검을 들어올렸다.
“와아아!!”
“지온! 지온! 지온!”
콘포드 성에서 커다란 함성과 함께 지온을 연호하는 병사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주먹 쥔 반대쪽 손을 허공으로 내뻗어 환호에 응답한 지온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라울의 앞으로 다가왔다.
“지온, 명대로 첫 대결 승리하고 돌아왔습니다.”
“정말 멋진 대결이었습니다! 애쉬튼 백작가를 대표해 경의 노고를 치하하는 바입니다.”
이윽고 주변의 기사들이 몰려들어 노기사의 승리를 축하하며 존경하는 선배에게 경의를 표했다.
라울은 후배들에게 둘러싸여 영웅처럼 귀환하는 지온의 모습을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적진으로 고개를 돌렸다.
첫 대결을 패배한 제이든 자작의 구겨진 표정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미 그들은 말을 돌려 진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훗.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제이든 자작.’
라울이 피식 웃음을 짓고는 말머리를 돌려 성문으로 향했다.
* * *
두 번째 대전 기사들이 나섰다.
“카를로 드 애쉬튼. 실버베어 기사단장이다!”
“…레이다.”
앞뒤 잘라먹고 이름만 내뱉는 상대방에 기분이 상했는지 카를로가 대번에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떳떳하게 정체도 밝히지 못할 놈이 감히 애쉬튼 백작가에 도전한단 말인가! 지옥에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거라!”
“…혀가 길군. 내가 먼저 가지!”
차앙! 챙! 채쟁!
망토를 벗어 던지며 달려드는 상대방의 양손에는 두 자루의 검이 들려 있었다.
번개처럼 쏟아지는 연격에 순간적으로 카를로가 밀려났지만, 점차 안정적으로 검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레이라는 기사들 바라보던 라울이 빙긋 웃었다.
‘오랜만이네. 언제 모습을 드러내나 궁금했는데.’
라울의 눈에 황금빛이 어리며 상대측 기사의 상태창이 떠올랐다.
*이름 : 그레이엄(46세)
*레벨 : 89
*직업 : 기사(소드 엑스퍼트 상급)
*소속 : 루벤 왕국, 하운 남작가// 브레넌 공화국, 델라미안 가문
*칭호 : 붉은 집행자
*스탯 : 잠재능력(A등급)
[근력 83] [민첩 73] [체력 84] [지력 63] [정신력 69] [마력 72] [감각 77]*고유 특성
지치지 않는 육체(A), 난전 특화(B)
과거 수도 저택에서 일이 터졌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기사.
브레넌 공화국의 델라미안 가문에서 제이든 자작에게 붙여준 협력자임에 분명했다.
예전에 만났을 때보다 레벨이 하나 오르고 스탯도 조금 상승하긴 했지만, 큰 성장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때는 굉장히 부담스런 상대였는데, 지금은….’
솔직히 좀 만만해 보이기도 했다.
대결은 생각보다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무기의 상성으로 봐선 단연 쌍검 쪽이 우세해 보였지만, 카를로 단장의 실력도 예사롭지 않았다.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 센 편이라 인간적인 평판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실력만큼은 확실했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백작가의 기사들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기사가 약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원리원칙을 준수하고 기사도와 명예를 존중했기에 실버베어 기사단장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고.
‘다만 나랑은 좀 안 맞단 말이지.’
워낙 고지식한 자인지라, 축복이나 버프 같은 도움도 주지 못했다.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한다는데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이기길 기다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번 기사 대전은 무조건 3대0. 이쪽의 완승으로 끝내야 하니까 말이지.’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해서라도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한 만큼, 라울은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대결에 개입할 생각이었다.
다만 눈치채지 못하게 슬쩍 도와줄 생각이긴 했지만.
챙, 채쟁!
앞선 대결이 묵직한 대검들의 승부였다면, 이번 대결은 훨씬 다이나믹하고 빠르게 전개되고 있었다.
커다란 기술보다는 순간순간 빈틈을 노리는 그레이엄의 마나 블레이드에 맞서, 카를로 단장 또한 짧은 베기와 찌르기 위주로 대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팽팽한 대결이라도 끝은 있는 법.
승기를 잡은 것은 카를로 단장 쪽이었다.
피빗! 촤악!
두 개의 검을 거의 동시에 쳐낸 카를로의 양손검에서 길쭉한 마나 블레이드가 솟아나더니 갑자기 네 갈래로 쪼개지며 그레이엄을 덮쳤다.
마치 곰의 발톱이 휘둘러진 것처럼 날카롭게 허공을 찢어버린 노란 검기 다발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그레이엄의 검을 비껴가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찌지직!
비록 치명타는 아니었지만, 그레이엄의 갑옷에 두 줄기의 자국이 깊게 새겨졌다.
“…쳇.”
그레이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표정을 구기고는 문신을 발동했다.
순수한 실력으론 카를로에게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멍청한 루시아노는 제힘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해 자멸하듯 무너졌지만, 자신은 달랐다.
몸속을 가득 채운 뜨거운 열기와 끓어오르는 이 힘이라면 마스터가 상대라 하더라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이제 그만 뒈져라!’
그레이엄이 현란한 스텝과 화려한 검놀림으로 카를로를 현혹하며 공격해 들어갔다.
안 그래도 화려한 쌍검의 궤적에 속도마저 갑자기 빨라져 버리면 상대하던 이는 당황해 빈틈을 드러내기 마련이었다.
이번에도 당연히 그렇게 되리라 믿은 그레이엄이었지만, 상황은 그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챙, 채쟁!
“뭐냐, 갑자기 이 겉멋만 든 검 놀림은? 김이 새는군.”
‘어, 어째서?’
몸에 흘러넘치는 힘과 검에서 뿜어져 나가는 한결 강력해진 마나 블레이드에도 불구하고, 움직임과 검에 속도가 붙지 않고 있었다.
마치 물속에서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저항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잠깐 사이에 생긴 감각의 혼란은 파국을 불러왔다.
서컹!
불쾌하다는 표정의 카를로가 하늘로 솟구친 자신의 검을 거칠게 털어내며 몸을 돌렸다.
‘어, 어딜 가는…’
자신을 앞에 두고 몸을 돌린 카를로를 향해 검을 내질러 봤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이 두 쪽으로 갈라지는 듯 보이며 그레이엄의 생각이 끊어졌다.
촤라락.
그리고 반으로 갈라진 그의 몸이 핏물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우와아아!
콘포드 성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함성 소리와 함께 두 번째 대결도 백작가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