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52
제152화
선전포고가 있기 며칠 전.
자유 도시 미라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가운데 화려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경) 퍼스트 길드 아카데미 제1기 졸업식 (축)-
플래카드가 붙어 있는 가운데, 600명의 졸업생이 예복을 차려입고 넓은 광장 가운데 도열해 있었다.
오픈베타 서비스가 시작되고 어느덧 5개월 차.
아카데미에서 3개월을 훈련받은 졸업생들은 입학할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일반 플레이어들이 사냥할 시간에 수업을 듣고, 던전을 헤맬 때 교관들에게 훈련을 받은 생도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레벨이 뒤처지고 아이템 수준도 부족해야겠지만….
“오늘이 마지막 기회야! 반드시 영입해야 해.”
“졸업생들이 흩어지고 나면,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몰라. 무조건 붙잡아!”
졸업식장 한편에 마련된 스탠드 위에는 각 플레이어 길드의 스카우터들이 한가득 모여 군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아카데미에서는 원칙적으로 외부 길드 가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대신 아카데미 생도가 직접 길드를 창설하는 것은 허용했는데, 실제로 상위 랭커 중심으로 길드 여러 개가 창설된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졸업생들이 길드에 적을 두지 않고 앞날을 고민하고 있었다.
스카우터들은 그런 플레이어들을 영입하기 위해 모여든 것이고, 이유는 당연하게도 실력자를 모셔가기 위해서였다.
“당장 내일부터 세력 판도가 뒤집힐 수 있어! 어떻게든 최대한 많이 영입해!”
“최우선 순위는 100위권 이내 랭커들. 조건은 어떻게든 맞추면 되니까 일단 연락처라도 얻어!”
개편된 플레이어 랭킹은 매일 자정을 기준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기존 랭킹 시스템은 레벨만 책정했다면, 지금은 메인 스킬의 숙련도, 퀘스트 수행에 따른 공적치, 명성, 평판 등의 세부 수치가 더해져 순위를 매겼다.
그리고 퍼스트 길드 아카데미의 생도들은 전원이 새로운 랭킹 책정에서 1천 등 안에 랭크 되어 있었다.
특히 100위권 안의 랭커들 중 90명이 아카데미 생도였으니 이들의 위상이 어떤지 따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 졸업을 하고 나면 그들의 앞날은 탄탄대로가 펼쳐져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졸업생들은 기쁘기보다는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제길. 끝까지 연락을 받지 못하다니.”
“자리는 넉넉해 보이는데 추가 영입은 없는 건가?”
아쉬움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퍼플 길드’였다.
배도현을 마스터로 두고 김일우와 퍼스트 길드에서 파견된 달튼이 부길드 마스터로 있는 신생 길드.
퍼스트 길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퍼플 길드는 일반적인 플레이어 길드와는 이미 시작부터가 달랐다.
길드 등급은 소형 1~10LV, 중형 1~10LV 까지 구현되어 있었다.
당연히 길드 등록을 하면 소형 1LV부터 시작하는데, 등급을 올리려면 최소 10골드(100만 원 정도)가 필요하고, 길드 자체 공적치도 채워야만 한다.
현재 가장 높은 등급의 플레이어 길드는 소형 5LV.
그런데 퍼플 길드는 이미 중형 10LV을 찍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길드 등급이 높아질수록 길드 버프가 증가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추가 기능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길드원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의 차이가 컸다.
실제로 처음에는 길드에 가입할 생각이 없던 랭커 몇이 길드 혜택에 놀라 그 자리에서 서명했다는 목격담도 흘러나왔다.
어쨌든 길드 자체의 혜택도 그렇지만, 길드 외적으로 퍼스트 길드의 지속적인 후원을 받는다는 장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길드원이 되면 정식 길드원용 장비 지급, 직급에 따른 급료를 지급할 뿐만 아니라, 직업에 따라 심화된 수련을 받을 기회가 제공되었다.
하지만 그런 퍼플 길드는 생도라고 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생도 중에서도 최상위권 랭커들, 그리고 그중에서 선별된 일부 플레이어만이 길드 영입 제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퍼플 길드에 들어간 생도는 겨우 15명.
전원이 랭킹 30위권 안에 드는 실력자들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좋은 제안이 들어왔다는데 외부 길드로 갈 생각이야?”
“후우. 고민이다. 좋은 제안이라고 하긴 하는데, 솔직히 썩 맘에 드는 수준이 아니라서.”
아카데미에서 최고급 숙소, 최고급 장비, 최고급 식사를 경험했던 생도들 입장에선 아무리 잘나가는 외부 길드라고 해도 마음에 찰 리가 없었다.
그런 이들은 결국 차선책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퍼스트 길드에 남으려고.”
“정말? 플레이어 길드도 아닌데 괜찮겠어?”
“어차피 어설픈 길드에 들어가느니 퍼스트 길드에 소속되어서 솔로 플레이를 하는 편이 훨씬 나을 거 같거든.”
“뭐, 그렇긴 하지. 그리고 엄연히 말하면 솔로 플레이도 아니고 말이야.”
퍼스트 길드에선 아카데미 졸업생들에게 또 하나의 제안을 해왔다.
정식 길드원이 아닌 계약직 길드원이 되어 퍼스트 길드의 일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계약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대우는 일반 길드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퍼플 길드에는 못 미치더라도 각종 장비와 숙식, 편의시설, 훈련장을 제공하고, 일정 수준의 급여도 지급한다.
대신 정해진 시간 만큼 퍼스트 길드에서 지정하는 업무를 처리해야 하고, 공적치를 올려야만 했다.
“흠. 나도 퍼스트 길드에 남을까? 어차피 하반기에 시행되는 퍼플 길드 공채에 지원하려면 다른 길드에 가입하면 안 되니까 말이지.”
“그것도 그렇지만, 꼭 길드에 가입할 필요는 없잖아? 퍼스트 길드나 애쉬튼 백작가도 커넥트에선 꽤 힘주는 곳 같은데, 여기서 커리어를 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식은 플레이어마다 달랐다.
최고의 길드를 만들겠다는 이도 있고, 솔로 플레이를 지향하는 이도 있는가 하면, 그 세계에 녹아들어 NPC처럼 살아가길 원하는 이도 있었다.
커넥트의 주민처럼 살길 원하는 이들에게 퍼스트 길드는 굉장히 매력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졸업생들이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와중에 졸업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당연하게도 수석 졸업은 배도현의 차지가 되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결과였기에 놀라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이슈가 된 것은 차석 졸업생.
어떻게 된 일인지, 점수가 동점인 생도가 나와서 차석이 두 명이 되고 말았다.
김일우, 왕천명.
쟁투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던 두 사람이 결국 동점 차석자가 된 것이다.
중요한 건 둘의 성향이 달랐다는 것.
왕천명은 개인의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 전투과목에서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면, 김일우는 전투력도 준수했지만, 파티장으로서 파티원들을 이끄는 능력이나 이론적인 부분에서 왕천명에 앞섰다.
둘 다 퍼플 길드에 가입했는데, 김일우가 부길마가 된 데에는 그들의 성향이 반영된 것도 있었다.
“…이로써 제1회 퍼스트 길드 아카데미 졸업식을 마칩니다. 졸업생 여러분들의 앞날에 신의 축복과 영광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와아아!”
사회를 맡은 미라 지부장 팔머가 선언하자 졸업생들이 학사모를 던지며 함성을 질렀고, 객석의 참관인들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리를 벗어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의 즐거움을 뒤로한 채 모두가 단상 위의 커다란 마법 스크린에 주목한 것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였다.
-졸업식이 끝나고 퍼스트 길드에서 중대 발표가 있을 예정임.
이런 공지 사항이 있었기에 졸업식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객석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중대 발표란 게 뭘까? 역시?”
“아무래도 2기 생도 모집에 관한 공지가 아닐까?”
“이번에는 루벤왕국 말고 다른 곳에서도 아카데미를 개설해 줬으면 좋겠는데….”
“어쩌면 더 이상 모집하지 않는다는 얘기일지도… 솔직히 아카데미 운영하면서 적자가 엄청날걸?”
“안 돼! 2기 모집에 합격하려고 얼마나 오래 준비했는데.”
객석이 웅성거렸고, 대부분은 아카데미 2기 모집 공고일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두둥.
마침내 화면에 영상이 상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상은 이곳에서만 상영된 것이 아니었다.
“어, 커넥트 메인에 동시 송출되나 본데?”
“커뮤니티 메인에도 떴어!”
“도대체 뭐지? 아카데미 공고 아니었나?”
사람들의 궁금증 속에서 준비된 영상은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 * *
“맙소사! 당장 길드장한테 연락해!”
“특종이다!”
“어디야? 어디서 접수해야 하지?”
“역시 퍼스트 길드! 한 건 해줄 줄 알았다고!”
영상을 시청한 플레이어들이 난리가 났다.
당장 지인들에게 연락을 날리는가 하면, 길드 안내원들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졸업생들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편안하게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커넥트 최초! 대규모 영지전 이벤트에 플레이어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마지막에 뜬 안내 문구만 봐도 무슨 영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영상은 게이트 사태 이후 있었던 사건들을 재조합하여 간단하게 보여주었다.
게이트를 통한 몬스터 침략.
영지를 버리고 도망친 영주들의 모습.
영주들을 대신해 몬스터를 소탕하고 영지를 구하는 퍼스트 길드의 화려한 전투 장면.
복구가 이루어진 영지의 모습.
그리고 뒷거래를 통해 연합한 야비한 주변 영주들의 모습까지.
라벨의 내레이션까지 더해져 이번 영지전이 벌어지게 된 배경을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벤트 참가 요강 떴다!”
“퍼스트 길드 방송 채널로 가면 추가 영상도 볼 수 있대!”
“맙소사! 이건 무조건 참가해야 해!”
플레이어들이 흥분하는 건 당연했다.
기껏해야 열 마리도 안 되는 몬스터와 드잡이하는 것과 수천 명 이상의 병사들이 모여서 벌이는 ‘진짜’ 전쟁.
어느 쪽이 더 흥미로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모두가 참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퍼스트 길드에서 제시한 인원은 총 5천 명.
그중에서 아카데미 졸업생 500명(비전투계열 100명 제외)은 우선 참가권이 있으니 실제 모집 인원은 4500명 정도에 불과했다.
오픈 6개월이 다 되어가는 현재, 접속 인원이 거의 10만 명에 육박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4500명은 결코 넉넉한 인원수가 아니었다.
“제길… 조금더 랭킹을 올려뒀어야 하는데!”
“협력 길드에도 우선 참가권을 준다고? 협력 길드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다행이다. 이벤트 기간 동안 미라행 포털을 열어준다는데? 이번 기회에 미라로 옮겨버릴까?”
그렇게 게임 내 외적으로 엄청난 관심을 끈 첫 영지전 이벤트는 1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자랑하며 마침내 5,000명의 플레이어 선발이 마무리되었다.
며칠 뒤.
자유 도시 미라의 남쪽 평원.
자주색으로 수놓은 고풍스런 갑옷을 착용한 15명의 퍼플 길드원들이 단상을 등지고 말 위에 올라있었다.
그 앞에는 황금빛 매가 수놓아진 퍼스트 길드의 망토를 두른 졸업생들이 도열해 있었고, 그 뒤로 수천 명의 일반 플레이어들이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정면, 커다란 단상 위에 하얀 갑옷을 입은 라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계의 전사들이여! 불의에 맞서 분연히 일어선 제군들의 용기와 결단에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이번 전쟁은 비단 퍼스트 길드와 본작의 영지를 지키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이 커넥트라는 세상에 제군들의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회다. 제군들의 힘으로 커넥트를 바꿀 수 있다는 걸 만천하에 보여라! 싸워라! 쟁취하라! 그리하여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라! 출진!!”
짧고 강렬한 라울의 출전사가 끝나자 평원 위가 함성으로 뒤덮였다.
네 부대로 나눠진 플레이어들은 옆에 준비되어 있는 커다란 네 개의 텔레포트 게이트 앞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칼립스 영지행은 여기로!”
“프랑노아 영지는 여기!”
“루이신은….”
“테른….”
평원 뒤에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그들이 게이트를 통과하는 모습을 부러운 눈초리로 구경하고 있었고, 이들의 모습은 생중계를 통해 전 세계로 송출되고 있었다.
라울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들의 행군을 지켜보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플레이어들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대규모 전투를 겪어보지 못한 일반인들이 활약할 것을 기대하는 바도 아니었고.
하지만 이번 영지전에 직접 참가한 플레이어들의 머릿속엔 결코 잊혀지지 않는 짜릿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렇게 서서히 물들여 가는 거지.’
전우애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은 아닐 테니까.
이로써 영지전의 준비는 모두 끝났다. 남은 것은 비열한 자들에 대한 단죄뿐.
‘자, 과연 놈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한 번 구경하러 가볼까?’
라울이 가벼운 발놀림으로 게이트를 향해 걸어나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