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59
제159화
쾅!
“이런 씹어 먹을…!”
보고서를 손에 든 제이든 자작이 탁상을 부서져라 내려쳤다.
보고서는 당연하게도 라울의 영지전 결과에 대한 것이었다.
‘멍청한 것들이 그 정도 지원을 받았으면서 이따위 결과를 들이밀어?’
그가 이번 영지전에 남작 연합에게 지원해 준 기사의 수만 무려 90여 명.
그중 아머 유저도 50명이나 되었다.
아무리 수준 낮은 기사와 싸구려 파워아머를 위주로 편성해 보냈다 한들, 그 정도면 웬만한 백작가의 정규 기사단에 해당하는 엄청난 전력이었다.
“그래서 몇이나 살아 돌아왔다고?”
“그, 데오릭 경을 포함해 일곱입니다.”
“크아악!”
와장창, 쿠당탕!
분노에 찬 제이든 자작이 방 안의 기물을 죄다 박살 내버리는 사이, 소식을 전해온 전령은 그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바들바들 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보유하고 있던 기사 전력의 20%가 날아갔다.
어차피 기사들이야 충원 가능할지 몰라도 파워아머의 손실은 뼈아팠다.
그럼에도 아직 아머 유저 200이 그의 휘하에 있었고, 일반 기사들을 포함하면 300명 가까운 기사들이 그를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수적으로라도 백작가에 앞서겠다는 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봐 전령. 살아 돌아온 기사놈들 당장 이 방으로 튀어 오라고 해. 얘기를 들어봐야겠다.”
“네, 넵!”
백작가의 주력 기사단이 움직이지 않았는데, 라울 놈이 어떻게 남작 연합의 300명 가까운 기사단을 이겼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돌아온 9명의 기사들의 얘기를 듣고 난 후엔 자작의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을 뿐이었다.
‘각 전장마다 최소 100명의 엑스퍼트급 기사를 포함한 기사단이 등장했다고?’
전장이 네 곳이었고, 칼립스 전장에는 더 많은 기사들이 있었다는 걸 계산하면, 적어도 500의 엑스퍼트급 기사가 있어야 한다는 소리였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군. 그 정도면 백작가의 기사보다도 많은 숫자가 아닌가?’
분명 뭔가 정보가 잘못 전달되었거나, 어떤 꼼수를 사용해서 기사들의 수를 부풀렸거나 했을 것이다.
문득 라울이 현자 그레이와 친한 사이라는 사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마법. 마법이었어! 이놈이 순간이동 마법으로 기사들을 계속 옮겨 썼구나.’
꽤 참신한 추론이었다.
하긴 라울 개인 기사가 5백이 넘는다는 것보단 그쪽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였으니까.
그리고 그게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만약 라울의 기사가 5백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당장이라도 백작가에 미련을 버리고 떠났을 테니 말이다.
“작전 회의를 소집한다. 다들 모이라고 해.”
제이든 자작은 각오를 다졌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투자했다.
브레넌 공화국에서 15년간 꾸려온 저택과 상단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기사들을 고용하고 후원자들에게 파워아머를 구매했다.
루벤 왕국에 돌아와서 귀족들과 왕실에 뿌린 금전도 만만치 않았고, 각종 공작을 위해 들인 비용도 상상 이상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포기하고 돌아간다?
막대한 매몰 비용과 대출 상환은 그를 파산으로 몰아갈 것이고, 지금은 그를 따르는 기사들도 모두 뿔뿔이 흩어져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완전히 망하지는 않겠지만, 다시 재기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 알 수 없었다.
‘멜빈. 그만 버티고 편하게 가거라. 백작가의 영광을 위해서 너 같은 구시대의 유물은 빨리 사라져야 한다!’
백작가의 영광은 자신만이 이룩할 수 있다는 아집이 제이든 자작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 * *
애쉬튼 백작가 본성 콘포드.
저택의 회의실에 백작가의 쟁쟁한 중신들이 모여 있었다.
영지 총사령관 어네스트 드 보겔 자작.
골든베어 기사단장 트레버 드 헤세 자작.
실버베어 기사단장 카를로 드 애쉬튼 남작.
그리고 아이언베어 기사단장 카슨, 체인 기사단장 브레이든까지.
군과 관련된 중요 인사들이 자리 잡은 가운데, 당연하게도 라울의 큰형이자 백작가의 후계자 딜런 드 애쉬튼이 상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라울 자작님이 도착하셨습니다.”
경비 기사의 보고와 함께 회의실 문이 열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라울과 필립이 들어섰다.
짝짝짝.
회의실의 중신들은 물론 딜런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라울을 맞아주었다.
“고생했구나. 승리를 축하한다!”
“대승을 축하드립니다!”
“정말 대단한 전과를 올리셨소, 라울 자작.”
“모두 여러분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오히려 괜한 심려를 끼친 것 같아 죄송하군요.”
그렇게 덕담과 겸양 어린 말들이 오가고 자리에 착석한 이들.
본격적인 회의에 앞서서 골든베어 기사단장인 트레버 자작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 호부 밑에 견자 없다더니 내 정말 라울 자작에게 감탄했소. 16살의 나이에 ‘경지’를 바라보다니! 이런 경사가 어디 있겠는가?”
나이 50이 넘은 트레버 자작은 사실상 애쉬튼 백작가 모든 기사들의 스승이나 다름없었다.
통합 훈련 기간이 되면 골든 베어 기사단뿐만 아니라 모든 기사들의 수련을 직접 봐주기도 했고, 기사 수련생이 들어오면 가장 처음 면접을 보게 되는 이가 바로 트레버 자작이었기 때문이다.
라울 또한 검술 훈련 초기에 트레버 자작의 직접 지도를 받기도 했었다.
백작가의 직계 혈족이기에 얻어낸 특혜이긴 했지만, 결국 그때는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저택을 방문하면서 그와 검을 섞을 기회가 몇 번 있었고, 트레버 자작은 전혀 예상치 못한 라울의 성장에 놀라면서도 기꺼워했다.
‘그래도 설마 마스터의 경지를 바라볼 수준일 줄이야!’
16살의 나이에 엑스퍼트의 경지에만 올라도 세기의 천재라 불리는 마당에 마스터라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정말 백작가의 큰 축복이라 할 수 있겠소. 비록 가주님이 쓰러진 암울한 상황이라지만, 이렇게 재능이 넘치는 아들들이 있으니 무슨 걱정이겠는가.”
영지 총사령관인 어네스트 자작도 미소를 지으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현역 중신 중 가장 나이가 많고(58세) 기사로서의 경지도 최상급 엑스퍼트에 도달한 어네스트 자작.
그의 가문인 보겔가는 대대로 골든베어 기사단장과 총사령관을 역임해왔다.
그리고 그 공적을 인정받아 백작령에서 백작가 다음으로 가장 큰 영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수많은 기사들을 배출해낸 명문가이기도 했다.
어네스트 자작의 보겔가와 트레버 자작의 헤세가문이 바로 애쉬튼 백작가를 떠받치는 양대 충신 가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의 입장에서 백작가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제이든 자작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게이트 사태로 인해 금역인 ‘몬스터 숲’의 경계가 약해져 비상인 상황인데, 백작가의 내전이라니.
다 같이 죽자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별다른 피해 없이 음모를 분쇄하고 제이든 자작을 쫓아낸 라울이 얼마나 대견했겠는가.
게다가 혼란을 틈타 도전해온 남작가들을 박살내며 가문의 이름을 드높였으니 그 이상 통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거 참. 가문에 이렇게 뛰어난 인재들이 계속해서 나타나 주니 기쁘긴 한데, 제이든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오.”
어네스트 자작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놈 성정에 일을 칠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참 성가시게 일을 벌였소.”
트레버 자작이 그의 말을 받았다.
“그냥 쓸어버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이대로 놈 때문에 병력이 묶여 있다간, 백작령 전체에 큰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실버베어 기사단장 카를로 남작이 주먹을 쥐며 제안했다.
당장 게이트 관리도 느슨해졌고, 금역 근처의 요새 병력은 제대로 교대도 하지 못한 채 피로가 누적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게이트나 몬스터 숲에서 웨이브가 터진다면 그 피해가 얼마나 클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건 안 될 말입니다.”
딜런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아직은 명분이 없습니다. 그리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를 사로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니까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제이든 자작은 그저 쓰러진 동생을 보기 위해 먼 곳에서 찾아온 형일 뿐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대동한 기사의 수가 상식을 넘어선 수준이었지만, 그가 내세운 명분 자체는 크게 문제가 없었고, 실질적으로 백작가의 병사들에게 위해를 가하지도 않았다.
즉, 이쪽에서 먼저 선제공격을 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했던 것이다.
어네스트 자작과 트레버 자작이 골치 아프게 생각하는 것도 바로 그 점이었고.
게다가 전투가 벌어진다 해도 제이든 자작을 끝장낼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패색이 짙어지면 분명 포털을 타고 도망칠 것인데, 그렇게 되면 성가신 후환을 남길 뿐만 아니라 자칫 문제가 더 커질 수도 있었다.
‘약삭빠른 놈 같으니.’
정통파 기사들이 봤을 때는 얄밉기 그지없는 행동이었다.
선제공격을 하기도 어렵고, 이대로 있자니 백작령 전체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고.
그때 라울이 입을 열었다.
“제게 생각이 있는데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무슨 방법이 있는 거야?”
“어서 말해보게.”
라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백작령의 불안 요소를 한 번에 정리해 버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일단, 그러려면 한 분의 동의가 더 필요하기에 어렵게 모셨습니다.”
라울이 살짝 신호를 주자, 회의실 문이 열리며 후드를 뒤집어 쓴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섰다.
“…누구?”
“다들 고생이 많군.”
“헉! 가주님! 무사하셨습니까?”
“각하!”
회의실 인원이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후드를 벗은 이의 정체는 바로 멜빈 드 애쉬튼.
쓰러진 것으로 알려졌던 멜빈 백작이 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자세한 얘기는 차후에 하기로 하고, 일단 라울의 계획에 대해서 한 번 들어보도록 하지. 계속하거라, 라울.”
“네, 백작님.”
그렇게 백작이 회의에 참석한 바로 다음 날.
콘포드 성을 중심으로 한 가지 소문이 조용하게 퍼져나갔다.
-애쉬튼 백작가의 현 가주. 멜빈 드 애쉬튼 백작이 결국 사망했다.
백작령이 다시 한번 요동치기 시작했다.
* * *
“확인해 보았는가?”
“네.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며칠 전부터 저택의 출입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고, 성문을 통해서 빠져나가는 전령의 수가 심상치 않습니다. 원로원에서도….”
전령의 보고가 이어지자 제이든 자작의 입꼬리가 점점 위로 올라갔다.
‘드디어!’
그가 기다리던 기회가 다가왔다.
“좀 더 자세한 소식을 알아보도록! 전령들이 향한 곳, 만약 콘포드 성으로 향하는 이들이 있다면 누군지, 그리고 기사단과 병력 동향까지! 알아낼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끌어 모아오란 말이다!”
“넵!”
전령이 나가자 제이든 자작이 회의실에 모인 귀족들과 눈을 맞췄다.
“이제 시작이다. 비록 사소한 작전상 실패가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판이 깔렸으니까.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각자 포섭할 수 있는 이들을 최대한 끌어모으도록.”
“알겠습니다.”
“테이트 남작. 콘포드 성과 주변성의 첩자들을 총동원해서 백작가의 실책과 문제점에 대해 소문을 조성하도록. 새로운 후계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주민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네, 맡겨 주십시오.”
“딜런 놈이 욱해서 병력을 움직일지도 모르니, 경계에 만전을 기하도록. 그리고 다시 한번 근처의 영주들에게 전령을 보내 합류할 이들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멜빈이 죽은 이상 생각이 바뀐 이들도 분명 있을 거다.”
회의가 끝나고 집무실로 돌아온 제이든 자작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딜런 놈은 멜빈이 죽기 전에 병력을 움직였어야 했다.
그때는 모든 병력을 움직일 권한이 그에게 있었을 테니.
하지만 이제 후계자 싸움으로 몰고 가게 되면, 내전을 원치 않는 지휘관과 귀족들은 그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명분은 그의 후원자들이 만들어 줄 것이고.
‘백작가 내부에선 네가 적법한 후계자일지 몰라도, 과연 왕실에서 이의를 제기한 다음에도 그럴까?’
가문의 일에 외부 세력이 간섭하는 걸 꺼린다고 하지만, 왕실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아무리 변경백이고 자치권을 보장받았다 한들 결국 왕국의 귀족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왕실도 웬만하면 가문의 결정을 존중하고 작위 계승을 인정하지만,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왕실도 미치지 않고서야 백작가의 차기 후계자를 부정하지야 않겠지만.
‘어깃장을 부리는 정도는 해줄 수 있단 말이지.’
그러려고 가져다 부은 돈이 얼마였는가.
이제 그 결실을 맛볼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서 춤추고 있다는 그 치명적인 사실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