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60
제160화
다그닥, 다그닥.
“워워.”
콘포드 성을 향해 말을 모는 일단의 기마병들.
성문 앞에 도착한 이들이 말을 멈추자 성루의 지휘관이 물었다.
“어디서 오신 분들이오?”
그러자 기수들이 기를 높이 세우며 외쳤다.
“오스틴 자작가에서 왔소. 오스틴 드 애쉬튼 자작님과 자제분들 일행이오.”
빨간 바탕에 갈색 곰의 앞발이 새겨진 오스틴 자작가의 문장을 확인한 지휘관이 확인을 마치자 육중한 성문이 서서히 올라갔다.
“통과하시오. 제1외성부턴 병사들을 대동할 수 없으니 임시 병영에 먼저 숙영지를 꾸리시오.”
열린 성문 뒤로 그들을 안내할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확실히 일이 터지긴 한 모양이군.’
오스틴 자작.
전대 백작의 막내아들이자 라울의 작은 아버지가 마침내 콘포드 성에 발을 들였다.
또각, 또각.
거의 1,000기에 가까운 기마병들이 질서정연하게 성문을 통과했고, 그 가운데 갈색 갑옷을 착용한 50여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알버트 경은 병사들을 숙영지에 인솔하고 합류하도록. 트레버는 나와 함께 본성으로 향한다.”
“네, 자작님.”
“네, 아버지.”
오스틴 자작가의 기사단 ‘브라운 포’ 기사단장 알버트가 기사 몇과 병력들을 이끌고 숙영지로 향했고, 오스틴 자작은 큰아들 트레버와 함께 백작가 본가로 말머리를 향했다.
“둘째 백부님께서 변을 당하신 게 사실일까요?”
“소문은 소문일 뿐이니 단정 짓지 말거라. 중대한 사안일수록 직접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명심하겠습니다.”
오스틴 자작은 일찌감치 백작가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영지를 개척한 일종의 독립 영주였다.
애초에 자신에게 백작위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고, 영지를 받는 대신 병사와 지원금을 받고 북쪽의 미개척지를 스스로 개척하여 성과 마을을 세운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백작령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영지를 개척한 이후 세금 납부나 병력 운용, 상거래 등은 당연히 백작가를 통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백작가의 가신인 봉신가문과 독립영주의 차이는 컸다.
독립영주는 백작의 부하라기보단 협력자의 위치였기 때문이다.
오스틴 자작이 백작가의 소요사태 때 침묵하고 있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런 이유였다.
웅성웅성.
제1외성 문 앞에 상당수의 기마병들이 모여 있었다.
깃발을 든 기수들만 해도 열이 넘었으니, 적어도 영주 열 이상이 대기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철저하게 통제하는군. 하긴 얼마 전의 일도 있고 하니까.’
성문 앞에 다가서자 낯익은 얼굴들이 여럿 보였다.
“아, 오셨습니까. 오스틴 자작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각 영주들이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예를 표했다.
손을 들어 그들의 인사를 받아준 오스틴 자작이 그들과 가볍게 근황을 주고받는 사이 성문이 열렸다.
“오셨습니까, 숙부님.”
그리고 라울이 직접 말을 몰고 나와서 그를 맞이했다.
현 상황에서 백작가 이외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오스틴 자작인 만큼 성의를 표한 것이다.
“오랜만이구나. 소문은 들었다만 정말 못 알아볼 정도로 많이 컸는걸?”
반가운 표정으로 라울의 인사를 받았지만, 그의 속도 그냥 편하지는 않았다.
성인식 때 그의 막내아들 디온이 라울에게 줘 터지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둘을 비교하기엔 너무나 큰 격차가 벌어져 있었다.
‘참, 사람 일은 알 수 없구나. 불과 2년 사이에.’
라울에게 깨진 디온은 아카데미 입학도 포기하고 영지에 틀어박혀 다시 검술 수련을 시작했다.
제대로 실력을 길러서 라울에게 복수하겠다며 칼을 갈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로서 헛바람이 빠지고 진지하게 검술에 매진하는 아들의 모습이 기꺼웠지만, 아무래도 아들의 복수가 이뤄지긴 요원해 보였다.
‘소문의 반만 진짜라고 해도 앞으로 한동안 백작가는 승승장구하겠구나. 이번 사태만 잘 해결된다면 말이지.’
“어서 들어가자.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구나.”
“네, 이쪽으로 오십시오.”
라울의 인도하에 오스틴 자작과 영주들이 제1 외성의 임시 회의실로 향했다.
* * *
“보고드립니다. 현재 콘포드 성에 입성한 영주는 대략 전체의 1/3 정도입니다. 그리고 오스틴 자작도 도착했다고 합니다.”
한편, 개리엇 남작성의 제이든 자작 측 진영.
그의 예상대로 백작이 죽었다는 소문 때문인지 몇몇 영주들과 귀족들이 합류해 회의실 안은 처음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뭐, 오스틴 녀석이 그쪽으로 갈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 하지만 녀석의 성향 상 무조건 딜런의 편에 서려고 하진 않을 거다. 예전부터 손익 계산이 빨랐으니까. 이쪽의 세가 크다는 걸 알게 되면 아마도 손을 떼려고 하겠지.”
그리고 독립영주들의 대다수도 오스틴처럼 눈치를 볼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백작가의 가주가 누가 되든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으니까.
탁.
회의장 가운데 마련된 현황판에 양측에 합류한 영주들과 유력 귀족들의 명단 및 세력의 크기가 간단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현재 힘의 균형은 3대1 정도로 딜런 측이 머릿수나 세력에서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스틴 자작을 비롯한 중립파 영주들을 제외하고 나니 2대 1까지 격차가 줄어들었다.
“허,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굉장합니다. 그 오랜 세월을 백작가 밖에서 활동하셨음에도 이렇게 많은 지지자가 남아 있다니! 역시 자작님이야 말로 백작가의 미래이십니다!”
참모인 테이트 남작이 감탄하며 박수를 치자 모여 있던 귀족들이 모두 그에 호응하여 제이든 자작을 연호했다.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그들에게 승산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다들 고생이 많았다. 이제 내일이면 수도에서 사신이 올 것이다. 왕실에서 나 제이든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가지고 말이지. 그러면 우리는 당당하게 콘포드 성으로 향할 것이다!”
“와아아!”
왕실이 지방 영주 가문의 후계자 선정에 관여하는 안 좋은 선례를 남기게 될 지도 모르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쇠락해가고 있는 왕실 따위, 그가 백작위에 올라 가문을 장악하고 나면 조용히 수습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렇게 배덕자들은 승리를 꿈꾸며 달콤한 와인으로 축배를 들었다.
* * *
“허허허. 형님 이렇게 무사한 모습을 보니 참 기쁩니다.”
오스틴 자작은 갑자기 회의실에 등장한 멜빈 백작을 보고도 놀란 티를 전혀 내지 않고, 그를 덥석 안으며 기뻐했다.
다른 영주들이나 자작의 아들인 트레버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뻣뻣하게 굳은 것과 대조적이었다.
“많이 놀랐구나. 이렇게 당황한 모습은 참 오랜만에 보는구나, 하하하.”
하지만 형제가 아니랄까 봐 멜빈 백작은 동생 오스틴 또한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번에 눈치챘다.
“이거 참. 형님은 못 속이겠소. 그래 이게 다 어찌 된 일입니까?”
사실 겉모습만 봐선 멜빈은 아직 환자처럼 보였다.
살짝 창백한 얼굴에 근육도 많이 손실되어 몸집도 조금 줄어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몸에선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라면 가만히 있어도 회의실 전체를 장악할 압도적인 기운이나 카리스마가 사라진 것이다.
물론 실제론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며 근육이 압축되었고, 마나를 다스리기 위해 일부러 억제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오스틴 자작이 그걸 알아챌 수는 없었다.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신 모양이군. 이런 상황에서 영주들을 불러 모았다는 건 역시나….’
애초에 딜런이 영주들을 초청한 명목상의 이유는 백작의 병환에 따른 영지의 혼란에 대한 대책 마련 및 후계 문제 논의였다.
소문과 안건을 본 영주들은 당연히 백작이 이미 사망했거나 위독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작이 자리에 착석하자 딜런이 앞으로 나서서 입을 열었다.
“어렵고 바쁜 와중에 초청에 응해주신 여러 영주분들 및 귀빈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먼저 올립니다.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은….”
딜런은 그간 백작가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간략하게 브리핑하고, 다행히도 백작이 무사함을 알렸다.
“이와 같은 이유로, 더는 백작가에서 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여러분들을 초청하게 된 것입니다.”
“후우, 정말 다행입니다. 그럼 이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겠군요.”
백작의 복귀는 백작가의 안정을 뜻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이 그리 쉽게 끝나기엔 상황이 복잡했다.
그렇기에 오스틴 자작이 물었다.
“제이든 형님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이대로 놔준다면 분명 나중에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 부분은 라울이 설명해줄게다.”
멜빈 백작의 말에 라울이 고개를 끄덕이곤 단상 위에 올랐다.
“먼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마법사 협회에서 나오신 6서클 마법사 카리사 님. 제논 교단에서 나오신 오스발도 대주교님. 그리고 연금술사 나키아 양입니다.”
간단한 소개 후 라울이 다시 본건을 꺼내 들었다.
“이번에 백작님이 쓰러지신 것은 사고가 아니라 명백한 암살 기도입니다!”
“뭣이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정말입니까?”
자리하고 있던 수십의 영주들과 유력 귀족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고함쳤다.
암살 미수.
그것도 백작가의 가주를 상대로 한 암살 기도는 결코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기사 국가인 루벤 왕국에선 이런 비겁한 암수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죄가 밝혀진다면 작위 박탈은 물론 사형까지 받을 수 있는 중죄가 바로 암살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암암리에 귀족가 내부나 영주들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는 게 현실.
걸리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 게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공론화가 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증거는 있는가?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일세.”
오스틴 자작의 물음에 라울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증거는 물론 증인, 관련자, 배후까지 모두 확보한 상태니까요. 들여보내!”
라울의 신호에 포승줄에 묶인 몇몇 인물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병사들에게 끌려 회의장으로 들어섰다.
그중에는 저택의 조리실에 근무하는 주방 보조, 하인뿐만 아니라, 이번 사태 때 체포된 귀족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사건의 전말을 밝혀드리겠습니다.”
라울의 자신만만한 목소리와 함께 회의장은 충격과 분노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 * *
야지에 펼쳐진 군 막사.
이곳은 제이든 자작 일행이 머물고 있는 게리엇 남작성 근처에 설치된 병영이었다.
지이잉.
막사 바닥에서 화려한 빛무리가 반짝이더니 몇몇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있던 케인이 고개를 숙이며 라울을 맞이했다.
어느덧 해가 지며 땅거미가 주변을 뒤덮고 있었고, 병영에선 저녁 식사가 한창이었다.
“성의 상황은?”
“아직까지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첩보에 의하면 내일 수도에서 사신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이대로 성에 머물고 있을 생각인 듯합니다.”
“훗. 아주 신이 났겠군.”
“연회장에서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하는군요.”
“잘됐네. 최후의 만찬을 잘 즐겨두셨으면 좋겠어.”
회의가 끝나자마자 이곳으로 포털을 타고 이동한 라울.
불과 하루 사이에 무슨 큰일이 생기겠냐고 저들이 방심한 사이, 백작가는 제이든 자작을 공격할 명분을 확보한 상태였다.
“잠시 후면 본성에서 명령이 떨어질 거야. 이곳뿐만 아니라 주변에 배치된 모든 병사들이 성을 포위하기 위해 야간행군을 시작하겠지. 혹시라도 낌새를 눈치챈 놈들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요원들을 잘 배치해 두도록.”
“맡겨주십시오. 이미 주요 도주로는 아군 기병들이 완벽하게 차단해 둔 상태입니다.”
“그래, 고생했어.”
“그런데….”
“음, 무슨 할 말이라도?”
용건이 끝났다고 생각한 라울이 막사를 벗어나려는 데 케인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정말로 혼자 가실 생각이십니까? 정 못 미더우시면 저라도 동행하겠습니다.”
라울이 피식 웃으며 케인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 실력 잘 알잖아? 못 믿는 게 아니고 혼자인 편이 훨씬 편해서 그래. 그리고 만약의 경우엔 케인이 퇴로를 확보해 줘야지.”
“후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마스터를 혼자 보낸 걸 알면, 필립 경이 난리를 치실 겁니다.”
“아, 혹시라도 필립이 알면 절대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지? 자칫 기사단이 성문을 뚫고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곤란하다고.”
지금은 잠시 병력 통솔을 위해 떨어져 있지만, 기사단과 함께 돌아온 필립이 사실을 알게 되면 골치 아팠다.
“그게 걱정되시면 최대한 빨리 돌아오십시오. 문제가 생기면 바로 통신하시고요.”
“걱정하지 마. 뭐 그렇게 위험한 일도 아니니까.”
그리고 그날 밤, 모두가 잠든 시각.
게리엇 남작성의 하늘 위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유유히 날아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