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45
제145화
“5전 3선승. 파워아머는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승부는 한쪽이 완전히 전투 불능이 되거나 패배 의사를 표시했을 때 정해지는 것으로. 동의합니까?”
“좋다.”
양측의 합의가 끝나고 서로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대결은 30분 후, 조금 전 교섭을 진행한 평원에서 펼쳐지게 된다.
끼리릭, 쿵.
성문이 닫히고 성문 근처의 지휘소에 도착하자 라울을 둘러싼 이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선봉은 당연히 저희 골든베어 기사단에 맡겨주시겠죠?”
“이번에는 실버베어 기사단에 기회를 주십시오! 이번 사태에서 떨어진 기사단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면목 없지만, 체인 기사단에도 기회를 주심이 어떻겠습니까? 앞으로 백작가의 기둥이 될 예비 기사들의 사기를 생각해서라도….”
“설마 이런 중요한 대결을 핏덩이들에게 맡기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이런 자리는 우리처럼 경험이 많고 노련한 노병들이 제격 아니겠소?”
서로 자신들이 나서겠다고 난리가 났다.
그 누구보다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사들인 만큼 이런 중요한 대결에서 활약하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마스터, 선봉 자리는 저한테 맡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 제이크, 건방진 배신자 놈들을 아주 박살 내놓을 자신이 있습니다!」
살짝 고민하는 듯한 라울에게 깨알같이 제이크가 자기 어필을 해왔다.
하지만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퍼스트 기사단은 라울의 개인 기사단이었다.
백작가의 미래를 결정지을지도 모르는 이런 중대한 자리에 백작가 직속 기사단이 아닌 개인 기사단을 앞세우는 건 아무리 라울이라 해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랬다간 골든베어 기사단은 물론이고 직속 기사단, 혈족들의 불만을 감당할 수 없겠지.’
앞서 내부 반란을 진압하고 나서 퍼스트 기사단원 절반 이상을 다시 숨긴 이유도 그런 정치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이미 라울이 독립을 천명한 이상 라울의 개인 병력이 백작가의 일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다른 혈족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었다.
그리고 굳이 퍼스트 기사단이 나서지 않는다 해도 대전에 나설 실력자는 충분했다.
“이번 대결에 나설 선봉은….”
* * *
한편 제이든 자작의 진영.
지휘 막사 안에는 제이든 자작과 그에 합류한 영주들, 그리고 기사단장과 망토를 뒤집어쓴 기사 몇 명이 모여 있었다.
“상황이 좀 꼬이긴 했어도 잘 풀렸습니다. 저렇게 쉽게 기사 대전을 받아들일 줄이야. 역시 젊은 혈기 때문일까요?”
테이트 남작이 조금은 편해진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본가 놈들은 자기들이 항상 최고라고 착각하고 있으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대륙 구석에서 열등한 몬스터나 잡다 보니 세상 넓은 줄 모르는 거죠.”
“맞습니다. 아까 라울 놈을 좀 보십시오. 부모 잘 만나서 팔자 핀 주제에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거! 감히 어른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랍니까?”
영주들은 라울과 본가의 흠을 잡으며 제이든 자작의 눈치를 살폈다.
애초에 본가에 대한 불만이 많아서 합류한 이도 있는 만큼, 다들 신이 나서 입을 놀려대고 있었다.
“그런데 대결은 당연히 우리가 이기겠죠?”
순간 누가 꺼낸 말에 막사가 일순 조용해졌다.
“아니, 그 당연한 걸 굳이 묻는 이유가 뭡니까?”
“지금 콘포드 성에 남아 있는 기사들이라고 해봤자 다 떨거지들 아니요? 그리고 설사 중앙군과 기사단이 남아 있었다고 한들 우리 제이든 자작님의 ‘블랙 베어 기사단’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소?”
“당연하지요! 세상모르고 시골구석에 박혀 있던 기사단이 15년간 세상을 돌아다니며 수행을 거듭한 우리 기사단을 어떻게 이긴단 말이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영주들도 확신은 없었다.
실제로 기사들이 싸우는 장면을 본 것도 아니고, 그들이 겉모습만으로 기사들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을 만한 실력자들도 아니었으니.
다만 군기, 기세, 장비 등을 봤을 때 결코 만만한 이들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챌 수 있었다.
‘정말 이길 수 있는 거겠지?’
‘무조건 이겨야 하는데.’
‘당연히 승산이 있으니 먼저 제안한 거겠지.’
그들은 그저 그렇게 믿을 뿐이었다.
“하하하. 다들 그렇게 눈치 볼 거 없다. 이번 대결은 우리가 확실히 이길 수 있으니까. 안 그런가?”
제이든 자작의 말에 뒤쪽에 서 있던 기사단장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명문이란 자부심으로 같은 검술을 평생 붙들고 있는 고리타분한 놈들에게 질 이유가 없지요. 어차피 그 검술, 우리도 다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이든 자작 못지않게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기사단장의 이름은 루시아노.
16년 전, 제이든 자작이 백작령을 떠나기 전부터 그를 따르던 최측근 기사였다.
당시 3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골든베어 기사단 상급기사(4명의 기사를 부하로 두는 조장급 기사)로 임명될 만큼 뛰어난 인재였다.
이제는 50이 넘은 나이였지만, 아직도 피부에 주름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몸 관리를 해오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는 놈들을 잘 알고 있지만, 놈들은 우리에 대해 알지 못하니 누가 나서든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이미 백작가 기사단 전원의 명부와 실력에 대한 보고서를 손에 쥐고 있었다.
덕분에 성에 남아 있는 기사가 누군지,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거의 파악하고 있으니 이 대결은 이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쯤 놈들은 누구를 대표로 내세울지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겁니다. 뭐, 누가 나서든 아무 상관 없지만 말이죠, 하하하.”
루시아노 기사단장의 자신감에 영주들의 얼굴에도 다시 여유가 묻어났다.
그때 망토를 뒤집어 쓰고 있던 기사 중 하나가 제이든 자작의 곁에 다가섰다.
“이번에는 내 차례도 있었으면 좋겠소만.”
“오, 그대가 나서준다면야 나도 환영이지. 그런데 괜찮겠소? 정체를 감추고 싶어 하지 않았던가?”
“뭘 이제와서. 당신 뒤를 따라다니는 것도 이제 슬슬 지쳐가던 참이었으니까,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싶을 뿐이오. 겸사겸사 루벤왕국 최고라는 대검술도 한번 경험해 보고 싶고.”
순간 제이든 자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미 자신의 부하들과 실컷 대련해왔던 주제에 본가의 대검술에 흥미를 가진다는 사실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흥, 건방진 자식. 겪어보면 알겠지. 이제 본가의 검술이 내 아래라는 것을.’
하지만 애써 웃는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제이든 자작이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부탁하겠소, 그레이엄 경.”
“뭐, 적당히 해치우고 오도록 하지.”
그렇게 제이든 자작 진영도 대전의 준비를 마쳤고, 이제 본격적인 대결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쾅! 콰광!
“와아아!”
“죽여버려!”
첫 대결은 막상막하였다.
평원 위에서 맞붙은 두 기사는 커다란 양손 대검을 장난감처럼 휘두르며 커다란 충격파를 일으키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 루시아노?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이는구나. 클클.”
쾅!
“웃기는군. 백작가에 이렇게 인재가 없단 말인가? 다 죽어가는 늙은이를 대표로 내보낼 만큼, 핫!”
콰앙!
블랙베어 기사단장 루시아노의 대검이 거친 톱날형의 마나 블레이드를 뿜어내며 상대방의 몸을 반으로 갈라버리는 듯했다.
하지만 실제로 베어낸 것은 잔상에 불과했으니.
애쉬튼 백작가의 선봉으로 나선 지온 경은 쉰여덟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날다람쥐처럼 재빠른 몸동작으로 루시아노의 검을 피해내고 있었다.
“클클, 그 욱하는 성질을 버리지 못하면 대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누누이 말했거늘. 여전하구나, 루시.”
“닥쳐, 늙은이! 옛정을 생각해서 살살 다뤄줬더니 주제 파악도 못 하는구나. 지금부터 그 잘난 백작가의 검술을 박살 내주마!”
순간적으로 루시아노의 검술이 변했다.
여태까지는 애쉬튼 백작가의 검술인 ‘베어 크러쉬’를 약간 변형한 정도였다면, 이제는 아예 결이 다른 검술을 들고나온 것이다.
슈우웅. 쩌정!
“큿.”
날카로운 대검의 찌르기를 미처 피하지 못한 지온 경이 자신의 검날로 공격을 막아냈지만, 힘에서 밀려 뒤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슈슈슈슝!
대검을 이용한 찌르기가 연속으로 이어지며 마치 거대한 드릴의 날처럼 지온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건…?’
밀려나는 와중에도 검에서 눈을 떼지 않았던 지온 경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갑자기 땅에 대검을 박아넣고는 몸을 휙 돌리며 춤을 추듯 드릴형태의 마나 블레이드를 흘려보냈다.
드드드득.
마치 소용돌이가 할퀴고 지나간 것처럼 땅이 헤집어졌고, 지온 경의 갑옷에도 스크래치가 났지만 거기까지였다.
“연구를 많이 했구나. 창술을 검술에 접목하다니. 그건 브레넌 공화국 쪽의 창술로 보이는데, 내 말이 틀렸나?”
“늙은이가 눈치하난 빠르구나. 하지만 그래 봤자 소용없다. 안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닐 테니까!”
“글쎄, 과연 그럴까?”
그리고 다시 대결이 시작되고 루시아노의 자신만만한 말과는 달리 지온은 아슬아슬해 보여도 적절히 대응하며 대결을 이어나갔다.
라울이 굳이 선봉으로 지온 경을 선택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놈들은 분명 백작가의 검술을 잘 알고 있으니, 파훼법 비슷한 것을 준비해 왔을 거야.’
물론 천년이 넘게 이어지며 보강해 온 검술인 만큼 완벽한 파훼법 같은 것은 있을 수 없겠지만, 이쪽을 당황시키기엔 충분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 대처하려면 경험 많고 노련한 기사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지온 경. 전대 골든베어 기사단의 부단장이었다.
엑스퍼트 최상급에 발을 들여놨을 정도로 검술에 조예가 깊었고, 소규모 국지전이나 국가 간 기사대항전, 토너먼트 등에 참가한 경력도 많았기에 돌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믿음직한 기사였다.
다만 은퇴한 지 몇 년이 지났고, 나이 때문에 마나와 육체적인 능력이 감퇴하고 있었기에 불안한 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을 보면 전혀 그런 불안함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회춘이라도 한 것처럼.
‘허허, 정말 신기하구나. 마치 전성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야.’
지온 경은 한창 대결이 펼쳐지는 와중임에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했던 대로 몸이 움직여 주는 것은 정말 몇 년 만인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이렇게 팔팔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라울 덕분이었다.
출전하기 전 자신을 찾아온 라울은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하고는 두 손을 모으더니 그에게 ‘축복’을 내려주었다.
마치 신의 사자처럼 경건한 기운이 그에게서 전해져 왔고, 지온은 그를 괴롭히던 각종 통증과 피로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뿐일까? 근육에선 힘이 솟아나고 정신은 맑아졌으며 몸이 더 빨라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과연, 막내 공자님이 신의 축복을 받고 각성했다는 소문이 돌더니 진실이었구나.’
실제로는 라울의 ‘광휘의 아우라’에 라벨의 ‘스트렝스’, ‘헤이스트’ 등의 버프 마법 세트가 적용된 덕분이지만, 지온 입장에선 정말로 신의 축복이 내려온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리고 그 결과.
쾅! 콰광!!
“이런 말도 안 되는! 늙은이, 정말 회춘이라도 한 것이냐!”
대결은 어느새 지온의 우세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변칙적인 검술은 어느새 간파되어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순수한 검술 대결로 들어서자 루시아노는 지온의 노련함과 경륜을 당해내지 못했다.
“네 놈이 제이든 자작을 따라다니며 제법 연구도 하고 실력도 키운 듯하다만, 부족하구나.”
챙!
“무슨 헛소리냐, 늙은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라. 백작가를 떠난 16년. 과연 이곳에서만큼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
지온은 어느새 자신만큼이나 나이를 먹은 기사단의 후배를 딱한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쾅!
“그딴 눈으로 나를 보지 마라! 그래, 이런 시골에 처박혀 몬스터나 처리하는 것보단 훨씬 보람 있는 세월을 보내왔다!”
하지만 왠지 루시아노의 목소리는 자신이 없어 보였다.
일순 그의 머릿속에 그간의 세월이 스치듯 떠올랐다.
제이든 자작은 자신감이 넘치고 호탕한 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돈이 많았다.
백작가의 중요 영지를 경쟁 가문에 팔아넘긴 만큼 금전적으로 부족할 일은 전혀 없었고, 그를 따라 백작가를 벗어난 기사들에게 충분히 만족할 만한 대우를 해주었다.
한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지만, 항상 고급 호텔에 머물렀고 어딜 가든 대접을 받았다.
마침내 브레넌 공화국의 도시에 자리 잡은 후에는 더 호화로운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화려하고 웅장한 저택에서 아름다운 여자들을 끼고 매일 연회를 즐기며 진짜 기사다운 대접을 받아왔다.
물론 수련도 멈추지 않았다. 타국에서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실력이 있어야 했으니.
그리고 몇 번의 결투에서 승리하고 마침내 정식 기사단으로 인정받고 나니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 내 선택이 옳았어.’
하루종일 땀내 나는 기사들과 수련하고, 교대로 금역 근처의 요새에 파견되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몬스터들과 전투를 벌이는 생활은 사절이었다.
굳이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대접도 받지 못하고 쓸데없는 몬스터 토벌 따위에 힘을 낭비하는 것보다 다양한 타국의 기사들과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며 검술을 발전시키는 게 실력향상에는 도움이 된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나이 육십이 다 되어가는 노인네 하나도 쓰러뜨리지 못한다니?
이건 뭔가 잘못된 일이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갑옷 아래 루시아노의 온몸으로 지렁이같은 문신들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