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51
제151화
아무리 영지전이라 해도 전쟁이었다. 각 영주들이 병력을 가지고 싸우는 진짜 전쟁.
이기든 지든 왕국의 국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했고, 경우에 따라선 정치적 혼란이 찾아올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같은 혼란스런 시기에 영지전을 모두 승인했다고?
‘무슨 꿍꿍이인지 눈에 보이는군.’
이번 게이트 사태로 왕실은 국가에 대한 통제력을 의심받고 있었다.
왕궁이 직접 공격받아 불타오른 건 둘째 치고, 그로 인해 근위 기사단과 근위병단의 피해가 막심했다.
그리고 카르데나스라는 왕실 최후의 방패를 잃어버린 상황.
왕실의 힘이 떨어진 상황에서 다시 주도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귀족들의 전력을 떨어뜨리면 되는 것이다.
영지전은 그걸 위한 가장 쉬운 수단이고.
귀족 가문들끼리 서로의 전력을 깎아먹겠다는데 왕실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라울은 속으로 혀를 찼다.
‘3 왕자, 어리석은 선택을 했군.’
단순히 생각하면 맞는 생각일지 몰라도, 현실은 이론과 달랐다.
이렇게 중구난방 신청된 영지전을 모두 승인해 버리면 과연 왕실이 그걸 통제할 수 있을까?
여태까지는 적당히 치고받고 승자가 가려지면 왕실 입회인의 중재에 따라 패자 측에서 배상금을 지불하거나 이권을 넘겨주는 것으로 영지전이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만약 왕실 입회인의 중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승자 측이 패자의 영지를 완전히 삼켜버린다면?
왕실의 힘이 넘쳐날 때는 그런 일이 거의 생기지 않았지만, 과연 지금 왕실에 지방 영주들을 통제할 힘이 남아 있을까?
‘누군지 몰라도 아주 제대로 판을 깔아버렸군.’
분명 3 왕자의 측근을 자처한 어느 가문이 이런 상황을 조성했을 것이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명문가나 힘 있는 가문일 게 분명했다.
그들이 직접, 혹은 산하 영주들을 부려 영지전을 신청해 놓았을 테고, 이번 기회에 은근슬쩍 영토를 늘릴 생각이겠지.
그리고 한편으론 라울과 애쉬튼 백작가를 견제하려는 수작일 수도 있었다.
어차피 모든 영지전을 수락했으니 라울에게 동시에 6곳의 남작가가 덤벼든 사실은 묻혀버릴 테니까.
‘이게 시스템이 경고한 업보이자 불행인 건가?’
겉으로 보면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라울의 영지 네 곳을 6개의 남작령이 포위한 상황.
게다가 영지전 신청이 동시에 승인되었으니 한번에 6개의 남작령과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몰랐다.
어떻게 보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라울은.
“크크크, 푸하하하!”
시원하게 웃어버렸다.
‘아니, 일이 이렇게 풀릴 수도 있는 건가?’
라울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겨우 멈추고는 케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뭐, 시도는 좋았지만 멍청이들입니다. 누가 뒷배에 있는지 몰라도 아주 고마운 짓을 해줬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띄엄띄엄 간이라도 보듯이 덤볐으면 아쉬웠을 텐데 말이지.”
동시에 6개의 남작령을 상대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라울과 케인의 얼굴에는 여유가 흘러넘쳤다.
“작전회의 소집하고, 플랜A를 진행하도록. 각 길드 지부에 공문 띄우고 전시체제로 전환한다.”
“네, 마스터.”
케인이 나가고 라울은 테라스에 나가 영지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역시 제이든 자작을 놔준 것이 정답이었어.’
만약 제이든 자작이 찾아왔을 때 그의 세력을 쓸어버렸다면, 이번 영지전은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놈들이 제이든 자작이 아닌 다른 배경을 지니고 있다 해도, 애쉬튼 백작가를 등에 업은 라울의 영지를 건드릴 멍청이는 아니었을 테니까.
놈들이 겁도 없이 덤벼든 것은 애쉬튼 백작가의 기사단과 병력이 제이든 자작 측과 대치상태였기 때문이다.
본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라울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겠지만.
‘모르면 맞아야지.’
그들은 누구를 건드렸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 * *
본 브록스 남작가는 루벤 왕국의 충실한 봉신 가문이자 선량한 프랑노아 남작가의 이웃으로서 라울 자작의 횡포를 이대로 두고 볼 수 없기에, 영명하신 타데우스 드 루벤 왕의 이름 하에 정정당당한 대결을 펼치길 바라며…….
라울이 장황하게 써놓은 두루마리를 회의실 탁자에 툭 집어 던졌다.
제이크가 그걸 주워들어 읽어보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탁자 위에는 글씨체만 다를 뿐 그와 내용에선 거의 다르지 않은 5개의 두루마리가 더 굴러다니고 있었다.
“참 낯짝도 두꺼운 놈들이네요. 핑계를 댈 게 없어서 이딴 이유를 대다니….”
놈들이 내세운 영지전의 근거.
그건 바로 기존 영주들의 억지 주장이었다.
게이트 사태가 발생하고, 자력으로 영지를 지켜낼 수 없는 영주들은 가족과 몇몇 가신만을 데리고 수도로 도주했다.
당연히 영지는 엉망진창이 되었고, 영주성은 함락되거나 함락 직전의 암담한 상황에 놓인 상태.
라울은 그런 영주들에게 해당 영지를 구매했고, 직접 병력을 이끌고 몬스터를 토벌해 영지를 수습했다.
그렇게 새로 얻은 영지가 프랑노아, 루이신, 테른 이었고, 백작가에서 그의 몫으로 하사받은 칼립스 영지까지 총 네 곳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주성을 되찾고 흩어진 주민들을 규합하고 이주민까지 받아서 이제야 복구가 끝나가고 있는 상황인데 기존 영주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자신들이 라울에게 속아서 헐값에 영지를 빼앗겼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돈을 되돌려줄 테니 자신들의 영지를 돌려달라는데, 그게 말이나 되는 얘기란 말인가?
이미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거래를 마쳤고, 왕실의 재가까지 받은 상황인데 이제 와서 거래가 무효라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으니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그리고 주변 남작령에선 이런 기존 영주들의 주장이 옳다며 영지전을 걸어온 것이다.
“참 어이가 없습니다. 이번 게이트 사태로 영지를 잃은 영주들 중에 제대로 값을 받고 영지를 넘긴 이는 우리와 거래한 놈들밖에 없잖습니까?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난 이들도 있는데 이런 배은망덕한 짓을 벌이다니!”
직접 거래를 담당했던 버나드도 열이 받쳤는지, 평소와 달리 과격한 말투였다.
“왕실의 태도도 문제입니다. 분명 본인들이 거래를 공증해 놓고, 이제 와서 자신들은 누가 옳은지 모르겠으니 영지전으로 직접 시시비비를 가리라니요? 이건 왕실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격 아닙니까?”
필립은 왕실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불만을 표했다.
아무리 왕실의 상황이 혼란스럽다 해도, 이렇게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누가 왕실을 믿고 움직이겠는가.
“이번 일은 어차피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겠습니다만,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명분을 갖추고 절차를 거친다 해도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 행정을 펼친다면 무슨 소용입니까? 혹시 왕실이 우리를 찍어내려 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평소에는 별말이 없던 피어스까지 불만을 토로할 정도였으니, 이번 사태가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를 잘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회의실은 한동안 영지전에 대한 불만과 왕실에 대한 불신을 토로하는 간부들의 말로 시끌벅적했다.
“그만.”
라울이 이만하면 됐다는 듯 좌중을 진정시켰다.
“어차피 벌어진 일. 더 이상 과정을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의 문제는 이번 일을 먼저 처리한 후에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케인, 전황을 브리핑하도록.”
“네, 마스터.”
케인이 단상에 올라 마법 스크린에 관련 자료를 띄우며 상황을 보고했다.
“현재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한 가문은 총 9곳입니다. 기존 영주인 프랑노아, 테른, 루이신 남작가에 더해 브록스, 요세프, 알렌, 자이에르, 도슨, 브레넌 남작가가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화면에 지도가 떠올랐다.
라울의 영지 네 곳을 두고 주변 남작령에 배치된 가문과 병력들의 대략적인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9가문 합쳐 총 병력은 2만5천 정도. 기사들의 수는 대략 250여 명으로 추정되었다.
그에 반해 라울 측의 병력은 칼립스 2,000, 베이츠 1,500, 프랑노아 1,500, 루이신 1,500.
총 6천5백의 영지병에 용병 5천까지 총 1만 천오백 정도였다.
물론 라울 직속의 길드 정예 기마병 3천과 각 지부에 배치된 병력까지 포함하면 1만 오천을 넘기겠지만, 일단 외부에 알려진 병력은 저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저들은 병력도 두 배, 기사들의 수도 두 배가 넘는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전장까지 네 곳으로 분산되어 있으니 누가 봐도 유리한 건 남작 연합이었다.
하지만 회의실에 참석한 간부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겨우 저 정도 병력으로 덤벼오다니, 우리가 정말 얕보인 모양입니다.”
제이크가 코웃음 쳤고, 필립이 말을 받았다.
“뭐, 남작가 수준에서 우리 영지의 상황을 면밀히 살핀다는 건 쉽지 않겠지.”
병력의 숫자도 중요하긴 하지만, 결국 전투의 승패를 좌우하는 건 실력이었다.
“케인, 저 2만 5천 중에 정규병은 얼마나 되는 것 같아?”
“5천도 되지 않습니다. 용병도 2천이 되지 않고요.”
결국, 1만 8천 명 정도는 징집병이란 뜻이었다. 그리고 그게 일반적인 이 시대의 병력 편성 규모였다.
애초에 정규병(상비병)을 유지하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
특별한 적이 없는 상황에서 정규병은 생산성이 거의 없는 장식품 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영주들은 치안유지와 권위를 위해 최소한의 정규병만 유지하는 게 당연했다.
게이트 사태로 인해 정규병을 늘렸다고는 하지만, 남작가가 유지할 수 있는 병력 수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 결과가 소수의 정규병에 징집병으로 머릿수를 채워 넣은 어설픈 군단이었다.
그에 반해 라울의 병력은 어떠한가?
저들은 게이트 사태 이후 몬스터와 끊임없이 실전 경험을 쌓아온 정예병 중의 정예병이었다.
이미 6개월 넘게 강도 높은 훈련과 실전 경험을 쌓은 데다가, 값비싼 무기와 방어구 착용하고 있었으니 일반 남작가의 영지병과는 수준 자체가 달랐다.
게다가 5천의 용병도 라울이 직접 엄선한 D급 이상의 정예였으니, 간부들이 승리를 확신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저들은 여섯 개의 영지전 각각 따로 전장을 지정했습니다. 그리고 5월 20일에 전장에서 승부를 보자고 제안해 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저들은 야비하게도 분산된 여섯 개의 전장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영지전을 벌일 것을 제안해 왔다.
이미 머릿수에서 앞서는데도 불구하고 이쪽의 전력을 분산시켜 압승을 거두겠다는 얄팍한 수였다.
‘그도 아니면 여섯 개의 전장 중에 일부만 승리를 거둬도 상관 없단 뜻이겠지.’
어차피 저들의 목적이 라울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백작가에 엿을 먹이겠다는 것이라면, 모든 전장에서 승리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영지전에서 패배해 봤자 배상금 정도를 물면 끝이지만, 라울은 패배하게 되면 영지를 돌려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리스크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놈들의 계산일 뿐이고.’
저들은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가벼운 마음으로 영지전을 걸어왔겠지만, 라울은 그렇게 얼렁뚱땅 영지전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 없었다.
“우리가 저들의 제안에 따라야 할 이유가 있을까?”
라울이 씨익 웃으며 말하자, 회의실의 간부들도 모두들 입꼬리를 올렸다.
“저런 날강도 같은 녀석들에게 예의를 차려줄 필요가 어딨습니까? 지금이라도 그냥 쓸어버리죠!”
“시작을 저들이 했다고 우리가 따라야 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이크가 기세 좋게 소리치자 여기저기서 동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탕.
라울이 지휘봉으로 지도를 내리치며 말했다.
“이미 선전포고를 받은 이상 전쟁은 시작되었다. 애들 소꿉놀이 같은 영지전 전통은 집어치우라고 해! 왕실 입회인? 중재? 그딴 쓰잘데기 없는 건 신경 쓸 필요 없다! 지금 즉시 출전을 준비하도록. 준비가 끝나면!”
라울이 지휘봉으로 6곳의 남작령을 쾅쾅 내리쳤다.
“이 여섯 곳을 동시에 공략한다!”
“네, 마스터!”
기사 및 지휘관들이 씩씩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번 영지전은 아주 특별한 손님들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압도적인 전력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모두 위치로!”
회의에 참석한 이들이 가슴에 주먹을 대며 예를 표하고는 서둘러 작전실을 빠져나갔다.
라울은 살짝 굳은 표정으로 그들을 배웅하고는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선은 너희들이 넘었다. 쉽게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라울이 들고 있던 나무 지휘봉이 파스슥 소리와 함께 가루가 되어 회의실 안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