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58
제158화
중재안의 내용은 대충이랬다.
-이미 승패가 정해졌으니 더 이상의 전투 행위를 멈추라.
-승자인 라울 자작이 베이츠, 프랑노아, 루이신 영지의 적법한 영주임을 왕실이 인정하겠다.
-사로잡은 남작들을 모두 풀어주고, 왕실의 중재하에 라울 자작군의 사상자에 대한 피해 보상금을 책정한 뒤 영지전을 마무리하라.
이미 영지를 거래할 때 왕실이 보증을 섰으면서 그걸 뒤집어 엎어놓고, 이제 와서 다시 인정하겠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이번 사태로 인해 철수한 마을 주민들, 동원한 군대, 고용한 용병, 군수물자까지.
들어간 비용이 얼만데 겨우 사상자에 대한 피해 보상금을 받고 끝내라고?
남작들의 몸값 얘기조차 없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을 중재안이라고 제시한 놈들의 뇌 구조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라울이 물었다.
“이 중재안을 제안한 게 누군지 알고 있는가? 모른다면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좋네.”
어차피 대답을 듣고자 꺼낸 질문은 아니었다.
그저 어이가 없어서 해본 말일 뿐.
그런데 이 참관인이 너무도 당당한 목소리로 말하는 게 아니겠는가?
“영광으로 생각하십시오. 왕국의 미래이신 3왕자님께서 직접 영지전의 소식을 듣고 하사하신 중재안입니다! 얼마나 자비롭고 평화로운 제안입니까?”
‘감히 일개 자작이 3왕자님이 직접 제시한 중재안을 무시할 수 있겠어?’
자신이 도착하길 기다리지 않고 영지전을 벌인 괘씸한 자작에게 한 방 먹여줬다는 생각에 참관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하지만 그는 라울이 어떤 이인지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군. 그렇게 된 것이었어.”
고개를 끄덕인 라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휴식은 여기까지. 해가 지기 전까지 영주성에 도착해야 하니 행군을 서두르도록!”
“네, 마스터.”
지휘관들이 막사를 빠져나갔고, 라울도 풀어뒀던 무장을 다시 갖췄다.
완전히 소외되어버린 참관인이 눈만 깜빡이며 멍하니 서 있다가 소리쳤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응? 아직 안 떠났나?”
“지,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뭐 하긴. 전쟁을 끝내러 가는 거지. 아, 혹시 이거 다시 가져가야 하는 건가?”
라울이 작전 테이블 위에 굴러다니고 있는 중재안 두루마리를 참관인에게 휙 던졌다.
“뭐, 기념품 삼아 챙겨둘까 했는데, 필요하다면 가져가게나.”
꾸드득.
참관인이 이 깨무는 소리가 슬쩍 들려왔다.
“감히! 당신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소?”
그가 손가락질을 하며 라울에게 소리치는 순간.
찌리릿.
‘커헉…!’
막사에 남아 있던 기사들이 내뿜은 살기에 참관인의 숨이 막혀왔다.
스륵.
그의 호위 기사들이 검 자루에 손을 가져가자.
“그거 뽑으면 니들은 다 죽는다.”
기병 지휘관의 신분으로 막사에 들어와 있던 조쉬가 인상을 찌푸리며 경고했다.
감히 남작 나부랭이가 하늘같은 마스터에게 함부로 혓바닥을 놀려대는 것도 모자라, 겨우 엑스퍼트도 될까 말까 한 놈들이 무기까지 꺼내 들려고 하니 열이 머리끝까지 뻗친 것이다.
애초에 기세부터 실력까지 상대도 되지 않았던 호위 기사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은근슬쩍 손을 내려놓았다.
“어떻게 할까요, 마스터?”
“…그만하지. 그래도 나랏일 하는 사람인데, 함부로 대하면 쓰겠는가. 다들 출병 준비나 서두르도록.”
그제야 막사를 감돌던 살벌한 기운이 스르륵 풀려났다.
“허억, 허억.”
하지만 이미 참관인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는지, 호위 기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라울은 참관인이 떨어뜨린 두루마리를 다시 주워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이 중재안은 거절하도록 하지. 어차피 중재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영주가 결정한다는 ‘법률’이 있으니 말이야. 이만 가보게.”
라울의 축객령에 참관인이 두고 보자는 듯 그를 한번 흘겨보고는 돌아섰다.
“아, 그리고 미안하지만 역시나 이 두루마리는 내가 챙겨두도록 하지. 아주 뜻깊은 기념품이 될 것 같으니 말이야.”
애초에 돌려줄 생각도 없긴 했다.
이딴 내용을 중재안이라고 제시한 건, 단순히 라울뿐만 아니라 지방 영주 전체의 공분을 살 만한 짓이었다.
아무리 불리한 내용이라도 대놓고 왕실의 말에 따르라는 협박이나 다름없었으니.
‘만약의 경우엔 좋은 패가 되어 주겠지.’
3왕자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이 중재안은 어쩌면 조만간 다시 빛을 보게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왕실 참관인은 아무런 성과 없이 라울의 진영에서 쫓겨났고, 라울의 군대는 별다른 저항 없이 영주성 앞에 당도할 수 있었다.
* * *
“음. 설마 저항할 생각인가?”
굳게 닫혀 있는 성문을 바라보며 라울이 혼잣말을 뱉었을 때, 성문이 살짝 열리며 하얀 깃발을 매단 전령이 튀어나왔다.
“협상을 원합니다!”
브록스 남작성은 사로잡힌 남작을 대신하여 그 아들이 통치를 맡고 있는 듯했다.
참관인과 호위들이 라울의 군대에 앞서 남작성으로 들어갔으니, 대충 라울의 의도를 깨닫고 있을 터였다.
탁.
라울이 두루마리를 내려놓고 물었다.
“그러니까 남작을 풀어주고 병력을 물려준다면, 몸값과 영지의 일부를 양도하겠단 소린가?”
기재된 몸값은 적당한 수준이긴 했는데, 양보하겠다는 영지는 남작령의 1/20 수준에 현재는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렇습니다. 임시 영주님께서는 평화로운 해결을 바라고 계십니다.”
라울이 피식 웃었다.
“요즘 평화를 찾는 사람이 많군. 그럴 거면 애초에 영지전을 시작하지 말았어야지. 만약 내가 거절한다면?”
전령이 표정을 굳히며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 그렇다면 필사의 각오를 다진 우리 브록스성의 5천 병사가 지키는 성벽을 넘어야 할 것입니다!”
“흠. 필사의 각오를 가진 병사 말인가.”
라울이 고개를 돌려 성벽 위를 바라봤다.
제대로 된 갑옷을 입은 병사는 얼마 보이지 않았고, 딱 봐도 50은 넘어 보이는 나이든 이들과 갓 성인이 된 것 같은 애들이 나무창 하나를 들고 성벽에 도열해 있었다.
“임시 성주가 좀 어려서 그런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군. 돌아가서 잠시 후에 직접 얼굴 보면서 얘기하자고 전하게. 오래 걸리진 않을 듯하군.”
“아, 아니 잠깐만…”
“자작님이 돌아가라 하시지 않는가!”
전령이 병사들에게 질질 끌려 나갔다.
라울이 혀를 차면서 달튼에게 말했다.
“평화가 너무 길었던 건가? 영주들이 전쟁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감을 못 잡는 듯하군.”
“뭐, 왕실의 감시 하에 병정놀이나 해왔으니 그럴만하지.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해.”
“며칠 지나면 다들 알게 되겠지. 아, 전쟁은 애들 장난이 아니구나 하는걸.”
그리고 어설픈 마음으로 자신에게 덤비면 어떤 꼴이 나는지 이들 남작을 통해서 주변 영주들에게 알려줘야만 했다.
‘쓸데없는 영지전은 더 이상 사양이다. 다음 이벤트를 준비하기도 바쁠 테니까.’
전령이 초라한 몰골로 성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라울이 명령했다.
“아무도 도망치지 못하게 성을 포위하고, 아머 유저들이 성문을 따도록.”
대동한 아머 유저만 스물이 넘는 상황.
공성전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결과가 나올 게 뻔했다.
“출진!”
그리고 결과는 예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파워아머를 발동한 아머 유저들은 산보라도 하듯 천천히 성벽으로 향했다.
화살이 쉴 새 없이 쏟아졌지만, 정말 조금도 위협이 되지 않았다.
암벽 타기라도 하는 것처럼 성벽을 슥슥 기어올라간 아머 유저들은 기사 두엇만 무력화 시키고 병사들은 아예 무시한 채, 바로 성문을 열어버렸다.
두두두.
그리고 기사와 기병대가 성내로 진입하여 영주관으로 향하는 것으로 싱거운 공성전은 끝이 났다.
* * *
영주 일가를 투옥하고 성 장악을 마친 라울이 영주의 집무실에 앉아 다른 부대와 영상 통신을 주고받았다.
다른 다섯 곳의 남작성도 어렵지 않게 함락시켰다는 보고가 속속 전해져 왔다.
세 곳은 순순히 성문을 열고 항복했고, 두 곳은 영주 일가가 패물을 들고 도주하다 잡혀 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스터?」
필립을 비롯한 부대장들이 궁금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도 왕실에서 파견한 참관인 얘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남작령을 모두 병합한다. 영주 일가 및 저항세력은 모두 포박하여 칼립스 성으로 호송하고, 각 영지의 마을과 요새를 평정하도록.」
하지만 라울은 흔들리지 않았다.
국법을 어긴 것도 아니었고, 왕실의 눈치를 볼 생각도 없었다.
3왕자가 이미 왕이라도 된 것처럼 날뛰고 있어 보였지만,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네, 마스터!」
라울이 중심을 잡아주자 부하들도 후련한 표정으로 복명했다.
「그런데 포로들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영지를 병합하게 되면 몸값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부역을 시킬까요?」
몸값을 치르지 못하고 영주가 포기한 병사들은 노예로 부리거나 부역을 통해 빚을 갚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라울은 고개를 저었다.
「다들 영주성을 돌아봤겠지? 성 안에 젊은 남자들이 얼마나 보이던가?」
「그러고 보니 거의 없었습니다. 성벽에 강제 동원된 이들도 대부분 중늙은이 뿐이고.」
「남작 놈들이 젊은이들은 죄다 징병해서 이번 영지전에 투입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들을 부역시킨다면 영지의 경제가 어떻게 될 것 같나? 징집병은 모두 해방해서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병사들 중에선 지원자만 받아 훈련을 거친 후 아군으로 편입한다. 은퇴를 원하는 병사들은 그렇게 수속해 주도록.」
「네, 마스터.」
커넥트에서 중요한 건 땅 보다는 사람이었다.
가뜩이나 넓은 대륙에 인구가 부족해 개발하지 못한 땅도 많은 상황인데, 게이트 사태가 터지며 인구가 더 줄어버렸다.
라울이 영지전을 벌이며 최대한 일반 병사들을 살리려 애쓴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어차피 라울의 백성이 되어 일해야 할 이들을 굳이 해칠 필요가 어딨단 말인가?
‘만약 정면충돌이라도 벌어져서 징집병이 쓸려나갔으면, 영지를 복구하는데 한 세월 걸렸겠어.’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영지를 운영해 나가려면 병사보다는 경제활동에 종사할 일반 백성이 더 많이 필요했다.
어차피 병사를 대체할 ‘플레이어’라는 존재가 계속해서 쏟아져 들어올 테고, 파워 인플레이션은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다.
어설프게 병사를 키워봤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남작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물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있는 거 없는 거 탈탈 털어서 쥐어짠 뒤에 방면해야지. 맘 같아선 다 처리하고 싶지만, 그 정도까지 해버리면 나도 감당하기 힘드니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왕의 허가 없이 귀족이 귀족을 죽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만약 영지전 전투 중에 죽였다면 모를까, 포로로 잡은 이상 처형하는 것은 곤란했다.
‘어차피 죽일 가치도 없는 놈들이니까.’
영지도, 재산도, 부하도 모두 잃은 남작의 말로는 비참하다.
후원자가 있다지만, 그것도 쓸모가 있을 때나 후원자지 이렇게 몸만 살아 도망친 이를 누가 돕겠는가?
놈들에게 남은 것은 어떻게든 아등바등 귀족 작위를 지키기 위해 인맥이든 뭐든 동원하며 발버둥 치는 일 뿐이었다.
만약 주제넘게 라울에게 원한을 품고 다시 무언가 공작을 벌이려 한다면.
‘그때는 정말 아무도 모르게 쓱싹 해버리면 되는 거지.’
영지전이 끝나고 몇 달이 지나면 어차피 놈들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질 테니, 처리하는 건 천천히 해도 늦지 않을 터였다.
아니 솔직한 심정으로 풀어준 남작들이 다시금 물주를 물어서 덤벼줬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수한 파워아머는 바로 공방으로 보내도록. 수량은 얼마나 되지?」
「아머 유저가 열 명이더군요. 멀쩡한 것 2개, 수리할 만한 것이 7개, 완파된 것이 1개입니다.」
필립이 깔끔한 솜씨로 적을 제압한 덕분인지 꽤 수확이 좋았다.
그에 반해 무식하게 때려잡은 제이크 쪽에선 5개, 피어스는 관통시로 인해 파괴된 것이 몇 개 있어서 7개였다.
라울 쪽 전장에서 거둬들인 것이 40여 개쯤 되니 합하면 60개가 넘는 파워아머를 이번 전장에서 획득한 것이다.
「이야, 꿀이네요! 이렇게 몇 번만 더 털어먹으면 애들 다 무장시키겠습니다.」
「제이크 네가 좀 덜 부숴먹었으면 좀 더 빨리 그렇게 될 수 있었겠지.」
「에이, 단장님 또 왜 그러십니까? 사람이 먼저다! 뭐 그런 유명한 말도 있잖습니까. 피해 없이 전투를 끝내려니 어쩔 수 없었다니까요?」
「쯧쯧. 이미 보고로 다 들었다. 이번에 칼립스에서 만나면 제대로 특훈시켜줄 테니 각오 단단히 하고 오거라.」
「아씨, 왜 나만….」
제이크가 투덜거리자 다들 피식 웃었다.
전투를 무사히 마치고 전리품도 넉넉히 얻고 나니 다들 긴장이 좀 풀어진 모양이었다.
「최대한 빨리 뒷정리를 마치고 본성으로 합류하도록. 아직 처리해야 할 큰 산이 하나 남아 있으니 말이지.」
「네, 마스터!」
라울이 본가 쪽을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과연 그가 영지전 결과를 받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도망치는 건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가문의 배신자를 단죄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